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밧#진실#베리시밀리튜드
진실을 이기는, 진실 같음
- 베리시밀리튜드(verisimilitude) 와 사이비(似而非)
한국어로는 여실성 혹은 핍진성으로 어색하게 번역되는 단어가 있다. 심리학에서 베리시밀리튜드라 불리는 이 단어는 '아주 그럴듯하다.', ‘진실을 닮은 그 무엇’이라는 뜻이다.
“그래 그 말에도 일리가 있네,” 이른바 “일리의 해석학”이다. 여실성(如實性)’이란 표현으로 대표되는 이 단어는 사실 그 연원이 깊다.
진실 같지만, 진실이 아닌 것. 그러나 대중에게는 진짜 진실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중요한 웅변 기술로 다룬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말로 에이코스(eikos)라고 불린 이 기술을 연마하면, 배심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살인죄도 모면할 수 있었다. 군중이란 원래 숨어있는 진실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진실 같음’에 더 끌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대중이 믿지 않는 진실보다 대중이 믿는 ‘진실 같음’이 더 설득적이다.”
고대 그리스 시절이야 과학이며 계몽과는 거리가 먼 시대이고, 고문해 받아낸 자백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는 무지한 시대였으니, 진실이 세 치 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고 치자. 그러나 눈부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세기를 거치고 첨단 과학과 사상으로 무장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진실을 향한 사투가 계속되는 것은 실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학적 증거가 나오면 그걸 반박하는 또 다른 과학적 증거가 등장해 헷갈리게 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황당한 괴담이 나란히 존재하며,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골라 섭취해 기존 의견을 강화시킨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로 분출되는 의견과 감정의 홍수가 종종 사실과 진실을 휩쓸기도 한다.
의사소통이란 사람 및 조직이 상호작용하며 지식 및 정보를 말과 행위로써 교환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21세기 정보사회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두 공간을 함께 공유할 때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의사소통 수단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다. 그중에서도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 오늘날 화두 중의 하나이다.
이들 인터넷 네트워킹 도구들은 이용자의 생각과 느낌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개인화한 미디어’로 새로운 대안 매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 엄청난 규모의 네트워크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정치 사회적 지원 세력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리고 특정인과 조직을 향한 인신공격과 무책임한 조롱. 매도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부작용 또한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들 모두에게 SNS는 ‘양날의 칼’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정보사회 인터넷 중심 의사소통 체계에서 과거 '향원(鄕原)'이라 불리던 존재를 생각해 보게 된다. 향원이란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사회정의의 실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인 "사이비 지식인"을 뜻한다. 즉 향원(鄕原)이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 안에서 그럴싸하게 행동하여 나름대로 평판을 얻고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위험한 인물을 지칭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향원은 덕(德)을 해치는 자"라고 단언한다.
맹자는 공자의 향원 개념을 확대하여 향원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밝혀낸다. "향원은 비판하려 해도 딱 꼬집어 거론할 것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정작 공격지점을 찾기가 어렵다. 향원은 유행을 빨리 올라타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겉으로는 진실해 보이고 청렴한 듯이 행동하기 때문에 대중의 무리는 모두 그를 환호하고 (그러다 보니)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라는 것이다.
맹자는 향원을 가리켜 "비슷한 듯하지만, 실은 진짜가 아닌 것(似而非, 사이비) 을 증오한다"라고 했다. 향원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가까이 아주 낯익은 얼굴로 친숙하게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개념 없이 타인의 인격을 훼손하고 모독하며 떼거리 나르시시즘에 빠져,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 광증 상태를 드러내고 있는 시대에 우리 사회는 SNS와 향원의 부작용을 깊이 성찰하고 대응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주변에 가장 ‘진실 같음’의 영역 중 하나는 불행히도 언론이 되고 말았다. 특히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통해 보여준 언론의 모습은 ‘진실 같음’의 영역을 넘어선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의 온상이 되었다. 보도의 윤리적 한계의 논란을 넘어 허위와 조작의 사례를 돌아보자.
2000년 AP통신이 촬영해 판매한 한 사진이 큰 충격을 안겼다. 피투성이인 채로 웅크린 한 청년 뒤로 이스라엘 경찰이 고함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에는 ‘성전산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An Israeli policeman and a Palestinian on the Temple Mount)이라는 캡션이 달렸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전 세계 언론 약 1만 5,000곳에서 AP통신이 제공한 사진과 캡션을 그대로 사용해 보도했고, 이 사진은 아랍항쟁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게 이 청년이 투비아 그로스먼이라는 미국계 이스라엘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은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끌려가 칼에 찔리고 심한 구타를 당한 누비아를 이스라엘 경찰이 보호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성전산이 아니었다.
이번 이스라엘 전쟁에서는 하마스와 아랍권 언론의 공모 의혹도 불거졌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당시 아랍권 기자들이 찍은 사진을 두고 하마스 공격에 대한 사전 인지, 하마스 동행 취재 허용 등 하마스와의 공모설이 제기된 것이다. 이들은 CNN과 뉴욕타임스, AP 통신 등 주요 외신 프리랜서로 모두 가자지구 출신이었다. 최근에는 알자지라 방송 기자가 하마스 부사령관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극단의 상대주의로 ‘단 하나의 진실은 없다’라고 한다. 또한 온 세상이 ‘진실’과 ‘진실 같음’의 뒤섞인 대혼돈 속에서 진짜와 가짜의 분별이 희미해진다. 이제 정치도 언론도 ‘진실 같음’의 영역에 속하였다.
옳든 그름이 대중의 믿음에 따라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어차피 민주주의는 ‘설득’의 정치이고, ‘설득’과 ‘선동’이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라, 그런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지만, 다만 숨어있는 진실은 차치하더라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국민이 인지하는 현명함을 발휘하는 것이 너무도 절실하다.
<월간샤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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