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바람, 원시림의 보고(寶庫)
-울릉도를 다녀와서-
올해 교직원 하계연수 장소가 울릉도로 정해지기까지는 교무실내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늘 가던 제주도와 설악산 쪽을 희망하신 선생님들의 반응으로는 울릉 도엔 숙박시설이 너무 열악하다든지 관광거리가 별로 없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사실 울릉도는 11년 전인 1989년도에 직원 연수를 다녀왔었다. 그 당시 성인봉까지 다 답사한 터라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선생님도 많았었다. 그러나 그 동안 긴 세월이 흘렀고 새로 오신 선생님들을 포함한 다수의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장소는 정해졌다.
천혜의 자연관광지요 오징어와 호박엿의 섬! 그리고 향나무와 원시림, 희귀수목(稀貴樹木)의 보고(寶庫)인 울릉도. 순박한 섬 색시의 미소를 간직한 동해의 비경(秘境) 울릉도!
문득 청마 유치환님의 '울릉도'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쪽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구비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7월 20일 오전 10시. 카페리 쾌속선인 썬 플라워호는 승용차 30여대, 승객 800여명을 태우고 오늘의 목적지인 울릉도를 향해 평균 시속 82㎞로 포항부두를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갔다. 물결은 잔잔하고 반짝이는 햇살조각이 눈부시게 출렁이는 쪽빛하늘을 물들인다. 뱃전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 만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향하여 마치 고요한 빙판 호수 위에서 춤추는 인형처럼 미끄러지고 있다.
사방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점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茫茫大海). 멀리 수평선을 응시하면 사물이 정지한 듯 보이지만, 가까이 고개를 돌리면 수상스키를 즐기듯 쭉 쭉 뻗어나가는 썬 플라워호. 육지에서는 주위에 여러 가지 건물도 있고 해서 빠른 속도감이 나지만, 이 바다에선 사방에 아무 것도 없는 수평선을 안고 달려가니 시속 80㎞이상이지만 속도감각이 거의 없다. 잠깐 눈을 붙이는 가 했는데 어느 새 배는 도동 항구로 접어들고 있었다. 11년 전엔 울릉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후포에서 출발해도 4시간이나 걸렸었다. 그러나 오늘은 500여리(217㎞)나 되는 가장 긴 코스를 불과 3시간만에 도착하였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오후 1시를 가리킨다. 일기가 쾌청하고 바다의 물결은 모두 숨을 죽이고 쾌속선도 마음껏 실력을 발휘한 덕분이리라.
<대동장>에 숙소를 정하고 오후 첫 일정으로 섬 일주 유람선관광을 하게 되었다. 유람선관광은 도동항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섬 전체를 한 바퀴 돌면서 바다에서 감상하는 울릉도 관광코스인데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 유람선 관광의 특징은 배가 떠나면서부터 수많은 갈매기 떼가 선상위로 따라오면서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며 선상향연을 벌이는 것이었다. 이 갈매기 떼들은 오징어 같은 해산물은 먹지 않으면서 오직 새우깡 같은 스낵과자를 유난히 즐기는 것이었다. 때로는 높이, 때로는 승객 머리 위에 바짝 붙어 날아오르면서 오직 던져 주는 과자를 쪼아먹는데 열중하는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속이 너무도 투명한 죽암 앞바다. 맑은 물과 빼어난 경치에 빠진 세 선녀가 하늘로 올라갈 시간을 놓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과 기이한 모습을 바다속에 감추고 있는 삼선암의 자태!
깍아지른듯한 절벽, 그리고 울창한 숲, 바다에서 조망(眺望)하는 울릉도의 풍경은 작열(灼熱)하는 태양아래 눈부신 알몸을 부끄러운 듯이 조금씩 언뜻언뜻 내 비치는 숫처녀의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삼면으로는 바위섬 하나 없는 아득한 수평선. 어느새 배는 서서히 죽도(竹島)를 바라보며 저동항을 거쳐 다시 도동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 때 까지 정말 끈질기게 따라오던 갈매기들도 도동항 입구에 접어들자 모두 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 갈매기들의 모습에서 너무나 관광객에게 길들여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인간사가 생각나는 것은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문득 서글픈 감정이 왈칵 밀려온다. 누가 저 갈매기들의 순수하고 자연스러움을 빼앗아 갔단 말인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것이, 문명의 발달이라는 미명(美名)아래 도리어 진정한 자유와 순수함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도동항 우측으로 바다와 기암절벽을 안고 도는 산책로를 찾았다. 폭 1m 남짓하게 이어진 산책로 옆으로는 10여m 이상의 바닷물 속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맑다 못해 시퍼렇게 일렁이는 물 속 풍경.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면서도 한편으론 풍덩 뛰어들고 싶은 야릇한 충동을 느끼게 해 준다. 왼쪽의 길과 연결된 절벽에는 화산 특유의 화산재로 이루어진 바위벽이 울퉁불퉁 질서 없이 생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를 더욱 환상의 세계로 안내해준다. 그 바위 틈새 움푹한 곳에 둥지를 틀고 가만히 앉아 밤을 새우는 괭이갈매기들의 모습! 새삼 육지를 떠나 멀리 동해의 한 점 고독한 섬에 와 있다는 느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안고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옮긴다. 저 멀리 어화(漁火)의 불빛이 하늘과 맞닿은 양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오징어잡이 배이다. 군데군데 갯바위엔 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의 야광 찌만이 형형색색 빛을 발하며 검푸른 밤바다 위에 또 다른 풍물을 선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 20분쯤 걸었을까? 출입금지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개발중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가지 말라는 곳이다. 가로등도 켜 있지 않고 길이 끝나 있었다. 안내문를 읽어보니 2000년 12월말까지는 좀 더 멀리까지 산책로가 개발된다고 되어있다.
밤바다의 해변노천카페에서 벌어진 동료들과의 곡차(穀茶)파티. 나름대로의 결혼관, 인생관, 그리고 꿈과 사랑과 낭만이 초롱초롱 빛나는 밤이다. 하늘의 별과 출렁이는 파도의 속삭임을 안주 삼아 시간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오가는 맑은 담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순간이리라.
둘째날.
조반을 먹고 렌트카를 대여해 육지관광 후에 성인봉 등반을 하기로 하였다. 울릉도에는 아직 일주도로가 완공되지 않았다. 근 10여 년 동안이나 일주도로 공사를 하고 있으나 워낙 난코스가 많아서 공사가 잘 진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로를 낼 곳에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바위가 많았다. 이 바위를 뚫어 터널을 만들어 도로를 내야 하지만 육지에서처럼 다이나마이트를 쓸 수가 없단다. 왜냐하면 화산암으로 된 바위가 너무 약해서 무너질 염려가 있어서, 일일이 사람이 굴삭기나 다른 기계로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이란다.
육지관광의 백미(白眉)는 남양에서 서면 태하리로 넘어가는 일명 <찔끔고개> 코스였다. 겨우 차 한 대 정도만 다닐 수 있는 좁은 도로. 경사도는 약 30도에서 40도. 굽이굽이 끊어질 듯 이어진 길. 양쪽은 급경사로 절벽처럼 아득한 아찔한 도로였다. 울릉도가 가장 자랑하는 것 중의 하나인 울창한 숲. 하늘을 가리는 원시림이다. 태초의 밀림 같은 원시림을 뚫고낸 길.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험난한 도로사이를 정말 브레이크 한번 제대로 밟지 않고 지그재그로 곡예하면서 달리는 것이었다. 여기 저기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탄사와 함께 온 몸이 전율하는 긴장을 맛보았으리라! 고개를 넘을 때마다 새롭게 눈앞에 펼쳐지는 눈부신 비경(秘境). 몇 년 전에 다녀온 태평양 한가운데 화산섬인 하와이와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고 훨씬 뛰어난 풍광(風光)을 간직하고 있었다. 정상 부근을 넘어갈 때 펼쳐지는 한 폭의 산수화는 육지에서 느끼는 경치와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일한 풍력 발전소 날개 옆을 지나니 낯선 이국땅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여름 경치보다는 가을철 단풍이 든 풍경은 세상 어느 곳보다도 뛰어난 환상적인 자태를 보여 준다는 안내원의 말에, 언제 한번 어느 가을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울릉도의 4대 신규 관광지역의 하나인 서면 태하리.
태하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성하신당은 애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선 태종 때에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삼척인 안무사 김인우 일행은 주민 모두를 육지로 데려가기로 했다. 병선 2척으로 태하동에 도착하여 그 다음날 출항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폭풍이 불어와서 떠나지 못하였다. 그날 밤 꿈에 해신이 나타나 동남동녀(童男童女) 한 쌍을 두고 떠나라는 말에 안무사 김인우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해신의 말대로 실천을 하게되었다. 한 쌍의 동남동녀에게 필묵(筆墨)을 두고 왔으니 급히 가져오라고 거짓 심부름을 시켰다. 그들이 빽빽한 삼림속으로 뛰어가자 폭풍이 사라지고 곧 배가 쉽게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인우는 육지에서 그 사실을 잊지 못하고 있다가 수년 후에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그 때 남겨놓은 동남동녀는 그 자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죽어 백골이 되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에 김인우가 그 외로운 혼을 달래주기 위해 지은 사당이 바로 이 성하신당이라고 한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농작이나 어업의 풍년도 기원하고 위험한 해상작업의 안전도 빈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 짓는 배의 진수가 있으면 반드시 태하의 성하신당에 제사를 지내어 무사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고 한다. 신당 문을 여니 둥근 손거울을 옆에 두고 하늘색 바지와 흰저고리를 입은 눈이 초롱초롱한 소년과, 노랑저고리에 녹색치마를 입고 다소곳이 수줍은 듯이 앉아있는 소녀가 나그네를 반긴다. 그 옛날의 전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무심하게 참배하는 관광객들 발걸음 소리만이 안내문 주위의 돌자갈 소리 속에 묻힌다.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그 날의 아픈 사연을 안고 묵묵히 눈을 감고 굽어보고 있다.
"울릉도 바닷물이 왜 저렇게 파란지 아십니까?" 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와 바위에 자꾸 스쳐서 멍이 들어서 파랗지요"라는 재치 있는 안내원의 우스개. 그러나 실제로는 빛의 일곱 가지 색깔(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중에 다른 색은 바닷물이 다 흡수하고 초록색만이 반사해서 색깔이 초록빛을 띤다는 과학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차는 나리분지로 향했다.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평평한 지대인 나리분지. 그 옛날 태초에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긴 분화구이다. 이 나리분지는 물이 없어져서 생긴 평평한 지대로 약 40만평이나 된단다.
나리동의 <너와집>은 울릉도 개척 당시(1882년)에 있던 울릉도 재래의 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너와집으로서 1940년대에 건축한 것이다. 이 집은 4칸 일자집으로 지붕은 너와(소나무 널빤지)로 이었다. 큰 방, 중간방, 갓방은 전부 귀틀 구조로 되어 있는데, 큰 방과 중간방은 정지에서 내굴로 되었고, 갓방은 집 외부에 돌린 우대기를 돌출시켜 별도의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사방을 돌아봐도 창문은 한군데도 없으며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방문은 일반문틀과는 달리 대나무로 엮었다.
<투막집>은 너와집과 마찬가지로 전혀 못을 사용하지 않고 통나무와 나무껍질로만 지었다. 그러나 육지와는 달리 형태와 크기가 독특하고 바람과 눈이 많은 섬지방의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이 너와집과 투막집의 모습에서 그 때의 어려운 생활상을 간접적이나마 엿보게 해 준다. 옛날엔 우리 조상들이 왜 저렇게 좁게 집을 지었을까? 당시의 시대상이나 경제상을 조금씩 느끼게 해 주는 집 구조를 보면 새삼 인간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의미를 다시금 곰곰 생각하게 한다.
이제 여기서 조금 더 성인봉 쪽으로 올라가면 알궁이라는 곳이다. 알궁은 울릉도의 2차 분화구이다. 앞으로 성인봉정상까지 약 50분 거리이다. 수정처럼 맑은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생수병에다 물을 가득 채웠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원시림의 물결. 이름 모를 매미와 벌레들이 익어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화음을 감상하면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가파른 산길이다. 하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시원한 바람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녹음이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능선 길에 접어드니 상큼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쪽빛으로 수놓은 하늘과 바다가 맞붙어 있어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하늘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드디어 <聖人峰>정상. 해발 984m. 1986년 10월 3일, 1.5m가량의 바위에 한문 행서체로 음각(陰刻)한 표석아래 섰다. 성인봉이란 이름은 산의 생김새가 성스러운 사람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좌우로는 미륵산, 초봉, 형제봉, 관모봉, 두리봉, 나리봉 등을 호령하며 동해의 한 가운데 홀로 우뚝 높이 솟아서 먼 육지를 흠모하며 바다를 지키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면 정말 거칠 것 하나 없는 아득한 일망무제(一望無際). 무상무념(無想無念)의 경지다.
여기서 도동까지는 약 2시간 남짓한 거리이다. 준비해온 간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하산 길로 들어섰다. 능선 길을 따라 걷는 재미는 경쾌한 리듬에 맞춘 왈츠 음악에 몸을 싣는다. 가볍게 이리 저리 투스텝으로 내려가면 지루함도 잊어버리고 쉽게 내려갈 수 있다. 가끔 리듬을 잃거나 브레이크를 잡지 못해 미끄러지는 불상사도 나오기도 하지만. 성인봉 주변의 원시림은 무려 650여종의 식물이 서식한다고 한다. 삼나무, 섬피나무, 너도밤나무, 우산고로쇠 등 목본류가 19종, 초본류가 22종이나 자생하고 있어 울릉도 식물 학술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곳곳에서 서식하는 나리꽃은 울릉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나리분지 뿐만이 아니라, 산비탈에서부터 평지주변 그리고 일주도로 군데군데 어디 없는 곳이 없다. 빛깔은 매력적이고 곱지만 그 속에 독이 있다고 설명해 준다. 불그스레한 꽃이 까만 점과 함께 어우러져 부끄러운 듯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있다. 수줍은 섬 색시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양 아늑하고 포근한 마음을 갖게 해 준다. 한참 내려오니 앞이 탁 트이고 바다를 관망하며 쉴 수 있는 <8각정>이 나타난다. 내려오는데 마음이 급하여 제대로 경치를 완상(玩賞)하지 못했지만 이 정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한 폭의 그윽한 산수화였다.
칡차를 끓여 파는 아주머니 옆에서 발걸음을 쉬었다. 피로회복과 갈증해소에 특효가 있다는 울릉도 칡차. 도동에서 직접 물을 지고 와서 천궁 더덕과 함께 끓인다는 말에 모두들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주머니사정으로 그냥 내려와 버렸다. 갑자기 앞서 가던 동료가 무릎이 시큼시큼 하다고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경사가 완만하지 않고 제법 가파른 길을 오래 내려왔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를 준 모양이다. 오후 2시 조금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 회식은 근처에 있는 <상록식당>에서 홍합덮밥으로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보충했다. 해녀들이 직접 따온 싱싱한 홍합에 각종 야채를 섞어서 짓는 밥으로 비린내가 없으며 시원한 오이냉채와 함께 먹는 독특한 맛이었다.
밤에는 바람이 굉장히 심하게 불었다. 혹시 태풍이 오는 것이 아닐까? 내일 뭍으로 나가는 배가 뜰 수 있을까 없을까?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셋째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그렇게 심하게 불던 바람이 조금은 수그러진 듯 조용하다. 창문 밖으로 싱싱한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오늘 일정은 먼저 <봉래폭포>로 향하였다. 저동 해안에서 약 2km 지점인 주사골 안쪽에 있는 폭포로서 50-60m의 층계를 이루고 있어 일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성인봉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굽이굽이 흘러내려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이다. 이 울릉도에도 저런 규모의 폭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웅장하였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 폭포에서는 하루에 약 2400t 정도의 물이 쏟아지는데 그중 1200t 정도만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길 좌우로 삼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폭포까지 약 40분 정도의 길이 조금도 지겹지 않았다. 길목 중간지점에 <풍혈>이라는 천연 에어컨이 있었다. 그 곳에 들어서니 직경 약 50㎝ 정도의 바위구멍에서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지하수맥으로부터 불어 나오는 바람이 외부온도와의 차이로 여름철에 시원한 바람을 뿜어내고 있어 <풍혈> 이라고 한다. 바위틈으로 평균 섭씨 4도 정도의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다시 약수공원을 거쳐 청마 유치환 시비, 안용복 장군 충혼비, 그리고 향토사료관과 독도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박물관 옆에는 1998년 7월에 설치해서 운행하기 시작한 케이불 카가 있었다. 케이불 카를 타고 망향봉에 오르니 온 세상이 다 내 손안에 들어온 기분이다. 귓가를 스치는 거센 바람이 모든 세상사를 쓸어가고 오직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안개와 구름과 바다와 하늘뿐! 저 멀리 포말 속에 독도가 있다고 한다. 쾌청한 날에는 육안으로도 관찰이 된다 하지만 오늘은 물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번잡한 세상의 모든 일을 잠시 잊어버리고 천상의 생활을 순간이나마 즐겼지만 또 속세로 내려오고야 마는 현실. 산뜻하게 단장된 독도 박물관에서 다시 한번 독도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란 사실과 우리 국토의 소중함과 사랑을 가슴속에 뼈저리게 느꼈다.
오징어와 호박엿의 섬으로 유명한 천혜의 자연관광지! 수천 년 된 향나무와 원시림의 절경, 희귀수목(稀貴樹木)의 보고(寶庫)인 울릉도. 순박한 섬 색시의 미소를 간직한 동해의 비경(秘境) 울릉도! 뱀, 도둑, 공해가 없고 향나무, 물, 미인, 바람, 돌이 많아 3무(無) 5다(多)의 섬!
풍랑은 조금 있었지만 오후 2시 출발 썬 플라워호는 예정대로 포항을 향해 긴 고동을 힘차게 울리고 있었다. (2000. 8. 8)
<이 글은 2000년 7월 20일 - 22일 까지의 여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