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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기행
2013년 1월 8일. 화요일 (제1일)
2013년 癸巳년 새해를 맞이하여 17박 18일의 긴 여정으로 인도네시아 관광 여행을 나섰다.
이번 여행이 나로서는 10번째 해외 나들이이며, 나라 수로는 17번째로 외국 땅을 밟아보는 여행이다. 전주 동중학교 김재원 교장이 주관하는 중년의 행복여행 카페에 신청하여 이루어진 여행이다. 205만원의 매우 저렴한 가격에 이루어진 배낭여행이다.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해 사전에 우리 부부 2명이 합 81,100원의 여행자 보험에 가입했다.
신청자들은 전라북도 사람이 제일 많지만 강원도, 영남, 충청 등 전국에 분산되어 있다. 사전에 신청한 사람들의 명단을 보니 총 65명 중 9쌍이 내가 아는 사람들이어서 반갑다. 그 중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지사중학교의 전옥진 교사 부부도 있다. 김재원 교장도 전에 배드민턴을 같이 쳐서 이미 알고 있는 분이다.
전주 종합경기장 남문에서 미리 대기시켜 놓은 인천공항행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3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딸이 새벽잠을 설치고 우리 부부를 버스가 있는 곳까지 태워다 주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효녀 지은 설화에서 이름을 따온 딸답게 효녀다. 더구나 여행 기간 중(1월 13일)에 들어있는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용돈까지 준다. 버스는 새벽 4시에 출발해서 중간에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공항 근처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타지에서 오신 분들과 공항에서 만나 인사하고 출국 수속을 밟아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이륙 예정 시각인 10시 35분이 되었어도 비행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 후에야 비행기 정비 결함으로 잠시 지연된다더니 무려 3시간 30분 동안이나 지루하게 기다리게 한 다음 14시 5분에야 이륙했다. 인도네시아의 GARUDA 항공사 비행기인데 별 안내 방송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게 한 다음 출발해서 승객들로 하여금 짜증을 나게 했다. 그러나 이륙 후에는 아무 사고 없이 현지시각으로 19시 20분에 인도네시의 자카르타 수카르노 하타(SOEKARNO-HATTA)공항에 착륙했다. 자카르타는 한국과 2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7시간 15분 동안 비행한 것이다.
공항에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다. 버스 2대에 분승하여 한참 동안 시내 길을 달려 KCHRYSANT HOTEL에 여장을 풀고 미리 준비해 간 밑반찬으로 대학 동기들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 3쌍 6명이 저녁밥을 지어서 먹었다. 이번 여행 중 특이한 것은 너무나 긴 여정이어서 나중에는 향수병이 나기 쉬우니, 매일 저녁에는 한국식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사전에 밑반찬과 쌀을 준비시킨 것이다. 나는 콩과 멸치조림, 김, 고추장 등 4가지만 준비했지만 다른 두 집에서 각기 다른 반찬을 준비해 와 다양한 반찬으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김규태와 친구인 유재상 씨가 놀러왔는데 자기가 직접 생산한 오가피 열매로 담근 술을 가져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평소 술을 안 마시지만 이 술은 잘 숙성이 되어 있고 설탕에 희석이 되어 있어서 달고 맛이 있어 두 잔이나 마셨다. 유재상 씨는 부부교사이면서도 부안에 4천 평 정도의 농장에 직접 오가피를 직접 재배하고 있다고 하니 대단한 열정이다. 농담도 잘 하여 오늘 처음 보는 분이지만 호감이 간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 꿀같은 단잠에 빠졌다.
2013년 1월 9일. 수요일 (제2일)
오늘의 첫 방문지는 국립박물관이다.
밥과 국, 닭, 빵, 국수 등으로 호텔에서 조식 후 버스에 승차하여 9시에 호텔 출발. 나는 맨 앞좌석에 앉아 탁트인 시야로 시내를 조망하며 달린다. 시내는 주로 저층집들이 많고 고층아파트는 드물다. 도시 곳곳에 야자나무가 서 있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도로에는 차들과 오토바이들이 뒤엉켜 극심한 정체를 이루고 있다. 오토바이들은 버스 사이를 누비며 곡예운전을 한다. 벽돌로 분리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마저 무시하고 넘나들기 일쑤다. 정말 무질서하다. 도로는 좁은데 오토바이들이 지그재그로 끼어들고, 경적을 울리고 정말 정신이 없다. 당연히 교통사고도 많이 나고 죽는 사람, 다치는 사람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매년 1,000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신의 부름에 응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오전에 죽으면 12시 이전에 매장하고 오후에 죽으면 다음날 10시 이전에 매장한다고 한다. 관도 없이 고운 천에 싸서 매장하는데 2.5m✕2.5m의 좁은 묘지에 매장하기 때문에 때로는 땅을 파다 보면 옆 시체의 일부가 나오기도 한단다. 우리나라는 비가 오면 더 정체가 되는데 이 나라는 비가 오면 오히려 차의 속도가 빨라진다. 왜냐하면 오토바이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다리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차는 한참을 달려 이제 번화가에 이르렀다. 고층 건물이 눈에 많이 띈다. 인도네시아는 자동차를 생산하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이 나라는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으며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그래서 거리를 누비는 대부분의 차는 혼다, 니산, 도요타 등 일본차다. 내가 가 본 다른 나라 도시마다 우리 차가 몇 대씩 눈에 띄는데 이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한때는 기아, 현대차를 생산했는데 지금은 생산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립박물관에 이르렀다. 하얀색 건물이다. 이 박물관에서는 등에 메는 큰 배낭은 착용이 허용되지 않고 작은 손가방만 허용된다. 큰 배낭은 로커에 맡겨야 된다. 전시물의 분실을 염려하기 때문이리라.
이 박물관의 주요 전시 내용은 피테칸드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의 복제품 두개골, 선사시대 도구(돌도끼, 토기, 동물 뼈, 뿔, 가죽으로 만든 연장), 고고학적 발굴품(5~15세기 불교힌두 문화 유물), 고대시대부터 현재까지 사용되었던 화폐, 역사적 물품, 각종 지도, 각 지방문화 물품(각 지방의 주거형태, 의상, 집기, 악기), 도자기, 미술품 등이다.
한편 2층의 보물실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금장신구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인도네시아 전 지역의 지역적 색깔, 특징, 문화 등을 전체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다음 코스는 모나스 타워다.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이 탑은 높이 137m, 탑의 꼭대기는 35 Kg의 불꽃모양 순금으로 도금되어 있다. 탑의 구조는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진다. 입구에서 탑까지의 거리 45m 와 탑 하단의 가로, 세로의 길이 각각 45m 는 독립된 해인 1945년을, 상단으로 향하는 17개의 계단과 꼭대기의 횃불의 길이 17m 는 17일, 상단부와 하단부의 각각의 모서리는 8개로서 8월을 각각 상징한다.
탑에 올라가기 전에 먼저 탑의 하층부 지하 전시물을 한 바퀴 돌며 선사시대에서 인도네시아 고대왕국,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지배, 독립까지의 과정이 파노라마로 꾸며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인도네시아의 크고 작은 많은 학생들이 현장체험학습을 왔기에 가이드에게 현재 한국은 겨울방학 중인데 인도네시아는 방학이 아니냐고 물으니 학기 중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학제는 우리나라처럼 6 ‧ 3 ‧ 3 제이며 하루에 2~3시간만 공부하고 11시 정도면 수업이 끝난다고 한다. 담배 피우는 학생들이 많고 대부분이 교복을 착용한다. 5살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8월에 개학한다. 초등학교에서 구구셈을 안 배워 계산이 서투르고 개방적 교육을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하여 입시지옥과 경쟁사회의 한국 학교에 다니면 적응하기 힘들어 다시 인도네시아로 오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의 상층부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 보니 사면이 탁 트여 시원한 느낌이다. 이 모나스 기념탑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이 자카르타인들의 휴식공간인 머르데까(Merdeka) 광장이다. 독립기념탑을 중심으로 미국 워싱턴 광장을 표본으로 만들어진 이 광장은 방사선으로 뻗어 있으며, 푸른 잔디와 나무들로 어우러진 자카르타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와 다음 코스로 향하기 전에 점심 식사를 했다. HOKA HOKA BENTO 라는 일인 식당에 들어가 밥과 닭고기, 야채와 소스 등이 들어 있는 음식을 시키니 1인당 31,400루피아다. 우리 돈으로 약 3,100원 정도이니 싼 편이다. 맛도 먹을만하다.
다음 코스는 따만 미니(TAMAN MINI) 국립공원이다.‘인도네시아 민속촌’인 따만미니 국립공원은 1970년대 초 수하르토(Suharto) 전(前)대통령의 부인 이부 틴 수하르토(Ibu Tien Seoharto)여사의 제안으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자카르타에서 가장 각광받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이곳은 거의 모든 자카르타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고 있으며, 또한 인도네시아 초·중·고학생들이 한 번은 꼭 오게 되는 견학 코스로도 유명하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100 헥타르를 넘는 공간 내에 인도네시아 27개 주 각 지방의 문화, 주거 및 의상을 엿볼 수 있다. 모노레일, 전통가옥, 전기박물관, 케이블카 등이 설치되어 있고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미니공원이란 말이 무색하게 전통가옥의 규모가 상당히 커서 인도네시아는 한 집에 대가족이 모여 사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서민들의 집은 그렇지 않은데 돈 많은 사람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이렇게 큰 집을 짓고 산다고 대답한다.
공원 중앙에는 큰 인공호수가 있으며, 그 안에는 인도네시아의 지도 모양을 한 인공 섬들이 꾸며져 있다. 규모도 크지만 대단히 아름다운 공원이다.
버스는 다음 코스인 보고르(BOGOR)로 향한다. '보고르'는 자카르타에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으로 고속도로가 뚫려있어 편하고 안락하게 갈 수 있다. 이 도시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식물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나무가 많으며 주거지역으로 가장 이상적인 전원도시이다.
자카르타에서 보고르로 가는 고속도로는 왕복 8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버스전용차선은 없다. 고속도로라고 해도 통행하는 차들이 많아 속도는 매우 느리다.
그런데 우리 차가 앞에서 달리다가 정체로 정차 중인 트럭을 추돌했다. 운전기사가 잠깐 졸았던 것 같다. 그렇잖아도 전부터 습관적으로 앞차에 바짝 붙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코 사고가 난 것이다. 그런데 충돌한 것을 알면서도 우리 차 기사는 내려보지도 않는다. 앞차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우리 버스가 얼마나 손상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앞차 운전기사도 잠깐 내렸다가는 추돌 당한 뒷부분은 확인하지도 않고 손짓 한 번 하더니 도로 승차하여 가던 길을 간다. 나중에 호텔에 도착하여 우리 버스 앞부분을 보니 세 군데나 상처가 나 있다. 하도 사고가 빈번하다보니 사람만 다치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인 것 같다. 만약에 우리나라 같으면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옥신각신 다투고 입원까지 불사할 텐데 그게 아니다. 하여튼 무신경한 사람들이다.
고속도로를 통행하면서 도로 좌우에 펼쳐지는 모습을 살펴보니‘TAXI’는 ‘TAKSI’, ‘INTERNATIONAL’은 ‘INTERNASIONAL’, ‘POLICE’는 ‘POLISI’ 라고 영어와는 약간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나라 공무원은 의무적으로 제복을 입으며, 아직도 급행료(뇌물)가 판을 치고 있으며, 시민들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 후진국의 면모가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한국의 부패지수는 세계 47위인데 인도네시아는 152위라고 한다. 퇴직 정년도 없단다. 인도네시아는 산유국으로서 세계 5위를 자랑하며 그럼에도 OPEC 가입을 하지 않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고, 현재 휘발유 값은 리터당 600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보고르에 도착하여 TAMAN SAFARI LODGE에 여장을 풀었다. 숲 속에 있는 이 호텔은 규모는 작으나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산책하기 좋다. 그러나 방은 추운 편이다. 열대 나라에서 추위를 느낄 수 있다니 아이러니다.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제3일)
아침 식사는 호텔 인근의 레스토랑에서 했다. 레스토랑 주위의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고, 자그마한 연못에는 백조, 오리 등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으며 나무 위에는 원숭이도 한 마리 눈에 띈다. 레스토랑 경계 밖으로는 울창한 밀림이 전개되어 큰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한참 동안 경내 산책을 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캐리어를 운반해 준 호텔 종업원에게 5,000루피아를 팁으로 주고, 8시 50분에 따만 사파리 구경을 위해 출발했다. 발리에 예약한 호텔이 해변에서 멀리 떨어지고 5일간이나 지내기 불편하다고 하여 1인당 50달라씩을 더 갹출하여 더 질이 좋고 해변에 인접한 곳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따만 사파리(Safari) 투어에 나섰다. 따만 사파리가 있는 지역 ‘뿐짝’은 인도네시아어로 ‘정상, 꼭대기’라는 뜻이고, 이곳은 약 해발 1,000m의 고지이다. 뿐짝 중턱에 위치하여 항상 서늘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는 따만 사파리는 150여 종의 동물들을 자연 그대로 방사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의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동물원의 사파리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우리가 타고 온 버스를 그대로 타고 하마, 사슴, 라마, 사자, 얼룩말, 기린, 호랑이, 들소, 물소, 곰, 코뿔소, 표범, 양, 악어, 임팔라, 원숭이, 오랑우탕, 타조, 왈라비, 오릭스, 카피바라 등 수많은 동물들을 보며 지나간다. 사슴이나 얼룩말, 사자 등이 길을 막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관광차들이 드나들기에 이 동물들은 전혀 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먹이를 달라고 보채기도 한다. 하마는 그 큰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마치 사진 찍을 사람을 위한 포즈 같다. 하마는 한 번에 2시간씩 잠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 코스인 보고르(BOGOR) 식물원으로 가는 동안 버스는 하얀색 건물인 대통령궁 옆을 지나간다. 나중에 택시 기사한데 들은 이야기지만 현재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이름은 ‘수수로 방방 유로유노’라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이름이다. 이 궁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인 1745년에 건설되어 당시 총독이던 장군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었고, 현재 이곳은 대통령의 별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1994년 APEC회의를 이곳에서 개최한 바 있다.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정원이 자랑이며 정원 내에서 방목되고 있는 사슴들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보고르 식물원에 이르렀다. 약 87ha 나 되는 거대한 원내에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모아진 15,000여종의 식물들이 짜임새가 있으면서도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고 그중 100여 종은 100여 년 이상 된 것도 있다. 이 식물원은 세계 2위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처음에 식물원이라고 해서 온실 속에 각종 화훼류, 희귀한 수목 등이 전시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곳곳에 산책로도 잘 발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진 찍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원산지가 수마트라섬으로서 4년에 한 번씩 꽃이 핀다는 직경 2m나 되는 세계 최대의 꽃이라 불리우는 라플레시아(Rafflesia)가 있다고 하는데 보지 못해서 유감이다.
높이가 약 70~80 미터나 되어보임직한 어떤 나무는 밑동이 피라미드 처럼 생겼는데 주변이 어른 팔로 10 아름 정도는 되어보인다. 직경이 1미터는 될 것 같은 수련도 있고, 기괴한 모양의 나무, 나무와 뿌리가 연이어져 병풍처럼 생긴 모습, 나무 중턱에 피어 있는 엄청나게 큰 버섯 등 볼거리가 많다. 한곳에 이르니 잎은 홍초같은데 진홍빛 꽃의 본체에 끝 부분만 노란 꽃이 한 줄기에 여러 송이가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에 담아보았다.
보고르 식물원 관광을 마치고 점심 후 14:10 에 BANDUNG으로 향한다. 가이드가 반둥에 대해 설명한다. 반둥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상당히 큰 도시로서 유명인사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반둥 사람들은 얼굴이 비교적 흰 편이며, 종교가 대부분 이슬람교여서 히잡 쓴 여자들이 많다고 한다. 1955년에는‘비동맹 국가회의’가 열렸을 정도로 역사적 의의가 깊다. 반둥으로 가는 동안 창 밖을 보니 소나 양들을 방목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1 7:00 에 반둥에 도착했다. 도착 후 대부분의 동료들은 아울렛 매장에 갔는데 나는 가지 않고 반둥 시내를 거닐며 시장도 둘러보고 백화점에도 들러보며, 거리를 거닐면서 반둥인들의 생활상을 엿보기로 했다.
호텔을 나서 거리를 거닐어 보면서 실망했다. 도로는 인도가 없어 걷기도 불편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곳도 오토바이 행렬이 질서를 지키지 않고 내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들과 오토바이에서 내뿜는 매연이 장난이 아니다. 마스크를 꺼내 착용하고 거리를 걷다가 과자전문점에 들러 두어 가지 과자를 사고, 과일을 사기 위해 계속 눈을 두리번거리며 걸었지만 과일점이 없어 포기하고 돌아오는데 큰 백화점이 눈에 띈다. 음식점, 스포츠 용품, 의류, 잡화, 귀금속 등 많은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큰 백화점이다. 썬글라스를 하나 구입하고 매연이 너무 심해 길거리 걷는 것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 AMARIS HOTEL은 다른 것은 괜찮은데 에어컨이 너무 시끄러운 것이 흠이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 (제4일)
7:35 에 호텔을 나섰다. 한참을 달려 PUNCAK PASS 녹차밭에 이르렀다. 끝없이 넓은 야트막한 야산이 온통 녹차나무로 꽉 차 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녹차는 별로 질이 좋지 않다고 한다. 아닌게아니라 나무를 보니 상당이 늙었고 잎이 너무 큰 것 같다. 푸른 녹차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음 코스인 온천지구를 향해 출발했다.
찌아뜨르(Ciater) 온천지대에 이르니 계곡물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이 계곡을 흐르는 물은 모두 온천수다. 웅덩이에 온천물을 가두어 놓은 곳에 여럿이 둘러앉아 좌욕을 하다가 계곡으로 들어가보니 물이 더 깨끗하고 수온도 높다. 뜨거울 정도는 아니지만 온도가 적당하여 기분이 좋다. 전주 근교의 죽림온천은 유황천으로 수질이 좋아 개발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온천욕을 즐겼으나 지금은 물이 고갈되어 이용할 수 없는데 이곳은 온천물이 시냇물을 이루며 흘러가니 정말 부럽다.
땅꾸빤 뻐라후(Tangkuban Perahu) 화산에 도착했다. 1829년부터 1929년까지 6차례의 폭발을 기록하고 있는 화산이다. 분화구 깊은 곳에서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계란 썩는 냄새인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스크를 쓰고 분화구 주위를 돌아보는데 바람이 매우 세다. 모자 끈을 졸라매고 분화구를 1/3쯤 돌아 다른 지역에 이르니 나무들이 바람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를 못하고 뒤틀려 있다. 나무는 고통스럽겠지만 기이하게 자란 모습이 보기는 좋다. 지금은 활동을 쉬고 있는 화산이지만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이다. 화산 주위에 상인들이 갖가지 물건을 손에 들고 강권하다시피 한다. 가게들도 각종 물건들을 쌓아놓고 행인들을 유혹한다.
화산을 내려와 마리바야라는 조그만 폭포 하나를 구경하였는데 높이도 낮고 수량도 적어 실망이다. 오늘 일정에 렘방 딸기농원 방문이 있는데 시간관계로 생략했다.
13:20 에 가룻(Garut)을 향해 출발. 고속도 중앙분리대는 잔디와 나무로 되어 있고 도로 옆은 넓은 평원인데 논에는 모를 심어놓았다. 어느 곳은 이제 모를 심고 있다. 기계화가 안 되어 우리나라의 60년대 식으로 손으로 심고 있다. 경지정리는 잘 되어 있으며 어느 곳은 벼가 이삭을 내밀고 있다. 3모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쌀 1Kg에 250원이라니 80Kg 한 가마에 2만원인 셈이다.
가룻에 도착하여 AUGUSTA HOTEL에 투숙했다. 우리 방은 지하에 배정되어 퀴퀴한 냄새가 나고 샤워기도 고장나 있으며 에어컨도 없는데다가 모기 때문에 창문도 열어놓을 수 없어 불편하지만 여행비가 저렴하니 감수해야겠다.
2013년 1월 12일. 토요일 (제5일)
새벽 4시가 되니 큰소리로 이슬람교 예배를 알리는 마이크 소리가 잠을 깨운다. 이슬람 예배는 하루 5번 있다고 한다.
7:40에 호텔을 떠나 깜풍 나가(KAMPUNG NAGA) 전통마을로 가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내가 마이크를 잡고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와 조크를 했다. 모두들 즐겨하는 눈치다. 이야기는 다음에도 며칠 더 했다.
조중엽 친구가 히잡에 대해 질문하자 가이드가 이슬람교의 관습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히잡은 색깔은 제한하지 않으며 아무 색이나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슬람교인 중 여자는 집에서 나오면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한다. 학생들도 학교에 갈 때 히잡을 쓰고 간다.
남자는 5살, 여자는 3~5살이면 할레를 하는데 특히 여자는 낫을 불에 달궈 클리토리스를 지지는 방법으로 할레를 하는데 할레를 하면 성욕을 느끼지 못하기에 남편이 여러 명의 부인과 관계를 해도 관여를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일부다처제가 통용된다고 한다. 요즈음은 왜 하필 성기를 할례해야 하느냐,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할례해도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일어나기도 한단다.
결혼은 보통 15살 정도에 하며, 따라서 30세 정도의 성인은 벌써 10살 정도의 자녀가 있다. 같은 종교인들끼리 결혼하고 누구나 반드시 한 가지 종교는 갖고 있다고 한다. 부자는 호텔에서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호화판 결혼식을 한단다.
깜풍 나가 전통마을 입구에 이르렀다. 마을에 이르려면 가파른 계단을 많이 내려가야 한다. 계단에서 마을을 보니 초가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논은 좁디좁은 계단식 논이다. 몇몇이 모를 심기 위해 괭이로 논을 고르고 있는데 힘겨워 보인다. 이 마을은 전기도 없고 실내에 화장실과 수도도 없으며 모든 것이 불편한 생활이지만 그 전통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장자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마을에 아이들이 별로 없다.
가까이서 지붕을 보니 이 지붕은 대나무, 야자 껍질에서 추출한 머리카락 같은 섬유, 천연고무 등을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곰팡이도 슬지 않고 위생적이라고 한다. 이 전통가옥은 40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잘 버티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살고 있으며 타민족과 결혼하면 마을에서 퇴출된다. 그러기에 종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을 안내하고 있는 이장에게 물으니 정부지원금이 전혀 없다고 하지만 가이드는 요즈음에는 정부 지원금이 상당히 나온다고 한다. 마을을 돌아보니 곳곳에 여자들이 이 마을의 전통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고 있고, 만들어진 물건은 전시하며 팔고 있다. 손으로 방아를 찧는 절구도 보인다.
마을 앞에는 얕은 연못이 있고 연못 한쪽에 원두막 같은 것이 있는데 목욕탕 겸 화장실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용변을 보면 바로 연못으로 배설물이 떨어지고 그 배설물을 연못의 고기가 먹으며, 고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사람이 잡아서 요리를 해 먹는다고 한다. 마을 앞 가운데에는 공중 빨래터도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입구에서 야자 열매를 팔고 있어 5,000루피아를 주고 한 개를 사서 집사람과 나누어 먹었다. 야자 수액은 마치 고로쇠물처럼 달콤한데 둘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 양이 상당히 많다.
GREEN CANYON 부근에 도착하여 15:30에 UNI BEACH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이 호텔은 바닷가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건물의 규모가 클 뿐아니라 전체를 노란 색으로 칠하고 있어 깨끗하고 밝은 이미지여서 ‘와, 좋다!’하고 탄성을 질렀지만 내가 배정받은 방은 후관에 있어서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다.
저녁식사 전에 해변을 거닐며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파도타기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 남자가 모래로 여자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만들었는데 엉덩이의 굴곡도 잘 드러나 있고 상당히 정교하게 잘 만들져 있어 사진에 담아두었다.
저녁 식사는 차를 타고 나가 Sea Food로 했다. 새우 요리, 타이거새우 구이, 돔 구이와 생선 구이, 맥주 등 맛있게 식사를 하였는데 1인당 90,000루피(9,000원)가 나왔다. 국내에서 이 정도 먹으려면 2만원 이상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호텔에 돌아오니 호텔 수영장에서 음악과 함께 댄스파티가 열리고 있다. 한참 구경하고 룸에 돌아갔으나 이 파티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어 안면에 방해가 된다.
2013년 1월 13일. 일요일 (제6일)
오늘은 결혼 33주년 기념일이다. 이국 땅에 단체여행 중이라 별다르게 행사는 할 수 없고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서로 따뜻하게 포옹만 해 주고 7시 35분에 호텔을 출발했다.
지난 번의 추돌 사고로 우리 차에서 소음이 발생하여 작은 차로 갈아타고 GREEN CANYON을 향해 포장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린다. 도로 옆에 하늘을 찌를 듯한 야자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야자를 따기 위해 야자나무에 올라가는 모습도 보인다. 야자는 사람이 직접 올라가서 따는데 야자나무 줄기에는 나무를 찍어 올라가기 좋도록 발디딜 자리를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야자수 한 그루에 150만 루피 정도이며 수명은 40년 정도이고 이 나무는 쓰임이 다양하다고 한다. 열매는 식용이고 껍질도 다양하게 쓰이며 줄기는 목재로 쓰이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태국 여행할 때 들은 이야기인데 수상가옥의 밑받침목도 야자나무라고 한다. 물에도 잘 썩지 않는 것이다.
GREEN CANYON에 8시 50분에 도착하여 5인승 보트에 분승하여 3km 가량 투어에 나섰다. 왕복 45분이 소요된다. 물빛이 맑은 그린 색이다. 전날 비가 와서 약간 흐리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더욱 맑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인 보트 운전자와 토막영어로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 호수에는 악어는 없지만 이구아나는 살고 있다고 한다. 이구아나를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이따가 볼 수 있단다. 한참을 달리다 안내자가 “이구아나!” 하고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이구아나는 벌써 숲 속으로 숨어버려 보이지 않는다. 또 한참을 지나가는데 호수 가운데 떠 있는 바위를 가리키며 또 “이구아나!” 하고 소리치는 곳을 보니 이구아나가 누워있다. 이번에는 도망갈 생각도 않는다. 동물원에서 이구아나를 본 일은 있지만 야생의 이구아나를 보기는 처음이다. 원숭이도 있느냐고 물어보니 있단다.
진초록 호수 주위의 수목을 바라보며 녹색의 맑은 호수를 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정말 무릉도원을 달리는 기분이다. 안내자가 내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어주는 친절을 베풀더니 갑자기 ‘그린 캐년!’하고 외친다. 앞을 보니 약간 어두워지면서 협곡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그린 캐년이다. 커다란 바위 동굴이 전개되어 있고 석순도 자라고 있다. 지금까지 녹색 물만 보아오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비경(秘境)이다. 수영을 할 수 있으면 헤엄쳐가보라고 한다. 수영을 잘 못한다고 했더니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동굴 앞에서는 낚시질도 하고 있다.
더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오던 길을 되돌아온다. 원숭이는 왜 눈에 띄지 않느냐니까 이 시간에는 숲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단다.
뭍에 오르니 과일 행상들이 많이 있다. 가이드에게 배운 대로 “사뚜킬로 하르가 브라빠?”(1kg에 얼마냐?)고 물으니 망고스틴은 15,000루피아, 사워는 10,000루피아란다. ‘사워’란 과일은 감자같은 모양인데 잘 익은 것을 먹어보니 아주 당도가 높고 맛있다. 그러나 덜 익은 것은 아주 떫다.
화장실에 들러 2,000루피아를 주고 소변을 보았다. 인도네시아는 화장실이 거의 유료다. 대부분이 2,000루피아다. 그런데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 변기도 좌변기가 아니고 쪼그리고 앉는 재래식 변기다. 대변을 보고는 비치된 바가지를 이용하여 오른손으로 물을 퍼서 왼손으로 씻어낸다. 그래서 사람을 가리킬 때 왼손으로 가리키면 큰 실례다. 왼손은 부정한 손이라는 것이다.
그린 캐년에서 족자카르타를 향해 10:00에 출발. 족자에 19:40에 도착. 아침에 호텔을 출발한지 12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정말 지루하다.
족자에서는 우리 일행들이 호텔 2개에 나뉘어 투숙했다. 나와 우리 일행은 가이드가 운영하는 Roemah djawa Resort에 투숙했다. 이 호텔은 현재 2호차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이 호텔 사장인 이철수 씨가 운영한다. 사모님이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는데 보기 드문 미인이다. 호텔 주위에 하트형의 호수가 있고 호텔 분위기가 아늑하다. 한국적 이미지가 풍긴다. 김치, 된장국 등 한식으로 저녁을 제공해 주어 맛있게 식사를 했다. 김치 맛이 한국에서 먹어본 김치와 별 차이가 없다. 다른 반찬들도 입맛에 맞는다.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제7일)
아침에 호수 한 바퀴를 돌았다. 호수는 멀리서 보기에는 아름다운데 가까이서 보니 물이 깨끗하지 않다. 곳곳에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져 있다. 한 바퀴 도는데 한 30분 정도 소요된다.
족자는 교육도시, 문화도시, 역사도시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이다. 5층 이상의 높은 집은 짓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요즈음은 해제되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네델란드에 350년이나 지배를 받았고 일본에 3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네델란드에 대해서는 지금도 반감을 갖고 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네델란드 원수들을 몰아내 주었다며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족자는 왕이 다스린다. 왕은 세습제이며 아들만 왕이 될 수 있다. 본처에서 아들이 없으면 후처에서 난 아들이 왕이 된다. 제9대 왕은 왕비가 7명인데 현 제10대왕은 왕비가 하나뿐이고 아들이 없어 현 왕이 사망하면 누가 왕이 될지 현재는 모른다고 한다.
KRATON 왕궁에 이르렀다. 이 왕궁은 힌두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섞여있다고 1호차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1호차 가이드는 인도네시아 현지인인데 한국에 와 본 일이 없지만 한국말을 제법 한다. 이 왕궁은 1755년 하멩꾸부위노 1세(Hamengkubuwono)가 건립하였는데 왕궁은 호화롭거나 장대하지 않고 우아하고 단아한 멋을 풍긴다. 이 궁의 가장 중요한 축조물은 중앙 안뜰에 있는 프로보옉소 누각양식에 금을 입힌 것이다. 이 누각은 대부분의 누각이 그런 것처럼 벽과 창문이 없는 우아한 나무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군주는 여기에서 왕실의 손님을 받고 특별히 무희를 훈련시켜서 춤을 추게 하고 연회를 베풀기도 한다.
TAMAN SARI WATER CASTLE에 이르렀다. 술탄 하멩쿠부워노 1세(Hamengkubuwono)에 의해 1758년에 왕족의 쉼터와 유쾌한 공원으로 건립되었으나, 1867년 지진피해로 지금은 크레이톤의 서쪽에 일부분만이 남아 있다. "타만사리" 라는 뜻은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의미로, 수성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곳은 왕의 목욕탕으로 쓰였다. 목욕탕이라기보다는 수영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넓다. 네번째 왕까지 사용했단다. 목욕탕이 앞에 하나, 뒤에 하나 있고 그 사이에 3층 정도의 작은 건물이 있다. 이 건물 꼭대기에서 미인들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제일 예쁘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 뒤 목욕탕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나도 이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왕이 된 기분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서 지하 이슬람사원에 가 보았다. 미로를 통과해 지하 사원에 이르니 낮에도 어두컴컴하며 곳곳에 숨을 곳과 기도할 공간이 있고 한 가운데만은 지붕이 없어 밝다. 네델란드인 천주교도들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만든 사원이란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압제를 36년간이나 받았기에 압박받는 자들의 설움이 느껴진다.
한 백화점에 들러 내 반바지와 외손자 옷 한 벌을 구입했다. 이곳은 정찰제이다. 옆에 전통시장이 있지만 시간이 없어 가보지는 못했다.
은 세공공장을 견학했다. 문 앞에 기술자들이 은사(銀絲)로 정밀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좁은 곳에 계속 앉아서 정밀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니 직업병이 생길 것 같다. 매장에는 나뭇잎, 꽃, 꽃마차, 나비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 휘황찬란한 제품들을 전시하며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가이드는 변색하기 쉬우니 사지 말라고 권한다.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제8일)
7:35 출발. 오늘은 해발 1,800m의 디엥 고원을 관광하는 날이다. 디엥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신들의 자리'라는 의미로 자바 고대부터 토착적인 산악숭배의 성지이며 중심지가 되었다. 올라가는 길은 극심한 매연으로 눈이 따갑고 코가 매큰하다. 감자, 옥수수, 파 등이 60도 정도나 되어 보이는 급경사진 곳에도 심어져 있다.
가는 도중 한 힌두사원의 돌탑 유적지를 구경하고 급경사의 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니 맑고 청량한 공기에 휩싸인 큰 마을이 나온다. 마을을 지나 한참 올라가서 12:30에 용암이 분출한다는 곳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소규모의 수증기가 곳곳에 솟아나오고 있는데 걸어서 한참 가니 낮으막한 언덕에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있다. 곧바로 올라가려다가 숨이 막혀 죽을 뻔 했다. 용암에서 솟아나온 유황냄새 섞인 수증기가 바람에 날리며 내 눈과 코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깜짝놀라 수증기를 피하여 왼쪽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언덕에 올라보고는 또 깜짝놀랐다. 용암이 분출하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다. 분출한 용암이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다. 손 끝을 넣어보니 뜨거움이 느껴진다. 계란을 넣으면 익을 것 같다. 한 마디로 장관이다.
라면으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하산하여 7:30에 호텔에서 어제에 이어 또다시 주는 한식 메뉴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제9일)
오늘은 불교사원인 보로부드르(Borobudur)사원을 관광할 예정이다. 오늘 일정이 바빠 6:55에 호텔을 출발했다. 사원은 족자에서 44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족자에서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자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Angkor Wat)와 쌍벽을 이루는 세계 최대의 불교 건축양식으로 인도네시아인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 언어)로 '보로=승방' '부드르=높게 쌓아 올린 곳'이란 뜻에서 '언덕에 세워진 승방'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는데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이 불교 사원은 샤일렌드라 왕조에 의해 9세기에 건설되었는데 우거진 녹색의 들판과 산들이 보이는 능선에 조용하고 위엄있게 서 있다. 1814년 당시 자바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의 충독 라플즈에 의해 밀림 속에서 발견되어 10세기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이 사원의 건축에 쓰여진 100만개의 안산암의 채석 장소도 머라삐 산의 돌이라는 설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발견된 것은 없고 왕조의 쇠퇴, 전염병의 만연, 머라삐 산의 분화에 의한 매몰설 등이 있으며, 보로부두르 사원의 토대에 사용된 흙과 사원을 덮고 있던 토사의 토질이 동일한 점에서 완성과 동시에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사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변이 124m인 정방형이다. 안산암을 잘라낸 돌벽돌을 사용하여 전체 9층, 높이 42m까지 내부의 공간 없이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라갔다. 규모로만 본다면 세계 최대의 단일 불교탑이다. 흔히들 앙코르와트를 세계 최대의 불교사원으로 꼽는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여러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는 형태인데 비해 보로부두르 사원은 피라미드처럼 단 하나의 대 석조물로 만들어진 석탑인 것이다.
공간 없이 쌓아올린 석조물의 무게는 무려 350만 톤에 달해 지반이 점점 침하하고 있어서 원래 42m였던 사원의 높이는 현재 35.3m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총 350만 톤에 이르는 돌덩어리를 어디에서 운반하여 왔을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원을 중심으로 30km 이내에는 같은 재질의 돌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이다.
사원을 이루는 회랑 벽에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새겨져 있고 부조는 모두 2,500면, 부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만 명에 달하며 '거대한 조각의 숲'을 이루고 있다. 회랑의 부조 조각들은 불교 미술의 최고의 수준과 양을 자랑한다.
이 사원은 모두 10층으로 되어 있으며 등신대 크기의 불상 504개와 약 3.5m 높이의 불탑(stupa) 72개가 층별로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것에 소요된 돌덩이만 해도 100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보로부두르 사원의 경이로움은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거대한 구조물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었고 고도의 상징적인 의미를 그 구조 안에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방형의 회랑으로 이루어진 1층에서 6층까지는 외부를 볼 수 없게 되어 있고, 대신 양쪽 벽에 쉽게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부조(浮彫, relief)를 새겨 놓아 사람들의 눈길을 그 부조들로 이끈다. 그것을 모두 순서대로 다 보려면 회랑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10회를 돌면서 6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회랑이 요철(凹凸)모양으로 되어 있기에 총 길이는 무려 5km에 달한다고 한다.
회랑은 제1∼4회랑으로 구성되고, 제4회랑에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스투파(종모양의 불탑)들이 서 있는 기단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7층에 올라서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눈앞에 산과 대지가 펼쳐지게 된다. 이 희열감은 바로 1층에서 6층까지 길고 긴 배움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확 트인 둥근 단으로 구성된 7층에서 10층까지는 이제 배움의 과정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공간이 된다.
이처럼 보로부두르 사원은 예배를 드리는 신전이라기보다는 사원을 오르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교육의 장으로서 지어졌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생각이다.
추측컨대 이 사원은 8세기 중엽에 들어선 불교 왕조 샤일렌드라(Sailendra) 시대에 약 70여 년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9세기 중엽에 들어선 힌두 왕조 산자야(Sanjaya) 시대에 보로부두르 사원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1006년에 폭발한 인근 머라삐 화산(Mt. Merapi)의 화산재에 묻힘으로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보로부드르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왕의 묘, 왕조의 사당, 승방, 우주를 상징하는 구조물 등 여러 가지 의견이 구구하지만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그러다가 약 천 년 후인 1814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으나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는 발굴된 많은 불상들의 머리를 절단하여 태국의 왕에게 선물로 주는 등 오히려 훼손을 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보로부두르 사원에 있는 불상들의 약 35%는 두상이 없다. 1천년 전 밀림을 헤치며 대 토목 공사를 벌였던 샤일렌 왕조의 사람들은 사라졌고, 그들의 자취를 찾는 이방인들만 모습을 보인다. 거대한 사원의 원래 주인들은 불가사의와 신비 속으로 사라졌지만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긴 세월을 침묵으로 지켜왔던 인내는 그 보상을 받아 오늘날 보로부두르 사원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쁘람빠난(PRAMBANAN) 사원이다. 쁘람빠난 사원은 정교한 조각과 세련된 균형미를 자랑하는 힌두사원으로 자바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건립 시기는 850년 무렵으로 추정되며, 보로부두르 사원과 더불어 1991년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쁘람빠난 사원은 16세기에 발생한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 200 년이 넘게 방치되다가 복원 사업에 착수하여 일부 18개 신전은 복원에 성공하였지만 나머지는 재정문제로 복원되지 못해 여전히 돌무더기 상태로 남아있다. 이 사원은 한 변이 222 m인 정사각 모양의 단이 중원(中苑)을 이루고 그 위에 사방 110 m인 내원(內苑)의 단이 올려져 있다. 내원에는 8개의 당(堂)이 설치되어 있다. 사원의 중심은 높이 47m의 첨탑이 있는 시바(Shiva) 사당인데, 양 옆에는 높이 23m인 브라마(Brahma) 사당과 비슈누(Vishnu)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시바 사당은 한 변이 34m인 정사각 모양의 2중 기단 위에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로 솟아 있으며, 계단에는 사자· 원숭이· 토끼· 사슴 등의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당의 주실에는 3개의 시바신상이 안치되어 있고, 벽면은 나선· 아라베스크 등의 무늬로 꾸며져 있다. 당의 지붕은 피라미드 형태의 4층으로 되어 있고, 당의 바깥쪽을 둘러싼 회랑 벽면에는 라마야나(Ramayana)의 42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 쁘람빠난 사원의 전설
옛날에 반둥(Bandung)이라고 불 리는 한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적국의 아름다운 라라 종그랑(Lara Jonggrang '날씬한 처녀'라는 뜻) 공주에 반해서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공주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와의 결혼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공주는 그의 마력을 두려워해 그의 청혼을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하룻밤 만에 천 개의 신전을 쌓는다면 결혼하겠노라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반둥은 그의 마력으로 많은 악마들을 불러들여 순식간에 신전들을 쌓아올렸다. 새벽녘에 이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 공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침이 밝아오면 신호를 보낼테니 신전 하나를 무너뜨리라고 했다. 드디어 아침이 밝아 오자 1000개의 신전을 모두 세운 악마들은 일을 멈추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주의 신호에 따라 신전 하나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천 개에서 딱 하나 모자란 999개의 사원이 세워지게 되고, 뒤늦게 공주의 농간에 의해 자신의 꿈이 무너진 것을 안 반둥은 공주를 돌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석상을 일천 번째 신전으로 삼았다.
이곳 사람들은 그 일천 개의 신전이 세워진 곳이 바로 프람바난 사원이며 사원의 중앙에 있는 시바 신전 북쪽 석실의 두르가 상이 바로 라라 종그랑의 석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프람바난 사원을 라라 종그랑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음으로 간 곳은 해발 2,968m의 가루다봉이 있는 머라삐(Mt. Merapi) 화산. 먼저 머라피 화산 박물관의 영상물 상영관에 들러 머라피 화산의 전반에 대해 시청했다.
정상인 푼칵 가루다(Puncak Garuda)로 유명한 머라피 화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중 하나이다. 'Meru'는 '산'을 의미하고, 'Api'는 불을 의미하는 자바어의 합성어인 머라삐라는 이름에서 산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최근 화산폭발은, 1998년 7월 11일 토요일 오전 4시 59분에 불길한 소리와 미동이 화산 폭발을 암시하였다. 폭발은 바로 이어졌고, 검은 연기가 산정상 3,000미터 위까지 올라 하늘을 뒤덮었다. 뜨거운 연기와 화산재, 파편이 수킬로미터까지 분출되었다. 화산재는 화산 서쪽 60km까지 영향을 끼쳤다. 1994년에 폭발한 화산은 66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1930년에는 1,300명의 사망자를 내는 위험한 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2006년 5월 27일 새벽, 강도 6.2의 지진이 일어나, 이로 인한 머라삐 화산의 폭발위험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박물관 안에 화산활동 시 화염으로 녹아내린 자전거가 있어 당시의 처참함을 실감나게 해 준다.
그러나 항상 머라삐 화산이 화염을 분출하는 등 자연재해만을 주지는 않는다. 땅에 비옥함을 주며 자연을 지키면서 우뚝 서 있다.
박물관에서 머라삐 화산의 개략적인 내용을 시청하고 이 화산을 가까이서 조망하기 위해 전망대 주차장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는 지프차에 분승하여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전망대에 올라가보았자 보이지도 않고 시간과 돈만 허비할 것 같아 포기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저녁 식사는 뷔페식으로 했다. 메뉴가 다양해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당 경내에 마디가 촘촘한 희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사진에 담았다. 식사 후 1시간 동안 라마야안 전통공연을 관람했다. 그러나 공연의 줄거리를 알지 못하고 대사도 인도네시아어로 하기 때문에 별 흥미가 없다.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제10일)
호텔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7:17분 브로모(Bromo) 화산을 향해 출발. 오늘은 별다른 일정 없이 브로모 화산 밑의 호텔까지 차를 타고 가는 일정이다. 길도 좁고 이동 시간도 많이 걸려 지루한 하루다.
21:30에야 브로모 화산 밑 마을의 SUKAPURA PERMAI HOTEL 에 도착했다. 무려 14시간 이상이 걸린 것이다. 여행 대장이 이 호텔은 매우 열악하다고 사전에 누차 이야기했는데 미리 각오해서 그런지 생각만큼 열악하지는 않다.
2013년 1월 18일. 금요일 (제11일)
브로모 화산에 등정하기 위해 새벽 2시에 기상했다. 어제 밤 저녁식사를 하지 못하고 잤기 때문에 라면 1개씩을 끓여먹고 호텔에서 3:13에 지프로 일출 전망대를 향해 출발. 지프에서 내려 한참 동안을 굴곡이 심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올라간다. 날이 밝지 않아 어두운 길을 가자니 큰 돌이 길 가운데에 버티고 있기도 하고 말똥이 뒹굴기도 하여 올라가기가 힘들다. 내가 사전에 새벽에 올라가기 때문에 플래쉬를 가지고 가야 하느냐고 가이드에게 질문했을 때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고 해서 캐리어에 두고 안 가져왔는데 후회가 된다.
일출 전망대에 이른 시각에 도착했다. 추위에 떨며 상당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저쪽 산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온다. 드디어 일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얄미운 구름들이 아침놀을 가로막으며 지나가고 있다. 더 시간이 지나자 ‘와~!’ 환호성이 터진다. 밝은 태양이 그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 샤터 누르는 소리가 일제히 터진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여기에서 일출 구경하기란 1년 중 약 60일밖에 가능하지 않은데 운이 좋은 것이다.
몇 년 전에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도 잘 보았는데 오늘도 장엄한 일출을 아주 잘 보았다. 다행이다. 일출 광경을 사진에 담고 브로모 화산으로 가기 위해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다시 지프를 타고 화산재로 질퍽거리는 화산 밑의 평원에서 말로 갈아탔다. 걸어올라갈 수도 있지만 화산재로 푹푹 빠지는 길을 가려면 옷도 버리고 힘이 너무 들어 나중에 산에 올라가기 힘들다는 가이드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왕복 15만 루피를 달라는 것을 10만 루피로 깎고 말을 탔다. 제주도에서 단거리만 말을 타보았을 뿐 지금까지 장거리를 말을 타고 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겁도 좀 났으나 말이 작고 길이 좋아 괜찮다. 말에서 내려 경사도 43도, 283계단의 급경사를 걸어올라가니 드디어 화산 정상이다. 이 화산은 원추형 활화산이다. 2011년 1월에 폭발하여 인도네시아를 긴장시켰으며, 때때로 강력한 충격파를 뿜어 폭발하기도 한단다. 해발 고도는 낮아보이지만 2,000미터가 넘는다.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분화구 주위가 굉장히 넓고 안이 깊은 것에 깜짝 놀랐다. 저멀리 분화구 맨 밑부분에서 많은 양의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역시 유황냄새도 확 풍긴다. 나는 빨간 불꽃과 함께 용암이 무섭게 솟아오를 것을 기대했었으나 불꽃과 용암은 보이지 않는다. 화산 분화구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다른쪽으로 가기 위해 몇 걸음 옮겼더니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것 같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분화구에 난간도 없고 경사가 급하여 1년에 몇 명쯤은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는 것을 포기하고 하산할 수밖에 없다.
계단을 내려가니 아까 우리 부부를 태워주었던 마부가 기다리고 있다. 다 내려와서 승마자세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지프를 이용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식사 후 10시에 수라바야로 출발. SINAR HOTEL 도착. 고급 호텔이다.
오늘은 공식적인 행사가 없어 우리 일행 5명이 택시를 타고 1시간 가량 달려 큰 마트에 가서 두리안, 포도, 바나나, 맥주 등을 사서 호텔 마당에서 나누어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제12일)
오늘은 수라바야에서 발리로 떠나는 날이다. 자카르타에서부터 타고 온 버스를 보내고 비행기로 가야 한다. 작은 승합차 10대에 나눠타고 공항에 가서 10:55에 이륙 후 12:40에 발리 공항에 기착했다.
공항에서 새로운 버스 2대에 나눠탔다. 나는 2호차를 탔는데 ‘얀띠’라는 이름을 가진 현지가이드가 승차하여 자기소개를 한다. 중년의 여자인데 한국에 다녀온 일이 전혀 없는데도 한국말을 제법 잘 한다. 학원에서 한 1년쯤 한국어를 배웠다고 하는데 1년 만에 이 정도의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으려면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국어는 대단히 어려워 많이 가르쳐달란다. 이마에 쌀알 만한 하얀 것 몇 개를 붙였다. 힌두교 신자임을 의미한다.
가이드가 발리에 대하여 설명한다. 인도네시아에는 총 10,700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발리의 면적은 제주도의 3배 정도이며 5,600Km². 한국과는 시차가 1시간. 밤에 비가 많고 일년 내내 덥다. 주민의 90%가 힌두교. 그 외에 이슬람교도와 불교도도 있다. 힌두교 사원 1,000개 이상 존재. 공용 사원 뿐 아니라, 힌두교도 가정에는 모두 가족 사원이 있다. 마을에 최소한 3개의 마을 사원이 있다. 제일 큰 사원은 무사키 사원. 발리말은 자카르타 말과는 달라서 서로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타지역의 인도네시아 사람이 발리를 여행할 때는 통역할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한다. 가는 길에 맹그로브(Mangrove)나무가 밀생한 곳이 보인다. 이 나무는 특이하게 물 속에 뿌리가 잠겨서도 잘 자라고 있다.
13:55에 THE OASIS HOTEL 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그런데 족자의 호텔에서 변기나 싱크대에 음식찌꺼기를 버려서 관이 막혀 수백만원의 수리비를 물릴 기미가 있다고 하여 대장과 가이드 간에 시비가 붙었다. 지금까지 호텔에서 저녁 식사는 지어먹도록 했으나 오늘부터는 엄금하기로 했다. 관이 막힌 것에 대해서는 대장이 해결한다고 한다. 사람 관리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인데 대형 버스 2대와 65명이나 되는 여러 사람 통솔하느라 여행대장은 정말 수고가 많다.
오아시스 호텔은 수영장이 딸려 있고 해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방도 넓고 시설이 좋아 지내기가 안락하다.
미고랭(면볶음)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여자들은 발마싸지를 했다. 30분 하는데 5만 루피아라고 한다.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제13일)
발리에서의 첫 관광날이다. 우붓(UBUD) 예술단지를 방문하기 위해 8:25 출발.
버스 속에서 가이드가 발리에 대해 소개한다. 설명을 하면서 가이드 얀띠가 보여주는 발리 지도를 보니 물고기처럼 생겼다. 발리는 집집마다 힌두 사원이 있는데 이 사원 부근에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사원이 살림집보다 더 높고 화려하다. 또 개인 집이 야자나무보다 높으면 안 된다. 호텔도 4층까지만 지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사투리만 300개 이상이다. 학생들은 힌두어와 인도네시아어를 같이 공부해야 한다. 발리는 수공예품이 유명하며 가격은 족자보다 싸다. 과일 두리안은 구린내가 나 현지인들은 최고의 과일로 친다고 하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다. 발리 두리안은 크기가 작고, 큰 것은 다른 지역에서 온 두리안이다. 지금이 두리안 수확철이다. 두리안을 많이 먹으면 목이 아프다. 그러나 껍질째 먹으면 안 아프다. 껍질을 차로 끊여먹어도 목이 안 아프다.
발리에는 시내버스가 없어 자가용이 없으면 오토바이나 택시로 다녀야 한다.
대개 여자는 20살 정도, 남자는 25살 정도면 결혼한다. 그러나 점점 결혼 연령이 늘어나는 추세다. 자녀는 보통 2~4명을 둔다. 학교는 무상교육이 아니다. 그래서 살기가 힘들다. 결혼은 타 종교를 가진 사람과도 할 수 있지만 결혼하면 남자의 종교에 따른다. 그러나 수마트라 지역은 여자에 따른다고 한다. 힌두교는 4계급이 있어 같은 계급끼리만 결혼했는데 지금은 계급이 달라도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가장 상위계층인 승려와 평민 여자가 결혼하면 여자는 신분이 상승되지만, 만약에 평민 남자와 귀족 여자가 결혼하게 되면 여자는 신분이 평민으로 강등된다고 한다.
누구나 한 가지 종교는 가지고 있어야 하며 종교 없는 사람은 없다. 명절에는 가족사원에 가서 하루 종일 기도한다. 힌두교는 축제가 많다. 축제에 참가할 때는 음식, 옷 등을 기부해야 하고 가정에서 기도할 때도 꽃 등 제물을 준비해야 하니 항상 바쁘다고 한다. 힌두교인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3번 기도해야 한다. 요리하기 전에도 기도한다. 사원에 들어갈 때는 전통 의상을 입어야 하며, 월경 중인 사람은 사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힌두교 지도자를 러시라고 하는데 러시도 결혼할 수 있다.
평균 수명은 80세 정도이고 가이드 얀띠의 할머니는 125세까지 살다가 돌아가셨단다. 우리 일행이 “와! 장수하셨다!”고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 장수하니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 빨리 돌아가시게 해 달라고 기도했단다. 발리 사람들은 약을 별로 많이 먹지 않아서 장수한다고 한다. 가이드의 나이를 물으니 80세라고 한다. 그런데 도저히 80세라고 생각되지 않아 확인하니 힌두교의 달력은 우리가 쓰는 보통 달력과 달라서 1년에 두 살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이드는 우리나라 나이로는 40세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이드의 할머니도 불과 62세나 63세에 돌아가셨다는 말이 된다. 그걸 장수하셨다고 했으니 기가막힐 일이다. 발리 달력으로는 한 달이 35일이란다. 내가 발리의 평균수명은 80인데 얀띠가 지금 80이니 그렇다면 얀띠와 같은 나이 또래 중에는 죽는 사람이 많으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단다. 평균 수명이 우리나라에 비해 대단히 짧은 것이다.
발리는 명절이 많고 특히 새해 3월중에 있는‘엽비’라는 명절에는 집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되고 일을 하거나 목욕을 하거나 물을 사용할 수도 없단다. 그래서 그 날은 거리에 차도 없고 온 세상이 조용하단다. 그러나 그 전날(우리 식으로는 섣달 그믐날)은 굿을 하느라 온통 시끄럽다고 한다.
일기가 변화무쌍하여 일기예보는 1일 1회, 아침에만 한다. 산골과 도시 일기가 전혀 다르며, 산골은 추운 곳도 있다. 벼는 3모작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3모작을 하면 생산량이 줄어든다. 임금이 싸서 그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가정부의 한 달 월급은 100달러 정도라고 하니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다.
발리 사람들은 대체로 술을 잘 안 마시고 과일이나 커피를 좋아한다. 발리에는 커피나무가 많은데 특히 루악커피가 유명하며, 이 커피는 사향노루가 좋은 커피 열매만 먹고 싸는 똥에서 채취하는 것이라 독특한 향이 있어 귀하기도 하고 값이 대단히 비싸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동안 우리 차는 우붓(Ubud) 지역을 지나고 있다. 덴파사(Denpasar)에서 북쪽으로 20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우붓은 발리 예술의 중심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우붓에는 수많은 성과, 사원,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있다.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발리 전통 무용, 발리의 음악, 발리 회화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며 근처로 나가면 다양한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장들이 있고 고적지도 여기저기 있다. 고대의 석기 주거지와 최신 미술 센터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 마을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유혹해 왔다.
아름다운 계곡, 빼곡이 들어선 숲, 초록의 계단식 논, 촉촉한 풍토 등 사람의 영혼을 흔드는 자연의 매력을 한껏 간직한 곳이다. 해변에서 떨어진 산악지대에 위치한 전원적인 풍경이 아름다우며 거리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리의 전통악기 가뮬란의 선율이 흐르고 아티스트들의 작업실과 크고 작은 갤러리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고아가자 동굴사원을 방문했다. 이 사원에서는 반바지 차림은 통제를 하여 입구에서 제공하는 빨간 천을 치마처럼 걸치고 들어갔다. 경건한 차림만 허용되는 것이다. 바위로 된 동굴 안에 힌두교 신상과 코끼리 상을 모셔두었다. 속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고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서는 사진도 찍을 수 없다.
다음 코스는 킨타마니 화산지대다. 이 화산은 전망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분화구도 보이지 않아 현실감이 떨어진다. 화산활동 때문인지 산에 나무도 없어 황량하게 보인다. 다만 산 오른쪽에 넓은 호수가 있어 황량감을 조금 줄여준다. 전망대에는 각종 상인들이 물건을 사달라며 극성스럽게 달려드는데 만약에 이들이 파는 물건을 한 번 만져보기라도 하면 꼭 사야된다며 살 의사가 없으면 아예 만지지도 말라는 가이드의 사전 당부가 있었기에 물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만져보고도 사지 않으면 버스 안에까지 따라와서 극성을 부린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전통시장에 들러 시장 구경을 하고 선물용으로 다용도 천 5개와 집사람 옷을 구입했다.
호텔로 돌아와서 한 슈퍼에 들러 과자와 과일을 구입하면서 보니 캐리어를 할인하여 팔고 있기에 정가 2,250,000루피아 짜리를 900,000루피아에 구입했다.
이것저것 선물을 사다보니 루피아 환전해 놓은 것이 다 떨어져 100달러를 환전하기 위해 한 환전소에 들렀다. 이 환전소는 환율을 후히 쳐 준다. 다른 곳은 1달러에 9,600루피아나 9,700루피아를 주는데 이곳만은 9,975루피아를 준다고 가게 앞에 씌어 있다. 그런데 어제 김규태 친구가 100달러를 환전하면서 주인 여자가 5만 루피아짜리 돈을 18장 책상 위에 죽 늘어놓으면서 맞는지 확인하라고 하여 확인하여 받고 나머지 돈도 정확히 받았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니 손에 든 것이 70만 루피아밖에 안 되었다. 틀린다고 다시 여주인에게 건네 주니 책상 속에 넣었다가 다시 주는 걸 받아보니 정확히 맞는 것이다. 그 과정을 우리 일행 2명도 옆에서 확인했었다. 김규태 친구는 꼭 귀신에게 홀린 느낌이라며 무슨 속임수를 쓰지 않나 의심을 했었다.
나도 환전할 때 속지 않으려고 집사람과 같이 가서 100달러를 먼저 주지 않고 100달러 환전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더니 역시 5만 루피아권으로 책상 위에 원, 투, 쓰리… 하고 영어로 세면서 18장, 즉 90만 루피아를 정확히 늘어놓았다. 나도 하나, 둘, 셋… 90만 달러라는 것을 확인하여 손에 들고 나머지 돈을 달라고 했더니 5만루피아짜리로 2장을 주는 것이었다. 합쳐서 100만 루피아를 받은 것이다. 이제 초과액 2500루피아만 내가 주인에게 주면 계산은 맞는다. 나는 잔돈이 없어서 주머니에서 5,000루피아짜리 한 장을 주고 2,500루피아를 거슬러받았다. 그렇게 되니 997,500루피아를 정확히 받은 것이다. 집사람도 옆에서 주인과 내가 돈을 주고 확인하고 하는 과정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그제서야 100달러짜리 한 장을 내 주었다. 그런데 호텔에 돌아와 집사람이 김규태 친구에게 가게에서 빌린 2만 루피아를 갚으려고 돈을 세다가 깜짝놀랐다. 30만 루피아가 모자라는 것이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나도 확인하고 집사람도 곁에서 분명히 확인했는데 30만 루피아나 모자라다니!
나 혼자 가면 아까 분명히 맞게 주고 확인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할까 봐 두 남자 동료들과 나, 집사람 등 4명이 환전소로 가서 항의했더니 두말도 하지 않고 30만 루피아를 내 준다. 속인 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속이지 않았다면 순순히 내 줄 리 만무한 것이다. 환전소를 나오면서 사람 속이지 말라고 눈을 부라려주고 나왔다. 그 후 다시 호텔에 돌아와 그 환전하던 과정을 다시 되짚어 생각하며 어떤 트릭을 썼을까를 고심해 보아도 도저히 모르겠다. 친구들도 모르겠단다.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제14일)
오늘은 일정상 시간이 넉넉하여 8:55에 호텔을 출발했다. 먼저 방문한 곳은 울루와뚜(ULUWATU) 절벽사원, 일명 원숭이 사원이다. 성스러운 곳이라 하여 긴바지나 긴치마를 착용하여야 하며 반바지를 입었을 경우에는 싸롱이라는 천을 치마처럼 허리에 두르고 입장하여야 한다.
울루와뚜 절벽사원은 과거 힌두성자의 명상장소로 깎아지른 듯한 해발 75m의 절벽위에 세워져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난간 밖으로 펼쳐진 바다가 짙푸른 색깔이어서 마음마저 시원스럽다. 사원 저쪽으로 절벽이 있고 절벽 아래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이 매우 신선하고 아름답다. 10세기경 세워진 이 사원의 석회암으로 된 긴 돌계단을 올라가면 악령을 상징하는 가네슈 상이 있는 돌문에 도착한다. 조금더 발걸음을 옮겨 깊숙한 곳에 있는 갈라진 문 앞에 서면 사원의 사당 너머로 청명한 하늘과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꼭대기에 서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웅장한 하늘아래 펼쳐진 수평선과 인도양의 거친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툭 트이는 느낌이다.
사원 건물 밖으로 나와 반대편으로 돌아서니 또 다른 바다가 보인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악!”하는 여자 목소리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원숭이가 모자를 벗겨가기 위해 여자의 등을 타고 있다가 뛰어내린 것이다. 다행히 그 여자는 원숭이가 모자를 벗겨간다는 정보를 사전에 대장에게 듣고 모자와 얼굴을 천으로 싸매고 있었기에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천으로 싸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빼앗겼을 것이다.
조금 더 앞으로 진행하니 남자들이 웅성거린다. 여행객의 썬글라스를 원숭이가 벗겨갔다는 것이다. 다행히 얼굴을 할퀴지는 않고 썬글라스만 탈취해 갔다. 인도네시아 여자가 바나나로 유인하여 원숭이에게서 다시 썬글라스를 빼앗아온다고 숲 속으로 들어갔지만 빼앗아오지 못했는데 저쪽에서 다른 인도네시아 남자가 썬글라스를 찾아가지고 온다. 썬글라스를 빼앗긴 사람은 고맙다고 팁을 준다.
그런데 이들이 원숭이를 훈련시켜 관광객의 모자나 썬글라스를 빼앗아오도록 시킨다는 말이 있다. 나중에 찾아주고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팁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원숭이는 곳곳에 많이 있고 사람이 다가가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입구쪽에 이르렀을 때는 새끼 원숭이가 어미원숭이 옆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모습이 매우 귀엽다.
다음은 버란딴 사원을 방문했다. 이 사원은 부지가 매우 넓고 조경이 잘 되어 있다. 사원 밖으로는 물이 맑고 푸른 커다란 호수가 자리잡고 있어 풍광을 한껏 고조시켜준다. 호수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돌탑을 만든 듯한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고 잘 가꿔진 녹색의 잔디는 비단결 같다. 한 정자 옆에 서 있는 천사의 나팔(angel trumpet) 꽃나무는 엄청나게 크다. 지름이 30cm는 되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풀과 같이 생긴 이 꽃나무가 이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다. 꽃도 엄청나게 많이 달렸다.
다음 코스는 따나롯 사원이다. 따나롯 사원은 땅(Tanah)과 물(Laut)의 의미가 있는 사원으로 바다위의 땅을 의미한다. 그 이름만큼이나 사원은 가운데 홀로 떠 있는 듯 외로운 느낌인데 썰물 때는 걸어서 접근 할 수 있으나 물이 들어오면서 사원은 아름다운 석양과 어우러져 고혹적인 모습으로 육지와 격리되어 버린다. 바다의 신이 모셔져 있는 이 사원은 2개의 초가지붕으로 된 정자가 고작인데 7층 사당은 상향 위디 와사를, 3층 사당은 니란따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니란따는 16세기경 동부 자바섬에서 건너온 힌두 승려로 니란따를 질투한 이 지역의 지도자를 상대로 마법을 부려 거대한 바위를 바다로 던져 버리고 뱀으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는데, 이곳에 세워진 사원이 따나롯 사원이다. 석양과 함께 바닷물이 차오르면 바위 속에서 잠들었던 신의 화신인 흰뱀들이 나타나 사원을 지킨다고 하는 전설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듯하다.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제15일)
오늘은 오전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아침 6시에 바닷가로 나가 산책 및 사진촬영을 했다. 우리가 투숙하는 호텔에서 바다로 나가 한 5분쯤 걸어가니 맑고 깨끗한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 주위로 정원수와 꽃들과 호텔 건물이 이 잘 조화되어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도 경치가 아름다워 사진을 열러 장 찍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1시간쯤 쉬었다가 집사람과 바다로 나가 수영을 했다. 바닷가에 쓰레기도 없고 수심도 낮아 위험하지 않으며, 바닷물이 비교적 깨끗하고 물이 별로 차지 않아서 수영하기 좋다.
수영복을 입은 채로 다시 우리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이 수영장의 물이 오히려 바다보다 깊다. 친구가 2층에서 우리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카메라에 담아 준다.
오후 1시에 꾸따(Kuta) 해변을 향해 출발했다. 꾸따는 발리의 남부를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의 입구 같은 곳이다. 1960년대 히피와 서퍼들에 의해 인기를 끌면서 이 해변은 빠르게 팽창해 왔고 넓고 흰 모래 해변과 서핑으로 이 지역은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래서 관광 시즌에 꾸따는 늘 관광객들과 자동차들로 혼잡하다. 하지만 이런 혼잡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음식, 멋진 쇼핑, 활기 넘치는 밤거리를 지닌 꾸따는 여전히 발리 최고의 해변이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파도가 너무 센데다 급경사여서 바다에 들어가기도 힘들고 특히나 모래사장에 비닐, 나무뿌리와 등걸 등이 널려 있어서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의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곳에 2시간 30분의 시간을 주니 너무도 지루하다. 집사람은 기다리기 지루하여 마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다 왔다.
시간을 30분 앞당겨 짐바란(JIMBARAN) 비치를 향해 출발. 석양이 아름다운 짐바란 비치에서는 매콤한 소스와 함께 갓 구워낸 바닷가재 요리와 고소한 왕새우, 게, 조개, 생선요리 등 모든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짐바란 해변은 일반 모래가 아닌 산호초가루로 이루어져 있어 아름다움과 낭만을 더해준다. 남태평양의 석양이 흐르는 바다에서 즐기는 식사는 신혼여행객들에겐 낭만을, 가족들에겐 즐거운 저녁식사를, 단체회식에는 즐거운 모임을 선사한다.
우리 일행은 랍스타, 새우, 생선튀김과 밥, 나물 등이 복합된 음식을 1인당 20,000루피아씩 주기로 하고 주문했다. 그러나 사람이 밀려 아무리 기다려도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기다리기 지루하여 나는 음식점을 나와 길거리를 걷기도 하고 다른 음식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와 봐도 음식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 가이드가 지금 해가 바다로 지려고 하니 나가서 일몰 광경을 보라고 한다. 밖으로 나가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고 태양이 지기 직전이다. 지난 1월 18일에는 브로모 화산을 보러가는 길에 장엄한 일출을 보았는데 오늘은 바다로 해가 떨어지는 낙조를 보게 된 것이다. 정말 운이 좋다.
1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음식이 나온다. 맛있다. 음식을 먹고 있는 도중에 옆 무대에서 악단들이 인도네시아의 음악을 연주하더니 한 조그마한 아가씨가 무대 앞에 나와 예쁜 동작으로 사뿐사뿐 춤을 추고 있다. 부드럽게 흔드는 팔, 굴곡을 만들며 좌우 전후로 흔드는 허리, 사뿐사뿐 움직이는 발, 귀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춤이 끝나니 악대들이 우리 유행가를 연주하며 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춤과 음악을 들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살 맛 난다.
2013년 1월 23일. 수요일 (제16일)
오늘은 자유시간이 주어진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발리 쿠루즈 여객선 관광(롱봉안 아일랜드 포함)을 신청했지만 우리 일행은 태국이나 베트남, 스웨덴과 핀란드 등에서 이와 비슷한 투어를 했기 때문에 승합차를 대절하여 안 가본 곳 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 들으니 이 크루즈 여행 내용은 아주 좋았으며 발리의 진면목은 여기에 있다고 하여 우리도 참여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 6명에 하남에서 혼자 오신 여자분 1분이 같이 투어를 하자고 하여 7명이 동참했다. 오전 8시에 호텔에 미리 와 있던 승합차에 승차하였다. 운전기사는 ‘마데이’란 이름의 머리가 덥수룩한 중년의 남자다. 한국말을 약간 할 수 있는 것이 큰 다행이다. 어제 이 기사를 소개해 준 가이드 얀띠에게 대절료 50만 루피를 지급했고, 팁은 나중에 주기로 하고 우선 발리 민속 댄스인 ‘바롱댄스’를 보기 위해 출발했다. 댄스 공연장에 도착하여 보니 입장료가 10만 루피아다. 싼 편은 아니다.
공연 내용은 사자, 원숭이, 악마 등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익살스러운 동작으로 춤도 추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러나 현지 언어로 대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유감이다. 때로는 관중과 익살스러운 대화도 하고 관중을 끌어들이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진행한다.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재치있는 대화가 진행되면 관중석에서 폭소가 나오기도 하고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오기도 한다. 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때로는 익살스러운 동작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우리 일행도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였다. 관중석은 만원이어서 앉을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늦게 온 관중은 무대의 양쪽에 앉기도 한다. 발리가 아닌 타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
다음은 우붓 지역에서 은세공 전시장을 잠깐 구경하고 POLO 할인점에 들렀다. 이 할인점은 진품만 판다고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는 운전기사 마데이가 소개한다. 상당히 규모가 큰 매장이다. 우리 일행은 가방과 옷 등 몇 가지 제품을 구입했다.
다음 발리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덴파사(Denpasar)에 이르렀다. 덴파사는 40만의 인구를 지닌 발리의 수도이다. '시장의 북쪽' 이란 의미의 덴파사는 발리의 행정, 상업, 교육의 중심지로서 인구 증가와 늘어나는 자동차들, 계속되는 성장 때문에 점점 도시화되어 가고 있다. 이 결과로 주변의 많은 옛 마을들이 사라지고 도시는 더욱 혼잡스러워지고 있지만 아직 이 도시는 중국식 상점들 사이사이에 남아 있는 옛 가옥들과 나무가 늘어선 아름다운 거리, 정원들과 같은 발리의 본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덴파사에서 첫 방문지는 전쟁박물관이다. 주차장에서 내려 박물관 입구에서 박물관 건물을 보는 순간 나도모르게 “야~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건물이 높으면서도 우아한 것이다. 박물관, 더구나 전쟁박물관답지 않게 외관이 아름답다. 아름답고 정교한 주위 건물 중앙에 전망대가 우뚝 솟아 있다. 층계 아래에는 아름답게 잘 다듬어져 있는 대추야자를 비롯한 정원수와 꽃들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계단을 걸어올라가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주위로 4각형의 연못이 만들어져 있고 그 연못에는 커다란 형형색색의 잉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숨을 헐떡거리며 전망대로 올라가니 또 한번 “와우!”소리가 나온다. 사면팔방으로 덴파사 시내가 눈 아래 전개되는 것이다. 덴파사 시내는 지붕이 대개 빨간 지붕들이다. 빨간 지붕에 진녹색 나무들. 높은 건물도 없고 낮은 지붕들이 수많은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며 원형의 풍경화 한 폭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한참동안이나 전망대에서 주위를 조망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다가 다시 나선형 계단을 내려와 1층 전시실에 들어서니 현물은 별로 없고 사진들만 지그재그로 전시되어 있다. 외관의 아름다움에 비해 전시물은 미미한 편이다. 밖으로 나오니 여자들 서너 명이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한국사람처럼 보였는지 한국말로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전주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들은 속초에서 왔다고 한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니 낯모르는 사람이지만 반갑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데이의 권유에 따라 돼지바베큐 음식점에 들렀다. 1인분에 5만 루피아다. 인도네시아 음식 치고 싼 것은 아니지만 바베큐란 말이 무색하게 바베큐의 살은 꼬치에 꿰어져 있는 작은 살점 몇 점뿐이고 돼지껍데기 한 점, 껍데기 튀김 한 점에 밥과 채소 하나가 전부다. 마데이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니 자기는 나중에 따로 먹는다고 하여 10만 루피아를 팁으로 주면서 우리가 관광하고 있는 사이에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먹으라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빵과 같은 간단한 음식을 차 옆에서 먹는다. 점심 값도 아끼는 모양이다.
점심 후 전통시장에 들렀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이라서 규모는 크지만 깨끗하지는 않다. 입구에서 뜨거운 태양볕 아래 돼지고기나 물고기를 냉장도 안 된 상태로 팔고 있다. 저런 걸 사 먹고 배탈이 나지 않을지 염려가 된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갖가지 과일들을 많이 팔고 있다. 지금까지 전통시장이나 슈퍼를 여러 곳 들렀지만 과일들을 이렇게 많이 전시해 놓고 팔고 있는 곳은 처음이다. 여기에서 람부딴 3kg에 3만 루피아, 바나나 2kg에 2만 루피아를 주고 샀다. 1kg에 우리돈으로 불과 천원이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과일을 먹어본 바로 바나나와 람부딴이 우리 입맛에 맞다.
부뿌딴공원에 들렀다. 경내가 그리 넓지는 않으나 그늘이 있고 노인들 몇몇이 앉아서 쉬고 있다. 여기에도 잡상인들이 있어 물건을 사 달라고 한다. 관광객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이런 상인들이 있다. 적당한 그늘에 앉아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을 먹었다. 금방 사 온 과일이라 신선하고 맛이 아주 좋다. 마데이도 같이 먹자고 하니 이번에는 사양 않고 맛있게 먹는다.
공원 안에 박물관이 있다. 1인당 10,000루피씩 입장료를 주고 들어가니 건물 밖에는 각종 대포가 전시되어 있고, 건물 내부에는 전통 의상, 검, 왕관, 그릇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일반 박물관과 비슷하다.
다시 차를 타고 SANUR BEACH에 갔다.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푸른 바다가 전개되어 있다. 바닷물 속에는 들어가지 않고 맥주와 음료수 등을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다 돌아오는 길에 GALLERY 면세점에 들렀다. 전시품을 돌아보니 가격이 비싸고 별로 살만한 것이 없어서 구경만 하고 나왔다.
커피 가공공장에 들렀다. 젊은 인도네시아인이 한국말로 설명을 해 준다. 인도네시아의 큰 가게에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점원들이 있다. 그만큼 한국 관광객이 많다는 증거다. 이곳에서는 양질의 커피열매를 가공하여 직접 커피를 제조한다고 한다. 커피 열매는 남자커피와 여자 커피가 있는데 남자퍼피는 전체의 5%밖에 안 되고, 여자 커피가 95%를 차지하며 남자 커피는 1봉에 8만 루피, 여자 커피는 4만 루피라고 한다. 남자 커피와 여자 커피를 시음해 보라고 각각 1잔씩 주는데 남자 커피가 순하고 더 맛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루악커피는 구하기 힘들고 가격이 너무 비싸단다.
오는 도중 집중 호우인 스콜을 만났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석식 후 독서도 하고 TV도 시청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발리에서는 KBS, YTN, 아리랑 TV 등 세 채널을 시청할 수 있다.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제17일)
아침 일찍 일어나 5시에 산책을 나갔다. 호텔 방문을 열고 나오면 담 너머 공터에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데 그 나무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새소리가 청아하게 울린다. 어떤 모습의 새인지 보이지는 않고 소리만 들리는데 아주 경쾌하고 듣기 좋은 소리다. 하루의 시작을 즐겁게 해 주는 소리다. 시간이 좀 지나 6시쯤 되면 ‘구국 구~~ ’하고 우는, 비둘기보다 조금 작은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새는 비둘기처럼 사람이 다가가도 잘 도망가지 않는다.
바다로 나가지 않고 길거리를 걷는데 어느 건물 담 옆에 예쁜 꽃이 피어 있어서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에 담았다. 벌써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와 매장 열 준비를 하고 있는 현지인들이 눈에 띈다.
다시 바닷가로 가서 아침놀을 본다. 하얀 구름 사이로 빨간 노을이 물드는 것이 퍽 아름답다.
9:10에 호텔을 출발하여 발리 민속마을 관광을 하기로 했으나 가이드 측에서 추가로 돈을 요구하여 포기하고 갤러리아 면세점과 백화점에 들렀다. 우리 일행은 어제 면세점은 미리 가 보았기에 백화점으로 가 여러 가지 상품을 구경한 후 집사람이 우리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선물할 T 셔츠 6개를 구입했다. 여러 개 사니 50% 할인해 준다. 오후 3시까지 백화점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우리 팀 전체는 우리 일행이 어제 들렀던 전쟁기념관에 또 갔다. 사진을 몇 방 더 찍고 발리공항에 이른 시각에 도착하여 몇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가루다항공 GA870편으로 00:50에 이륙했다.
2013년 1월 25일. 금요일 (제18일)
자다 깨다 하는 동안 비행기는 밤새껏 창공을 날고 있다. 새벽이 되니 바다에서 일출이 시작된다. 수평선 둥그스름한 모양이 빨갛게 물들고 있다. 인천공항에 8:40쯤 도착하여 입국 수속 후 대기중인 버스에 올라 그리운 고향을 향해 출발. 집에 돌아오니 오후 1시가 넘었다.
18일 간의 인도네시아 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인도네시아의 개략적인 모습을 정리해 본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제2차 세계대전 전 네덜란드령(領) 동(東)인도였으며, 1945년 8월 17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1949년 네덜란드와의 협의로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연합이 성립되었으나 1956년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정식명칭은 인도네시아공화국(Republic of Indonesia)이다.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로서, 말레이제도에서 필리핀을 제외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도네시아는 서쪽 끝의 수마트라섬· 자바섬에서 북동쪽의 할마헤라섬까지 약 5,100km에 걸치는 호상(弧狀)의 순다열도와 그 내부에 위치한 보르네오섬(칼리만탄, 술라웨시섬(셀라베스) 등의 큰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섬들이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5°에서 남위 10° 사이에 위치하므로 완전한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동남아시아 계절풍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중 높은 기온을 나타내 거의 전지역이 평균기온 25∼27℃를 기록하며 적도변의 중앙지대에서는 월별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강수량은 몬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심부에 해당되는 적도 부근의 연중 강우지역을 제외하면 대체로 건기(乾期)와 우기(雨期)의 구별이 뚜렷하다.
인도네시아의 국체(國體)는 공화국, 정체(政體)는 대통령 중심제이며 공용어는 인도네시아어다. 회화체 언어로는 어휘, 문법 규칙 등이 서로 다른 583개 이상의 방언이 인도네시아어와 함께 병존하며 각 지역의 일상생활에 사용되고 있다.
해외 나들이를 여러 번 했지만 이번 여행처럼 직접 밥을 해서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호텔이 낡아 샤워도 제대로 못해 본 경우도 있었고 시간 조정이 잘 안 되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환전하면서 현지인의 농간에 속을 뻔하기도 했지만 자카르타와 족자에서의 1호차 현지 가이드, 발리에서의 2호차 현지가이드처럼 친절하고 순수한 사람과도 접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65명이나 되는 인원을 통솔하여 어려움을 겪어가면서도 귀중한 체험을 하게 해 주신 여행 대장 전주동중학교 김재원 교장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전국에서 모여 여행 일행이 된 65명 회원들도 숙박을 같이하며 같이 여행하게 되어서 반갑다.
4개월 전에 12일간 서유럽을 다녀왔고, 이번에 18일간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으며, 4월 20일 경에는 일본을 방문하도록 계획이 되어 있어 금년에는 힘들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이 여행 팀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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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여행기도 올려 주시고 감사합니다.
어쩜 이렇게 세세히 잘쓰셨는지요.. 다시금 인도네시아 여행에 푹파묻혀 고생스러웠던 시간들 재밌던 시간들 .. 제대로 느끼고 갑니다^^*
제일로 기억에 남는것은 2호차 우리횟님들의 모습입니다 ㅎㅎㅎ
좋은분들과 의 추억은 행복한 시간을 보낼것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스크랩 해도 되지요? ㅎㅎ 고맙습니다
상세한 여행기를 읽으며 한번 더 인도네시아를 다녀 왔습니다. 쉬엄 쉬엄 여행지에서의 즐거움을 조금씩 꺼집어 내어가며 음미하려 합니다. 추억을 공유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발리에는 한국말 잘하는 현지인들이 의외로 많더군여...하루 45~50불이면 하루종일 가이드+기사 가능해요.^^
예비 손주 보실 분들은 발리 재래시장가면 한국보다 질좋은 애기옷.용품들을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여~
기행기를 꼼꼼하게 쓰셨네여...잘 읽었습니다.
너무 세밀한 여행기를 읽으니 다시 한번 더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은글...잘보고요---공짜로 내가 여행한 기분입니다.........감사~~~~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알찬 기행문을 쓰실 수 있었다니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길이길이 간직할게요. 거듭 감사합니다.
쉬지않고 잘 읽었습니다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
불현듯 가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한 편의 장편 그림처럼 그려지는 기행문, 감사드립니다.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
어쩜 이렇게 꼼꼼하게 일기처럼 적었나요. 18일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름 스처가네요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으~~하~~숨차게읽었네요~~전아직사진작업도 못끝냈는데 대단하십니다. 글이란 참 좋습니다.이렇게 두번 여행하게 하셨습니다 결혼기념일도 있으셨군요 알았으면 박수라도 쳤을텐데~~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항상 부지런히 발품을 파시더니 이렇게 훌륭하신 작품을 만드시느라고 그러셨군요! 과연 이 교장선생님다우신 주옥같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더더욱 행복하십시오!
가물 가물 하던 인니에서 생활이 정리가 되네요..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참석 인원도 많고 차량 이동도 두차로 나누어 타고 다녀서 회원간에 친밀감은 떨어졌지만 함께한 여행 즐거웠습니다
긴일정이라 후기글 쓸 엄두도 못내었는데 이리도 후기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인니를 여행하는 기분 입니다
긴 일정을 꼼꼼하게 정리하신 자료들을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들이 못가 본 곳도 많이 가시고
맛있는 외식과 쇼핑도 자주하시고
더 알찬 체험들을 하셨네요
2호차를 타셔서 누구실까?
엄청 궁금하답니다
우리는 발리 재래시장을 못가본것이 아쉽네요
좋은 인도네시아여행기 잘 읽었어요.
짧은 시간에 전 일정을 모두 그려준 노고에 박수를 보내요.
전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1월 31일 집으로 돌아왔지요.
다시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네요. 수고 많이 하셨어요
18일간의 긴 여정을 이렇게 글로 써주셔서 추억으로 오햇동안 남을 것입니다. 정말 좋으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