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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산조 계보
가야금 산조 명인의 계보를 크게 1세대 2세대로 나누어 보면 제 1 세대 명인으로는 김창조(1865∼1920), 한숙구, 박팔계, 심창래가 각각 계보를 달리하고 있고,
제 2 세대로는 강태홍(1894 ∼1957), 한성기(1896∼1950), 최옥산(1902∼1950?), 김병호(1910∼1968),한수동(1902∼1929), 박상근(1905∼1950), 심상건(1889∼1965)으로 1세대와 2세대를 나눌 수 있다.
강태홍, 한성기, 최옥산, 김병호는 김창조에서 이어지는 계보이고, 한수동은 그의 아버지 한숙구에게 이어지지만, 오늘날 그 음악은 전해진 것이 없다.
박상근은 박팔괘에서, 심상건은 심창래에게서 전승받은 산조로서 각각 박상근 산조와 심상건 산조로 전승되므로 현존하는 산조를 통해 그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세대별로 나누어 본 가야금 산조의 계보를 잠시 살펴보았고, 이제 각 유파별로의 계보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한성기 류 : 김창조에게 사사하여 김죽파에게 가르침
안기옥 류 : 김창조, 한숙구에게 사사하였으며, 정남희를 거쳐, 김윤덕이 이어받고 있다.
박상근 류 : (1905∼1949) 박팔괘에게 사사하였다. 웅건한 심상건의 가락과는 대조적으로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연주법을 가졌다. 해방 후 대한 음악무용연구소를처음으로 만들어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 상금연 등에게 가르쳤다.
심상건 류 : (1889∼1965) 서산 출신. 아버지 심창례에게 사사하였다. 해방 후에 국립국악원의 촉탁으로 재직함. 가야고를 낮게 조율하여 타는데 은은하고 깊은 것으로 산조의 정평이 나있고, 젊었을 때 취입한 가야고 병창인 소상팔경은 다시 듣기 어려운 깊은 소리로 알려진다.
함동정월 류 : 1917년 전남 강진 병영에서 출생으로 김창조에서 최옥산으로 내려오는 계보이다. 1980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산조의 예는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이재숙, 박재희, 성애순, 정회천, 심상순, 황병주, 김정자, 나현숙, 이경자, 이영신, 안희정, 김일륜선생님을 가르쳤다.
김죽파 류 : 1911년 서울에서 출생, 1989년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조부인 김창조에게 가야금을 배우고, 한성기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독자적인 가락으로 새로운 유파를 형성하였으며, 1979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 산조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재숙, 김정자, 양승희, 문재숙, 박현숙, 성심온, 이미경, 민미란, 이재경에게 가르쳤다.
성금련 류 : 1923년 출생,1974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 1987년 하와이에서 별세하였다. 박상근 안기옥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워 독자적인 가락으로 새로운 유파를 형성하였다.
상금연식 가야금 산조가 탄생된 배경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김창조, 한국구, 박창욱 등이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가야금산조를 환성해 가고 있을 때, 충청도 지방에서는 이차수와 심창래가 이분야에 심취하여 나름대로의 산조가락을 습득하고 있었다.
이 중 이차수의 산조는 박상근에게 전수되었다가 다시 성금련에게 전수되어 이른바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라는 유파를 낳게 했다.
그러나 성금연이 당초부터 충청도 유파의 가야금산조를 익힌 것은 아니다. 성금련은 광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전라도의 가야금 가락을 익히며 자라났다.
6. 휘몰이/엇몰이
그녀가 최초로 가야금산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7살 때 최옥산 문하에 입문함으로써 시작되었으며, 계속해서 조명수와 안기옥에게도 가르침을 받았다.
성금련의 스승이 말해주듯이 그녀는 처음부터 김창조의 흐름을 이어 받은 순수한 전라도 산조가락과 함께 가야금 공부를 해나갔다.
김죽파가 그랬던 것처럼, 성금연도 가야금외에 판소리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 민속악의 폭넓은 이해의 바탕위에서 산조가락을 연마한 것이다.
그러나 성금련은 점차 박상근의 산조가락에 심취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충청도 산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차수의 가야금산조에 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박상근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곧 이차수의 흐름을 전수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로 인해 김창조의 전라도 산조와는 약간 다른 가락으로 산조를 연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성금련류의 독특한 가야금 산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즉 김창조의 전라도 산조 바탕 위에다 이차수의 충청도 산조가락을 접목시켜 훨씬 화려한 스타일의 성금련식 산조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1968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 산조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지성자, 지미자, 박미령, 김명신, 지순자, 황병주, 권혁태, 김수란, 김승희에게 가르쳤다.
지순자 : 어머니인 성금연에게서 사사하였으며 아버지인 지영희 선생님의 경기 가락을 전수 받았아. 성금련 선생님이 타개하신 후 그 뒤를 이어 활동중이며 현재 성금련류 산조의 최고라 할 수 있다
서공철 류 : 1907년 경기도 여천에서 출생하여 1970년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전남 화순으로 이주하여 정남옥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독자적인 가락으로 새로운 유파를 형성하여 박향산, 강정렬, 강정숙에게 가르쳤다.
김종기 류 : 1904년 전북 장수 출생, 1945년에 별세하였다. 외숙 박한용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워, 독자적인 가락으로 유파를 형성, 정금예, 장월중선에게 가르쳤고, 김삼태가 이어받았다.
강태홍 류 : 1894년 전남 무안출생, 1968년에 부산에서 별세하였다. 김창조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워 독자적인 가락으로 새로운 유파를 형성, 최금란, 박차경, 원옥화, 김소희, 김춘지, 구연우, 신명숙에게 가르쳤다. 1979년 김춘지 (1919∼1980)를 예능 보유자로 하여 중요 무형문화재 제 23호로 지정하였다.
김병호 류 : 1910년 전남 영암에서 출생, 1968년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김창조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워 독자적인 가락으로 새로운 유파를 형성, 이재숙, 김정자, 강문득, 양연섭에게 가르쳤다.
김윤덕 류 : 1918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 1978년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정남희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워 독자적인 가락으로 새로운 유파를 형성했으며, 1978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황병기, 이영희, 원한기, 이재숙, 김승희에게 가르쳤다.
황병기 : 정남희 - 김윤덕에게 사사 하여, 이재숙, 김정자, 조청자, 서원숙, 이승열, 양연섭, 양승희, 문재숙, 박현숙, 윤소희, 곽은아, 앤드루 킬릭, 바버라 스미스, 로버트 가피어스에게 가르쳤다.
유파별로 계보를 살펴보니 개수가 약 열 개 남짓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유파라는 말의 통념적인 의미를 정리해 보면, 첫째, 단순히 전승 계보상의 다름을 나타내어 악곡의 종류를 의미할 때,
즉 김죽파류, 박상근 류, 둘째, 특정한 연주자에 의해서 짜여진 선율을 일컫는 뜻으로, 작곡자의 의미가 들어 있다. 즉 한성기류에서 김죽파 류로, 또는 박상근 류에서 성금연 류로 칭해질 때. 셋째, 명인으로 지칭되는 연주자 이름의 나열 등이다. 예) 최옥산 류, 함동정월 류.
이와 같이 유파라는 말은 여러 의미가 복합되어서 사용되고 있으며, 어느 하나로 고정된 개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유파별로 정리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숙구 - 한수동의 산조가락이 오늘날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악이 많이 성행하고, 또 많은 선생님들에 의해서 연구 발전 보전 되고 있지만, 발전은 발전대로 하면서, 기본틀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게 바람직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문헌 : '국악대사전','산조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