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테크윈 봉사단·창원대 학생 등 참여
한적한 시골마을의 초등학교가 시끌벅적하다.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학교 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대학생들까지. 이날따라 활기가 넘치는 이곳은 산청군 금서면 화계마을에 위치한 금서초등학교.
전교생 19명의 금서초등학교는 폐교 위기 학교다. 학생 수 20명을 유지하면 학교를 지킬 수 있지만, 지금 상태로 폐교가 되면 재학 중인 19명의 아이들은 멀리 떨어진 읍내 학교까지 가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금서면 주민들의 추억이 배어있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와 한화테크윈㈜이 나섰다. 창원대학교 학생 300여명과 금서면 주민들도 손을 보탰다. 그렇게 550여명의 인원이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2박 3일간 산청 금서초교에서 'Happy Dream(해피드림)' 활동을 펼쳤다.
폐교 위기에 있는 작은 시골학교 아이들에게 정서지원을 해주어 꿈과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경상남도자원봉사 센터의 프로그램이다. 센터와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지난해 의령 대의초교, 고성 구만초교에 이어 금서초교를 찾았다.
폐교 위기 학교 '꿈과 희망 영그는 곳'으로
"학생 수가 적어서 불편한 점은 없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이 한 명씩 꼼꼼하게 봐주셔서 좋다"며 "무엇보다 전교생이 다 같이 친하게 지낼 수 있어 즐겁다"고 답한다.
봉사단은 이런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폐교 위기 학교가 꿈과 희망이 영그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번 활동에서 봉사단의 첫 번째 임무는 학교 곳곳 담장과 벽면에 벽화그리기.
페인트를 색깔별로 통에 나눠 담고, 벽면 전체를 흰색 바탕으로 입히는 작업부터 한다. 높은 곳과 낮은 곳, 작은 틈새까지 봉사단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페인트가 마를 때 까지 기다렸다가 바르고, 또 기다리다 다시 바르는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한화테크윈 직원들은 학교 2층 옥상에서, 창원대학교 학생들은 아래층에서 작업에 열중이다.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이 직접 구상한 벽화도안에 따라 학교 건물 벽면에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려 넣는다. 늦봄 더위에 금세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손에는 페인트투성이. 하지만 이 또한 소중한 추억이고,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것도 잊는다. 서툰 솜씨지만 금서초교 아이들도 고사리손을 보탠다.
한화테크윈 직원 자녀들도 참여 봉사 체험
둘째 날이 되자 더 많은 사람들이 금서초교에 짐을 풀었다. 금서초 학생들과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은 한화테크윈 직원자녀들. 이들은 이곳 아이들과 함께 오래오래 간직할 추억을 만들면서 자원봉사를 체험한다.
금서초 학생들과 외지 아이들은 대학생 봉사자들의 지도에 따라 팀을 꾸리고, 어딜 가든 함께 활동한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아이들이 같이 뛰놀고, 같이 밥 먹다 보니 금세 친구가 된다. 운동장에서 물총 싸움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학교 곳곳에서 숨바꼭질도 한다. 벽화를 그리고 있는 봉사자에게 다가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볼을 찌르는 장난을 치고 도망갈 만큼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다.
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간식코너에서 와플과 팝콘, 아이스크림, 슬러시 등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 사는 아이들인지라 상대방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모두 재미있다. 허기진 아이들과 봉사자들을 위해 '사랑의 밥차'가 찾아왔다. 산청군자원봉사센터 봉사자들이 조리한 따끈한 쌀밥과 국, 고기반찬 등으로 배를 채우다 보니 평소 많이 먹지 않던 아이들도 이날만큼은 2~3그릇도 거뜬히 넘긴다.
봉사자와 아이들, 마을 어르신 소통의 장
잠시 쉬는가 싶더니 대학생 봉사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할 이벤트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름하여 '출동! 마을탐험대'. 화계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놀이다.
"먼저 면사무소부터 갔다가, 그 근처 보건소 옆에 죽심어져 있는 큰 나무들을 따라서 오면 된다"며 똑 부러지게 작전을 지시하는 아이들. 이 시간만큼은 마을지리를 꿰뚫고 있는 금서초 아이들이 앞장서서 나머지 인원을 인솔한다. 미션 수행의 마무리는 근처에 있는 마을 어르신과 '인증샷'을 찍는 것. 손자 같은 아이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 찍을 것을 부탁하니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핀다. 어르신들께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늦은 밤, 모두 깜깜한 운동장에 모였다. 시골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아이들의 눈동자처럼 순수하게 빛난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들을 관찰하고, 어설프지만 별자리 지도도 그려본다.
다음 날 운동회와 먹거리 파티를 마지막으로 2박 3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짧은 시간동안 소중한 친구가 되어버린 아이들과 봉사자들.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롤링페이퍼에 써내려가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시골마을 교육공동체로 남을 수 있기를
"어린 친구들에게 많이 배우고 가는 것 같아 고맙다. 우리가 만든 추억이 훗날 소중한 꿈을 밝히는 데 큰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는 김두영 창원대 총학생회 사무국장의 작별 인사와 함께 아이들의 시선은 완성된 벽화로 향했다.
금서초등학교 정문부터 운동장을 거쳐 건물 현관까지, 죽 이어진 담장과 벽면이 새롭게 자라날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벽화 작품으로 탄생했다. 나무와 꽃, 무지개 등 금서초 아이들을 상징하는 자연물과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봉사자들이 떠난 후에도 가끔 이날을 기억하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의 대형 그림판이다.
정회숙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장은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대는 소리를 마음껏 들어본 게 오랜만인 것 같다"며 "아이들이 마음 놓고 배우고, 뛰놀 수 있는 공간인 학교가 오래 지속되어 건강한 교육공동체로 남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산청읍내 중학교로 진학하는 정준영(금서초6) 학생은 "추억이 깃든 이 학교가 내가 졸업한 후에도 폐교되지 않고 후배들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폐교 위기 학교 우리가 살린다"
금서초 1학년 할머니들
산청 금서초등학교에는 70대 신입생들이 있다. 올해 3월 입학한 새내기들은 모두 다섯명. 평균 나이 70세의 할머니들이지만 이 학교의 1학년생 전부다. 손자보다 더 어린 '선배님'들에게 인생 경험을 알려주며 함께 어울린다. 담임선생님에게 "숙제 좀 내 달라"고 조를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의는 어린 선배들보다 높다.
할머니들이 학교에 다니게 된 사연은 이렇다. 올해 초 몇 명 없던 6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전교생이 10여명으로 줄었고, 학교는 자연히 폐교 위기를 맞게 됐다. 형남출 교장선생님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정을 알렸고, 그러던 중 할머니 다섯명이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젊음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할머니들은 요즘 사는 게 즐겁다. 가장 연장자인 배종임(74) 할머니는 최근 글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니 중학교도 욕심이 난다"며 "건강이 허락하면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