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교수 아들 지용 군이 작년 9월19일에 법무부와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한
제4회 <전국 고교생 생활법 경시대회>에서 개인부문 대상을 받았다.
전국에서 고교생 2570명이 참가한 큰 대회였다.
<각종 범죄 공소시효를 연장하자는 논의와 관련해 법률개정위원으로 초청받을 경우 어떻게 할지를 논하라>
는 게 논술문제였다. 요즈음 워낙 흉악무도한 범죄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 <공소시효>를 연장해서라도 흉악범은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져 이런 출제가 나온 것일 게다.
이에 대해 지용 군(한국외대부속고 3년, 18세)의 답안은
--- 개정위원초빙을 거절한다. 공소시효연장과 같은 일련의 법 개정논의는 혜진, 예슬 양 사건 이후 상당히 감정에 치우쳐 사회의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수 있다. 범죄의 근본 예방은 사회 전체의 협력과 노력으로 이뤄져야지 처벌의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또 잔인한 범죄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가혹한 형벌을 요구한다고 해도 거대 권력인 국가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
라는 취지의 것이었다.
국민의 감정에 기반한 공소시효연장논의가 자칫 국가의 법적 안정성을 깨뜨릴 수 있다는 반대논리를 펼친 것이다. 국가의 안정을 우선하는 제법 보수적인(?) 논리를 편 것이다.
결과는 25점 만점에 21점이란 높은 점수를 받아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장원급제를 한 것이다.
지용 군은 그 전 해에도 철학 경시대회와 경제학 경시대회에 나가 각각 은상과 장려상을 받은 바 있다.
지용 군은 신영복 교수가 통혁당사건으로 20년 징역살이 뒤에 쉰 살에 낳은 늦둥이 외아들이다.
신영복 교수는 <부모의 나이가 많다보니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생각을 키우라고 강조해와서인지, 자연스럽게 지용이가 도서관에서 책 읽는 습관이 생겼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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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신지용 군(오른 쪽)
9월19일자 중앙일보의 전면보도(맨 오른 쪽이 신지용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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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가 아버지로서 느낄 감회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일까!
범초,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 만에 하나 신영복 교수가 통혁당사건 당시 언도대로 사형이 집행되었다면(흔히 사형집행하던 시절),
- 기나긴 감옥생활에서 견고한 정신이 무너져 내려 낙백(落魄)의 인간이 되어버렸다면(충분히 그럴 수 있는 20년 통한의 세월),
- 출옥 후에도 빨갱이, 극좌파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면. . .
오늘날의 신영복 교수와 그 많은 저작물, 지용 군과 같은 훌륭한 아들이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 감회가 깊었다.
한 때 국가변란을 꾀한(고문과 견강부회의 억지 사건조작 여부는 별개로 치고) 대역죄인 사형수 신영복의 아들이 국가법체계의 안정과 국가권력의 이성을 주장하는 논술로 대상을 받다니!
더구나 <평소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라고 장원(壯元)한 소감을 당당히 말하는 지용 군을 보면서 극적인 반전,“아이러니”, 참 좋아진 세상. . .등등 만감(萬感)이 교차, 최소한 정치사상범에는 사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범초의 신념이 더욱 공고해졌다(“스웨덴”에서는 10여 년 전에 사형제도가 폐지되었다).
오늘날 신영복 교수는 누가 봐도 소위 진보좌파에 속하는 지식인으로 치부될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한 각종 노동조합을 지지하고 인간 관계론을 설파하며 인간의 사회성,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나무가 숲을 이루는 철학을 주창한다.
그가 지고(至高)한 양심소유자이자 양심수였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 붓글씨의 달인이고 동양고전에 밝고 예의교양에 철저한 신영복!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종교와 무종교. . .등 주의주장이 말 그대로 백가쟁명(百家爭鳴), 백화제방(百花齊放)을 이루는 지구촌이고 인간모습이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래 범초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다.
- 씨줄과 날줄로 천이 짜지듯 좌우, 진보와 보수의 교직(交織)으로 세상이라는 천이 짜진다.
그 천이 비단이 될 것인가 아니면 넝마가 될 것인가는 씨줄과 날줄의 품질에 달려 있을 것이고
또 실의 종이 다양할수록 더 화려한 직물이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고도선진사회가 될 것인가 여부는 좌우파의 자질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제 우리 한국인도 점차 좌우 모두 "업그레이드"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 신영복 교수는 비단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필요한 양질의 씨줄(또는 날줄)이 아닐까?
- 좌우 어느 한 쪽 압제만이 판친다면 기껏해야 싸구려 부직포(不織布, pressed fabric, felt) 같은 무기력한 저질사회가 될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무얼 하든 좌우파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자세, 사람 됨됨이가 먼저라는, 즉 좌우파 모두 정정당당, 정의로워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범초는 신영복 교수를 좌파운운하기 이전에 약한 자나 결핍에 허덕이는 사람들 편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그는 그런 심성의 소유자로 지금껏 살아왔다.
(몇 해만에 작년 9월19일 신영복 선배께 사사로운 편지 - 김수행 교수가 서울대 정년퇴임 후 성공회대학 석좌교수로 부임하여 적적치 않겠다는 안부편지 - 를 띄우고 나서 바로 이 신문을 보았다. 지금이 과거와 같은 압제의 시절이라면 편지를 띄웠다가 검열에 걸려 또 무슨 추달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 지용 군이 내가 오랜만에 편지 보낸 날 이런 영예의 대상을 받다니, 작년 9월19일은 공교로운 날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참고: 신영복 교수는 범초의 서울대학 경제학과 3년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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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치를 서로 이해, 관용으로, 서로의 주장이 설사 평행선으로 끝까지 가는 한이 있더라도 폭력만은 절대배제하는, 패거리를 짓더라도 폭력을 쓰는 자는 자체내에서도 엄벌하는. . .화이부동, 비폭력 이런 가치들이 존중되는 미래사회로 나아가야 되겠지요. 통일이라는 개념을 어느 한 가지로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털고 다양함을 모두 끌어안는다는 개념으로 발상전환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그래야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모놀>가족만이라도 서로 생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 .(사실 인간이란 같은 것보다 서로 다른 게 더 많은 존재라 생각됩니다만)하더라도 화이부동, 화기애애하게 지나기를 소원합니다. 실제 <모놀>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참 많이 보이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놀>에 글을 올렸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가지 이유로 정치적인 현안에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생각입니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고 잘한 것도 내 탓이요 못한 것도 다 내탓이란 생각입니다. 팥심은데 팥나고 콩 심은 데 콩난다는 그 말이 아주 많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렇더라도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 기대도 합니다만 번번히 제 욕심만 드러낸 것 같아 얼굴이 달아 오르고 속만 상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요즘 보기 드믄 청년인데 저렇게 키워내신 분이나 큰 아들이나 다 대단합니다.
고 이병철 회장께서 그랬다던가, <(모든 걸 내 마음대로 이루었는데)골프와 자식 농사만은 마음대로 안 되더라!> - 그만치 어려운 게 자식 키우고 교육시키는 건데, 참 부러운 일이지요! 아버지도 물론 훌륭한 분이지만, 아마 그 어머님의 공이 더 컸으리라 생각이 드는군요! 치맛바람 일으키며 극성 떨어서도 절집 찾아다니며 빈다고 돈 칠갑을 해 무한과외 시킨다고 될 일도 아니고 . . .장구한 세월 어머님의 정성과 모범적인 생활, 품성 자체가 은연중 자식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겝니다. 특히 어렸을 적엔! 아마 그랬을 겝니다!
자식은 가르쳐서 되는게 아니고 몸소 실천하므로서 시청각으로 긴세월 동안 자연히 닮아 가겠죠. 어느 이론에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 흑백논리는 곤란하겠지요.서로 한발 물러설줄도 알아야 성숙한 삶을 누릴 수 있지않을까요?
당연한 말씀이죠! 색동님께서도 자연스레 자제분들에게 어릴 적부터 좋은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엣날 왕조시절에나 지식인들의 유배 생활이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도 그런분이 있으시다는 걸 이제야 범초님을 통해 실감했습니다. 정말 지금까지 신영복님이 살아계셔서 만인의 귀감이 되고 계심이 너무 다행스럽고 그분에 대해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0년의 감옥생활을 지켜보셨을 가족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귀하게 얻은 아드님이 훌륭하게 자라 대상을 타는 모습을 보시고 범초님의 감격이 얼마나 크셨을지를 알 것 같습니다.
물론 놀랍고 감격스러웠지요! 한 편 이제 우리 한 시대는 다 지나가는 구나 - 하는 쓸쓸함, 회한 따위가 한 줄기 강물되어 흘러가 버리는 듯, 담담한 마음도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