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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뿌리를 찾아서 스크랩 가림토(加臨土) 글자가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 곳
주임교수 추천 6 조회 88 14.03.07 08: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림토 문자 의의

오늘날 우리는 한글 자모 24자가 세종 때 창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훈민정음의 '正音'에서 알 수 있듯이, 훈민정음은 문자를 반포한 것이라기 보다는 음을 바로 잡은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글 자모의 기원이 되는 가림토 문자는 이미 단군 3세 부루 때에 처음 만들어져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 '桓檀古記'나 '대쥬신제국사'등 에서 언급한 된 있다. 실제로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7번이나 만주에 왕래하게 한 역사적 사실은 이를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다.

 

(필자 註)

 

나랏말 씀이 뒹국에 달라(중국과 다르다고 배웠지만 사실 중국은 당시 중국이라고 불리지 않았다...따라서 훈민정음은 한자의 음을 달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한양(표준어)어와 다른 사투리 때문에 서로 혼선이 빗어져서 이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이다는 설이 있다)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젼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홀빼 있어도 제 뜻을 시러 펴디 못할 놈이 하니라. 내 이를 어여삐 너겨 새로 스물 여덟자를 맹가노니 수비 니겨 해여 쓰매 편한케 하고자 할 따람이니라....

(아~~ 아직도 이걸 다 외우고 있으니... 우리 교육은 무조건 외우면 짱땡인지라...)

아무튼 당시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우리 말로 표현하는 것이 지방마다 달라서

어려운 점을 해결하고자 표의문자가 아닌 표음 문자를 쓰도록 하신 것이다.

당시 한글 창제는 집현전 학자들이 방구석에서 만들어낸 문자가 아니라 예전에 있던

문자를 복원했다는 설이 타당하다고 본다....

 

사실 우리가 오랑캐 정도로 알고 있는 여진이나 거란 몽고족은 바로 가림토 문자를 사용하던 우리 민족이란 것이다. 중국이란 나라는 이들 우리민족이 지배했을 때 강성한 제국을 유지하였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여러 나라로 분열되곤 하였다 한다.

 

 이를 근거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잃은 중국이 분열될 것이라는 예견 또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가림토문자가 특이한 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 문자와도 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문자가 대단히 반듯하다는 것이다. 갑골문의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원시 한자의 모양도 구불구불 하였던 것이 단군 3세때 처음 만들어진 우리민족(쥬신족)의 가림토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편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쥬신족의 일부가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로 진출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원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적 중에서 가림토 문자 'ㄷ' 'ㅁ' 'ㅐ'등이 새겨진 것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 뿐 아니라 사대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대륙의 한 고장에서는 지금 우리가 보아도 뜻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가림토 문자가 사용되고 있다고 하여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더욱 실제적인 고증을 거치기를 기대한다.


가림토(加臨土) 글자가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 곳


1. 강도(江都:江草)의 해운당에서, 또는 선천(宣川)의 묘향산 단굴암(檀窟庵)에서 계연수(桂延秀)가 저술했다고 알려진 한단고기(桓檀古記:소도경전본훈)에 가림토(加臨土:加臨多)의 38자(字) 정음(正音) 부호가 나온다. 이태백전서(李太白全書)의 기록(옥진총담)을 빌어 대진국(大震國:渤海)에서 가림토 정음표기로 당(唐)나라에 글을 보낸바 있었는데, 조정에서 해독하는 사람이 없어 이태백이 해독해주었다는 내용도 함께 실려있다.

 

대진국에서 당(唐)에 보낸 글에대한 이태백의 해독은, 일본서기 민달왕(敏達王) 원년(AD572)에 고구려가 국서를 일본에 보냈을 때 조정대신과 사관이 해독치 못하여 백제의 왕진(王眞)이 해독해 주었다는 내용과 유사하다.


가림토(加臨土)의 정음 부호는 15C 근세조선의 세종(世宗) 시대에 재정되었다는 훈민정음의 표음부호와 거의 같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가림토 정음(正音)의 기본부호 38자가 세종시대에 와서 28자로 축소 되었다는 성격 이외는 없다. 따라서 가림토(加臨土) 정음 글자가 훈민정음의 신(新:親)제정 28자보다 앞서 사용된 것도 틀림이 없다.

 

물론 한자(漢字)의 뜻을 전하고자 만들어진 표음(表音)글자의 체계로도 인정이된다. 그러면서도 가림토 문자가 만들어지고 사용된 지역인 가림토(加臨土)가 어디였는가에 대한 해설은 있지도 않으며 고의적으로 설명을 회피한다. 가림토 지역에 대한 의문을 한단고기의 번역과 관계없는 필자에게도 많은 독자들의 질문이 쇄도 한적도 있고 지금도 질문을 한다. 이 기회에 지면을 통해 가림토(加臨土)에 대한 위치를 밝혀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다.

 

우선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썼다는 강도(江都)와 선천(宣川)에 맞추어 가림토 위치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강도는 강화(江華)로도 쓰여지는데 강동(江東)의 화주(華週:中州)란 뜻이며, 강도는 강동(江東)의 도회지(도읍지)란 뜻이다. 강(江)은 황하의 별칭인 호강(胡江)에서 따온 것이다. 강동은 강서(江西)의 동쪽에 해당되며 하서(河西)의 동쪽에 하동(河東)이 설정된 의미와 같다.

 

또한 산동(山東:화산기준)도 된다. 선천의 선(宣)은 안(安)과 단( )의 합성글자로 동방( )의 북지(安)란 의미를 담고있는 글자다. 따라서 강화 및 강도·선천은 한반도의 강화도나 선천(평안도)과는 인연이 없다. 강도와 선천의 중심은 지금의 하남성(河南城) 지역의 개봉(開封)과 낙양(洛陽) 지역이며 영주(寧州)의 월국(越國)이 있었던 곳이다. 월국(越國)의 뜻은 중주(中州)·중국(中國)의 다른 표기다. 특히 선천은 녹읍(鹿邑)으로 개봉과 봉구의 다른 표현이며 일본사의 가고시마(鹿兒島)로 병칭되고 있다.


2. 가림토 문자는 대진국(大震國)에서 쓰여졌으며 신라의 북진(北鎭:북국)지역에 있었다고 하였다. 즉 동국의 북방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대진국은 곧 발해(渤海)며 발해는 부상국(浮上國)으로, 부상국(扶桑國)으로도 호환된다.

 

발해국의 장유가 오월(吳越)로 가림토 글자를 거문고에 새겨보냈는데 월(越)나라 사람들이 해독하지 못했다는 한단고기의 기록도 있다. 여기에 등장한 오월의 오(吳)와 월(越)은 하동에서 하북과 하남으로 나뉘어 있었다. 월은 중주의 뜻이며 백제(百濟)와 함께 있었다.

 

당연히 영월(寧越)로도 쓰여졌다. 고려 광종(光宗:AD949∼975)때 장유가 말한 오월(吳越)은 개봉의 황하 주변을 말하며, 특히 월(越)은 영월로서 개봉의 남쪽지역이 된다. 묘향산(妙香山)이란 동방의 북해지역에 있던 향산(香山)을 말하며, 지금의 하남성 낙양의 용문석굴(龍門石窟) 맞은편(동쪽)에 있다.


발해의 대평원 남쪽에 백제가 있었고 발해는 대진국의 의미와 어울리게 동방(동국, 동해)의 부상국(浮上國) 또는 부양군(浮陽郡) 지역에 있었다. 부양군이자 발해국의 중심지도 낙양과 정주·개봉의 황하주변이 된다. 역사에서 대진국이자 발해(진단국)가 현재의 동북3성과 극동에 있었다는 해설은 반도 한국사(韓國史)가 만들어 지면서 가능해졌고, 또 근래의 일이다.

 

따라서 계연수가 한단고기를 저술한 곳도 현재의 하남성이고, 장유가 거문고에 가림토 글자를 써넣어 보낸 월(越)나라도 하남에 있었다. 또 가림토 글자를 사용하였던 주체로서, 부양군과 발해로 병칭되던 해동의 성국인 대진국(진단)도 하동(河東:河南)에 있었기에 가림토를 반도나 동북3성 지역으로 해설할 이유는 없다.

 

일단 황하지대로 옮겨놓고 보면 한자(漢字:韓字)의 생성지역과 연관된 가림토 문자와 한글의 입맞춤은 해결이된다. 또 계연수의 별호인 홍행촌수의 홍행(紅杏)역시 홍주(紅州)와 행주(杏州)의 합성으로 지금의 하남성 노산(魯山)과 우현(禹縣:杏州)을 말한다는 것을 알아두면, 가림토 지역이 어느 곳인가를 알아 차릴수 있다.


3. 가림토(加臨土)의 가림(加臨)은 가주(加州)와 임주(臨州)의 합성이고, 오방(五方)의 중앙(중원)을 상징인 토(土)가 합쳐진 지역명이다. 토(土)를 다(多)로 한다고 해도 달(達)로서 같은 의미다. 달(月:達)은 월성(月城) 및 만월성(滿月城)이되어 중토와 중원의 의미인 월(越)로 돌아오고 내토(奈城) 와 내성(奈城)·나라(奈良)가 되어 기나이(畿內:경기) 및 중주의 야마토(大和)로 다시 돌아간다.

 

즉 가림토와 인연을 맺은 모든 역사지명은 하남(하동남로)이자 소중화(小中華) 지역을 원형질로 삼아 조선의 한성부로 돌아온다. 가주(加州)는 가평(加平)과 가림(加林)으로 환원되며 두지명은 같은곳의 이칭이다. 임주(臨州)는 임천(臨川) 및 림주(林州)로 병칭되고, 임하(臨河)·임진(臨津)과도 다르지 않다. 주(州)·천(川)·평(平)·양(壤)은 지명의 나(那)·라(羅)·야(耶:野)와 같은 뜻이다.

 

또한 가림의 림(林)은 시림(始林)의 뜻으로 '동방의 중심' 이란 곳이며, 시평(始平)과 임주(林州)의 약칭이다. 임주 역시 하남성 안양(安陽)에서 만날 수 있다. 따라서 가림토의 토(土)가 오행으로 중앙(中央:中原)을 상징하듯이 가림(加臨)은 백제의 가림성(加林城:嘉林城)과 임존성(任存城)이 있었던 곳이다.

 

또 고구려의 임천성(臨川城)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신라의 안동(安東)과 임하(臨河)가 있던 곳이기도 하고, 일본사의 축자(筑紫)·웅본(熊本)·기내(畿內) 및 나라(奈良)가 있던 곳이었다. 가라(加羅:加耶, 駕洛)가 있던 곳이며, 임나(任那) 일본부가 있었던 사주(司州)였기도 하다.


가라(加羅:加耶)가 '갈라지다, 나뉘어지다, 변지(邊地)'의 뜻이있고, 강(江)의 옛표기인 '가람' 과 맞물려 갈라지다의 한자표기인 기성(岐城)이 경남거제·경북 고령에 만들어지게 된것도 낙동강(洛東江)의 반도 이식과 깊은 인연이 있다. 낙동강이 상징하는 의미는 '낙양(洛陽)의 동쪽을 흐르는 강 '이란 뜻과 '낙수(洛水)와 대동강(大東江:黃河의 본줄기)이 합쳐지는 강' 이란 뜻이다. 낙동강은 김해(金海:東海)지역을 흐르고, 가락(駕洛) 지역을 있게한 보충설명도 해준다.

 

가락(駕洛)의 본래뜻은 '낙수(洛水)·낙주(洛州)·낙양(洛陽)지역의 군주(君主)' 가 있는 곳이란 뜻이다. 가락은 일본사의 기내(畿內)이자 본정(本町)으로서 한국사의 가야와 맞물려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지역도 되었다. 임나(任那)는 임주(任州) 또는 임현(任縣)지역이란 뜻으로 '동방의 북주(北州:任州, 10간기준) 에 있었던 나라' 의 뜻이다. 임나는 산해경에서 조선의 중심이 '동방의 북해(北海)'지역에 있었다고 기록한 내용과 통한다.

 

우리가 흔히 가라말(加羅馬)을 흑색(黑色)의 말로 표기하듯, 한단고기에서 신라·발해(대진국)·흑수국(黑水國)·보로국(寶路國:하남성의 보주와 로주사람) 사람이 사이좋게 지냈다는 곳도 하남성의 낙주지역이며 낙수와 황하연변에 있었던 나라가 가라(加羅:駕洛) 가 된다. 그러면 낙동강·가락(駕洛)·임나(任那)·흑수국(黑水國)이 있었던 하동(河東:晋州)의 허창(許昌)에서 아유타국(서역)에서온 허황옥(許黃玉) 왕비를 만날 수 있다.


4. 열도의 기나이(畿內) 나라현 신궁(神宮)에는 가림토 문자 및 훈민정음 글자가 새겨진 둥근 동판(銅版)이 있다. 일본사의 기나이 나라(奈良)는 백제의 공주(公州:웅주)·남부여(河南扶餘)·한성(漢城)과 같다. 또한 대가야국의 가락(駕洛)과도 같고, 백제의 가림성(加林城:加臨城)과 같으며 임존성(任存城)이 있었던 곳이다. 특히나 임주(任州)와 존성(存城)의 중심은 영주(寧州)의 건평(建平)이 되며, 지금의 하남성 낙양(洛陽)에 대한 이칭으로 쓰였다.

흑치상지(黑齒常之)의 아들인 준(俊)의 묘지명이 낙양의 망산(邙山)에서 아버지의 것과 같이 발견 되었는데, 준의 묘지명에 그의 증조부(상지의 조부)는 임본향(任本鄕)의 자사를 역임했고, 조부(상지의 부)는 임본향(任本鄕)의 호부상서를 역임했다고 쓰여져 있다.

 

임본(任本)이란 임주(任州:북국, 북주)의 중심인 본정(本町:中央)이란 뜻이며, 이곳은 지금의 하남성 낙양→정주→개봉이 연결되는 황하남북 지역을 말한다. 또한 준의 조부가 근무지로 했던 형산(荊山)·울포(蔚浦)·일역(日域:東州, 百濟)이란 지명도 하동이자 현재의 하남(河南)에 있었으며 현재도 있다. 특히 형산(荊山)은 하남성 정주(鄭州)로서 지금도 자형산(紫荊山)이 있다. 임본(任本)이란 곳이 바로 백제의 가림성과 임존성이고, 가락국(駕洛國)이 있었던 곳이며 일본사의 임나일본부 지역이다. 임나일본부 약칭이 임본(任本)이며 신라의 시림(始林)과 계림 지역으로서 동경(東京)이자 왕성(王城) 지역도된다.

 

또한 고구려의 국내성(國內城) 지역이자 내토(奈吐)와 내성(奈城) 지역이며 나라(奈良)였다. 또한 경기 및 기내 였으며, 중화사의 광평(廣平)과 시평(始平)이었고, 동황성(東黃城:고구려)이 있었던 기주(冀州)였다. 임본(임나일본부)을 백제식으로 표기하면 풍달(風達:朴達)이 된다.

 

즉 백제의 흑치상지가 흑치부(흑수부) 출신으로서 풍달장군을 역임했던 연국(燕國)의 흑수부(북국)지역이다. 가림토의 토(土)를 중앙이 아닌 지(地)와 국(國)으로 해석해도 가림(加臨) 지역은 지금의 하남성의 황하지역에서 떠날 수 없고, 중심을 낙양→정주→개봉을 잇는 황하유역에서 찾으면 있다. 임나일본부 였기도한 일본사의 축자(筑紫)는 정주(鄭州)의 자형산(紫荊山) 지역에서 임점(任店)과 공현을 범주에 두고 있었다. 이곳이 곧 가림토 지역으로서 백제의 웅주(공주)였으며, 또한 한성부(漢城府)였다. 이곳에서 한글과 한자(漢字)가 만들어져 보급되었다.


5. 가림토 문자의 한글이 한자(漢字)의 뜻을 표현하기 위한 표음(表音)의 부호 및 글자로 생각할 때, 한자가 생겨난 곳에서 가림토 문자와 한글이 생겨났다고 보는 견해가 상식적이다. 한글을 한자로 쓰면 한글(韓契:汗契)이 되어 '대칸(大汗:황제)이 있는 한국에서 사용된 한자의 표음글자'로 정리가 되며, 이곳 역시 한국사 강역의 한성부(漢城府)가 있었던 현재의 하남성(하동, 산동) 지역에서 찾아야 있다.

한자의 원류이자 초기 문자였던,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쓰여진 귀갑(龜甲)과 골편(骨片)이 처음 발견되고, 대량발견된 곳도 은허(殷墟:은나라, 조선왕국)였다. 은허는 상허(商墟)로도 병칭되며 지금의 하남성 황하 남북지역을 말한다. 즉 가림토(加臨土) 지역이며 조선왕국사(한국사)의 모두가 이루워졌던 지역이다. 한자를 발음할 때 이러한 모양의 부호를 사용하자고 약속(제정)하면서 생겨난 것이 가림토 정음 38자이고, 한글의 28자다. 문자와 언어 사이에는 신속하고 정확한 의미 전달이라는 경제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럴 때 단음절의 표기가 실효성을 발휘한다.

 

모범적인 한자의 단음절 표기는 자음과 모음이 합쳐진(반절음 결합) '한글'을 상대할 표음자는 없다. 이럴 때 일본의 가나 또는 현중국의 한어병음자모 및 주음부호 표기는 2음절 이상으로 발음되어 한글의 방언(사투리) 성격을 헤어나지 못한다. 즉 조선의 왕국 지역인 한국(중국)에서 만들어진 라틴문자로서는 한자(漢字:韓字)가 있고, 라틴어 표음글자로는 한글(가림토문자)이 있었다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한국사의 중심이자 왕국이 있었던 한성부(漢城府) 지역이 중국이듯이 한자(漢字)가 말하고자하는 상징도 중주(中州)·황주(黃州)에 있었던 조선의 한국(韓國)이자 중국(中國)에서 만들어지고 쓰여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일역(日域:東國)의 본정(本町:중앙, 중심)인 임나(任那:북해왕국) 일본부지역에서 만들어진 표의(表意) 문자가 한자였다로 생각해도 된다.

 

또 역사를 통해 중국·한국·일본이 공동으로 한자를 만들었다고 보면 정확하다. 갑골문자가 많이 발굴되고 처음 발견된 현재의 하남성 지역의 황하 연변이 한자가 만들어진 곳이자 가림토 문자가 만들어진 가림토(加臨土)지역이며, 한국이자 칸국(汗國)에서만 쓰여졌던 한글(韓契)이 만들어 졌던 곳이다. 물론 조선의 왕국 지역이었던 한성부 지역이다. 중심은 낙양이 된다.


한글(韓契)은 한국 및 칸국(汗國:조선의 왕국)에서만 쓰여졌던 한자의 표음문자(表音文字)이고, 가림토 문자는 백제의 가림성과 임존성이 있었고, 가주(加州)·임주(臨州)가 있었으며, 가락국(駕洛:낙양, 정주)이 있었던 공주(公州)이자 웅주(熊州)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 글자다. 신라의 안동이기도 하고 고구려의 내토와 내성이기도 했던 이곳은 한자(漢字)가 만들어진 한주(漢州) 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글·가림토글자·한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즉 한자가 만들어진 하남성 지역에서 가림토 글자와 한글이 만났던 것이다.

한단고기를 저술한 계연수의 강화(江華)이자 강도(江都)가 있었던 곳도 하동남로(하남성)인 강동(江東)에 있었고, 홍주(紅州)와 행주(杏州)가 합쳐진 계연수의 고향인 홍행촌(紅杏村)도 하남성에서 노산(魯山)과 우현(禹縣)으로 남아있다.

 

계연수는 안성마춤으로 지금의 하남성이자 한글→가림토글자→한자가 만들어진 묘향산(하남성 낙양의 향산)지역에서 한단고기를 저술했다. 바로 이곳에서 38자의 가림토 정음(正音) 글자가 만들어지고 쓰여졌다고 하였고, 대진국(진단)지역이자 발해가 있었던 부양군(浮陽郡) 지역으로서 계연수의 출생지이자 고향(故鄕)이라고 하였다. 한글의 초기 형태였던 가림토 글자의 탄생지를 한반도로 한정하여 한자·한글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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