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3주(가 안세환), 2008, 9, 7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공동체
(에제 33, 7-9; 로마13, 8-10; 마태 18, 15-20)
사랑합니다.
제가 신창동 성당 공동체에 몸담게 된지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책과 씨름하며 살던 제게,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숨 쉬고 부딪히며 산다는 생각은 설레임과 더불어 두려움을 갖게 하였습니다. 첫 만남은 늘 그러하나 봅니다. 열흘이 지난 지금 그 두려움이 기우였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열정의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알고 따르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내적으로 외적으로 보다 성숙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공동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공동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여름 동안 들었던 복음들(연중 제15-17주일)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알려 주었습니다(마태 13장 참조). 이 하느님 나라는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 17참조), 아니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루카 17, 21참조)고 말씀하시며, 당신이 꿈꾸시던 공동체를 “교회(敎會)”라 부르시고 시몬 베드로를 반석으로 구체적인 형태의 공동체를 세우십니다(마태 16, 18참조).
그런데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이 공동체는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분은 당신의 교회를, 남들보다 그리 잘나지도 않고 배운 것도 많지 않은 시골 출신 어부 시몬이라는 사람을 우두머리로 세우십니다. 최초의 교황이 될 이 사람은, 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정도로 약한 사람입니다(마태 26, 69-75참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이 공동체는 스스로를 의인이라 생각하며 율법을 잘 지키던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이 공동체는 세리와 죄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이고(마태 9, 9-17),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공동체(마태 13, 30참조)이며,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비롯한 온갖 것들을 끌어올리는 그물에 비유되는 공동체입니다(마태 13, 47참조).
이 공동체를 세우시면서 예수님께서 내리신 행동 강령(綱領) 또한 참으로 기이합니다.
누가 오른뺨을 치면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하십니다. 누가 재판을 걸어 속옷을 가지려 하면 겉옷까지 내주어라 하십니다. 누가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면,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라 하십니다(마태 5, 38-41 참조). 세상의 정의라는 잣대로 설명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또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자신들을 박해하고 탄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마태 5, 43 참조). 자신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 용서하라 하십니다(마태 18, 21-22 참조).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마태 10, 37-39 참조; 16, 24-25 참조).
이 공동체에서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첫째가 되려는 이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역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마태 20, 26-28 참조). 그리고 당신이 말씀하신 바대로, 그분은 죄인이 아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우신 이 공동체는 인간 이성이 만들어 낸 그 어떤 제도나 국가들이 흥망성쇠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존속하게 됩니다. 피부색과 언어와 나라와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영원불멸의 사회가 됩니다. 의인들이 아닌 죄인들로 이루어졌기에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하느님을 믿고 따르기에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 못하는 사회가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최고의 사회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꿈꾸시는 사회는 사실 유토피아가 아니며, 헛된 약속도 아니며, 사람들을 완전한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사회입니다. 이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하게 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위로 받으며, 온유한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고,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흡족해지는 사회입니다(마태 5, 3-12참조).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면 가장 큰 사람이 되는 사회입니다(마태 18, 1-5참조). 작은이들이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 신명나는 사회입니다(마태 18, 10참조). 사랑이신 하느님이 중심에 서 계시며, 모든 일들이 인간 구원을 위해 돌아가는 사회입니다. 율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이 통치하는 사회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흘러넘치는 사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사회에 속한 누군가가 죄를 짓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세세히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먼저 일대일로 만나 타일러야 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죄는 누구나 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꿈꾸시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의인들이 아닌 죄인들을 불러 모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형제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즉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라 하십니다(마태7, 1-5참조). 만일 죄지은 형제가 자기 잘못을 인정치 않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잘못을 확정지으라 하십니다. 자칫 개인적인 감정싸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도 그 형제가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야 합니다. 교회는 통치권을 가진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맬 수도 풀 수도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공동체가 죄지은 형제를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그가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즉 그 사람을 친교와 일치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공동체가 아니라 그 사람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행동강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이 꿈꾸시는 공동체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가 믿는 하느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떠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마태 18, 12-14 참조). 예수님께서는 앞서 말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때, 죄지은 형제를 위해 기도하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실 것이고, 마음을 모아 청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한 공동체는 죄지은 형제를 사랑으로 대하고, 그가 회개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잃지 않으며, 그 누구의 멸망도 원치 않으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지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듯, 예수님의 공동체에 속한 자는 그 누구에게 빚을 져서는 안 되지만, 사랑에는 빚을 질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며,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로마 13, 8-10 참조).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를 통해 들려주시는 주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시편 95, 7-8 참조), 나의 잘못을 사랑으로 지적해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하며, 나의 회개를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신창동 성당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말씀에 매료되어 모여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구원이 아닌 서로의 구원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공동체입니다. 이제 갓 두 살을 넘긴 우리 공동체는, 앞으로 보다 더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믿음으로 튼튼히 무장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들과 아픔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잃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 누구도 버리지 않는 사랑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꿈꾸시는 공동체가 우리 신창동 성당 공동체 안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