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장 38절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한 원리
주라 그리고 헤아리라!(give, and measured)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주다는 헬라어로 “디도미”라고 하는데 “공급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give”라고 하죠, “주는데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또한 헤아림은 헬라어로 “안티메트레오”라고 하는데 “되돌려 갚다” “다시 재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measured” [méʒəːrd]라는 말로 “정확히 잰, 측정한. 무엇 무엇의 치수를 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는 것과 헤아림은 별개의 다른 성질이 아니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주는 만큼 오는 원리입니다. 적개 심으면 적개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헤아림 만큼 도로 헤아림을 받는 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주는데 사실 인색합니다. 소유의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계속 쌓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루고 싶은 충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높아지면 더 높아지려고 합니다. 멀리가면 더 멀리가려고 합니다. 낮아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아니 낮아짐이란 사전에 없습니다. 우리의 이 못된 본능의 상징이 바로 바벨탑 아닙니까? 물질의 바벨탑!, 건물의 바벨탑!, 지식의 바벨탑! 그런데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정상은 삼각형의 맨 위에 있기 때문에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좋은데 모르니까 변이 생기고 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못된 본성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받으려고 하고, 쌓으려고 하는 이 본성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한 가지만 생각하겠습니다.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례에 가시면 99칸 집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구례는 예로부터 격동의 장소였습니다.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격동지, 일제 수탈의 장소, 6.25전쟁 중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 구례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집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쌀통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은 지역주민이가난한 백성들이 항상 누가나 퍼갈 수 있도록 쌀독간을(두지) 개방했다고 합니다. 부자집 주인의 신조는 “나는 못 먹어도, 이웃은 먹인다.”였습니다. 그래서 그 난리 통에도 몸도, 집도 상하지 않고 잘 보존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부자들은 사람들에게 쇠몽둥이로 막고, 재산과 집을 다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주는 것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남기는 것입니다.
어제 라디오를 듣다가 너무나 기막힌 사연을 들었습니다. 어떤 어머니에게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의 사연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 신문을 어떤 분이 읽고 전화가 왔는데 돈을 보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며칠 후에 100만원이 통장에 들어왔데요. 너무나 고마워서 전화를 하고 한 3년이 지난 다음에 생각이 나서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했데요. 그런데 그만 몇 달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어두컴컴한 지하실 방에 살더라는 거예요.
돈이 있어서 적선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프기 때문에 아픈 사람의 사연을 듣고 참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치료비를 선 듯 적선한 것입니다. 내가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어제 안성에 가서 지역신문을 봤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소대의 선임하사가 부친상을 당해서 장례를 치루고 있는데, 그 소대의 소대장이 자신의 휴가를 반납하고, 장례식장을 상주와 같이 지키고, 자신의 월급을 털어 그 가정을 도와주었다는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이 소대장은 적어도 세 가지를 주었습니다. 시간을 주었고, 몸을 주었고, 물질을 주었습니다.
이 선인하사는 평생 이 소대장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은인으로 생각하고 잘 따를 것입니다. 주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더 가치있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희생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는 것은 헤아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헤아림이 있으면 척박한 광야도, 황무지도, 고통과 아픔을 주는 현실도 아름답게 바꿔질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