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76-90 (새번역) 제8장
영혼의 성화 작업 속에서 그에게 맡겨진 몫의 일과, 의무와 그 의무를 완수하는 충실성에 대한 사랑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해야 한다. 그 밖의 일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신다
p.85 우리는 많은 영혼들이 근심하며 이렇게 묻는 것을 목격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거룩함, 완덕, 고행, 영성지도와 같은 것을 줄 수 있을까요?”
그들이 말하는 대로 놔두십시오.
그들이 이 경이로운 작품에 나오는 용어들과 이 작품의 특성들, 이 작품의 본성과 작품의 구성 부분들을 서적들 속에서 찾도록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랑으로 하느님과의 합일 속에 평안히 머물고, 여러분의 책무인 단단하고 곧은 오솔길을 무조건 걸어가십시오.
천사들이 이 밤의 곁에 서서 그들의 손으로 방벽(防壁)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더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당신의 영감(靈感)을 통해 이를 알려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명령은 만물에 초자연적인 신적 질서를 부여합니다.
그분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 그분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 그분의 위력이 펼쳐지는 모든 사물들, 이 모두가 거룩하고 완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권능에는 전혀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만물을 신성시하면서 조금도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영혼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고 믿는 그 영감이 그를 그의 처지에 수반되는 의무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 경우, 다른 무엇보다 하느님의 명령을 선호해야 합니다. 두려워하거나, 제외시키거나, 구별 지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혼에게 가장 소중하고 유익한 순간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그가 자기 하느님의 원의를 완수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인은 그들 각자가 전념하도록 명령받은 이 동일한 임무들로 인해 거룩합니다.
거룩함에 대한 평가는 절대로 일들 그 자체, 그것들의 본성들, 그 고유의 특성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밝히고 정화시키고 고행케 함으로써 영혼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영혼 안에 거룩함을 낳는 이 명령의 준수에 비추어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다고 일컫는 것의 모든 미덕은 이런 하느님의 명령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아무것도 거부하지 말며, 그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취하고, 그분이 없다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p.86 만일 하느님께서 서적들, 현인들의 조언들, 염경 기도, 내적인 애착과 같은 것들을 명하신다면,
이 모든 것은 영혼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할 것입니다.
정적주의는 이 모든 수단들과 모든 감성적인 것을 전혀 따르고 싶어 하지 않지만 헛수고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어떤 영혼들의 경우 이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고, 또 이들의 처지와 끌림 역시 꽤나 뚜렷하게 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모든 고유한 활동들이 배제된 내맡김의 방법들을 마음속에 그려보고자 애쓰지만 이 또한 헛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력으로 어떠한 것들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명령이라면, 내맡김은 바로 그렇게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 결정을 내리는 것도 헛수고입니다.
왜냐하면 최고의 완전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이 명령은 그들의 사회적 신분상의 의무들과 이 의무들 중 가장 완전한 의무, 즉 자신의 어떤 고유한 활동이 들어가지 않은 섭리에 따른 의무에 국한됩니다.
다른 이들에게 이 명령은, 자신의 고유한 활동이 들어가지 않은 섭리에 따른 의무 이외에, 몇 가지 다른 개별적인 의무들과 사회적 신분상의 의무들을 넘어선 여러 행위들을 나타냅니다.
이때 이런 것들에 대한 끌림과 영감은 이것이 하느님의 뜻에서 온 명령이라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 영혼들에게 있어 최고의 완전함은 영감을 통해 받은 모든 것들을, 그 영감이 요구하는 신중성을 가지고, 자신의 신분상의 의무들과 순수한 섭리에 따른 일들에 덧붙이는 것입니다.
이 영혼들이 다소 완전하다고,
더 정확히 말해서 이 영혼들이 전념하고 있는 여러 다양한 일들로 인해서 이들이 다소 완전하다고 상상하려 드는 것은
완덕을 하느님 명령에 대한 순종에 두지 않고 사물에 두는 발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좋으실 대로 당신의 성인들을 양성하십니다.
이들 모두를 이렇게 양성하는 것은 그분의 명령이며, 모두가 이 명령에 순종합니다.
이러한 순종은 진정한 내맡김이며, 이것은 가장 완전한 행위입니다.
신분상의 의무들과 섭리에 따른 일은 모든 성인들에게 공통된 것으로,
이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표시나 표징을 통해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어둠 속에 숨어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너무나 불행해서 세상의 암초를 피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이유로 성인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더욱더 하느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면 할수록, 이들은 또한 더욱더 자신들을 성화시킵니다.
p.87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특별하고 비범한 행위들을 통해서,
당신의 말씀이기에 하나의 의무가 되는 당신의 명령에 대한 전혀 의심할 바 없는 끌림과 영감을 통해서 이들의 덕성들이 그 빛을 발하도록 해주십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이들이 내맡김의 길을 통한 덕의 추구를 덜 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이들이 하느님께로부터 특별한 활동을 명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분상 의무들과 순수한 섭리에서 비롯된 일들에 만족해버린다면, 이들은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을 것이고,
그분의 뜻은 이들의 전 순간들에 대한 주인이 되지 못할 것이며, 이들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계획의 범위에 따라 자신들을 펼쳐나가고 이끌림을 통해 걸어갈 것을 명받은 그 길로써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감은 이들에게 의무가 되어야 하고, 이들은 이 의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외법(外法)에 의해 자신의 모든 의무를 알아채고,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이 의무에 바짝 밀착되어 있을 것을 명하시기 때문에 이 의무에 갇혀 있어야 하는 그런 영혼들이 있듯이,
다른 영혼들은, 외적 의무를 넘어서서, 성령이 그들 가슴 속에 새겨놓은 이 내법(內法)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가장 거룩한 사람들입니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순전히 헛된 호기심입니다.
각인(各人)은 자기 앞에 나있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명령과 거기에서 발견되는 가장 완전한 것에 순명하는데 있습니다. 나머지 지식들은 우리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명령받은 일들의 양이나 질에서 거룩함을 추구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애(自己愛)가 우리를 움직이는 원칙이라면,
또는 만약 자기애가 추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때 우리가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명령이 결여된 풍요 가운데 늘 빈곤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뭔가 정의를 내려 보자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 p.87 거룩함은 하느님의 원의(願意)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부응하며,
하느님의 명령과 뜻을 표현하는 것들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우리가 그분의 명령과 뜻을 더욱더 사랑하면 할수록 거룩함 또한 더욱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점을 예수님과 마리아 그리고 요셉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개별적인 삶 속에 물질적인 것보다 더 큰 위대함과 더 나은 존재양식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다지도 거룩한 이 사람들이 사물의 거룩함을 찾았다고 적지 않고, 오로지 사물 안에서 거룩함을 찾았다고 적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가장 완전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하고 특이한 길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가장 완전한 것은 각자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조건 하에서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p.88 첫 번째 의무는 필수적인 것으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구속력이 따릅니다.
두 번째 의무는 내맡김의 의무로서 순전한 수동성을 견지해야 합니다.
세 번째 의무는 영혼의 단순성과, 영혼의 부드럽고 그윽한 성의(誠意)와, 온갖 것을 행하도록 하는 은총의 숨결에 대한 영혼의 유동성을 무척 많이 요구합니다. .
왜냐하면 우리들은 단지 우리가 받은 인상에만 몸을 맡기고 그 인상이 명하는 바에 단순하고 자유롭게 순종만 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거기에 어떤 실수도 없도록, 영혼들에게 현명한 안내자들을 보내 주시는데,
이 안내자들은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영감을 사용하기 위해 지녀할 태도가 자유분방함인지 신중함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모든 법칙, 모든 형식, 정해진 모든 방식을 본질적으로 넘어서는 것이 바로 이 세 번째 의무입니다.
특수하고 비범한 계획을 세우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의무이고, 그들의 염경기도와 그들의 내적 언어, 그들의 능력에 대한 느낌과 그들 삶의 광채를 조절해 주는 것도 바로 이 의무입니다.
이 엄격함과 이 열의, 그들 자신의 이웃에 대한 이 넉넉한 인심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내법(內法)에 속하기 때문에, 거기에 관심을 기울여서도 안 되고, 자기 자신에게 그것을 과해서도 안 되며, 그것을 갈망해서도 안 되고, 우리로 하여금 이런 종류의 일반적이지 않은 덕행들을 시도케 하는 이 은총들을 받지 못했다고 한탄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은총의 상황들은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서만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만일 이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환영에 빠질 수도 있음을 우려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둠 속에 감추어두고 싶어 하는 영혼들이 있다는 점과,
하느님께서는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그 영혼들 자신의 눈에도 그들 스스로가 비천하고 보잘것없게 비쳐지기를 바란다는 점,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 영혼들에게 내리는 명령들은 분명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그와 정반대로 불분명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영혼들이 가르침을 잘 받았다면, 이들은 이 길을 따라 가는 과오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길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을 충실히 가는 데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비천함 속에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이들이 하느님의 뜻에 대한 사랑과 순명 안에서 이를 얼마나 열심히 따르는가 하는 데서만 이들이 걸어가는 길에 차이가 있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들이 외적인 노동에 있어 그들 자신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영혼들을 능가한다면,
이들의 성덕이 그런 영혼들보다 더 빼어나다는 것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p.89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각 영혼이 자신의 신분상 의무와 순수한 섭리의 명령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에게 이것을 분명하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영혼이 받은 생생한 인상과 끌림에 관해 말하자면, 영혼은 스스로 이에 대한 결단을 내려서도 안 되고, 이 내적 느낌을 증가시켜서도 안 됩니다.
이런 자연스런 노력은 은총의 주입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것이고 이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은총의 주입은 평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랑의 목소리가 신부를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하고, 신부는 단지 성령의 숨결이 자신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만큼만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신부가 자력(自力)으로 잠에서 깨어난다면,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인들을 탄복할 우러러볼 만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그 숱한 경이로운 일들에 대해 영혼이 어떤 끌림이나 은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인들에게 이것을 원하셨지만 내겐 이것을 원하지 않으셔.”
저는 착한 영혼들이 이런 처신(處身)을 배워 준수한다면 참으로 많은 수고를 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점을 세상 사람들과 섭리에 따르는 영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하는 바입니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매 순간 실행해야 하는 일로써 자신들의 손안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일상적인 의무들과 그들의 신분에 따른 활동들입니다,
그리고 만일 섭리에 따르는 영혼들이 그들 자신이 완전히 무시하고 거룩함에 전혀 쓸모가 없고 거룩함과는 무관하다고까지 그들이 간주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사실 이 영혼들은 거룩함에 대해 그들 자신을 아연실색케 하는 생각들을 만들어 내고,
이 생각들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룩함은 눈부시고 경이로운 것이라고 하는 상상에 그들을 가둬버리기 버리기 때문에 결국 그들 자신에게 해를 끼칩니다,)
그리고 만일 이들 모두가 그들의 사회적 신분상의 처지로 인해 매 순간 짊어지게 되는 모든 십자가의 섭리 안에 거룩함이 존재하며, 특별한 신분상의 처지가 최고의 완덕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들의 모든 일거리들과 여타 다른 것들을 신성한 황금으로 변화시켜주는 화금석(化金石)은 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그들은, 성인이 되기 위해, 그들이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일 할 필요가 없으며, 그들이 받고 있는 고통보다 더 고통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고도의 거룩함을 쟁취하는데 그들이 허비해 버리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 *
지도사제 12.11.21. 04:14
거룩한 내맡김의 삶은 <수동 = 굳은 결심 봉헌>을 통한 <능동 = 이끌림>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수동)에 대한 충실한 이끌림(능동)처럼 탁월한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이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 곧 화살기도이며 화살기도를 통한 하느님에 대한 집중과 몰입만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지도사제 14.02.16. 05:49
무엇보다 하내영들은, 하느님께 주위를 기울이며(느낌, 영감), 하느님께 충실해야 (끊임없는 화살기도, 집중몰입, 죽도록 뜨거운 사랑) 합니다.
지도사제 13.02.08. 03:24
<하느님께 집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느낌과 영감>을 받게 됩니다.
쩌~엉말입니다, 쩡말!
지도사제 11.08.18. 10:16
내맡긴 영혼은 '느낌'을 소중히 하셔야 합니다. 느낌을 소중히 따라가노라면 어느덧 저 끝에는 '영감'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지도사제 15.12.05. 14:27
- 하내영은 자신의 모든 삶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내맡김의 체험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전합니다.
하내영들은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하느님께 집중몰입 함으로 영혼의 깊은 곳에서 늘 하느님께로부터 靈感을 받고 받은 영감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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