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이야기는 결국 예수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대한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했다는 것인데
생물학적 수태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하느님의 작용으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교회라는 상황과 자리에서
‘믿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처럼 심각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상식인데
상식과 어긋나는 내용에 대해 왜 그러냐고 묻지 못하게 한다면
이런 파괴적 독선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예수 이야기 또한 기적에 대한 것으로 가득합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거나,
두어 사람이 먹기에도 모자랄 정도의 음식으로
수천 명을 먹였더거나,
수많은 질병을 말 한마디나 의미 없어 보이는 간단한 행위로
쉽게 치료를 했다거나,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는 것으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기적의 절정으로 보이는 하늘에 올라가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부활 이야기로 마감됩니다.
그 모든 이야기는 역시 자연질서, 또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신의 개입이라고 하는데
구약성서의 기적 이야기와는 달리
예수 이야기에는 그의 태어남이나 삶이
이미 구약성서에 예고되어 있고
그 때문에 ‘틀림없는 사실’인 신의 뜻이었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면
예수의 정신이나 그의 가르침이 갖고 있는 의미,
그런 내용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 역사, 문화적 조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되고
그래서 역사적 예수가 머물 자리 또한 사라지게 됩니다.
이제 예수의 삶, 그의 사람됨, 그가 지니고 있던 이상,
그 모든 것의 실천으로서의 예수의 생애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기적을 일으켰던 위대한 예수’가 아니라
‘낮은 자를 사랑하고
그 낮은 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제시한 희망의 사도 예수’로 읽는 일입니다.
거기서 하느님과 성서, 그리고 예수는
오늘날도 여전히 의미를 갖게 됩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