이름을 통하여 제품이나 업종을 짐작할 수 있는 경우 적합성(relevance)이 높다고 있다. 유아 옷의 아가방과 베비라, 식품의 청정원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이런 이름은 제품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주면서 광고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갖고 싶어하는 네임이다.
그런데 중국에 진출한 기업의 상호 중에는 이런 면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기업의 이름과 업종이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적잖게 눈에 띈다.
두산, 중국에 가면 ‘산과 싸우다’로 된다
‘두산’이란 이름을 살펴보자. 이 이름은 두산공인중개사 정도를 뺀다면 대개 두산그룹 산하의 회사의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두산홈쇼핑, 두산리조트, 두산베어스. 근래에 CI 작업을 하면서 한글 이름을 버리고 영문 DOOSAN으로 통일하여 광고와 판촉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중국에 들어간다고 하자. 상호등록시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중국어 이름을 쓴다면 斗山이 될 것이다. 이 중국어 이름이 중국인에게 전혀 예상 밖의 의미로 이해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가 두산(斗山)이라고 할 때 ‘두’(斗)는 도량형 단위인 ‘말’을 가리킨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웬만한 것은 모두 근(斤)으로 팔고 산다. 쌀이나 보리뿐만 아니라 사과나 바나나까지도 그렇다.
그렇다고 ‘斗’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신에 거기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 현대중국어에서 斗[또우]는 鬪[또우]를 대신하여 사용되고 있다. ‘鬪’자가 복잡하다고 하여 현대중국어의 한자 목록에서 퇴출시키고 그 대신에 발음이 비슷한 ‘斗’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斗山’의 의미를 중국인에게 묻는다면 백이면 백 모두가 ‘鬪山’, 즉 ‘산과 싸우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에서 연상되는 것은 ‘싸움, 난관, 극복’이라는 상당히 거칠고 도전적이고 투쟁적인 이미지다. 이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斗山’이란 말을 기업의 이름으로 사용하고자 할 경우 업종에 따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斗山鋼鐵(두산강철)은 斗山(즉 鬪山)과 鋼鐵의 강렬한 이미지가 잘 어울리기 때문에 중국의 소비자들도 쉽게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斗山電子’는 다르다. 중국인들은 ‘어려움과 싸우는 전자회사’에서 전자제품이 가져야 하는 고도의 정밀함이나 소비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이름으로는 전자회사에 걸맞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영문 네임 DOOSAN이 중국인이 읽기에 비교적 친숙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영문 네임만을 사용함으로써 한자 네임이 가지는 부적절한 의미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다소 안위가 된다.
한국의 ‘세종’과 중국의 ‘世宗’
‘세종’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임금이다. 그는 한글을 창제했고 측우기를 만들었고 천문 관측 등 과학기술에서 누구보다도 개방된 마인드와 열정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세종연구소, 세종정보통신, 세종과학탐험, 세종문화회관, 세종한의원, 세종인터넷, 세종대학교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 첨단정보통신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인다. 남극에 있는 연구 탐험 기지 이름도 ‘대한민국 세종기지’이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이 ‘世宗’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世宗’은 ‘皇帝(황제), 帝王(제왕), 統治(통치)’라는 전 근대적인 느낌의 이미지로 고착되어 있다. 그래서 과거 봉건시대를 떠올릴 뿐 현대적이거나 미래 지향적인 느낌을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업종이라면 이 이름을 쓰는 것이 무방하겠으나 정보통신과 같은 첨단산업 분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솔을 ‘韓松’으로 옮기면...
한글 네임 바람이 불면서 인명과 상호에 많이 쓰인 것 중의 하나가 ‘한솔’이다. ‘한솔’은 ‘하나의 소나무’ 또는 ‘큰 소나무’라는 뜻으로 순수한 고유어로서 발음이 맑고 청량감이 있기 때문인 듯 한솔제지를 필두로 하여 한솔CS클럽, 한솔교육, 한솔저축은행, 한솔 오크밸리, 한솔 요리학원, 한솔 대입기숙학원, 한솔 컴퓨터학원 등 다양한 업종에서 쓰인다.
‘한솔’을 중국어로 옮긴다고 생각하면 대개 ‘韓松’을 떠올린다. ‘韓松’은 ‘한국의 소나무’라는 뜻이 된다. 한국의 이미지를 네임에 살렸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무릎을 친다.
그러나 ‘한국의 소나무’ 다음에 어떤 업종 이름이 나오는 것이 어울릴까? 가구회사나 제지회사 네임으로는 적절하지만 무역회사 이름이나 인터넷 쇼핑몰 이름으로는 어울린다고 할 수 없다.
첫댓글 그래서..전문가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의 한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군요.
그렇군요^^! 이름을 지을때는 신경써야 되겠네요!!! 중국과 이렇게 문호가 개방되니 그런 문제도...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