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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늘푸른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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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여행 스크랩 한국 방송통신대 산악부의 등반기
미라마 추천 0 조회 31 11.11.28 14: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마운트쿡 등반일지 - 출처:방송대 산악부 - 마운트쿡 등반일지

 

행정,촬영,기록 : 6기 최향옥

촬영 : 12기 문종대

 

96.2.9(금) 맑음

  마침내 그날은 밝아왔다.

  모든 짐은 일원동의 김영찰선배집 지하에 집결되어 있었으므로 간단한 차림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거기에는 기남이가 도착하여 있었고, 가는날까지 원정대 잔무가 남아있던 영님이는 기념모자를 찾아 가지고 청계천에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짐 수송을 위해 김순오선배가 그 먼 청평에서 올라 오셨다.  배낭 운반중 김영찰선배는 종대의 다리가 아직까지 완쾌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아이젠을 뺄것을 요청했고, 원터치식인 종대것 대신 마침 배낭 밖에 매달려 있던 나의 아이젠을 대신 빼고 차를 출발시켰다.

  공항으로 속속 대원들이 도착했고, 좌석표를 받으러 가서야 대호와 승국이가 병역과 관련된 출국신고서가 빠진것을 알았다.  다행이도 대호것은 쉽게 해결이 되었는데, 경기도 성남시가 집인 승국이 것이 애를 먹였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겨우 통과가 되었지만 하마터면 승국이를 남겨두고 가는 불상사가 발생할 뻔 했으니 행정 처리 담당인 나의 불찰이 크다.

   이 일로 공항에 환송을 나온 대원들과 얼굴 반번, 말 한마디 제대로 할 마음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니 이 또한 나의 실수이며 두고 두고 미안할 따름이다.

  출발부터 뜻하지 않은 일들로하여 경황이 없었던 우리들은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야 정말 떠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는 모든것을 잊고 마운투 쿡만을 생각해도 되는 시간이 된 것이다.     

 

96.2.10(토) 맑음

  기나긴 시간동안 비비 몸을 틀다가 잠자다가 음악을 듣다가  얘기하다가 드디어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에 도착을 하였고, 약40여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장장 10여시간을 담배 고팠던 우리의 말라깽 삼총사(대호, 대연, 종대)는 기회는 이때다 하며 연기를 폴폴 날리고 있다.  손에 들고서도 못 피웠던 심정들이 오죽했을까...

  오클랜드를 이륙하면서 부터는 마운트 쿡산이 하얗게 내려다 보이고, 가을의 누런 민둥산이 구름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 하며 어서 오라고 우리를 재촉한다.

  14시간여의 비행끝에 크라이스트 처치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환영식은 기내에 소독약을 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세관을 통과하면서, 김포에서 송기숙이가 수통에 넣어 전해준 과일주가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water"라고 하였으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보고, 컵에다 일부를 따라보며 확인을 하는 통에 알콜임을 시인하였다.  어찌되었던간에 여차여차하여 무사통과를 하였다.  재무담당은 환전을 하고, 일부는 미리 렌트한 자동차를 찾으러 가는 동안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재확인하였다.

  2대의 렌트카는 우리의 우려를 말끔이 씻어줄 만큼 공간이 넓었다.  5명씩 분승을 하고 김영찰선배를 앞세우고 공항을 빠져 나가는데, 운전석이 우리나라와 반대쪽에 있어 자동차가 별로 없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좌우회전을 할때마다 긴장을 하는 우리의 충실한 기사 김영찰선배와 대연이.  이제부터 대략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마운트쿡까지는 도로 오리엔티어링의 시작이다.

  국제공항이라도 해도 우리나라의 조그만 시골을 연상케 할만한 규모인 공항을 벗어나고, 고만고만한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 모터캠프장이 있는 넓은 공원앞에 잠시 차를 멈추고 허기진 배를 달래 주어야 했다.  그래봐야 한국에서 준비해간 오징어, 땅콩, 쵸코렛등의 행동식이지만 잘들도 먹는다. 

  비록 장시간여를 비행기속에 구겨박혀 있던 얼굴들이지만 비교적 외모들도 말끔한 편이다.  도로는 왕복2차선이지만 마운트쿡으로 향하는 이곳은 겨우 잊을만하면 자동차1대를 볼까말까 할 정도로 한산하여 우리나라의 도로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이러니 사람이라도 지나갈라치면 멀리서도 자동차가 우선 멈춤을 하는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싶다.  그런 도로 사정이지만 한 가지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이 있었다.  도로를 제외한 양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목장지대인데, 야생토끼나 그 밖의 작은 짐승들이 도로횡단을 하다가 변을 당한 흔적들이 전신주 만큼이나 여기저기 보였다.  울타리가 쳐져있어 큰 동물들은 넘어 올수 없지만, 귀여운 토끼들은 그 작은 몸 때문에 오히려 그런일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차에도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뻔 했지만 인자한 기사와(?), 밝은 날씨 덕분에 모면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머리에 하얀눈을 이고 있는 산군이 드디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차안에서는 모두들 흥분하며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다.  기사도 질세라 자꾸 눈이 밖을 향하지만, 굴곡이 심한 도로사정으로 안타깝게도 앞만을 보아야 하는 운명을 탓할 수 밖에.....

  시계는 이제 저녁7시를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한낮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바다같은 'Takapo'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돌며,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저녁식사를 걱정한다. 안내서를 통하여 오후5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한가닥 기대속에 '수퍼마켓아 제발 열려 있거라'를 외친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오른쪽 벌판으로 없는듯이 들어서 있는 마운트쿡 비행장이 눈에 들어온다.  김영찰선배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 정도로 작은 곳이었다.  자연을 아끼는 이곳 사람들의 특징이 단적으로 나타난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연보호를 거창한 구호로 하는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되 피치못할 경우에는 되도록이면 표가 안나도록 최소화 하는 것 같다.

 

  19:50 드디어 마운트 쿡 마을에 도착했다.  허미티지 호텔을 비롯하여 풀숲에 가려진 야트막한 몇개의 집에서 불빛이 비추일뿐 정막이 감돈다.  김영찰선배가 기억을 더듬어 가이드하우스에 가 보았지만 그곳에는 불만 켜져 있고 문은 잠겨 있는 상태였다.  우리처럼 두드리면 나오리라 생각하고 열심으로 노크해 보았지만 헛수고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식량과 연료 때문에 걱정이었다.  식량이야 라면과 건조식으로 한다고 해도, 그것을 끓일 연료가 없으니... 사방팔방으로 연료를 구하러 갔던 팀이 한참이 지난후에 가스를 무려 4통이나 갖고 나타났다.  모두들 환성을 지르며 자초지종을 채근하여 우여곡절을 들었다.  어쨋거나 기대했던 고기 파티는 물건너 갔지만 라면이라도 먹을수가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럽지 아니한가!!

 

  마을에서 후커밸리 쪽으로 2km 떨어진 캠프사이트에는 다양한 종류의 텐트와 캠핑차가 와 있었다.  차의 라이트를 이용하여 2동의 텐트를 설치하고 즉시 식사에 들어갔다.  시간이 벌써 10시를 향하고 있으니 뱃속에서 난리를 치는것도 당연하지.  물론 이국땅에서의 첫날밤을 우리의 소주가 빠질수가 있을 것인가!

  국내에서 훈련때처럼 A,B조로 나누어 취침을 하기로 하고, 내일 일정에 대해서도 간단히 전달받고 피곤한 몸을 뉘였지만, 뮐러빙하에서 간간히 쏟아지는 눈사태 소리에 모두들 머리끝이 쮸뼜해졌다.

 

96.2.11(일) 맑았다가 흐림

  어디서도 변함이 없는것은 기상시간이다.  조금 늦게 일어나면 마운트쿡이 더 높아지기라도 할것처럼 난리다.

  뭐가 있어야 밥을 해먹지???

  각자 업무를 할당받고, 두대의 차에 분승하여 전사들처럼 씩씩하게 마을로 나갔다.  나를 비롯하여 일부는 수퍼에 가서 현지에서 구입키로 한 식량을 사고, 일부는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하고.

  수퍼는 코딱지만 했으나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다 있었다.  쌀도 여러종류가 있었지만 우리쌀과 비슷한 것이 필요한 양 만큼 없어 현미와 길쭉한 것까지 몽땅 긁어서 봉지에 담았다.  수퍼에서 일하는 사람이 눈이 둥그려져서 하는 말 "나도 쌀을 즐겨 먹는다" 였다.  그러나 우리는 즐겨 먹는게 아니라 못 먹으면 안되니까 먹는 것이다.

  아침 찬꺼리로 고기와 계란과 야채와 후식인 과일까지 한보따리 사들고 왔는데, 식량의 양을 보니까 눈앞이 캄캄하다.  지금도 배낭이 무거운데 이것들을 또 넣어야 되다니..연료는 수퍼에서도 가이드 하우스에서도 취급하지 않았다.  연료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이곳으로 부터 한참 떨어진 알파인협회라고 한다.  할수 없이 자동차용 휘발류를 구입했다.

 

  식사를 마칠즈음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다시 뜬다.  이곳의 날씨는 하루에 4계절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기온차가 심해서 아침저녁은 봄가을, 낮에는 한여름, 밤은 겨울 같다.

"유행"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쉐타 비슷한 것들을 허리에 묶고 다니는 유행병이 돌았는데, 이곳의 기후를 체험하고 나니 유행의 발상지를 알만했다.  이쪽에서는 실제로 필요에 의해서 휴대하기 편하도록 취한 행동이 어떤나라에서는 일부 패션이 되다시피 했다는 것을...

 

  출발에 앞서 모처럼 단체촬영을 했다.  길은 후커산장까지의 트레커들이 많기 때문에 잘 다듬어져 있었고, 기온은 비가 뿌리긴 했어도 선선하였다.  그러나 만만찮은 배낭무게 때문에 운행 속도가 나지 않았다.  후커의 넓은 계곡에는 첫번째의 나무다리가 아주 튼튼하고 멋있게 놓여져 있었다.  두번째 휴식을 취하면서 대호가 가져간 플라스틱 비브람을 데포시키기에 이르렀다.  워낙 무겁기도 했지만, 종대의 다리상태로는 비브람을 신지 못하리라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김영찰선배의 가벼운 고어텍스 등산화를 종대가 신고, 발크기가 비슷한 대호가 종대의 비브람을 신고로 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몸은 추었다 더웠다를 반복한다.  후커산장으로 향하는 두번째의 나무다리를 왼쪽에 두고 오른쪽 사면으로 비켜가면서부터 길은 퇴적암이 부서져 내린 곳으로 접어 들었다.  계곡물은 요란스런 소리로 귀청을 어지럽히고 너덜과 습지대와 물덤벙지대가 교대로 나타나는 길들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다리를 더욱 더 괴롭힌다.

  뚜렷하던 길이 풀밭지대가 나타나면서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사방으로 흩어져 길을 찾아보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김영찰선배가 오른쪽의 너덜지대 사면으로 올라가고, 일부는 왼쪽의 작은 도랑을 건너고 하는데, 저 멀리 사면으로 기어 올라간 김영찰선배가 올라 오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미 신발벗고 도랑을 건넜던 몇몇은 다시 그 차가운 물에 발을 집어 넣어야 했다.  폭으로 치면 약2m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 좋아 도랑이지 그곳은 빙하가 녹은 물이 기세좋게 흘러가는 얼음물인것을...

 

  바람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다.  뉴질랜드 바람의 성격을 초반에 한차례  경험 했기에 캠프에서 출발하기 전 모자에다 단단하게 끈을 매달아 놓았었는데, 이놈의 바람은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간단하게 벗어가 버렸다.  나를 비롯해 기남이 종대 모자가 저 아래로 기세좋게 날라간다.  배낭을 벗어놓고 혹시나 하며 달려갔는데, 다행스럽게도 돌끝에 걸려 멈추어 준다.  그렇잖아도 밟기만 하면 미끄러지는 돌덩이 때문에 체력은 현격하게 떨어지는데 별게 다 속을 썩인다.  설악산의 황철봉 비슷하게 생긴 이놈의 지역은 끝날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드디어 저 앞 밋밋한 능선에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나무라는 표현보다는 풀밭같은 잡동사니 지역이지만 돌덩이를 밟는 것 보다는 아무렴 그래도 좀 낫겠지!  그러나 장미에 가시라더니, '난'같아 보이는 풀이 여기저기서 종아리를 찔러댔다.

  거친 비바람에 배낭카바는 형식에 불과했다.  무거움을 견디지 못한 우리는 식량과 장비 일부를 후커계곡의 빙하호수와 나란해 보이는 초입에 데포를 시키고 다시 출발했다.  아침에 출발할때만 하더라도 오늘 안으로 가디너헛에 충분히 도착하리라 생각했었는데 가도가도 가디너헛은 보이지도 않는다.  시간은 이제 오후 8시를 넘어가고, 물이 있는 마땅한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작은 계곡 저편에 마땅한 곳이 보이지만 사태가 나서 무너져 내린 이곳을 이 빗속에 지나가기가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하는수 없이 식수는 빗물로 하기로 하고, 서둘러 막영준비에 들어갔다.  아침에 출발할때만 하더라도 오늘 안으로 가디너헛에 충분히 두착하리라 생각했었기에 두동의 텐트중 한동은 캠프의 자동차안에 남겨 놓고 떠나 왔는데, 두고 온 텐트가 아쉽기만 한 순간이다.  텐트와 겹쳐서 플라이를 치며, 조금이라도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해 최대한 낮추었다.  비좁은 텐트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식사준비를 하고 난리가 아니다.  밖에서 대호 대연이 이두 승국이가 역시 취사와 막영 마무리를 열심으로 하고 있다.  식수는 밖에 비닐만 펼쳐 놓으면 충분했다.

 

  하루종일 빗속에서 행군하다 뜨거운 닭고기 국물이 들어가자 몸의 회복속도도 빨랐다.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 치운다.  비바람의 기세가 점점 사나워져 오늘 밤을 지새기가 불안해진 대장은 스노우바를 텐트 모서리마다 단단하게 치도록 당부를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텐트는 날아갈 것 처럼 요동을 쳤고, 플라이의 구멍난 곳에서는 물이 줄줄 흘러 바닥에 고였고, 누군가는 밤새 그것을 퍼내야 했다.


96.2.12(월) 비

  비좁은 텐트와 플라이 밑에서 불안하고 불편했던 밤이 지나가고 날은 밝아 왔지만 계속해서 내리는 비는 그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커버가 있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의 침낭들은 여기 저기 물에 젖고, 바람막이로 둘러 놓았던 배낭들도 축축해져 버렸다.  특히 영님이의 배낭은 밤사이 플라이 밖으로 잘못 밀려 나가 있었던 탓에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침을 먹고서 시간이 지나다 보면 비가 개이겠지 하는 기대도 가져 보았으나,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어 빗속에서 급히 짐을 꾸려 12시에 출발을 했다.

 

  어제 건너지 못했던 계곡은 밤새 물이 불어 그냥 건널수가 없었다.  좀 멀긴 하지만 상류쪽으로 300m 가량 올라가 자일을 이용한 도계작전을 펼쳤고, 한두명이 물에 빠지긴 했지만 작전은 성공을 하였다.

  계곡을 건넌 후 급경사의 퇴적 언덕을 내려서서 20 여분이 지난 오후 2시20분경에는 모레인으로 뒤덮인 빙하 지대에 진입하였다.  크고 작은 모레인 언덕을 오르내리며 힘들고 짜증스러운 운행이 계속 되었지만 다행히 오후 3시가 지나면서 비가 차츰 그치고 날이 개이기 시작했다. 

  빙하라고 하면 투명하다 못해 푸른기가 감도는 깨끗함을 연상 했었는데, 이곳은 마치 연탄재에 버무린 바위같은 얼음들 뿐이었는데 흡사 공사장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부려놓은 모래와 자갈더미 같았다.  가디너헛을 향하여 올라 갈수록 모레인 층은 점점 엷어져 하얀 빙하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빙하 위 곳곳에 시냇물처럼 흘러 내리는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어렵지 않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다소 평평하던 빙하가 서서히 경사를 더 하는 지점부터는 크고 작은 크레바스가 나타나며 진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종대가 힘들어졌다.  플라스틱화도, 아이젠도 없이 오로지 피켈에 의지한 채로 분투하여야 했고, 앞뒤에서 도와주어도 힘든것은 여전하였다.

 

  아이스폴 지대를 힘겹게 통과하여 가디너 헛이 있을것 같은 바위벽 쪽으로 접근하였으나  끝내 길을 찾지 못한 채, 왔던 길을 되돌아 아이스폴 중간 부분의 평평한 장소를 골라 운행을 마치고 야영 준비를 시작하니 이내 어둠이 찾아든다. 

  한 동의 텐트와 잇대어서 사면을 깎아 비박자리를 만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양쪽사면에 스노우바를 박아 중간에 있는 텐트를 확보하고, 크레바스 쪽으로는 경계로프를 설치한 후 늦은 식사와 내일 일정에 대해 얘기한 후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96.2.13(화) 맑음

  역시 기상시간은 변함이 없다.  바쁜 등반일정을 생각하며 식사와 짐 정리를 서둘러 마친 후, 일부는 데포시킨 식량을 가지러 가기로 하고  나머지는 가디너 헛까지의 루트 개척을 하기로 했다.

  기온은 바람이 불어 약간 추운 듯 했지만 영상을 유지했고, 흐린 하늘에선 간간히 빗방울을 떨구었지만 날씨는 좋은 편이었다.  식량 수송조로 나를 비롯하여 등반대장인 대호, 영님이, 승국이, 이두가 동행을 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게 다행스러운 것은 어제 몇시간을 오른 아이스 폴 지역을 단 몇 십분만에 내려갔다는 사실이다.  경사진 지역의 특성이 가져온 결과인 것 같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기는 힘들고 더뎠지만, 위에서 아래를 보고 갈때는 길도 훤히 보여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골라 밟으며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짐도 없는 빈 배낭만을 짊어진 상태였음에야...

 

  뒤이어 가디너 산장 루트 개척을 위해 대장을 비롯하여 기남이, 대연이, 경순이도 출발했다.  발목에 약간의 상처가 있었던 종대는 캠프에 남아 있었는데, 9시가 지나면서 흐렸던 하늘도 맑게 개이고 바람도 거의 없었다.

  빙하를 따라 계곡을 내려간 대원들의 모습이 어느덧 가물가물 멀어지고, 가디너 헛으로 간 4명의 모습도 크레바스를 오르내리며 벽 아래쪽에 거의 접근해 가는것을 보면서, 종대는 나조미봉을 넘어 온 눈부신 햇살에 젖은 장비를 말리고, 빗물에 젖어 작동이 잘 되지 않는 카메라를 손보는 등 혼자만의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출발할 때 약간 쌀쌀했던 날씨는 모레인 지대로 접어들 무렵 아주 따뜬따끈 했다.  앞서가던 대호가 운이 좋게도 크레바스가 끝나가는 지점쯤에서 아이스바일 하나를 주웠다.  색이 바래긴 했지만 쓸만한 것 이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았지만 버리고 간 20L 물통 부서진 것도 나타났다.

  못견디게 더워지는 날씨에 하나 둘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한 여름 한낮을 무색케 하는 기후였지만 한술 더 뜨는것은 공해가 없어 그대로 직사광선이라는 점이다.  모레인 지대의 제일 높은 봉우리 옆쯤에 아이젠과 피켈과 두꺼운 옷을 벗어놓고 돌덩이를 올려 놓은 후 가뿐하게 다시 출발했다.  뻔히 눈으로 보이는 저 앞의 경계지역을 보면서 나아가도 모레인 지대는 끝날줄을 모른다.  정말 지겨운 지역이다.

 

  좀 더 빨리 풀이 있는 왼쪽의 사면의 길로 접어들기 위해 벼랑을 비스듬이 트레버스 하기로 하고 접근했다.  주루룩 흘러내리는 크고작은 돌들은 손잡을 데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올라가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이 아니면 성질급한 사람은 견디지 못할  구간이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선 잡목지대에는 악명높은 가시풀이 곳곳에서 우리를 환영했다.  인사치고는 참으로 고약했다.  그렇게 풀밭옆의 계곡에 도착하여 세수하고 물먹고 하며 허기진 배를 물로 채웠다.  애초에는 맛있는 라면을 끓일 계획이었는데 유일하게 가져간 라이터가 작동을 거부해 버렸으니 남은 것은 데포지점에 한시라도 빨리가서 닥치는대로 먹어 치우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가도가도 데포지점을 찾을수가 없었다.  여기인가 저기인가 하며 위 아래로 더듬어 보았지만 비슷하긴 했어도 막상 가보면 그 바위가 아니었다.  특별하게 표시를 한것도 아니어서 기억만을 더듬어 무한정 내려갔다.

 

  한편 가디너 헛으로 오르기 위해 바위벽 아래쪽에 접근하여 길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메던 개척팀은 드디어 시커먼 바위벽에서 쇠줄을 발견했다.  반갑기도 하면서 어이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어제도 같은 위치에서 쇠줄을 찾기 위해 살펴 보았지만 공교롭게도 쇠줄을 따라 물길이 형성되어 있어, 그곳이 단지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으로만 보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캠프에 남아있던 종대 역시 라면이라도 끓일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기에 오징어와 쵸코렛등을 먹으며 무전교신을 시도해 보았으나 양쪽 다 아무도 응답이 없었다.

  가디너 헛으로 올라가는 바위벽과 근접한 부분의 빙하는 흉물스럽게 큰 크레바스를 만들고 있어 불안하고 위험해 보였다.  여기에서부터 쇠줄이 시작되는 바위벽까지의 구간에는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와이어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쇠줄은 바위의 굴곡을 따라 200m 가량을 수직 또는 트래버스하며 이어지는데, 군데군데 아직도 물이 흘러내리는 부분이 많아 배낭의 무게와 더불어 결코 쉽지가 않았다.

  이렇게 오늘 가디너 산장에서는 우리가 지나온 후커계곡이 아스라이 보이고, 발아래로는 후커빙하가 펼쳐져 엠프레스 빙하로 이어지고, 뒤로는 우뚝 솟은 나조미봉의 위용을 느낄수가 있다.

  개척팀은 그곳에서 만난 2명의 외국 등반대와 기념촬영을 하였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홍경순 대원을 산장에 남기고 캠프로 내려와 남아 있는 배낭을 모두 산장으로 옮기기 위하여 아이스폴과 바위벽을 서너번씩 오르 내렸다.

 

  오후3시!  드디어 오매불망하던 바위를 발겨했다. 그러나 바위속에서 비닐을 들추고 건네지는 식량과 장비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저것을 어떻게 다시 지고 갈것인가??

  우선 주린 배를 채우고 생각할 일이었기에 식량과 장비를 분류했다.  퍽퍽한 행동식으로는 부족했기에 아끼던 과일 통조림을 골라냈다.  그러나 나이프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이두가 특유의 힘을 발휘하여 뾰족한 돌덩이로 그 단단한 깡통을 쪼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아까운 과일즙이 튕겨나가기야 했지만  그런것은 새발의 피였다.  설령 반이 훼손되어 못먹게 된다해도 나머지 반을 먹는것만해도 감지 덕지가 아니던가...

  드디어 고행의 길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꾸겨넣고, 밟아 넣어서 불룩한 배불뚝이 배낭들을 짊어지고 일어서려는데 승국이가 비명을 지른다.  원인은 한 가지,  날씨 탓이다.  더운김에 웃통을 벗어 제치고 원주민이 되어 보겠다고 큰소리치며 활보한 덕택에 살이 익어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수건을 대긴 했지만 고통스러운 것은 어쩌지 못했다.  햇볕에 화상을 입다니...

 

  어제 우리가 야영했던 자리가 보였다.  그곳에는 하산하면서 가져간다고 데포시켜 놓은 쓰레기봉투가 있었다.  "만에 하나 루트를 변경하여 다른곳으로 하산한다면 저 봉투는 미아가 되어 한국인의 이름에 먹칠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그대로 지나칠 수 가 없었다.  귀찮긴 했지만 다시 집어 들고 운행을 시작한지 얼마 후, 어제 도계 작전을 펼쳤던 곳에 이르니 외국인 2명이 물을 건너서 쉬고 있었다.  반가움에 인사를 하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다음에 취한 행동이 라이터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기특하게도 라이트를 주면서 위에 있는 우리팀의 동정을 전해 주었다.

  일부는 가디너에 있고 일부는 등반중이라고 했다.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작전을 세웠다.  시간이 제법 흘러갔기 때문에 좀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이두가 제시했다.  승국이와 둘이 데포시켜 놓은 아이젠과 그밖의 것을 찾아 모레인 지대가 끝나는 곳으로 갈테니 거기서 다시 만나기로 하자고...

 

  아이스폴과 바위벽을 서너번씩 오르내리는 사이 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할 무렵 식량과 장비 운반을 위해 떠났던 수송팀과의 무전교신이 이루어졌다.  위치는 빙하위의 모레인 지대가 끝나는 곳으로 확인 되었다.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울러 걱정도 이만 저만 되는게 아니다.  시간은 벌써 오후 10시가 되어가고 어둠이 내려 랜턴 불빛에 의존해 아이스폴을 통과하기가 힘들고 위험할텐데...그러나 어떻게 하든 가디너헛까지 올라야 했다.  어제 저녁 사용했던 아이스 폴 중간 지점의 캠프는 이미 철수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올라오지 않은 대장이 아이스폴 중간에서 불빛을 비추며 안내를 하고, 종대와 기남이는 바위 위에서 불빛과 무전교신으로 루트를 유도했다.

  대원들의 랜턴 불빛이 얼음 위를 두리번거리며 느린 속도로 차츰 가까워져 왔다.  배낭 운반으로 임대연 대원이 올라온 후, 수송팀과 대장이 만나는 것을 확인하고 기남이와 종대는 다시 바위를 내려가 대원들의 접근을 도우면서 마중을 했다. 

  2월 14일 새벽2시, 식량 장비 수송조의 17시간 반의 행군이 끝이 나고 경순이가 지어놓은 저녘밥을 정신없이 해치운 후 3시 30분 산장에서의 꿈같은 잠에 골아 떨어졌다.

 

96.2.14(수) 맑음

  큰 드럼통 모양의 가디너 헛에서의 달콤한 잠은 어제의 힘들었던 운행을 감안했음인지 오전 10시까지 이어졌다.  수용인원6명 정도가 적정한 산장에 우리팀10명과 정리되지 못한 장비들이 산장내부 어느 한구석 남김없이 빽빽히 들어차 있어 보는 우리들조차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제 오후 우리가 배낭을 운반할 때 먼저 산장에 도착하여 머물던 또 다른 외국인 등반객2명은 이러한 상황을 예상 해서인지 산장 밖으로 나가 비박을 하고 있었으나,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서 잔 후, 이러한 상황을 처음 보기라도 한 듯 사진까지 찍어가며 재미있어 하더니, 우리보다 앞서 나조미봉을 등반 한다며 산장을 나섰다.

  우리가 등반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맛없는 아침(카레라이스와 콩자반)을 먹고, 가디너헛에 대기시킬 식량과 장비를 다시 분리한 후 다음 목적지인 엠프리스 산장르로의 카라반을 준비했다.  어느듯 날씨는 맑게 개이고 오후1시를 넘겨 출발을 하였는데, 하늘이 너무나 말고 깨끗하여 주변 경관과 더불어 모두들 신이 났다.  오늘만 같으면 힘든줄 모르고 얼마든지 산행 할 수 있겠다는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따가운 햇볕에 눈이 녹아 발목까지 빠지는 완만한 설사면과 크레바스 지대를 오르면서 갑자기 막걸리 생각이 간절해 졌다.  그만큼 여유가 있어서였겠지만 그것은 순전히 빙하위에 그려진 빈대떡 모양의 눈자욱을 보고 나서였다.  나의 이런 생각은 대원들의 동감을 불러 일으켜 더도 말고 생맥주 딱 한 잔만을 노래하면서 2시간쯤 오르다 보니 저 멀리 하얀 능선위로 조그맣게 엠프리스헛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나타난 상황으로 오늘은 여유있게 운행을 마치고 편안한 밤을 기대하며,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1시간 가량을 더 올랐을때, 빙하 저편 커다란 바위벽 위에 엠프리스 산장이 손에 잡힐 듯이 뚜렷이 보였다.

  엠프리스 빙하는 곳곳에 커다란 크레바스가 형성되어 있어 다시금 안자일렌으로 확보한 후, 산장을 앞에 두고 원을 그리듯이 설사면을 따라 돌아갔다.

  셀라빙하 끝에서는 우뚝 솟아 있는 마운트쿡의 정상까지도 깨끗하게 볼 수가 있어, 등반루트도 이야기하면서 베이스캠프로 이용할 엠프리스헛(2,516m)에 도착한 시간은 아직도 눈부신 햇살이 산장을 달굴듯이 비추고 있는 오후 6시30분경이었다.

  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밖에서 본 산장의 모습에서도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안으로 들어서서는 더더욱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94년에 새로 신축되었다는 이곳은 철판과 목재를 이용하여 견고하게 지어 놓았고, 침상과 취사시설, 조명과 연료, 무선통신시설, 청소용구 등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고, 산장 밖에 조그맣게 따로 지어놓은 화장실 또한 깨끗하게 관리가 되어 있어, 먹을것만 있으면 자연과 벗삼아 아예 살림을 차려도 좋을것 같았다.

  잠시후인 7시에 마운트쿡 국립공원 관리사무실로부터 전해오는 내일의 기상예보를 듣고, 쿡산에 관한한 대단한 열정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듯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사람은 우리의 이해가 부족함을 알고, 기압골의 이동을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해 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내일과 모레의 날씨는 좋을 것이란 설명이었으며, 이 예보는 카라반 첫날때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저녁 식사 준비중 식탁에 모여 회의가 시작되었다.  김영찰대장은 등반일정과 기상조건 등을 종합하여 무리함을 알면서도 휴식없이 내일 새벽1차 정상공격에 나서기로 결정을 내리고, 대연 규두 승국 3명의 대원을 지명하였다.  등반 루트는 셀라빙하 상단에서부터 시작되는 서벽의 루트중 가장 긴 얼리스트(난이도4.5급)로 정하였다.  순간 지금까지의 여유로움이 긴장으로 고조되기 시작하고, 저녁식사 후 대장의 지시에 따라 내일 등반에 나설 3명의 대원은 곧바로 취침하고, 대장을 비롯한 나머지 대원들은 등반에 필요한 장비와 식량등을 챙기느라 거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등반자 각각의 역할에 맞추어 하나하나 메모를 해가며 장비와 삭량을 챙기고, 식사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잠을 자고 있는 3명의 대원과 다른 등반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자정무렵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1시쯤 뉴질랜드인 2명이 먼저 일어나 등반 준비를 하는 소리에 잠을 깨어 있다가, 2시 30분경 그들이 떠나면서 우리도 일어나서 주먹밥을 만들고, 챙겨놓은 장비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식사 준비를 마쳐 놓고 등반팀을 깨웠다.


96.2.15(목) 맑음

  등반을 앞두고 다소 긴장을 한 탓인지 아니면 잠이 덜 깨어서인지 대연, 규두, 승국이의 표정이 약간 굳어 있는듯이 보였으나 3명 모두 컨디션이 좋았다.

  어제 속이 약간 좋지 않아 약을 먹고 잤던 대연이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한다.  등반팀과 그들을 벽에 접근할때까지 배웅을 해주기 위한 지원팀이 쌀밥과 육계장국으로 식사를 마치고, 인삼차를 마시며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밖을 살펴보니 북릉 등반을 위해 떠난 뉴질랜드인 2명은 셀라빙하의 끝 부분을 오르고 있음을 그들의 랜턴 불빛에 의해 알 수가 있었다.

  새벽 5시 정각, 하늘빛이 어렴풋이 밝아 오는듯 하지만 아직도 주위는 어둠에 쌓여 있는 가운데 드디어 정상 등정을 위한 출정이 이루어졌다.  대연 규두 승국 대원은 대장에게 보고를 하고 남아 있는 대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어둠속으로 나아갔다.  대장과 기남  대호가 얼리스트 루트 초입까지 배웅을 위해 동행했고, 6시쯤 셀라빙하에도 서서히 먼동이 터오면서 등반팀의 불빛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날이 밝아 이곳 엠프리스 산장에서 보는 마운투쿡 산정의 경치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짙게 깔린 운해 위로 세프톤봉을 필두로 하여 수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고개를 내밀고 뉴질랜드의 풍요로움을, 자연의 풍요로움을 노래하는 듯 했다.  하늘 또한 더없이 맑고 깨끗하여, 물퉁에 고인빗물이 샘물처럼 깨끗한 이유를 실감하며, 오늘 등반에 나선 대원들로부터 정상에서의 기쁜 소식을 기대하게 했다.

 

  8시경, 배웅을 나갔던 대원들이 돌아와 순조롭게 등반이 시작되었음을 전하고, 아침식사와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후 어제 가디너헛에 대기시켜 놓은 식량을 운반해 오기 위하여 나와 기남, 대호, 영님이는 두번째의 하산을 서둘렀고 종대를 비롯하여 불행인지 다행인지 며칠째 감기 기운으로 인하여 몸이 좋지 않은 경순과 대장은 함께 캠프에 남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오전 10시, 등반팀으로부터 출발 후 첫 교신이 들어왔다.  현재 7피치를 등반하였으며 좋은 컨디션으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13피치를 완료한 12시부터는 망원경으로 등반팀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었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등반 난이도도 점점 어려워진다는 상황을 알려왔다.  그래서인지 이때부터 등반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시작하였고, 등반루투가 얼리스트 루트를 벗어나 후커페이스 쪽으로 잘못 접근해 가는것이 보였다.  이때는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대로 진행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오후3시, 등반팀은 현재의 위치를 잘못 인식하고 있음을 알고, 이후 8시30분까지 후커페이스 루트를 등반하여 얼리스트 루트와 만나는 지점까지 유도 과정이 계속 되었다.

  오후6시, 식량운반을 위해 가디너헛에 내려갔던 대원들이 도착한 후  저녁은 별미식(수제비)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등반팀이 마땅한 비박지를 찾지 못해 자정 무렵까지 계속되는 19시간의 등반 상황을 한시도 마음 놓지 못한 채 무전기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마음 졸이며 지켜 보아야 했다.

 

96.2.16(금) 맑음

  아침 6시 50분, 기상을 하자마자 망원경으로 등반팀의 위치를 찾았다.  어제저녁 비박에 들어가기에 앞서 등반자 모두가 상당히 지쳐 있었다고 했는데, 바람과 추위에 무사 했는지 걱정이 되었다. 

  7시, 교신이 이루어져 밤사이 무사했다는 안부를 전하고, 김승국 대원의 컨디션이 약간 좋지 않을 뿐 모든 상황은 양호하며, 바위에 매달려 굽어보는 경치가 기가 막히게 좋다고 전했다.

 

  오늘도 날씨는 어제처럼 구름 난 점 없이 매우 좋았다.  등반을 시작ㅎ나 얼마 후 하얀 설사면에 ㅤㄷㅐㅎ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육안으로도 선등과 후등의 모습들이 점처럼 보였다.  계속되는 설사면을 통과하여 오후 12시 47분 캠프 출발 32시간만에 드디어 선두 대연이가 정상을 밟고 곧이어 규두와 승국이도 정상에 도착하였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무전기를 통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서로가 정상 등정의 감격을 축하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대장은 하산 과정에서의 주의를 당부한 다음, 오후 1시30분에 하산을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고 마중을 준비하며 대기했다.  오후 4시30분, 등반팀으로부터 예정했던 하산 루트(정상-중봉-중봉과 하봉 사이 안부)가 아닌 정상과 중봉 사이에서 곧바로 하산중이며, 도중에 대연이가 발목을 다쳐 불편하다는 교신이 들어왔다.  즉시 마중을 하기 위한 지원팀이 출발하여 셀라빙하 상단에서 얼리스트 루트로 접근하는 가파른 설벽에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등반팀과 직접 교신이 안되는 지점에서는 베이스캠프를 경유한 삼각 무선교신과 어둠속에서는 불빛 등으로 등반팀의 하산을 유도하였으나 또 다시 자정을 넘겼고 크레바스에 갇혀 내려오지 못하자, 지원팀은 배낭에 물을 비롯한 식량을 남겨놓고 캠프로 귀환했다.

 

  여기에서 등반팀의 리더였던 대연이의 기록을 인용하여 정상 등정의 과정을 돌아본다.

 

 [ 2월 15일 오전 6시, 대장님 기남선배 대호선배가 얼리스트 루트 초입 셀라빙하 크레바스까지 배웅을 해주고 돌아갔다.  우리는 첫 크레바스를 우회해서 릿지에 올라선 후 얼리스트 루트로 방향을 잡아 오전 7시30분까지 3피치를 등반 한  후 캠프에서 준비해 준 주먹밥과 호박죽으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초입 구간은 설빙과 암벽의 혼합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전 9시10분, 7피치 등반.  날이 완전히 밝았으며 건너편 베커 새들 뒷쪽으로 햇볕이 물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도 고글을 꺼내어 착용하고 루트개념도를 다시 한번 탐독했다.

  정오 12시, 13피치 등반.  바람이 꽤 심하게 불고 난이도도 점점 심해진다.  경사가 심해 쉴곳조차 마땅치가 못하다.  2차 공격조를 위해 표식기를 몇 군데 설치했다. 

  오후 2시40분, 21피치 등반.  B.C와 교신을 통해 등반자의 현재 위치를 문의, 순조롭게 얼리스트 루트로 오르고 있다고 한다.  햇볕에 설빙이 녹아 피켈 사용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암벽도 푸석바위로 되어 있어 홀드가 매우 불량하다.

  오후 8시30분, 30피치 등반.  BC와 교신.  현재 등반자의 위치가 라이트 버트래스와 얼리스트 루트 교차점에 등반중인 것으로 확인됨.  나이프릿지를 지나는데 바람이 심하고 설면이 약해 스노우바를 중간 확보물로 이용하여 등반하였으나 매우 위험하다.  오늘 정상 등정은 어려울 걸로 판단되어 비박지를 찾기 시작하였으나 마땅한 장소가 없어 야간등반을 계속했다.

  2월16일 0시, 35피치 등반.  더 이상 등반은 위험하다고 판단, 암각에 확보물을 설치하여 3명이 서로 분산해서 비박 준비를 한 후 BC와 교신, 현재 위치에서 비박하겠다고 보고.  19시간 동안 계속 등반을 한 탓에 대원들 매우 지친 상태여서 행동식으로 식사 후 벽에 매달려서 휴식을 취했다.

  2월 16일 오전 7시, 날씨는 매우 쾌청했다.  쿡 산군은 운해에 쌓여 있고 각 독립봉들은 서로의 자태를 뽐내듯이 서로 고개를 더 높이 들어 올리려 하는 것 같다.

  저 아래 엠프리스헛이 조그맣게 보인다.  무전기를 켰다.  우리의 현재 위치를 물었다.  BC에서 망원경으로 우리의 위치를 알아냈다.  후커페이스 루트로 설벽까지 2-3피치 정도 남았다고 한다.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서둘러 장비를 챙겼으나 스탠스가 불량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오전 9시, 37피치 등반.  위로는 암벽은 전혀 보이지 않고 75도 정도의 빙설벽 구간으로 계속 이어졌다.  프론트포인팅과 삐올레 빤느를 적절히 사용하며 41피치 등반후 정상 능선에 도착하니 커니스가 되어 있다.  좌측으로 트레버스하여 12시 47분 총43피치를 등반 후 마운트 쿡(3,654m) 등정에 성공했다.  BC와 교신으로 정상을 확인하고, 대원들과 축하의 인사를 나누었다.

  정상은 뾰족하고 설벽이 10여미터 가량 커니스 되어 있어 매우 위험하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고글을 썼지만 눈물이 날 정도였다.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쿡 산군의 크고 작은 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간단히 기념촬영을 하고 오후 1시30분 Middle Peak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빙설면이 심하게 크러스트 되어 안자일렌으로 조심스럽게 운행하였으나, 2시경 후커페이스 능선을 지나다 뒤에 오던 승국이가 스텝 불량으로 추락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맙소사! 자세를 바꾸어 제동을 걸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피크가 빙면에 닿음과 동시에 몸은 허공을 가르고 75도 경사면을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아! 이젠 끝이구나.  많은 산선배들이 그랬듯이 나도 하산길에 쿡 산의 귀신이 되는 구나.  밑에 있는 동료대원들, 집데 두고온 식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래의 바위들이 괴물처럼 덤벼드는 것 같다.  100여미터 아래 크레바스에 묻히겠지.  그런데 저놈의 피켈은 왜 저렇게도 빨리 내려갈까.  저걸 잡아야 하는데...순간 "턱" 허리에 통증을 느끼며 미끄러짐이 멈추고 몸이 180도를 돌아 바로섰다.  순간적으로 피켈을 사면에 힘껏 꽂았다.  두손으로 피켈을 움켜쥐고 머리를 벽에 댄채 엎드려 있었다.  규두의 제동으로 내가 걸렸음을 직감했다.  그럼 승국이는 어디까지 떨어지고 있을까?  시간이 흘렀으나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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