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장,
한 달이 지나도록 며느리에게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
매일 어깨가 축 처진 아들의 뒷모습이 가슴이 아리다.
이제 아이들은 할머니의 치마꼬리를 잡고는 놓지를 않는다.
또 다시 할머니에게 버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어린 영애는 잠시도 할머니를 떨어지려 하지를 않는다.
화장실을 갈 때도 어린 것을 데리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어린 계집아이는 겁에 질려 있는 듯해서 김 여인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아픔을 느껴야 한다.
김 여인은 집안일에 손을 놓을 사이가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앉아 볼 사이도 없다.
막내아들이 취직을 해서 출근을 하기 때문에 막내 종원이의 하얀 와이셔츠도 매일 빨아서 새롭게 다려야하고 양복도 매일 손질을 해 줘야만 한다.
두 아들의 옷 손질과 남편의 수발과 세 아이들의 뒷 치다꺼리와 많은 식구들의 빨래도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일들이다.
누구 하나 집안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
“선영아! 이제 그만 좀 일어나서 엄마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
열한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는 선영이를 깨운다.
“엄마! 나 새벽에 잠이 들었어요. 조금만 더 자고...........“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니? 집에 있는 날도 손가락 하나 까딱도 하지 않고 밥이 목에 넘어가니?“
“엄마는 새삼스럽게 그런 것을 가지고 그래?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셨더니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여자가 뭐 하러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돌아다녀? 네 오빠들도 하지 않는 짓을 여자가 겁도 없이 술을 마시고 다니고 있으니 도대체 우리 집안이 어디로 가려고 그러니?“
“알았어요. 이제 그만 잔소리 좀 하라구요.“
선영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고는 휭 하니 밖으로 나가 버린다.
“어휴! 시키는 내가 잘못이지........“
“계십니까?”
밖에서 사람을 찾는 소리가 들린다.
김 여인은 현관문을 열고 내다본다.
아이들의 외할머니다.
“사부인!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어서 들어 오십시요.“
김 여인은 차와 과일을 가지고 나온다.
“그동안 편안하셨는지요?”
“편안 할 리가 있습니까? 어린 것들이 어미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는지 한시라도 이렇게 떨어지려 하지를 않고 있어서 힘들게 버티고 있답니다.“
영애는 외할머니를 알아보지를 못한다.
그나마 영훈이 마저 외할머니를 외면하고 있다.
“어떻게 애미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어디 있는지 알고는 있습니다. 한번 제게 찾아 왔더군요.“
“그렇습니까? 뭐라고 하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생각을 하실지 모르지만 이 댁에 남의 식구가 있습니까?”
“네! 있지요.“
“사실 다른 집보다 시누님들이 많은 집이 아닙니까? 그것도 참고 사는데 남의 식구까지 시누이 노릇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제 자식의 말을 듣고는 저도 사실 그만 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럼 그만 이혼을 하자고 오신 것입니까?“
“그거야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선 제 자식의 심중을 알려드리는 것이 순서일 것만 같아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네! 말씀을 하시지요.“
“시누이들은 그렇다 치고 시어머님도 까탈스럽고 맞추어 살기가 힘이 든다고 하네요.”
김 여인은 숨이 멎을 것만 같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어려운 시집이라면 살 수가 없지요.“
“시어머님께서는 잠시도 몸을 쉬시지도 않으시고 일을 하신다고 하면서 그렇게 살다가는 숨이 막힐 것만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
“제가 뵙기에도 참으로 부지런 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이 많은 가족을 거느리시고도 이렇게 집안을 유리알처럼 반들반들 해 놓으신 것이.........“
“지금 제 집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사실 처음에는 사위를 불러다가 호되게 야단을 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손아래 동생에게 나가라는 말을 듣게 했는지 너무나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것을 삭히느라고 이제야 찾아보게 된 것입니다.“
“............................”
“사부인! 사실 똑바로 말해서 이 댁에서 살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시집을 갔다가 온 시누이하며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시누이 시동생 그리고 병이 드신 시아버지 까탈스러우신 시어머니 그리고 게다가 남의 식구까지 거느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힘든 상황이 아닙니까?“
“그래서요? 어떻게 해 드리면 좋으실지 말씀을 하세요.“
“따로 세간을 내 주시면 어떨까 싶네요.”
“따로 나가서 살게 해 준다면 다시 들어오겠다고 하던가요?”
“제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따로 내보내서 살지 않았던가요? 제가 데리고 있고 싶어서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들이 모두 털어먹고 갈 곳이 없으니 들어온 것이 아닙니까?“
“그거야 사위의 잘못이지 제 자식의 잘못이 아니지요.”
“잘못은 부부 공동의 잘못입니다. 남편이 내 달란다고 전세 돈을 빼서 내 주면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하는 것이 여자의 도리가 아닌지요?“
“제 자식은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아이가 되어서 남편을 믿었을 뿐이겠지요.”
“따로 나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요? 한번도 제가 잡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 번듯한 전세라도 얻어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
화가 나는 대로 하자면 퍼부어 주고 싶다.
그러나 김 여인은 눈을 감고 자신의 감정을 추스른다.
어린 것들을 생각해서라도 막말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어찌되었던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아니신가?
“얘들 아범과 상의를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리고 사부인이 돌아갔다.
김 여인은 한동안 숨이 막힐 것만 같아서 가슴에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외할머니가 되어서 아이들의 과자 한 봉지 사들고 오지도 않고 무엇이 그리도 당당한지 기가 막혀온다.
김 여인은 몸이 으슬으슬 추워온다.
그렇다고 누워있을 형편도 아니다.
영애를 업고 약방엘 가서 감기 몸살 약을 사다 먹고는 저녁준비를 한다.
정신이 몽롱해져온다.
“내가 왜 이러지? 약에 취했나?“
아무래도 견딜 수가 없었다.
김 여인은 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온 전신에 한기가 들고 덜덜 떨려온다.
남편은 이제 사람이 아파도 알아보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사람이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식물인간이 다 되어간다.
“할머니! 어디 아프세요?“
영빈이는 할머니가 자리를 깔고 눕자 근심어린 얼굴로 들여다보면서 묻는다.
그러나 대답할 기력도 정신도 없다.
“할머니!”
영빈이는 자꾸 할머니를 불러본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런 대꾸도 없다.
영빈이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러다 영빈이는 전화의 수화기를 잡는다.
선미의 가게에 전화를 하는 영빈이다.
“여보세요!”
선미는 마침 직접 전화를 받았다.
“고모!” “그래! 영빈이가 웬일이니?“
“고모! 할머니가 이상해!“
“뭐? 무슨 소리야? 영빈아! 너 지금 울고 있니?“
“응! 할머니가 내가 아무리 불러도 일어나지를 않아!“
“뭐야? 알았어! 울지 말고 기다려!“
선미는 가게 안을 둘러본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선영이가 보이지를 않는다.
“선영이 어디 갔니?”
“방금 여기 계셨는데............”
“가서 선영이를 찾아 봐 줄래?”
종업원 하나가 밖으로 나간다.
심심하면 옆의 카페로 가곤 하는 선영이었다.
선미는 마음이 초조하다.
“대체 어디를 간 거야?”
선영이가 종업원의 뒤를 따라서 들어온다.
“너는 어디를 그렇게 싸다니고 있어?”
“언니! 왜 그래?“
“어서 집에 가자! 엄마가 쓰러지신 모양이다.“
“뭐? 엄마가? 내가 나올 때까지도 멀쩡했었는데..........“
선영이는 차를 운전하면서 마음이 캥긴다.
생전 일을 하라고 하시는 일이 없으셨던 엄마였다.
모처럼 도와달라고 하신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나왔던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좀 달릴 수 없니?”
“지금 가고 있어! 언니! 마음을 편하게 가져!“
“넌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 할 일이 없으면 집에서 엄마라도 도와 드리지 뭐 하러 나다니고 있어?“
“.....................”
“만일 엄마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난 평생 너를 보지도 않을 거다.”
“.....................”
선미는 요즘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피곤해 보이고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쓰러지시리라고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신의 불효가 죄스러웠다.
“언니! 엄마는 괜찮으실 거야! 우리 엄마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데........“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해도 지금 우리 집 사정으로는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식구가 대체 몇이냐? 열 식구다. 그 많은 식구 모두 엄마 한사람이 감당을 하셔야만 했다.“
“......................”
“넌 하는 일도 없으면서 집에서 엄마를 도와드리면 안 되는 거니?”
“내가 뭐 일을 할 줄을 아나?”
“누군 엄마 뱃속에서 일하는 것을 배워가지고 나오니? 많은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조카들이라도 네가 돌봐주고 하면 엄마가 얼마나 힘이 덜어지시겠니?“
집 앞에 당도를 하자 선미는 뛰어 들어간다.마침 불러다 댔던 것처럼 선경이가 와 있었다.
집 안은 아이들이 우는 소리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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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자식들(제12회)"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희망차고 향기로운 즐겁고 행복한 주말되세요....
즐감하고 갑니다.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