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와 마음보
우리 집에는 소작료 사정(査定)과 징수 관계를 총 책임지고 있는 당숙이 있었다. 중절모자를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궐련(갑에 들어 있던 비싼 담배)을 피우며 큰 길을 활보할 때면 소작인들은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하곤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걸레 윤씨'라며 별볼일 없이 취급했다.
이와 반대로 다른 당숙 한 분은 비록 가난해서 베옷을 입고 곰방대로 풍년초를 피우며 농사짓고 살았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골매기 윤생원' 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매년 해가 바뀔 때면 마을 연례 행사인 당산굿에 앞서 골매기 금줄을 쳤는데, 거기에 달아매는 골매기 짚신을 그가 도맡아 만들었기 때문에 골매기 윤생원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이다.
골매기 금줄이나 골매기 짚신은 아무나 만들지 못했다. 궂은 곳(상을 당한 집이나 애기를 낳은집)에 다녀왔거나, 자기 집안에 좋지 않는 일이 있었던 사람. 행실이 좋지 못한 사람은 만들 수 없었고, 복이 많고 깨끗한 사람이 목욕 재계하고 정성껏 만든 것이라야 했기 때문이다.
소작료 당숙이 걸레 윤씨라는 별명이 붙게 된 사연은 이렇다. 덜 거둔 소작료를 받으러 시장에 나갔던 당숙이 시장에서 큰 횡재를 만난것이다. 횡재란 다른 것이 아니고 믿지고 파는 비단 열 필을 아주 싸게 산 것이다.
섣달 스믐도 닥쳤으니 일꾼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비단을 사서는 지금 막 시장에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일종의 '보너스'를 받게 될 일꾼들은 좋아 어쩔 줄 모르고 바깥만 내다보고 잇었는데, 만석이가 안사랑에 소식을 전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는 장바닥에서 횡재를 했으니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야단을 쳤다. 장사꾼은 이익이 있어야 파는 것인데, 믿지고 거져 주다시피 파는 물건을 몽땅 사서 횡재를 했다니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잘못되었다면 물건을 파는 사람보다 물건을 산 사람이 더 잘못이라고 하시며, 혹시 그것이 도둑질한 물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물건의 질이 형편없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그러데 그런 물건을 헐값에 사서 횡재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니 허황된 윤씨가 제 버릇 개 주지 못하고 또 일을 저질렀다고 탄식하셨다.
그럴 즈음 소작료 당숙이 마을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만석의 동생 천석이 달려 나와 비단구경을 가자며 형을 데리고 바깟사랑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바깥 사랑에서 떠들썩하게 들리던 소리가 갑자기 물을 끼얹는 듯 조용해졌다. 당숙이 집안 일꾼들에게 나누어 준 비단은 겉만 비단이었지 안에 감겨 있는 것은 온통 걸레 조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작료 당숙에게 '걸레 윤씨'라는 별명을 붙게 되었다.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이런 일을 찾아 볼래야 챃ㅅ아 볼 수가 없었다. 장날이 되면 자신이 직접 만들 물건을 가져나와 서로의 물품 가치를 인정해 물물 교환을 했고, 덩달아 만남의 기회로 삼아 알뜰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신작로가 생기고 신문명이 들어오면서부터 그 문명보다 더 중요한 미풍 양속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신작로라는 문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생긴 불상사들이었다.
아버지는 당숙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려고 짐짓 추켜 올리면서 크게 꾸짖으셨다. 섣달 대목도 되었으니 일꾼들에게 비단 한 필씩 나누어주려던 생각은 좋았지만 그 생각이 본심이었따면 정성껏 각자에게 알맞은 비단을 골라야 했으며,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그렇게 해서 사는 것이 진정 일꾼들에게 나누어 주겠따는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행동인데, 불로 소득으로 횡재를 바랐으니 속인 장사꾼보다 당숙이 더 나쁘다며 '남을 속이는 사람보다 더나쁜것이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씀을 했다.
횡재를 얻으려는 마음보와 제 값을 치르지도 않는 물품으로 선심을 쓰려 했던 마음보는 제대로 들어맞을리도 없는 일을 우선 내키는 대로 진행시키고 나서 나중에 칭찬이나 받으려고 했던것이니 처음부터 잘못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 모두가 찻한 마음'씨'는 갖지 못하고 위선적인 마음 '보'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잘못을 두번 저지르면 세번째는 더 쉽게 저지를 수 있다. 상습적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잘못을 느끼면 같은 종류의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것이 생명력있는 행동이고 그렇지 못했을때는 똑같은 행동이 단순이 되풀이 되기 마련이다.
소작료를 정하고 걷으러 다녔지만 소작인들의 고통은 느껴 보지도 않고, 걷기 싫어 농귀에도 가보지 않고 주막에 앉아 일을 하는 따위의 안인한 당숙의 태도가 걸레를 비단이라고 사오는 결과를 가져왔던것이다.
아버지는 당숙의 걸레 소동을 보고는 "앞 못보는 우씨도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도 물건을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세상을 제대로 볼수있겠는가?"며 탄식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