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는 모든 보육아동에게 소득에 관계없이 보육료를 지원하는 무상보육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공하고 있는 무상보육의 의미는 무엇인지 토론해봅시다.
무상보육이라는 정책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주 단순하게 국가(정부)가 국민들의 자녀 보육을 담당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나라에서 초등 및 중등교육은 의무교육이다. 여기서 중등교육이라 함은 고등학교 교과과정 이수까지를 포함한다. 대학교는 개인의 선택사항이지만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모두가 마쳐야 한다. 여기에도 찬반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이 정책에 동의한다. 기본적인 교육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산에 관련된 비용도 그렇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는 가정의 소득이 낮다면 출산에 관련된 일체 비용도 부담해준다. 한국도 국민건강보험이 있기에 사실은 정부에서 많은 비용을 담당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의 문제는 다르다. 육아는 기본적으로 가정의 울타리라는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영역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모가 책임을 지는 것이 육아의 기본이기 때문에, 사설 탁아소나 어린이 집에 맡기는 것도 부모의 결정에 따른다. 그 기본적인 가정은 부모가 자녀의 양육을 담당해야 하며 합리적이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데 있다.
따라서 0~2세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은 종전에 가정이 담당하는 육아를 정부가 대체하겠다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에 있다. OECD 국가 중 최고의 저출산율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의 출산율을 높이겠다든지, 아니면 서민들의 육아 담당 비용을 보조해주겠다든지, 아니면 맞벌이 부부의 짐을 줄여주겠다든지 등의 명분을 이유로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책은 특별한 목적도 원칙도 없는 단순히 현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
2016년 한 일간지에서 2012년 시작된 무상보육 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진단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무상보육 정책으로 부모들에게 지원금이 지급되는 보편적 교육 복지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정치적 이해득실의 산물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국공립 유치원 등 양질의 교육 시설과 교사 확보가 뒤따르지 못했다. 학부모들의 보육 수요는 급증했지만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공급은 제자리 걸음을 했다. 수 많은 어린이집들이 개원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며 어린이집의 기본적인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원아수가 줄어든 어린이집 원장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생존을 위해 학부모들에게 무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을 것이다. 어린이집 운영을 위해 교사들의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그 노동력은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무리한 학부모들의 요구도 전화 한 통이면 당연한 것처럼 처리해야 했을 것이다. 이후 학부모들 중에는 이런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들의 모습을 당연한 것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인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그 결과 어린이집이 크게 늘었다. 교육적 목적보다 보육에, 더 나쁘게는 학원과 같은 시장논리에 무게중심을 둔 어린이집의 수가 늘면서 정해진 수의 영유아를 놓고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어느새 교육의 논리는 사라지고 시장 논리만 남게 되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다.
바로 이런 보육환경을 경험한 학부모들이 현재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시장 논리보다 공공성을, 보육과 서비스보다 교육을 중심가치로 삼고 있는 공교육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소수의 학부모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현재 교권추락과 학부모 갑질은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린이 집에서 보이고 있는 학부모들의 문제행동과 일맥상통한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시험공부를 위해 학원, 과외, 학습지와 같은 사교육 기관을 찾는다. 학교보다 학원에 아이들의 공부를 의존한다. 학교와 교사란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고 존재인데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다른 곳에 빼앗기고 만 것이다.
교사들은 정말 성심성의껏 학생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교사는 학생들이 사교육 기관에서 배우는 것처럼 성적만을 목표로 가르치지 않는다. 성적과 함께 학생들의 인성, 생활습관 등에도 무게 중심을 균형 있게 두고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성적 지상의 학습성과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성에 찰 수 없다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더구나 교사들은 학원강사들처럼 오직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없다. 무의미한 행정업무에 학교폭력과 상담 등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나 많다. 솔직히 많은 교사들이 자신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중고등학교는 내신성적과 대학입시와 같이 여전히 교사들이 나름대로의 가시적 권위와 역할을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학생들 역시 학부모들의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초등학교는 성적이나 석차를 산출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생활습관지도나 인성교육 등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문제는 이런 교육적 측면이 학부모들에게는 잘 와 닿지 않아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회적 현상이라도 반드시 복합적인 원인의 산물이기 마련이다. 무상보육 정책으로 인한 영유아 보육 환경이 시장 논리에 빠지며 학부모 갑질이라는 부작용이 생겼을 수 있다. 그 부작용이 오늘날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부모 갑질과 교권 추락의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어쩌면 아동학대방지법 등의 다른 원인에 비해서는 멀리 있는, 간접적인 원인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교권 추락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원인에 대한 진단과 반성은 반드시 어떤 의미를 가지리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