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라는 번역처럼 “하늘나라” 조금 더 자세하게는 “마음에 하나님을 모신 하늘天들의 나라國”라는 표현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저와 여러분이 하늘나라입니다. 곧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시온,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신 저와 여러분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궁극적인 실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시온, 하나님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오늘 그림자로 다가와 있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믿음의 사람들은 장래에 들어갈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유대의 결혼 예식에는 반드시 거쳐야할 몇 가지 절차가 있었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서 친구들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신부 집에 도착하면 종교 의식과 함께 여러 가지 예식을 치렀습니다. 예식을 마칠 때쯤이면 해가 지고 어두워졌습니다. 신랑은 동행한 친구들과 함께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집에 도착하게 되면 며칠 동안씩 이어지는 혼인 잔치를 벌였습니다. 신랑의 집이 상당히 먼 경우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신부의 집에서 모든 예식과 함께 혼인 잔치까지 치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처녀παρθένος”는 신부가 아니었습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된 신부의 들러리Bridesmaid였습니다. 이들은 저녁 무렵이 되면 등불을 들고 나갔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집이 서로 얼마나 떨어졌느냐에 따라 달랐습니다. 멀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신랑과 함께 오고 있는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가까울 경우에는, 신랑의 집에서 신부를 데리고 돌아오는 신랑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도착하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혼인 잔치가 마련된 장소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또 “열 곧 10”은 완전수입니다.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이었습니다. 종교 집회를 열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할 최소 인원이었습니다. 유대의 결혼과 장례 행렬의 들러리로 필요한 최소 인원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열 처녀”는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大望하는 “기다리는 공동체”입니다. 역사적인 공동체입니다. 목하 교회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순결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날을 소망합니다.
이들은 또 오늘도 절대로 쉽지 않은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할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언제나 개인적으로 맺어야합니다. 개별적으로 맺어야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맺어줄 수는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인격적으로 맺어야합니다. 개인적이고 개별적으로 맺어야합니다. 문제는 신랑 집이 멀 경우였습니다. 언제쯤 도착할지 때와 시를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에서도 신랑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심판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한 종말의 때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단정적입니다. 비록 세상 끝 날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상당히 많이 지연된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환경과 상황과 조건에 직면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너무나 허무하게 잃게 된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자신이 힘겹게 살아낸 일생 동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신앙생활을 게으르거나 나태하게 하지 말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만큼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그렇지만 천하와 천하를 빈틈없이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 보다 귀한,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명이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그래서 그런 인생을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지옥 불구덩이로부터 건져내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조금도 아까지 않고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뜨겁고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아무튼 신랑의 도착은 예상보다 상당히 지체되었습니다. 기다리던 처녀들은 밀려오는 졸음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처녀들 가운데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쉬지 않고 반복된 졸음과 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과 함께 교회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질 엄청난 환난과 시험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졸음과 잠을 참지 못하는 처녀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에 속한 누구나 다 졸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잘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다 절대로 바라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당하기 힘든 환난과 시험을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책망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비판받아 마땅한 일도 아닙니다. 판단이나 정죄 받아 마땅한 일은 더 더욱 아닙니다.
이 시점까지도,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거룩한 교회 안에 구분 없이 함께 존재합니다.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이미 확정된 사실입니다. 잠결에,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신랑과 그 일행이 드디어 마을 어귀에 도착했으니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지극히 돌발적이었습니다. 오랜 인내와 대망의 기간이 끝났습니다. 환난과 시험의 때가 지나갔습니다. 영원한 심판과 상벌賞罰이 주어지는 때가 도래했습니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처녀들은 즉시 각자 자신의 등불을 확인했습니다.
그때까지도 타고 있던 등불 심지의 까맣게 탄 부분을 잘라냈습니다. 심지를 다시 돋웠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기름을 등잔에 채워 넣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섯 명의 등불은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기름이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라가고 있었던 심지는 희뿌옇고 매캐한 연기만 하늘로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내면 상태, 영적 생명력의 고갈枯渴, 은혜의 결여缺如,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새 힘을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성령과의 단교斷交, 비극적인 운명 등을 암시합니다. 등불을 밝히지 못하면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절박切迫했습니다. 다른 다섯 명의 처녀들을 향해서 자신들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다고 절규했습니다. 제발 기름을 조금만 꾸어달라고 부르짖듯 외쳤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말一抹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심판의 때, 예수 그리스도 앞에 반드시 내놓아야할 은혜와 믿음은 절대로 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음의 기준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등불이 희뿌연 연기만 하늘로 뿜어내며 꺼져가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결핍缺乏을 너무나 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니 그동안 수없이 많이 반복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영혼과 생명 문제를 운명적인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돌아보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습니다. 단호했습니다. 냉정했습니다. 분명했습니다. 이는 결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인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종말론적이고 존재론적인 평가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게 꾸어주게 되면, 꾸어준 사람은 물론 꾸어 쓴 사람도 모두 다 부족하여서 누구도 신랑을 맞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숙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원까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각자가 가진 신앙 여부에 따라서 받습니다. “오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값없이 은혜로)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값없이 은혜로)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값없이 은혜로)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라는 증거에 따르면, 기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합니다.
값없이 선물로 또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받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다시 감추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 또 하늘나라는 아름다운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과 같다. 그가 아주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진주를 샀다.”(마13:43-46)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마치 값진 보화를 손에 넣기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투자하고 모든 희생을 기꺼이 감수甘受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이마저도 저와 여러분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또 무한정으로 부어주시는 은혜 안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파는 자들” 곧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보내신 무수히 많이 선지자와 사도들이 마치 하나의 입을 가진 것처럼 외쳐왔고 오늘도 외쳐지고 있는 복음입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뒤늦게 서야 기름을 사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비같이 쏟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늦은 밤중인 현재까지 문을 연 가게가 혹시라도 있는지 이리저리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랑이 도착한 결정적인 순간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리석음을 극명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각, 기름을 충분히 예비한 다섯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름을 예비한 다섯 처녀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자 곧 문이 닫혔습니다. “닫힌지라εκλεισθη”는 “폐쇄하다”를 뜻하는 동사κλειω의 과거수동태 3인칭 단수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자물쇠로 잠그고 완전히 폐쇄시켜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최종적입니다. 당연히 누구도 다시 열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드리는 회개, 쉬지 않고 드리는 기도, 아낌없이 드리는 희생과 헌신과 봉사와 수고도 의미 없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드리는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끝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열어달라고 제아무리 소리쳐 부르짖어 봐도 소용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허점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신앙고백을 미칠 듯이 반복해서 외쳐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최종적으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 한다”(마25:12)라는 두렵고 떨리는 선고宣告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 처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고 애쓴 적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값없이 베풀어진 은혜 곧 특별한 호의를 받아들이려는 마음도 갖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엄하고 철저한 심판을 스스로 자초했습니다.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지옥 불구덩이 가운데 던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멀쩡하게 살아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었던 아버지를 마치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처럼 취급하고 또 생떼를 부려서 억지로 받아낸 엄청난 유산을 조금도 남김없이 완전히 다 탕진해 버리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은 어떤 책망도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내팽개쳐버렸던 모든 지위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완벽하게 회복시켜주셨던 사랑의 하나님이 이번 경우에는 너무나 매정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기름을 미리 충분할 정도로 준비하지 못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요? 기름은 주인이 준비해야 주어야하는 것 아닌가요? 비록 늦게라도 기름을 준비했으면 정성을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잔칫집 주인이 너무 매정한 것 아닙니까?”라고 외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따지며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단히 큰 오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서 신부의 들러리Bridesmaid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늦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라는 가르침에 따르면, 그날과 그 때는 누구도 모릅니다. 하나님만 아는 비밀입니다. 날과 때만 아닙니다.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게 숨겨진 비밀입니다. 긴박하게 임합니다. 일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고 나면 준비할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가 될지,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지옥 불구덩이가 될지 결판납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결경적인 순간 외면당합니다. 아니 결정적인 순간 스스로 외면합니다. 스스로 외면을 당합니다.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당연히 종말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은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제든지 환영하며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언제나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안일했습니다. 신랑이 늦어질 경우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혼인 잔치에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기름을 예비하셨습니까? 지금 당장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습니까?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며 보내는 사순절 절기 가운데 세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을 버리셨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모진 핍박과 조롱과 멸시와 비웃음을 당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완벽하게 죽으셨습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는 사람들 앞에서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삼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완벽하게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당신을 자신의 유일한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자신의 유일한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은혜 안에서 값없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부어주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지혜는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잠13:9)라고 외쳤습니다. 의인의 빛은 영원히 빛나지만, 악인의 등불은 반드시 꺼지게 되어있다고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막13:35-37)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의 재림이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자지 말라고,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미련한 처녀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주변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죄송한 표현이지만, 저와 여러분이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2021년 개봉한 영화Don’t look up에 따르면, 천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과 담당교수는 태양계를 돌고 있던 거대한 혜성 하나가 지구와 직접 충돌할 수도 있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두렵고 떨리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구 멸망을 예감합니다. 다급하게 경고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조금 더 기다리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자고 할 뿐입니다.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습니다. 혜성 충돌까지 육 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을 때, 온갖 미디어들은 온갖 뉴스와 정보들을 스물네 시간 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쏟아 붓듯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버렸습니다. 다른 어떤 뉴스보다 엄중한 상황은 정작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합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아내고 있는 시대 특히 시대의 파수꾼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었지만 사명을 잃어버린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유일한 주와 그리스도로 모실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항상 깨어 있을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말씀과 기도와 예배와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하는 사순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제든지 환영하는 사순절,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희생을 통해서 완성하신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사순절 절기를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