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SBS 금토드라마 ‘원더우먼’이 막을 내렸다. 먼저 “모범택시→펜트하우스→홍천기…SBS 드라마 ‘3연타’ 날렸다”는 제목의 신문기사(스포츠서울, 2021.9.1.)가 떠오른다. ‘홍천기’는 보질 않아 잘 모르겠지만, ‘모범택시’와 ‘펜트하우스’가 높은 인기를 누린 건 맞다.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SBS 금토드라마로 방송되어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물론 시리즈 3부작중 1부 ‘펜트하우스’는 월화드라마였지만, ‘원더우먼’이 거기에 가세했다. 기사는 방송관계자의 말이라며 “요즘 SBS 드라마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드라마 흥행으로 수익을 거둔 SBS는 재밌는 콘텐츠를 살리는 방법을 알게된 듯하다. 또 시즌제의 방식을 택하면서 보장된 흥행을 끌어가고 있다”는 걸 전하고 있다.
9월 17일 MBC ‘검은 태양’과 같은 날 밤 10시 동시에 시작한 ‘원더우먼’ 첫회 시청률은 8.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다. 2회에서 7.1%로 주춤했지만, 3회 12.7%로 오르더니 이후 종영까지 10%대 중반 시청률을 유지했다. 최종회 시청률은 17.8%다. 이는 최고 시청률이기도 하다. MBC ‘검은 태양’을 본방사수하면서도 ‘원더우먼’을 재방송으로 애써 챙겨본 이유다.
일단 “코미디는 배우들이 하기에도 어려운 장르다. 저희끼리만 재미 있을까봐 걱정도 많다”(스포츠서울, 2021.9.16.)고 한 이하늬(조연주ㆍ강미나 역)의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킨 셈이 됐다. 앞에서 말한 3연타를 넘어서는 시청률 대박이 ‘저희끼리만 재미 있을까봐’를 싹 불식시킨 단적인 증표라 할만해서다.
미스코리아(2006 진) 출신의 연기자 이하늬 개인적으로도 3연타를 날린 셈이 됐다. 대박을 친 SBS 첫 금토드라마 ‘열혈사제’ 이후 2년 6개월 만에 드라마로 돌아와 다시 검사 역을 맡아 시청률 견인 1등공신이 된 데다가 그 사이 극장 관객 1,626만 명을 기록, 왕대박이 난 영화 ‘극한직업’까지 출연했으니 영락없는 3연타다.
‘원더우먼’은 비리 여검사 조연주가 갑자기 한주그룹 며느리 강미나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여검사의 ‘더블라이프 코믹버스터’(스포츠서울, 2021.9.16.)라거나 ‘강한 여성에 대한 페미니즘적 희구를 담뿍 담은 드라마’(황진미. 202110.16)커니 말하지만, ‘원더우먼’은 한 마디로 황당한 이야기다. 단, 황당하지만 재미는 있는 ‘원더우먼’이다.
“피곤한 일상에 지친 여러분께 청량함을 드리는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는 연출자(최영훈) 바람이 시청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된 셈이라 할까. 최 PD는 “거침없는 대사, 시원한 캐릭터들의 매력이 대본의 강점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드라마에 제대로 구현돼 인기를 끈 한 요인이 되었지 싶다.
최 PD는 “코미디ㆍ로맨스ㆍ미스터리ㆍ액션이 다 있고 대사들의 말맛이 좋았다”고 또 다른 강점도 이야기한다. 굳이 말하자면 최 PD의 전작 ‘굿캐스팅’(2020)처럼 “유쾌한 유머와 상쾌한 로맨스, 통쾌한 액션이 있는 드라마”에 미스터리가 추가된 ‘원더우먼’이라 할 수 있다. 미스터리가 하나 추가되었을 뿐인데, ‘원더우먼’ 시청률은 ‘굿캐스팅’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원더우먼’은 ‘굿캐스팅’(2020)처럼 너무 여러 가지를 섞어 몰입 방해는 물론 국익 해치는 산업스파이를 잡는 데 따른 긴장감마저 수시로 흐트러지게 하고 있지는 않다. 동시간대 경쟁한 MBC ‘검은 태양’처럼 뭐가 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 전개도 아니다. ‘원더우먼’은 코로나19에 각종 비리와 범죄 뉴스를 보며 사는 사람들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준다.
조연주가 “전 지구를 찾아봐도 딱 한 사람밖에 없을 것 같은” 캐릭터라면 한성혜(진서연)는 가히 역대급 빌런 재벌이라 할만하다. 한성혜를 연기한 진서연은 2018년 상반기 최고 흥행 한국영화 ‘독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다. 예컨대 고 김주혁이 진서연의 혓바닥에 묻은 마약을 혀로 빨아드리는 감별 퍼포먼스 장면이 그렇다.
그것이야 어쨌든 ‘원더우먼’이 까발리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재벌과 검찰의 민낯이 바로 그것이다. 진서연이 연기한 한성혜는 비리, 아니 빌런 재벌의 모범답안 같은 인물이다. 그를 통해 ‘땅콩 회항’이니 ‘맷값 폭행’ 따위 등 실제 사건을 적절히 안배해 까는 식이다. 한성혜를 괴물로 만든 아버지 한영식(전국환)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한성혜는 광고 중단을 내세워 언론사를 압박하고 접촉사고 피해자에게 사과 대신 돈뭉치를 던진다. “없는 것들은 왜 이렇게 공격적일까”라며 개무시하는가 하면 “일개 평검사가 재벌을 상대로 뭘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비아냥대며 거들먹거린다. 충성심 강한 수족으로 부리기 위해 정도우(김봉만)의 입원중인 여동생을 살릴 수 있는 수술도 못하게 한다.
한성혜가 역대급 빌런인 이유는 더 있다. 타인이나 사촌은 말할 것도 없고 큰남동생을 죽이고 친아버지 비리를 류승덕(김원해) 검사장에게 넘겨 감옥에 보내는 등 골육상쟁을 피식 웃어가면서 벌이고 있다. 오싹 소름끼치게 하는 여자다. 그야말로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모두 치워버리는 한성혜는 ‘펜트하우스’의 주단태며 천서연이 울고 갈 만큼 빌런이다.
연주 할머니를 차로 받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뺑소니에 이어 14년이 지나서까지 반성이나 죄책감을 전혀 갖지 않는, 뼛속까지 빌런인 이런 여자 캐릭터가 역대 드라마에 있었는지 싶을 정도다. 자살로 죄값을 치르려는 줄 알고 그건 아니지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게 해외도피를 위한 위장이라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법무부 아래 일개 청’인 검찰의 민낯 까발리기는 더 노골적이다. 비리 쩌는 류승덕 검사장을 내세워 솜방망이 처벌의 제 식구 감싸기로 유명한 조직인 검찰을 까발긴다. 뉴스에서 보던 성추행ㆍ스폰서 검사라든가 재벌과의 커넥션, 그리고 소위 검언유착 등 수없이 많다. 예컨대 조연주가 “성추행 검사도 멀쩡한데 왜 나만 잘라” 하는 식이다.
그 일을 한때 비리검사였던 조연주가 해낸다. 시청자들이 엄지척 하며 속 시원해하는 건 필유곡절이다. 한승욱(이상윤)과 같이 있는 집 소파에서 그냥 잠들어버리는 ‘개념 없는’ 조연주일망정 그렇다. 권력이 돈을 짓이겨 몰락시키곤 하는 걸 봐온 시청자들에게 서울중앙지검장이 재벌에게 설설 기는 것은 좀 낯선 풍경일 수 있지만, 그마저도 통쾌하고 후련하다.
기본적으로 황당한 이야기임을 접어두고 사이다 전개의 재미에 방점을 찍었지만, 난데없이 “불비슬(불빛을→불비츨) 비춰서”(3회) 따위 배우의 발음상 오류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또한 10월 7일 밤 자사의 영화소개 프로그램인 ‘접속 무비월드’의 ‘눈여겨 보실까요’에서 ‘원더우먼’ 홍보를 한 건 맥락 없는 드라마속 PPL처럼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