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23:34~37
감사의 기도란 유화를 아십니까?
(추수감사절에 할 기억 감사 나눔)
우리나라에 설날이 있는가 하면 추석이 있지요? 참 우리 선조들이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없던 겨울은 설날을 정해 놓고 친인척들을 결속시키고, 실족된 영양소를 공급해 주기 위해 여기저기 넣어두었던 것들을 모두 꺼내 설 잔치를 차림으로 영양보충까지 해 주시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추석은 더할 나이 없지요. 먹을 것이 풍족한 때이니 인심이 광에서 난다고 먹고 마실 것이 많음으로 모인 사람들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친인척들의 유대관계가 상당히 끈끈해져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추석 설 명절이 어쩌면 구약의 절기에서부터 와서 온 세계로 퍼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러한 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봄의 축제가 있고, 가을의 축제가 있는데 그들은 절기라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져왔습니다.
봄에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부활)절 칠칠절이라는 절기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첫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을 피해가는 날입니다. 다음 날부터 일주일은 무교절이 시작됩니다. 없을 무, 누룩(술) 묘자를 써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만들어 먹는다는 의미로 지키는 날입니다.
이것은 애굽이란 나라에서 지긋지긋한 노예생활을 끊어 낸다는 의미도 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릴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실 것을 예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운 지옥에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을에 지키는 절기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초막절 우리말로 말하면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절기는 가을에 지키는 절기로 추수를 하고 난 뒤 기억과 감사와 나눔을 갖게 하시기 위해서 지키게 한 것입니다.
1) 레23:2절에 이때를 성회로 모이라고 아예 못을 박으셨는데요. 여기에 꼭 주실 의미가 있으셨습니다.
성회란 거룩한 집회라는 「코데시」 + 「미크라」에서 온 말로 거룩하게 장소, 물건, 시간 등이 구별되었다는 데서 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그 때부터 우리는 성회의 삶입니다.
즉 거룩한 생각을 품고, 성결한 생활을 하며, 내가 가면 믿음의 발상이 일어나고, 내가 머물면 은혜 가득한 장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한 성도 한 성도가 모여 성회 즉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날 몇몇 교인들은 오히려 모임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교인은 너무 욕심을 내서 안 믿는 사람들 미간까지 찌푸리게 합니다. 며느리들 사이에서 안 믿는 며느리가 믿는 며느리 때문에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경우도 생깁니다. 교회 간다는 핑계로 그 힘겨운 설거지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가기 때문입니다. 식사 값 지불 때는 믿는 사람들이 각종 핑계를 대고 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주신 것은 믿는 너희가 더 거룩하고, 더 솔선수범하고, 더 희생적이고서야 예배드리라는 의미입니다.
초막절 잘 주신 것 같지요? 이제 이 초막절 하나만이라도 잘 지켜서 안 믿는 형제 친구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 믿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해야 될 줄 믿습니다. 전도는 사람을 모셔 와서 믿게 만드는 그 어떤 것보다 그들이 믿고 싶을 만큼 우리가 철저히 변화되고 희생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2) 초막절(하그 핫숙코스)은 또 다른 말로 수장절(하그 하아시프)이라고도 하는 데 “추수한 것을 창고에 들여 놓는다. 수장한다.” 해서 같은 뜻 다른 말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뭐! 세상에 사니까 먹고 살 것을 들여 놓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단지 이게 먹고 살기위해서 곡식을 들여놓는 수장절의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우리가 창고에 들여놓는 것까지 몰라서 절기를 지켜가며 창고에 잘 챙겨놓으라고 가르쳐 주셨을까요?
적어도 절기를 지키고 예배를 드리게 할 때에는 기억하게 하는 것, 감사하게 하는 것, 그리고 나눠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걷어 드릴 것을 주어 수장하게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정작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저 영혼들은 왜 방치하느냐? 저들도 걷어 들여 수장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는 사인(sign)입니다.
눈에 보이는 먹을 것이 아깝고 소중해서 준비하듯이, 난 네가 그것을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통해서 추수할 영혼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하는 것입니다.
“네가 눈에 보이는 곡식을 창고에 들여놓을 때, 그 때 만이라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영혼도 추수해서 내 창고인 천국에 들여놓아라.” 하는 사인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기억해야 하는 것 중의 또 하나는 초막절은 추수를 다 마치고 드리는 날로 정했습니다. 추수를 마쳤으니 먹고 마실 게 얼마나 풍성하고 많겠습니까? 그러니 자연히 마음도 넉넉하고 기분도 업(Up)이 되어 있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때 비로소 “너희 먹고 마실 것을 열악한 자들과 나눠라.” 하신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는 신16:14~15에서는 “노비, 고아 과부, 객”에게 함께 연락을 취하여 함께 나누라고 하신 것입니다.
당대 가정이나 직업이 없이 취약 층에 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장 한 끼의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거든요. 이들에게 추수한 것을 나눠주고 이삭을 남겨두어 먹고 살도록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절기를 통해서 나눔을 권장하고 독려하는 것이 단지 불쌍한 사람 돕는 데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육신적인 불쌍함을 통해서 더 불쌍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진짜 불쌍하고 진짜, 취약 층에 있는 자가 누군 줄 아느냐? 복음을 듣지 못해 영혼이 궁핍하고 희망 없이 사는 자들이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필요하고 중요한 곡식인 복음이란 곡식을 나눠 주라는 것입니다. -아멘
얼마큼의 심정으로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느냐?
불붙는 마음입니다.
얼마 전에도 철야 기도회를 인도하러 오신 강사목사님을 보니까 선교에 완전히 몰두해 계시더라고요. 쿤밍 이야기 하시고 묘족을 이야기 하셨는데요. 제가 가봤지 않습니까? 2천 3천 미터 고지에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 가면 숨이 턱 찹니다.
그런데 그 먼 그 고생하는 곳에 왜 갑니까?
그 영혼들이 얼마나 사모하고 얼마나 기다리는지 다녀오면 다시 갈 수 밖에 없는 중독이 생깁니다. 기도하다보면 그 영혼들이 맑고 순수하게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모습이 견딜 수 없게 우리 양심을 일깨웁니다.
그러니 또 가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서 빚진 자의 마음으로 다니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와서 3년간 선교와 전도 등이 막혀서 마귀가 그동안 신났다고 춤을 추었겠지만 다시 힘을 내서 도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아마 마귀는 자기들이 이긴 줄로 알고 신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코로나의 진가도 알았겠다. 어느 정도 코로나에 대한 맷집이 생겼으니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움츠리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될 줄 믿습니다.
올해 저희 가정은 사실 그 어느 때보다 가슴 아픈 일을 맞이했습니다.
누가 보면 감사하다는 말 자체가 사치스럽고 생뚱맞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저만 아니라 정작 어려움을 당한 동생 목사 가정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더라고요.
마냥 무너질 줄만 알았던 동생 목사와 조카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서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분들을 경험하면서 든든히 서가려고 하더라는 것이죠.
추수감사 주일을 앞두고 사람이 죽었는데(58세 제수씨 소천) 감사하다는 게 의아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커다란 데서도 오지만 실제로 작고 소중한데서도 오는 것 같습니다.
감사할 마음이 준비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은 감사거리가 어마무시하게 닥쳐와도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며, 감사할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1918년, 미국 미네소타(Minnesota) 주 보베이(Bovey)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엔스트롬(Eric Enstrom; 1875~1968)입니다.
그의 사진관에 백발이 성성하고 몹시 지쳐 보이는 한 노인이 신발 털이개를 팔러 들어왔습니다.
그 노인은 힘에 겨웠는지 사진관에 들어와 잠깐 쉬고자 했습니다. 지쳐 있는 그에게 인스트롬 사진사는 빵과 스프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테이블에 앉더니 한조각의 빵과 스프를 앞에 두고 손을 모으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사진사인 엔스트롬 씨는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기도를 드리는 초라한 그 노인이 큰 사람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노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노인은 세상적인 것들을 많이 갖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구나! 그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비록 그 노인은 가난하고 삶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소박한 감사기도 속에서 그 노인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노인의 사진을 찍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흑백사진을 보고 엔스트롬 씨의 딸, 로다 앤스트롬 나이버그 (Rhoda Enstrom Nyberg; 1917~2012)도 큰 감동을 받아 이 사진을 유화로 그리게 됩니다.
그 작품이 바로 '감사 기도" 하는 노인의 모습을 그린 유화작품 ‘은혜(The Grace)’입니다.
그 그림이 아래의 그림이다.(사진을 화면에 띄어 보여준다.)
https://encrypted-tbn0.gstatic.com/images?q=tbn:ANd9GcRD3GUvoyIYz8ptkSiw3G6cfiqIwkt5P4woTvg-9CXtv6DEFRWf
엔스트롬 씨는 이 사진을 통해 당시 세계 제1차 대전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에게는 아직 감사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미네소타 사진전에 출품하였던 것이고요.
삶에 지친 노인이 빵 한 조각과 스프를 가지고도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 그림은 미네소타 주의 사진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 그림의 제목은
“The Grace”, 바로 “은혜” 또는 “감사의 기도”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는 빵 한 조각과 차 한 잔에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어려워도 여전히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복된 사람인 줄 믿습니다.
"감사는 습관이며,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에서 나옵니다."
오늘 하루를 주셔서 감사하고, 내일 또 도전할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지기에 감사함으로 더 큰 은혜와 행복을 가지고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
1) 오늘 나는 감사할 것을 찾는다면 가장 작은 그 무엇에서부터 감사할 수 있을까?
2) 나는 오늘 내가 갖고 있는 이 소중한 복음을 과연 누구에게 나줘 줄 수 있을까?
같이 진심을 다해 기도하겠습니다.
첫댓글 이 하루도 감사하게 하소서
소중한 내일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내 심장이 감사로 호흡하게 하소서
삶을 감사의 열매로 채워가게 하소서
소명의 발걸음 감사의 족적이 남게 하소서
인생의 흔적 속에 사랑과 감사만 남게 하소서
~~주님 미리 미리 감사합니다 🙏 🙏 🙏
목사님 용기 북돋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탁월하십니다
늘큰힘이됨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소치영 목사 이번주 20일 우리교회도 추수감사 주일로 지킵니다.
말씀에 큰 공감이 가며 이번주 설교에 적용 하려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위해 헌신과 눈물로 기도했던 아내(사모)가
갑자기 주님 품으로 떠난것에 아쉬워하며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다잡고 용기내어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산울교회목사 같이 힘내고 같이 이겨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