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화두(話頭)로 미리 보는 2013 프로야구 [배지헌 칼럼]

[No.20 홍장원]

야구는 즐거움이다. 하는 사람에게도, 그걸 보는 사람에게도, 하얀 공과 나무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무한대의 사건과 드라마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그래서 슈퍼스타 조 디마지오는 말했다. “야구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일이 되었다면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야구가 아니”라고. 1970년대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척 태너의 명언은 또 어떤가.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야구경기에서 승리했을 때이고, 두 번째로 기분 좋을 때는 야구경기에서 졌을 때다.“ 이기든 지든, 야구는 즐겁다. 지더라도 야구가 있는 편이, 야구 없이 보내는 추운 겨울보다는 훨씬 즐거우니까. 

지난 시즌 프로야구는 역대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사상 처음으로 700만 관중을 돌파했고, 중계방송 시청자 수도 4억 명을 넘겼다. 여성팬과 어린이, 가족 단위 관중이 크게 늘었다. 응원팀의 승패에만 집착하는 차원을 넘어, 야구 경기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한국의 WBC 탈락 나흘 뒤인 9일, 시범경기 개막전을 보러 야구장을 찾은 관중은 2만5316명이나 됐다. 이제 야구는 국민적인 놀이이자 문화로 뿌리를 내렸다.  

올 시즌에는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더욱 늘었다. 신생구단 NC 다이노스가 1군 무대에 데뷔한다. ‘금메달 사령탑’ 김경문 감독이 젊은 선수들을 이끌고 어떤 야구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여기에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명장 김응용 감독이 9년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코끼리 매직은 여전할지, 해태 사단끼리 맞붙을 한화-KIA전의 결과는 어떨지가 벌써부터 화제다. 디펜딩 챔피언 삼성은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을지, LG 트윈스는 가을에도 야구를 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올해 야구장에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즐거움이 대뇌 전두엽을 뚫고 올라오는 듯하다.

개막까지 5일을 남겨둔 2013 시즌을 열 가지 화두(話頭)를 통해 미리 살펴봤다.  

1. 김응용 컴백  

코끼리가 돌아왔다. 무려 9년 만이다. 이번에는 호랑이도 사자도 아닌, 독수리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통산 1463승을 거둔 명장의 귀환은 그 자체만으로도 뜨거운 이슈다. 김응용 감독의 일거수 일투족이, 지나가는 말 한마디 마디가 빠짐없이 화제가 되고 기사를 쏟아낸다. 김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타이거즈 사단’을 결성했다. 김성한, 이종범, 이대진 등 해태 올스타덱이 한화에 모여들었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KIA와의 맞대결, 오랫동안 사장을 지낸 삼성과의 맞대결은 시즌 내내 끊임없는 이슈를 만들어낼 것이다. 새로 야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에게는 생소한 해태 왕조 시절, 프로야구 초창기의 추억들이 김 감독을 통해 새롭게 조명될 가능성도 크다. 야구가 하나의 ‘스토리’이자 전통이고 역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명장이 돌아왔다. 하지만 현진이도 없고, 찬호도 없다. '종범'은 있지만 선수가 아닌 코치고, '동열'은 적으로 만나야 한다. (사진=한화이글스)

코끼리의 파워는 여전했다. 오랫동안 탁구와 야구를 겸하던 대전구장 펜스가 노감독의 말 한마디에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올스타 출신 베테랑을 주고 신인투수를 데려오는 파격 트레이드도 단행했다. 외국인 투수 선발에도 깊게 관여했다. 지난 몇 년간 프로야구에서는 40대 초보 감독이 유행했다. 구단 운영의 주도권이 현장에서 프런트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초보 감독들은 코치 선임권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흐름에서 김응용 감독이 보여준 잇단 행보는 ‘반동’처럼 보인다. 리더십도 마찬가지. 지금은 권위보다는 소통이 환영받는 시대다. 김응용 감독과 해태 사단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해태 스타일’이 21세기 프로야구에도 유효할 수 있을까. 2013년의 한화가 그 답을 보여줄 것이다.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한화는 그동안 김응용 감독이 맡았던 팀 중 최약체다. 지난해 선발 에이스 역할을 한 류현진과 박찬호, 양훈 등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물론 김응용 감독은 선동열이 빠진 1996년과 1997년에도 해태를 우승으로 이끈 바 있다. 하지만 그때 해태는 이기는 법을 아는 선수들이 주축 멤버였다. 이종범이 빠져나간 1998년, 임창용도 나간 1999년에 해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현재의 한화가 그때보다 사정이 낫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감독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단숨에 결과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여건이다. 홈구장인 대전구장의 혁명적인 변화도 한화의 성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야가 넓어지면 피홈런은 줄어들지만 대신 수비수들이 커버해야 하는 범위가 늘어난다. 이런 변화는 두산이나 SK 정도 외야진을 보유한 팀에 어울린다. 내야에 새로 깐 천연잔디도 마찬가지. 물론 한화 선수들도 언젠가는 바뀐 홈구장에 적응하겠지만, 그게 김응용 감독의 계약기간(2년) 내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김응용 감독이 ‘매직’을 만들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2. 김경문 감독과 NC 다이노스 

김응용 감독의 복귀와 함께, 또 하나의 백전노장이 프로 1군 무대에 복귀한다. 신생팀 NC 다이노스를 이끌고 돌아온 ‘베이징 올림픽 우승 사령탑’ 김경문 감독이다. 김경문 감독은 과거 두산 시절 공격적인 주루플레이와 수비를 중심에 둔 수준 높은 야구를 펼쳤다. 특히 김성근 감독(현 고양 원더스)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리그 전체의 향상을 이끌었다. ‘양김’ 감독 외에도 올해는 한국시리즈 2차례 우승 경험이 있는 선동열 감독, 현대와 넥센을 거쳐 롯데 사령탑을 맡은 김시진 감독 등 베테랑 감독들이 여럿이다. 지난 몇 해 동안 프로야구는 감독들의 잇단 경질과 초보 감독들의 시행착오 속에 다소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였다. 경기력 저하와 하향평준화 논란도 잇달았다. 경험 많은 베테랑 감독들의 존재는 프로야구 판도는 물론 전체적인 리그의 수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도 있다. 선동열 감독을 제외하면 대부분 하위권이 예상되는 팀을 맡고 있다. 당장 이기는 게 우선이 되면 ‘자기 야구’를 마음껏 펼치기는 어렵다. 

올해 1군 무대에 가세하는 NC 다이노스. 시범경기에서 만만찮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정규시즌 돌풍을 예고했다. (사진=NC 다이노스)

NC 다이노스의 1군 참가도 프로야구에는 신선한 자극이다. 일단 NC 참가로 야구인들의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지도자 품귀현상’이 프로와 아마야구를 휩쓸었다. 유능하고 성실한 지도자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구단 운영도 마찬가지. 창단부터 1군 진입까지 NC는 시종 신생팀다운 참신하고 기발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홈구장의 각종 편의시설, 지역 밀착 마케팅, 각종 팬서비스, 홈페이지와 SNS를 활용한 홍보 등에서 대기업의 울타리에 갇힌 기존 구단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모델을 제시했다. 프로야구는 그룹 회장이나 회사 홍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야구가 존재하는 목적은 ‘팬’이다. NC의 행보는 프로야구가 잊고 있던 그 단순한 사실을 새롭게 일깨웠다.  

3. 9구단 체제 

NC의 1군 데뷔는 ‘9구단 체제’의 시작을 뜻한다. 올 시즌부터 2년간 프로야구는 8팀이 경기할 동안 한 팀은 휴식하는 기형적인 체제로 운영된다. 팀마다 번갈아 가며 3~4일씩 휴식을 취한다. 휴식일 직후에는 팀의 1~3선발투수가 차례로 나올게 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투수가 두 경기 연속 선발등판하는 진풍경도 나올 수 있다. 휴식일을 앞둔 경기에서는 있는 투수들을 총동원하는 투수기용도 예상해볼 수 있다. 레오 듀로셔는 “내일 경기를 위해서 투수를 아낄 필요는 없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한 대로다. 조금 바꿔 말하면, ‘내일부터는 휴식일이니까.’ 

2000년대 후반 한국야구의 발전을 이끌었던 김성근-김경문 감독. 올해 프로야구는 김경문 감독의 1군 진입, 김응용 감독 복귀 등으로 베테랑 감독과 신진 감독이 적절한 조화를 이뤘다. '하향평준화' 논란을 극복하는 한 해가 될 수 있을까. (사진=배지헌)

9구단 일정은 리그 전체의 판도는 물론, 야구 생태계의 균형까지도 바꿔놓을 수 있다. 1~3선발의 등판 기회가 늘어나면 그만큼 타자들에게는 불리하다. 가뜩이나 투고타저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두자리수 홈런 타자가 희귀해질 가능성이 있다. 투타 개인기록의 왜곡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큰 문제다. 야구는 매일 경기를 치르는 일상적인 스포츠다. 나흘씩이나 쉬고 경기에 나서면 실전 감각을 찾는데 애를 먹게 되어 있다. 3연전으로 치면 1, 2차전은 경기 감각을 찾느라 허둥대다 마지막 3차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상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리그 전체적인 경기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변태 스케쥴을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에도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4. 퓨처스리그 

NC의 1군 등장은 퓨처스리그 출신 선수들의 대거 1군 진입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남부리그에서 활약한 NC 소속 선수들이 한꺼번에 1군 무대에 선을 보인다. FA와 특별지명으로 데려온 선수도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2012년 주로 2군에서 뛴 선수들(김종호, 모창민 등)이다. 2군리그 최강팀은 1군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2군 무대 최고의 투수(이재학)와 타자(나성범)은 1군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흥미로운 시험이다. 

NC 외에도 기존 8개 구단에는 작년 경찰청, 상무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복귀해 주전 한 자리를 노린다. 한화 정현석, 넥센 박동원, 두산 민병헌과 박건우, 유희관 등이 대표적이다. 부상중인 SK 이재원도 복귀하는 대로 1군 합류가 가능하다. 그 외 롯데 김대우처럼 오랜 시간을 2군에서 보낸 선수들도 있다. 어차피 10구단 시대에는 선수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2군 선수를 1군에 끌어 써야 한다. 경기력 저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퓨처스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1군 무대에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퓨처스리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2013 시즌, 퓨처스리그가 중요한 시험대에 섰다.  

5. 역사상 최악의 투고타저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두자리수 홈런을 때려낸 타자의 수는 총 17명이었다. 팀당 두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숫자다. 넥센 박병호(31개)만 30개 이상의 홈런을 쳐냈고, 20홈런 이상 쳐낸 타자는 5명에 불과했다. 2011년만 해도 두자리수 홈런 타자는 28명에 달했다. 15홈런 이상 쳐낸 타자만 16명에 달했다. 홈런타자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20대 초중반의 젊은 타자 중에 장거리포를 때려내는 타자는 극소수다. 홈런공장 대전구장은 펜스를 뒤로 물렸고, 마산야구장은 펜스를 높였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홈런은 더욱 희귀해질 것이다.  

투고타저의 흐름은 24일 끝난 시범경기에서도 나타났다. 9팀 중 무려 4개 구단이 2점대 팀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경기수와 같은 홈런을 때려낸 팀은 넥센(11개) 뿐이고, 8개를 쳐낸 KIA를 제외한 나머지 7개 팀은 4개 이하의 팀 홈런을 기록했다. 경기당 0.4개도 되지 않는 홈런 비율이다. 9팀 중 4팀이 .240 이하의 팀 타율을 기록했다. 올 시즌은 9구단 체제로, 각 팀 에이스의 등판 비중이 어느 때보다 높다. 에이스급 투수를 상대로는 안타를 치거나 볼넷을 얻기가 어렵다. 홈런은 말할 것도 없다. 경기 감각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2012년 수준을 뛰어넘어 ‘극단적인’ 투고타저 시즌이 예상되는 이유다. 케이시 스텡겔이 한 말. “훌륭한 투수들은 항상 훌륭한 타자들을 막아낼 것이다.” 스텡겔은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고 하긴 했지만, 올해만큼은 어려울 것이다.  

투고타저를 부추기는 또 하나의 요인. 투수들의 다양해진 레퍼토리다. 변형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계통의 구종을 이제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던져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공은, 바로 포크볼이다. 

6. 포크볼 

노경은, 김혁민, 윤희상, 이용찬, 김승회, 김성배, 이용훈, 밴 헤켄, 박지훈, 홍상삼. 

지난해 혜성처럼 나타나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낸 투수들이다. 이 선수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포크볼러. 포크볼(또는 스플리터)을 새롭게 장착했거나, 원래부터 던지던 포크볼을 좀 더 완벽하게 가다듬어 ‘대박’을 쳤다. 직구처럼 날아오다 바닥으로 꼬꾸라지는 포크볼 세례에 타자들은 무수한 선풍기를 돌렸고, 삼진을 당했다(그리고 포수들은 중노동을 경험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포크볼은 마지막 마구”라고 했다. 한 투수는 “포크볼로 타자들을 잡아낼 때면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손가락 벌렸죠? 포크볼이에요. (사진=SK 와이번스)

지난해 포크볼의 위력을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일까. 올해는 겨우내 새로 포크볼을 장착하고 나타난 투수들이 많다. LG 리즈를 비롯해 윤성환, 변진수, 최대성, 류택현 등이 떨어지는 공을 연마했다. 송승준, 김선우, 배영수, 고원준 등 원래부터 던지던 투수들은 올해도 건재하다. 이재우, 정재훈, 조정훈 등 부상에서 돌아온 포크볼러들도 있다. NC의 마무리 김진성과 이성민 등도 포크볼을 주무기로 구사한다. 타자들과 포수들은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 

물론 남발은 금물이다. 포크볼을 많이 던지면 직구 구속이 줄어들 위험성이 있다. 부상 논란도 항상 따라다닌다. 두산 이용찬의 부상은 조정훈 사례와 맞물려 격한 논란을 불렀다. 그렇다고 투수들이 포크볼 구사를 자제할 것 같지는 않다. 원래 피칭이란 행위 자체가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파키 앤더슨이 “투수들은 고통을 가지고 피칭해야 한다”고 말한 대로다. 또 투수들이란 타자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고통이나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는 인종이다. 포크볼을 던지기 위해 손가락을 찢은 이광우 화순고 감독은 “공만 잘 던질 수 있다면 발가락도 찢었을 것”이라 했다. 프레드릭 B. 윌콕스는 “전진은 언제나 위험이 수반된다. 당신이 발을 1루 베이스 위에 올려놓고 2루를 훔칠 수는 없다”고 했다. 무수한 삼진을 잡고, 방어율을 내리고, 연봉 상승을 이뤄낼 수 있다면, 해 볼만한 도박이 아닐까. 

7. 포수가 없다 

포크볼과 온갖 변종 패스트볼을 투수가 마음 놓고 던지려면 중요한 조건 하나가 충족되어야 한다. 바로 투수가 안심하고 공을 땅바닥에 패대기칠 수 있게 해줄 ‘포수’의 존재다. 두산 김선우는 좋은 스플리터를 갖고서도 좀처럼 실전에서 구사하지 않았다. 포수가 용덕한으로 바뀐 뒤에 스플리터 비중이 늘어났다. 두산 투수들이 너도나도 포크볼을 장착해서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건, 양의지가 그만큼 믿을 수 있는 포수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좋은 포수는 투수진 전체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잠재력을 120% 발휘하게 돕는다. 박경완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SK가 어떻게 다른지만 봐도 안다. 미국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는 볼을 스트라이크로 바꾸는 신묘한 능력(프레이밍)을 갖춘 포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지난해 탬파베이의 팀 평균자책은 3.19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였다.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박경완. 겨우내 숱한 고난을 딛고 1군 복귀를 노린다. 노장에게 필요한 것은 후배들과의 무한 경쟁이 아니라 공정한 기회다. (사진=SK 와이번스)

최근 프로야구에서 4강에 드는 팀은 하나같이 좋은 포수를 보유한 팀이다. 지난해만 해도 진갑용-이지영의 삼성, 조인성-정상호의 SK가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강민호의 롯데와 양의지의 두산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포수가 중요하기는 올해도 마찬가지. ‘포수왕국’ SK는 그 많던 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위기에 처했다. 박경완이 장애물을 뚫고 1군 경기에 지속적으로 나서야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삼성은 진갑용이 오랫동안 지켜온 주전포수 자리를 젊은 이지영에 넘겨주는 과도기다. 롯데는 강민호의 뒤를 받칠(어쩌면 내년 이후 그 자리를 대신할) 두 번째 포수가 필요하다. 4강에 도전하는 넥센은 상무에서 제대한 박동원을 주전으로 정했다. LG도 윤요섭, 조윤준 등에 현재윤을 더해 포수진을 구성했다. 신생팀 NC는 김태군과 김태우, 허준이 포수진을 구성하고 한화는 정범모와 고졸신인 한승택 중에 주전포수를 찾는 중이다. 이들 구단이 ‘포수대란’ 속에서 만족스러운 포수 자리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팀은 4강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해도 좋다.  

8. 다함께 발야구 

포수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주자의 도루를 막아낼 책임이 상당부분 포수에게 있기 때문이다. 물론 투수가 좋은 견제 동작으로 주자를 묶고, 빠른 슬라이드스텝으로 공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 도루를 허용했을 때 책임은 대부분 포수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강한 어깨와 재빠른 송구를 갖춘 포수가 앉아있으면 주자의 도루 시도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일찍이 톰 클락은 “어떤 아이도 마음 속으로는 자동차보다는 2루 베이스를 훔치고 싶어할 것”이라는 말로 도루의 매력을 표현했다. 올해 프로야구에선 모든 팀이 2루 베이스를 훔치고 싶어한다. 9개 구단 전체가 ‘발야구’를 선언했다. 원래 도루 숫자는 홈런 수와 반비례한다. 극단적인 투고타저가 예상되는 만큼 뛰는 야구로 한 점이라도 더 짜내는 게 당연지사. 도루도 늘고 주루사와 도루실패로 횡사하는 주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리고 포수는 어느 때보다 더욱 고된 직업이 될 것이다. 

모든 팀이 다 똑같은 발야구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발야구를 펼치는 데 좀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선수를 보유한 팀이 우위를 점하게 된다. 단순히 2루 도루만이 아니라 같은 타구에도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는 능력, 짧은 안타에 홈까지 파고드는 판단력과 슬라이딩 기술 등 작은 차이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팀에 따라서는 과감하게 3루를 훔치는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상대의 발야구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투수의 견제동작과 슬라이드 스텝, 포수와 외야수들의 송구 등이 발야구 경쟁에서 ‘extra 2%’를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물론 모든 구단이 겨우내 부지런히 훈련했겠지만, 이런 발야구 비교우위를 만들어낼 전력과 선수 구성을 갖춘 팀은 아주 제한적이다. 결국 모두가 발야구 경쟁을 하면, 그 중 가장 뛰어난 몇몇 팀만이 성공을 거두게 되어 있다. 어설픈 ‘발야구’로 인한 도루자와 주루미스는 뛰지 않느니만 못하다. 무작정 남들과 똑같은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차별화된 야구로 분명한 색깔을 보여주는 팀을 만나고 싶다.  

9. 순위 지각변동 

모두가 똑같은 야구를 하면, 결국 선수가 좋고 전력이 강한 팀이 계속해서 이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지난 6년 동안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삼성과 SK, 두산, 롯데가 6년째 단골 멤버였다. 2009년 KIA가 리그의 흐름을 거스르는 ‘선 굵은 야구’로 잠깐 돌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잠깐뿐이었다. 삼성과 SK는 2010년부터 작년까지 3년을 내리 한국시리즈에서 만났다. 순위의 고착화. 메이저리그에서 볼티모어 같은 팀이 돌풍을 일으키고, 오클랜드가 기적을 만들어내는 동안 프로야구에서는 매년 같은 팀끼리 4강에 올라 똑같은 팀이 우승했다. 이래서는 야구가 팬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기 어렵다. 

올해는 달라질까. 가능성은 보인다. 시범경기에서 KIA가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며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여기에 넥센이 탄탄한 주전 멤버들을 앞세워 4강 진입에 도전한다. 4개팀 중 최소 2개팀은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기존의 강팀들은 위기를 맞이했다. 2년 연속 우승팀 삼성은 잇단 전력 손실로 작년만은 못한 모습이다. 롯데는 김주찬-홍성흔의 공백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SK는 부상 선수들의 빈자리가 크다. 9개팀 체제로 치러지는 페넌트레이스도 순위 싸움에 변수다. 투수진이 풍부하지 않은 팀도 강력한 1~3선발만 있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 수 있다. 백업 멤버가 부족한 팀도 휴식일을 잘 활용해서 주전들의 체력을 관리하면 된다. 시즌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가 워낙 많다. 무슨 이변이 생길지 모르는 시즌이다. 케이시 스텡겔의 유명한 말은, 올 시즌을 두고 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섣불리 예상하지 마라,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10. 류현진 

프로야구의 흥행 돌풍은 지난해 7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정점을 찍었다는 건, 이제부터는 하락세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WBC 조기탈락도 프로야구 흥행을 놓고 보면 좋은 소식이 아니다. 무엇보다, 올해부터 막강한 경쟁 상대가 등장한다는 게 프로야구에는 위기감을 갖게 한다. 바로 류현진과 그 친구들이 함께 하는 LA 다저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와의 경쟁이다.  

과거 박찬호의 LA 다저스 시절, 11시만 되면 온 국민이 TV앞에 모여들었다. 박찬호가 뿌려대는 공 하나하나에 시선이 집중됐고, 박찬호의 투구내용에 따라 사무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박찬호 이후 숱한 한국인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박찬호만큼의 국민적인 열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한국인 타자 최희섭과 추신수도 그만한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국내에 경쟁자가 없던 류현진은 이제 미국 무대로 건너가, 그동안 국내에 경쟁자가 없던 한국 프로야구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가 되려 한다. (사진=WBC)

류현진이라면 박찬호 시절의 열기를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무대에서도 류현진은 최고의 스타였다. 야구를 찜뽕과 헷갈리는 사람이라도 류현진의 이름 석 자는 안다. 류현진은 평범한 투수가 아닌 ‘특급 에이스’였다. 마운드에 서면 강속구를 뿌려대며 타자를 압도했고, 무수한 삼진을 잡으며 경기를 지배했다. 야구팬들에게는 한국 무대에서 보여준 류현진의 인상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그가 보여줄 활약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류현진의 매 경기 매 이닝 공 하나하나마다 숨을 죽이고 집중해서 지켜볼 것이다. 박찬호 시절 TV로 그렇게 했다면, 이번에는 스마트폰과 DMB를 손에 들고서. 

박찬호의 전성기는 한국 프로야구의 침체기와 묘하게 맞물렸다. 정상적인 생활인이 하루에 6시간 이상 야구를 보는데 투자하기는 어렵다. 올해는 류현진 외에도 추신수도 강팀 신시내티에서 활약한다. 팬들이 프로야구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메이저리그의 화려한 시설, 160km/h 강속구와 외야 2층에 떨어지는 대형 홈런, 매 경기 쏟아져 나오는 차원 높은 수비가 팬들의 시선을 잡아끌 것이다. 상대적으로 프로야구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특히 9구단 체제에서 경기력 저하를 감안하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에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더 큰 문제는 류현진이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앞으로 오승환, 윤석민을 비롯해 스타급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줄을 이을 것이다. 리그를 지배하는 스타의 존재는 리그의 흥행과 직결된다. 새로운 스타를 키워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류현진처럼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스타라면 더 그렇다. 과연 몇 년 뒤 스타들이 죄다 빠져나간 뒤에도, 프로야구가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갖고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미리부터 준비하고 해답을 찾아두지 않으면, 프로야구가 맞이한 황금기는 언제든지 끝이 날 수 있다.

- HJ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