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부부는 딸네미한테 가끔 놀림을 당한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티비를 보거나 한가하게 둘이서 앉아 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구, 우리 노부부~ 티비보고 계세요? 하하하!" 하며 웃으면서 들어온다. 그럴 때 우리는 둘이서 멸치를 까고 있다거나 빨래를 개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모습이 이제는 젊은 딸에게 노인들의 일상처럼 느껴지게 되는가보다. 하기야 티비 보는 프로그램도 항상 뉴스나 다큐가 대부분이고 간혹 와이프 보는 드라마를 힐끔거리곤 한다. 그러니 노부부 맞다.
우리 부부는 보통 12월 결혼기념일을 전후로 제주도에 다녀오곤 한다.
항상 겨울에만 다녀오는 경향이 있어서 이번에는 꼭 봄에 한 번 다녀오려고 벼르다가 드디어 5월 연휴를 만났다. 바로 석가탄신일을 낀 13~15일 연휴다. 희명형님네 일정을 물어보니 별일이 없다하셔서 이참에 모시고 함께 다녀오게 되었다. 그래서 노부부 제주도 여행기로 제목을 잡아본다.
5월 13일. 출발일
오전진료만 마치고 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짐을 꾸려 익산에서 기차로 광주까지 KTX를 타고 오시는 희명형님네 부부를 마중하러 송정역으로 나간다. 3시 15분에 도착하는 열차는 익산에서 30분이 채 안걸린다. 제주 가는 비행기는 4시 30분이니 여유가 있다. 넷이 모여 광주 공항에 주차를 하고 예약해 둔 티웨이항공 티켓을 찾는다. 저가항공이지만 연휴라 편도 6만7천원이다. 그래도 표를 구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제주 공항에 내리니 바람이 시원하다. 엊그제 내린 비의 영향이리라.
렌트카 사무실에서 예약된 차를 찾는다. 푸조308. 차도 예쁘게 잘 빠졌다. 연비도 좋다. (2박3일간 기름값으로 3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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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형 해치백 스타일에 파노라마 선루프 유리창은 보기에도 시원하다. 옆의 기아 K7보다 미끈하게 잘 빠졌다. ㅎㅎ
차를 인도받았으니 이제 숙소로 이동한다. 퇴근시간이라 제주시내 차량정체가 심하다. 김녕항 근처 바닷가에 위치한 사조리조트가 우리의 숙소다. 24평짜리 콘도, 방 2개와 거실 겸 주방이 있다. 5인가족 정도가 사용하기 딱 좋아 보인다. 숙소에 짐을 풀고 약간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나간다. 식사 장소는 이도일동의 칠삭갈비다. 여기 삼겹살과 칠삭뼈갈비가 맛있다. 멸치젖갈을 종지에 담아 내 오는데 이걸 끓이면 구수하고 짭짤한 맛이 일품이라 고기를 찍어먹는 소스로 딱이다. 한라산소주와 제주흑돼지로 풍성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용두암쪽 해변으로 마실을 나간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내일의 여행일정을 상의한다. 한참 걷다가 해변의 어느 포장마차에 들러 문어, 멍게안주를 곁들여 소주를 조금 더 마시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 돌아와서 약간의 음주를 더 하고서 잤는데.....이 부분에서 기억이 흐리다. ㅎㅎ
이렇게 여행 첫 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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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부처님 오신날.
이 날이 우리 여행의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날이다. 노부부의 여행이라 평소의 내 스타일과는 다르게 구성해 보았다. 우선은 어제의 과음을 해소해야 하니 전복죽을 먹으러 나선다. 콘도에서도 조식뷔페가 무료로 제공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복죽이다. 숙소 근처에 항구가 있어서 아침식사를 해주는 곳이 가까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결국 20여킬로나 떨어진 성산항 근처 오조 해녀의집 이라는 식당까지 가야했다. 전복죽이 썩 훌륭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을만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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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서 씻고 채비를 갖추고 나오니 10시가 다 되었다. 예상보다 1시간 이상 늦었다. 하지만 어쩌랴, 부지런히 서둘러 다니는 수 밖에 없다. 첫째 목적지는 용눈이오름이다. 네비게이션을 찍고 갔더니 바로 옆에 위치한 레일바이크 탑승장에서 멈추며 다 왔다고 한다. 내려보니 아닌것 같아서 매점 직원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400여미터를 더 가야한다고~ 다시 차를 움직여 용눈이오름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오름 구경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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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총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100개만 골라서 올라가 보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데 다 될런지 모르겠다. 노꼬메, 백약이, 극락, 다랑쉬에 이어 오늘 용눈이 오름이 5번째 오름이다. 앞으로 95개를 더 가야 한다.
용눈이 오름은 펑퍼짐한 둔덕이다. 정상에 오르면 사위를 조망할 수 있는데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한라산도 보이질 않는다. 다만 바로 앞에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만 잘 보인다. 주변에 풍력발전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로 태양광 못지않게 훌륭한 시설이 풍력발전기라고 하지만 소음과 유해전파로 인한 피해로 주민들과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합리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지기를 기다려본다.
오름구경을 마치고 이제 우리는 차를 성산항으로 이동시킨다. 우도 관광을 위해서다. 엄청나게 큰 주차장이 빼곡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도탐방에 나섰나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우도에 주민 800여명이 사는데 매일 8천여명의 관광객들이 들락거린다고 한다. 연휴나 주말에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겪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우도에 한의원도 하나 생겼는데 영업이 아주 잘된다는 소문이다. 아무튼 우리는 성산항에서 10여분 배를 타고 우도로 이동한다. 해변도로를 따라 우도의 경관을 천천히 구경하며 드라이빙을 즐기다가 해변 모래사장이 예쁜 곳에 잠시 멈춰선다. 해녀 동상이 세워져있고 주변에 식당들이 즐비하다. "회양과 국수군"이라는 집에서 회국수로 점심을 때운다. 여기서 이름은 잘 모르는 탤런트를 한 명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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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아서 국수하나 먹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이 넘는다. 오메 아까워라~
회국수는 먹을만 했다. 커다란 방어가 수족관에서 유영하고 있더니 회는 아마 그걸 넣은 듯 싶다. 방어는 원래 겨울에 제맛인데~
아무튼 국수를 먹고 다시 이동, 절벽이 멋진 검멀레해안에서 잠시 멈춰 구경을 한다. 여기는 우도봉 바로 아래인데 버스 주차장이기도 하다. 보트유람선을 탈 수도 있고 다양한 식당들이 있어 인파로 북적인다. 우리도 커피숍에 들러 차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온다.
오후 일정을 제대로 마치려면 우도에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우도관람을 짧게 하고서 우리는 다시 선착장으로 향한다. 가서 보니 배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도 그 후미에 차를 대고 승선을 기다린다. 배는 30분 간격으로 오는가보다. 본섬에서 도착한 배가 차량과 인파를 다 내려놓고 우도 관광을 마친 사람들을 다시 태운다. 차는 한번에 약 10여대를 실어 나르나보다. 우리차는 맨 나중에 타서 내릴때는 제일 먼저 빠져 나간다. ㅎㅎ
이제 우리 목적지는 제주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7코스 구간이다. 외돌개라는 바위섬을 찾아간다. 구름이 걷히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점심도 먹고 나른한 오후라 그런지 슬슬 졸음이 쏟아진다. 운전대를 와이프에게 맡기고 나도 휴식을 좀 취한다. 어제의 과음이 몸을 무겁게 하는가보다. 외돌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레길을 따라 걸어본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그들과 뒤섞여 사진도 찍고 산책로를 따라 몇백미터쯤 걷다 다시 돌아온다. 7코스를 다 돌려면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20여분쯤 걸었나보다. 짧게 걸었지만 외돌개를 포함한 올레길 7구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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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 관람까지가 우리 노부부들의 제주 여행 일정이다. 원래는 섭지코지 관람도 있었는데 아침 출발이 늦어 생략해야 했다. 이제 남은 일정은 제주에 사는 안효수 원장과 만찬을 즐기고 삼성혈 근처 국수집을 들러 숙소에서 한 잔 더 하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내일아침 해산물 쇼핑이 전부다. 2박3일의 일정을 돌아보면 이건 정말 노부부들의 제주여행 일정이다. ㅎㅎ
외돌개를 나와 근처 강정포구로 향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정부와 맞서고 있는 주민들의 실상을 엿볼 수 있을까 해서다. 마을근처 곳곳에 군사기지 반대을 주장하는 현수막이 많이 걸려있고 천막농성장도 보인다. 원래 이곳은 제주 최대의 화훼단지라 한다. 비닐하우스가 많다. 기지조성을 위해 도로를 크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데 마을주민들과의 마찰로 중단되어 있는것 같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협상을 통해 조율하고 고쳐나가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정책은 권력을 가진자들의 일방통행으로 점철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강정마을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우리는 저녁식사 장소인 모슬포로 이동한다.
모슬포 어전횟집. 여기서 우리는 안효수 원장을 만난다. 부부한의사이며 안원장의 고향은 포항이다. 한의사협회 중앙이사로 일을 하는 과정에 제주에 출장을 왔다가 이곳의 풍광에 매료되어 경기도에서 하던 한의원을 2개월여만에 접어두고 제주로 내려와 눌러 앉아 있는 중이란다. 감탄스런 삶이다. 그 부부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난 뱅에돔과 자리돔 등 이런저런 해물로 풍성한 저녁식사를 마친다. 식사를 마치고 안원장과 헤어져 우리는 삼성혈 국수거리로 향한다. 우리는 모두 술을 마셨기에 귀가길에는 황여사님이 운전대를 잡는다. 감사^^
제주 삼성혈은 국수거리로 유명하다. 그 중에는 맛도 없으면서 가격만 비싸다고 가지 말라는 택시운전기사의 멘트도 있었다. 하지만 자매국수라는 집은 맛이 괜찮다는 정보가 있어서 우리는 거길 가는 중이다. 과연 그곳에는 늦은시간임에도 손님들이 많다. 대기손님들을 위해 점포앞에 벤치가 놓여져 있었다. 역시 식당은 음식맛이 좋아야 손님이 온다. 비빔국수 2인분을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온다.
우리는 숙소에서 제주의 마지만 밤을 즐긴다. 우도에서 사온 땅콩막걸리와 한라산 소주로 늦은 밤까지 노부부의 주전부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5월 15일. 세째 날
오늘은 각자 집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에 비교적 상쾌하게 눈을 떴다. 어제 과음은 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숙소 지하 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러 간다. 무료식사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 하다. 어제도 여기서 먹었더라면 시간을 좀 아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숙소에 돌아와서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를 한다. 가방도 미리 꾸려놓고 퇴실준비를 마친다. 이틀간 편안하게 지낸 편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와야겠다. 요즘은 펜션들이 많아져서 이런 리조트가 인기가 식었나보다. 비교적 한가한 느낌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우리 노부부에게는 적절하였고 좋았다.
숙소를 출발, 제주 탑동 수산시장으로 향한다. 옥돔과 고등어를 사니 미역을 서비스로 준다. 수산물쇼핑을 마치고 근처 동문시장에 들러 몇 가지 쇼핑을 더 하고 공항을 향한다. 아차, 차에 기름을 채워야 하는데 그걸 잊었다. 공항근처에서 주유소를 찾느라 10여분을 더 소비하였지만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이틀동안 열심히 돌아다녔는데도 주유비는 3만3천원에 불과하다. 푸조 차량의 연비성능을 새삼 확인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 출발시간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원래 1시 5분 비행기인데 결국 1시 50분쯤 출발이다. 원래 광주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었는데 그냥 공항에서 우동으로 때워야 했다. 면세점에서 몇가지 쇼핑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각자 아들들 담배를 사오는 모습을 보니 노부부 맞다. ㅎㅎ
2016년 봄날의 제주여행을 이렇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