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正法)을 행(行)하는 공덕(功德)이 강성(强盛)하므로 미래(未來)의 대고(大苦)를 초래(招來)하여 소고(少苦)를 만남으로써 넘기느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3.07 조회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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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과거(過去)에 정법(正法)을 행(行)하는 자(者)에게 원질(怨嫉)을 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도리어 신수(信受)하므로 과거(過去)에 타인(他人)을 장해(障害)한 죄(罪)로 미래(未來)에 대지옥(大地獄)에 떨어져야 할 것을 금생(今生)에 정법(正法)을 행(行)하는 공덕(功德)이 강성(强盛)하므로 미래(未來)의 대고(大苦)를 초래(招來)하여 소고(少苦)를 만남으로써 넘기느니라. 이 경문(經文)에 과거(過去)의 비방(誹謗)에 의(依)하여 여러가지 과보(果報)를 받는 가운데 혹(或)은 빈가(貧家)에 태어나고 혹(或)은 사견(邪見)의 집에 태어나며, 혹(或)은 왕난(王難)을 만난다 등(等) 운운(云云). 이 중(中)에 사견(邪見)의 집이라 함은 비방정법(誹謗正法)의 집이며, 왕난(王難) 등(等)이라 함은 출생(出生)하여 악왕(惡王)을 만나느니라. 이 두 가지의 대난(大難)은 각자(各者)가 자신(自身)의 몸으로써 느꼈으리라. 과거(過去)의 방법(謗法)의 죄(罪)를 멸(滅)하려고 사견(邪見)의 부모(父母)에게 가책(呵責)을 당(當)하는 것이며, 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미워하는 국주(國主)를 만났으니 경문(經文)에 명명(明明)하며 경문(經文)에 혁혁(赫赫)하니라. 자신(自身)이 과거(過去)에 방법자(謗法者)였다는 것을 의심(疑心)하지 말지어다. 이것을 의심(疑心)하여 현세(現世)의 경고(輕苦)를 견디기 어려워서 자부(慈父)의 책망(責望)에 따라 의외(意外)에도 법화경(法華經)을 버리는 일이 있다면 자신(自身)이 지옥(地獄)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비모(悲母)도 자부(慈父)도 대아비지옥(大阿鼻地獄)에 떨어져 함께 슬퍼하게 된다는 것은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 대도심(大道心)이라 함은 이것이니라.
각자(各者)는 힘껏 법화경(法華經)을 믿어 왔으므로 과거(過去)의 중죄(重罪)를 책(責)하여 끄집어 냈느니라. 비유컨대 철(鐵)을 공들여 달구어 치면 흠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돌은 태우면 재가 되고, 금(金)은 태우면 진금(眞金)이 된다. 이번에야 말로 진실(眞實)한 신심(信心)이 나타나서 법화경(法華經)의 십나찰(十羅刹)도 수호(守護)하시게 되리라. 설산동자(雪山童子) 앞에 나타난 나찰(羅刹)은 제석(帝釋)이며 시비왕(尸毘王)의 비둘기는 비사문천(毘沙門天)이었느니라. 십나찰(十羅刹)이 시험(試驗)해 보기 위하여 부모(父母)의 몸에 들어가서 책망(責望)하는 일도 있을 것이니라. 이것으로 보더라도 신심(信心)이 약(弱)하면 후회(後悔)가 있으리라. 또 전차(前車)가 뒤집힘은 후차(後車)에 대한 훈계(訓誡)이다, 지금의 세상(世上)에는 이렇다 할 일이 없어도 도심(道心)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세정(世情)을 싫어하더라도 결코 싫어할 수 없으리라. 일본(日本) 사람들은 반드시 대고(大苦)를 당(當)하리라고 보이며 안전(眼前)의 일이로다.
형제초(兄弟抄)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083쪽
법화경(法華經)에 있어서 부처가 되게 하셨으므로 법화경(法華經)을 묘(妙)라고 하느니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3.08 조회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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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의 때·적문(迹門)의 월륜(月輪)이 처음으로 나오셨을 때·보살(菩薩)의 양안(兩眼)이 먼저 깨닫고, 이승(二乘)의 사시(斜視)가 다음에 깨닫고, 범부(凡夫)의 맹목(盲目)이 다음에 뜨고, 청맹과니인 일천제(一闡提)는 미래(未來)에 눈을 뜨게 될 연(緣)을 맺었으니, 이는 오로지 묘(妙)의 일자(一字)의 덕(德)이니라.
적문십사품(迹門十四品)의 일묘(一妙)·본문십사품(本門十四品)의 일묘(一妙) 합(合)쳐서 이묘(二妙), 적문(迹門)의 십묘(十妙) 본문(本門)의 십묘(十妙) 합쳐서 이십묘(二十妙), 적문(迹門)의 삼십묘(三十妙)·본문(本門)의 삼십묘(三十妙) 합(合)쳐서 육십묘(六十妙), 적문(迹門)의 사십묘(四十妙)·본문(本門)의 사십묘(四十妙)·관심(觀心)의 사십묘(四十妙) 합(合)쳐서 백이십중(百二十重)의 묘(妙)이니라. 육만구천삼백팔십사자(六萬九千三百八十四字) 일일(一一)의 자(字)의 밑에 일(一)의 묘(妙)가 있으니, 통틀어 육만구천삼백팔십사(六萬九千三百八十四)의 묘(妙)가 있느니라, 묘(妙)란 천축(天竺)에서는 살(薩)이라 하고, 한토(漢土)에서는 묘(妙)라고 하며, 묘(妙)란 구(具)의 의(義)이고, 구(具)란 원만(圓滿)의 의(義)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의 일일(一一)의 문자(文字)·일자(一字) 일자(一字)에 나머지의 육만구천삼백팔십사자(六萬九千三百八十四字)를 갖추었느니라. 비유컨대 대해(大海)의 한방울의 물에 일체(一切)의 하천(河川)의 물을 갖추고, 하나의 여의보주(如意寶珠)가 개자(芥子)만 하지만, 일체(一切)의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재물(財物)을 내리게 함과 같다. 비유컨대 추동(秋冬)에 마른 초목(草木)이 춘하(春夏)의 해를 만나서 지엽(枝葉)·화과(華果)가 출래(出來)함과 같이 이전(爾前)인 추동(秋冬)의 초목(草木)과도 같은 구계(九界)의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의 묘(妙)의 일자(一字)라는 춘하(春夏)의 일륜(日輪)을 만나 뵙고, 보리심(菩提心)의 꽃이 피고 성불왕생(成佛往生)의 열매를 맺는다. 용수보살(龍樹菩薩)이 대론(大論)에 가로되 「비유컨대 대약사(大藥師)가 능(能)히 독(毒)을 가지고 약(藥)이 되게 함과 같음」 운운(云云). 이 글월은 대론(大論)에 법화경(法華經)의 묘(妙)의 덕(德)을 석(釋)하는 글월이니라. 묘락대사(妙樂大師)의 석(釋)에 가로되 「고치기 어려움을 능(能)히 고치기 때문에 묘(妙)라고 칭(稱)함」 등(等) 운운(云云). 대체로 성불왕생(成佛往生)키 어려운 자(者)가 사인(四人)이 있으니, 제일(第一)에는 결정성(決定性)의 이승(二乘)·제이(第二)에는 일천제인(一闡提人)·제삼(第三)에는 공심(空心)의 자(者)·제사(第四)에는 방법(謗法)의 자(者)이니라. 이들을 법화경(法華經)에 있어서 부처가 되게 하셨으므로 법화경(法華經)을 묘(妙)라고 하느니라.
법화경제목초(法華經題目抄) 기요스미(淸澄)에서 45세에 술작 944쪽
만약(萬若) 일체(一切)의 성인(聖人)이 떠날 때는 칠난(七難)이 반드시 일어나니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3.09 조회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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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경(仁王經)에 가로되 「대왕(大王)·국토(國土)가 혼란(混亂)할 때는 먼저 귀신(鬼神)이 혼란(混亂)하며 귀신(鬼神)이 혼란(混亂)해지는 고(故)로 만민(萬民)이 혼란(混亂)하다고, 또 가로되, 대왕(大王)·내가 이제 오안(五眼)을 가지고 분명히 삼세(三世)를 보건대 일체(一切)의 국왕(國王)은 모두 과거세(過去世)에 오백(五百)의 부처를 섬긴 연유(緣由)로 제왕주(帝王主)가 될 수 있었노라. 이로써 일체(一切)의 성인(聖人) 나한(羅漢)은 또한 그를 위(爲)해 국토중(國土中)에 내생(來生)하여 대이익(大利益)을 주리라, 만약(萬若) 왕(王)의 복(福)이 다할 때는 일체(一切)의 성인(聖人)은 모두 버리고 떠나리라, 만약(萬若) 일체(一切)의 성인(聖人)이 떠날 때는 칠난(七難)이 반드시 일어나니라」고.
인왕경(仁王經)에 가로되 「대왕(大王)이여, 내가 이제 화(化)하는 바의 백억(百億)의 수미(須彌)·백억(百億)의 일월(日月)·일일(一一)의 수미(須彌)에 사천하(四天下)가 있고 그 남염부제(南閻浮提)에 十六의 대국(大國) 五百의 중국(中國) 十千의 소국(小國)이 있으며 그 국토 중(國土中)에 일곱 가지의 두려운 난(難)이 있다. 일체(一切)의 국왕(國王)은 그 난(難) 때문에, 어떠한 것을 난(難)이라 하느뇨, 일월(日月)이 도(度)를 잃고 시절(時節)이 반역(返逆)하며, 혹(或)은 적일(赤日)이 나오고 흑일(黑日)이 나오고 二三四五의 해가 나오며, 혹(或)은 일식(日蝕)하여 빛이 없고, 혹(或)은 일륜(日輪)이 일중(一重) 二三四五중륜(重輪)으로 나타남을 一의 난(難)이라 하느니라. 二十八수(宿)가 도(度)를 잃고 금성(金星)·혜성(彗星)·윤성(輪星)·귀성(鬼星)·화성(火星)·수성(水星)·풍성(風星)·조성(刁星)·남두(南斗)·북두(北斗)·오진(五鎭)의 대성(大星)·일체(一切)의 국주성(國主星)·삼공성(三公星)·백환성(百宦星), 이와 같은 제성(諸星)이 각각변현(各各變現)하는 것을 二의 난(難)이라 하느니라. 대화(大火)가 나라를 태우고 만성(萬姓)이 소진(燒盡)하고 혹(或)은 귀화(鬼火)·용화(龍火)·천화(天火)·산신화(山神火)·인화(人火)·수목화(樹木火)·적화(賊火) 이와 같이 변괴(變怪)하는 것을 三의 난(難)이라 함이라. 대수(大水)가 백성(百姓)을 표몰(漂沒)하고 시절(時節) 반역(返逆)하여 겨울에 비내리고 여름에 눈내리고 동시(冬時)에 뇌전벽력(雷電霹靂)하고 유월(六月)에 빙상박(氷霜雹)을 내리고 적수(赤水)·흑수(黑水)·청수(靑水)를 내리고·토산(土山)·석산(石山)을 내리고, 사력석(沙礫石)을 내리고 강하(江河)가 거꾸로 흘러 산(山)을 띄우고 돌을 떠내려 보낸다. 이와 같이 변(變)하는 때를 四의 난(難)이라 하느니라. 대풍(大風)이 만성(萬姓)을 날려 죽이고 국토(國土)의 산하수목(山河樹木)·일시(一時)에 멸몰(滅沒)하고 비시(非時)의 대풍(大風)·흑풍(黑風)·적풍(赤風)·청풍(靑風)·천풍(天風)·지풍(地風)·화풍(火風)·수풍(水風)·이와 같이 변(變)하는 때를 五의 난(難)이라 하느니라. 천지(天地) 국토(國土)가 항양(亢陽)하고 염화동연(炎火洞然)하여 백초(百草)가 항한(亢旱)하고 오곡(五穀)이 여물지 않고 토지(土地)가 혁연(赫然)하여 만성(萬姓)이 멸진(滅盡)하리니, 이와 같이 변(變)하는 때를 六의 난(難)이라 하느니라. 사방(四方)의 적(賊)이 와서 나라를 침범(侵犯)하고 내외(內外)의 적(賊)이 일어나서 화적(火賊)·수적(水賊)·풍적(風賊)·귀적(鬼賊)이 있어 백성(百姓)이 황란(荒亂)하고 도병겁기(刀兵劫起)하리니 이와 같이 괴이(怪異)해졌을 때를 七의 난(難)이라 하느니라」고.
재난대치초(災難對治抄) 가마쿠라에서 39세에 술작 78~9쪽제목(題目)을 부르는 사람·여래(如來)의 사자(使者)로다. 시중종(始中終) 버리지 않고 대난(大難)을 이겨 나가는 사람은 여래(如來)의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3.10 조회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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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부처가 써 놓으신 후오백세(後五百歲)·말법(末法)의 초(初)·황멸도후(況滅度後)의 때에 해당(該當)하므로 불어(佛語)가 헛되지 않다면 일염부제(一閻浮提) 내(內)에 틀림없이 성인(聖人)이 출현(出現)해 계시리라, 성인(聖人)이 나타날 전조(前兆)로는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합전(合戰)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說)해져 있는데, 이미 합전(合戰)도 일어났으니 이미 성인(聖人)도 일염부제(一閻浮提) 내(內)에 출현(出現)하시어 계시리라. 기린(麒麟)이 나타났으므로 공자(孔子)를 성인(聖人)이라고 알며 이사(鯉社)가 울면 성인(聖人)이 나오실 것은 의심(疑心)이 없도다, 부처의 경우는 전단(栴檀)의 나무가 돋아서 성인(聖人)이라고 알며, 노자(老子)는 이오(二五)의 문(文)을 밟았기에 성인(聖人)임을 안다.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성인(聖人)은 무엇을 가지고 알겠느뇨. 경(經)에 가로되 「능설차경(能說此經)·능지차경(能持此經)의 사람이 즉 여래(如來)의 사자(使者)니라」 팔권(八卷)·일권(一卷)·일품(一品)·일게(一偈)의 사람 내지(乃至) 제목(題目)을 부르는 사람·여래(如來)의 사자(使者)로다. 시중종(始中終) 버리지 않고 대난(大難)을 이겨 나가는 사람은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이니라.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1181~2쪽
이 경(經)의 행자(行者)를 한번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석가불(釋迦佛)을 직접 팔십억겁(八十億劫)동안·무량(無量)한 보(寶)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3.13 조회수: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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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도다 말법유포(末法流布)의 때에 태어난 우리들·슬프도다 이번에 이 경(經)을 믿지 않는 사람들. 대저 인계(人界)에 생(生)을 받는 자 누가 무상(無常)을 면(免)하리오. 그러한 사람들이 어찌 후세(後世)를 위해 수행(修行)을 하지 않겠는가. 곰곰이 세간(世間)의 모양을 보아하니 사람이 모두 입으로는 이 경(經)을 믿고 손에는 경권(經卷)을 잡는다고 하지만 경(經)의 심(心)에 배반(背反)하므로 악도(惡道)를 면(免)하기 어렵도다. 비유(譬喩)컨대 사람에게 모두 오장(五臟)이 있는데 일장(一臟)이라도 상(傷)한다면 그 장(臟)에서 병(病)이 생겨 나머지 장(臟)을 손상(損傷)하여 마침내 목숨을 잃는 것과 같다. 이로써 전교대사(傳敎大師)는 「법화경(法華經)을 찬탄(讚歎)할지라도 도리어 법화(法華)의 심(心)을 죽인다」 등(等) 운운(云云). 문(文)의 뜻은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 독송(讀誦)하고 찬탄(讚歎)할지라도 법화(法華)의 심(心)을 배반하면 도리어 석존(釋尊)·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을 죽이는 것이 되어버린다고 하는 의(意)이니라. 종내(終乃) 세간(世間)의 악업중죄(惡業衆罪)는 수미(須彌)와 같이 많지만 이 경(經)을 만나면 제죄(諸罪)는 상로(霜露)와 같이 법화경(法華經)이라는 일륜(日輪)을 만나서 소멸(消滅)되느니라. 그렇지만 이 경(經)의 십사방법(十四謗法) 중(中)의 일(一)이나 이(二)라도 범(犯)하게 된다면 그 죄(罪)는 소멸(消滅)하기 어렵도다. 왜 그러냐하면 일대삼천계(一大三千界)의 모든 유정(有情)을 죽였다고 해도 어찌 일불(一佛)을 죽이는 죄(罪)만 하겠는가. 법화(法華)의 심(心)을 배반(背反)한다면 시방(十方)의 부처의 명(命)을 끊는 죄(罪)로다. 이 법도(法道)에 배반(背反)함을 방법(謗法)의 자(者)라고 하느니라. 지옥(地獄)은 무서우니 불길을 가지고 집으로 삼는다. 아귀(餓鬼)는 슬프니라 기갈(飢渴)로 굶주려 아이를 잡아먹고, 수라(修羅)는 투쟁(鬪諍)이며, 축생(畜生)은 잔해(殘害)라 해서 서로 살육(殺戮)한다. 홍련지옥(紅蓮地獄)이라 함은 붉은 연(蓮)이라고 읽는데, 그 까닭은 너무나 추워 몸을 움추려 굽히니 등이 갈라져서 살이 나온 것이 홍련(紅蓮)과 흡사하니라. 하물며 대홍련(大紅蓮)에 있어서랴. 이러한 악소(惡所)에 가면 왕위(王位)·장군(將軍)도 소용 없으며 옥졸(獄卒)의 가책(呵責)을 당하는 모습은 원숭이를 놀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느니라. 이 때는 어찌 명문명리(名聞名利)·아만편집(我慢偏執)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생각하실지어다, 법화경(法華經)을 아는 승(僧)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뜻으로 한번이라도 공양(供養)한다면 악도(惡道)에 가지 않느니라. 어찌 하물며 열번·이십(二十)번 내지(乃至) 오년(五年)·십년(十年)·일기생(一期生)동안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알기 어렵도다. 이 경(經)의 행자(行者)를 한번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석가불(釋迦佛)을 직접 팔십억겁(八十億劫)동안·무량(無量)한 보(寶)를 다하여 공양(供養)한 공덕(功德)보다 백천만억(百千萬億) 뛰어났다고 부처는 설(說)하셨느니라. 이 경(經)을 만났으므로 기쁨은 몸에 넘치고 좌우(左右)의 눈에 눈물이 고여 석존(釋尊)의 은혜는 다 보답(報答)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이 산(山)까지 여러번의 공양(供養)은 법화경(法華經)과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은혜를 보답(報答)하게 되나이다. 더욱더 면려(勉勵)하시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느니라. 모든 사람이 이 경(經)을 믿기 시작할 때는 신심(信心)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중간쯤에는 신심(信心)도 약(弱)하고 승(僧)도 공경(恭敬)하지 않고 공양(供養)도 하지 않으며, 자만(自慢)하여 악견(惡見)을 하니 이는 두려워할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처음부터 끝까지 더욱더 신심(信心)을 해 나가시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後悔)하게 되리라. 비유(譬喩)컨대 가마쿠라(鎌倉)에서 교토(京都)까지는 십이일(十二日)의 도정(道程)이니라, 그런데 십일일(十一日)남짓 걸어가서 이제 일일(一日)을 남겨두고 걸음을 멈춘다면 어떻게 수도(首都)의 달을 바라볼 수 있겠느뇨. 어떻게 하든 이 경(經)의 뜻을 아는 승(僧)에게 가까이 하여 더욱더 법(法)의 도리(道理)를 청문(聽聞)해서 신심(信心)의 걸음을 옮길지어다.
니이케어서(新池御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439~1440쪽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을 강렬(强烈)하게 질투(嫉妬)하느니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3.14 조회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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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疑心)하여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적대시(敵對視)하는 자(者)는 두파작칠분(頭破作七分)이라고 설(說)해져 있는데, 니치렌보(日蓮房)를 비방(誹謗)하였어도 머리도 깨어지지 않음은 니치렌보(日蓮房)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아니라고 함은 도리(道理)라고 생각되는데 어떠하오. 대답(對答)하여 가로되, 니치렌(日蓮)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법화경(法華經)을 던져버리라고 쓴 호넨(法然) 등·무명(無明)의 변역(邊域)이라고 쓴 고보대사(弘法大師)·이동사승(理同事勝)이라고 말한 선무외(善無畏)·지카쿠(慈覺) 등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란 말인가. 또 두파작칠분(頭破作七分)이라 함은 어떠한 것이뇨, 칼을 가지고 자르듯이 깨어지는 것으로 아는가. 경문(經文)에는 여아리수지(如阿梨樹枝)라고 설(說)해져 있다. 사람의 머리에는 물 칠적(七滴)이 있는데 칠귀신(七鬼神)이 있어서 일적(一滴)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삼적(三滴)을 먹으면 목숨이 끊어지려 하고 칠적(七滴)을 모두 먹으면 죽느니라.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아리수(阿梨樹)의 가지처럼 깨어졌어도 악업(惡業)이 깊어서 알지 못한다. 예(例)컨대 상처를 입은 사람이 혹은 술에 취하고, 혹은 잠들어 버리면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또 두파작칠분(頭破作七分)이라 함은 혹은 심파작칠분(心破作七分)이라고도 하여 머리 정상(頂上) 가죽 밑에 있는 뼈가 울리어 금이 가는 것이니라. 죽을 때는 깨어지는 일도 있느니라.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지난 정가(正嘉)의 대지진(大地震)과 문영(文永)의 대혜성(大彗星)으로 모두 머리가 깨어졌느니라. 그 머리가 깨어졌을 때 천식(喘息)을 앓고 오장(五臟)이 손상(損傷)되었을
무릇 인신(人身)을 받음은 오계(五戒)의 힘에 의(依)하느니라. 오계(五戒)를 수지(受持)한 자(者)를 이십오(二十五)의 선신(善神)이 이를 수호하는데다가 동생동명(同生同名)이라고 하여 둘의 천(天)이 출생(出生)한 이래(以來) 좌우(左右)의 어깨에서 수호(守護)하기 때문에 죄과(罪過)가 없으면 귀신(鬼神)이 해치지 않느니라. 그런데 이 나라의 무량(無量)한 제인(諸人)이 탄식(嘆息)할 뿐더러 이키(壹岐)·쓰시마(對馬)의 두 지방 사람들이 모두 큰일을 만났고, 태재부(太宰府) 또한 말할 나위도 없느니라. 이 나라는 어떠한 죄과(罪過)가 있는지 알고 싶은 일이로다. 한 사람, 두 사람이라면 죄과(罪過)도 있겠으나 허다한 사람이 그러함은 어찌된 일인고. 이는 오로지 법화경(法華經)을 낮추는 고보(弘法)·지카쿠(慈覺)·지쇼(智證) 등의 말(末)의 진언사(眞言師)·선도(善導)·호넨(法然)의 말(末)의 제자(弟子)등·달마(達磨)등의 사람들의 말(末)의 자(者)들이 나라안에 충만(充滿)하였으므로 범석(梵釋)·사천(四天) 등이 법화경(法華經)의 회좌(會座)의 서장(誓狀)과 같이 두파작칠분(頭破作七分)의 치벌(治罰)을 가(加)하는 것이니라.
그런데 사슴은 맛이 있는 고로 사람에게 잡혀 죽고, 거북은 기름이 있는 고로 목숨을 빼앗기며, 여인(女人)은 용모(容貌)가 아름다우면 시샘하는 자(者)가 많으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자(者)는 타국(他國)이 침략(侵略)해올 두려움이 있고, 재물(財物)이 있는 자(者)는 목숨이 위태로우며,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한 자(者)는 반드시 성불(成佛)하느니라. 고(故)로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이라는 삼계(三界)의 주(主)가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을 강렬(强烈)하게 질투(嫉妬)하느니라. 이 자(者)는 반드시 성불(成佛)하느니라. 고(故)로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이라는 삼계(三界)의 주(主)가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을 강렬(强烈)하게 질투(嫉妬)하느니라. 이 마왕(魔王)은 역병(疫病)의 신(神)이 눈에도 보이지 아니 하면서 사람에게 달라붙듯이, 고주(古酒)에 사람이 취(醉)하듯이 국주(國主) 부모(父母) 처자(妻子)에게 달라 붙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질투(嫉妬)한다고 쓰여 있느니라. 이와 조금도 어긋나지 않음은 당시(當時)의 세상(世上)이로다.
사도초(佐渡抄)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924 ~ 925쪽
법화경(法華經)은 후생(後生)의 수치(羞恥)를 가려 주는 의복(衣服)이니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3.15 조회수: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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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렌(日蓮)이라고 자칭하는 것은 자해불승(自解佛乘)이라고도 해야만 하리라, 이렇게 말하면 영리(怜悧)한 듯이 들리겠으나 도리(道理)가 가리키는 바 그렇기도 하리라, 경(經)에 가로되 「일월(日月)의 광명(光明)이 능(能)히 모든 유명(幽冥)을 제거(除去)함과 같이 이 사람은 세간(世間)에 행(行)하여 능(能)히 중생(衆生)의 어두움을 멸(滅)함」이라고, 이 문(文)의 심(心)을 깊이 깊이 생각하시라, 사인행세간(斯人行世間)의 오(五)의 문자(文字)는 상행보살(上行菩薩)·말법(末法)의 처음 오백년(五百年)에 출현(出現)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의 광명(光明)을 비추어 내어서 무명번뇌(無明煩惱)의 어두움을 비추리라고 하는 것이니라, 니치렌(日蓮)은 이 상행보살(上行菩薩)의 사자(使者)로서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라고 권(勸)함은 바로 이것이로다, 이 산(山)에 있어서도 게을리하지 않노라, 지금의 경문(經文)의 차하(次下)에 설(說)하여 가로되 「나의 멸도(滅度)의 후(後)에 있어서 응당(應當)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여라 이 사람은 불도(佛道)에 있어서 결정(決定)하여 의심(疑心)이 있을 수 없느니라」고 운운(云云), 이러한 자(者)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된 사람들은 숙연(宿緣)이 깊다고 생각하여 니치렌(日蓮)과 동일(同一)하게 법화경(法華經)을 넓혀야 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라고 불려져 버린 것은 이미 불상(不祥)이며 면(免)하기 어려운 몸이로다, 저 번쾌(樊噲)·장량(長良)·마사카도(將門)·스미토모(純友)라고 불리운 자(者)는 이름을 아끼고 수치(羞恥)를 생각하기 때문에 끝내 겁내는 일은 없었느니라, 같은 수치(羞恥)일지라도 금생(今生)의 수치(羞恥)는 대단치 않으며, 다만 후생(後生)의 수치(羞恥)야말로 중요(重要)하니라, 옥졸(獄卒)·탈의바(奪衣婆) 현의옹(懸衣翁)이 삼도(三途)의 강(江)가에서 의복(衣服)을 벗길 때를 생각하시어 법화경(法華經)의 도량(道場)으로 가실지어다, 법화경(法華經)은 후생(後生)의 수치(羞恥)를 가려 주는 의복(衣服)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나자(裸者)가 의복(衣服)을 얻은 것과 같도다」 운운(云云).
이 어본존(御本尊)이야말로 명도(冥途)의 의복(衣服)이로다, 깊이 깊이 믿으실지어다. 남편(男便)의 살갗을 가리지 않으려는 여인(女人)이 있을소냐, 자식의 추위를 안타까워하지 않을 어버이가 있겠느뇨. 석가불(釋迦佛)·법화경(法華經)은 아내와 어버이와도 같은 것이외다, 니치렌(日蓮)을 도와 주시는 것은 금생(今生)의 수치(羞恥)를 감추어 주시는 사람이며 후생(後生)은 또한 니치렌(日蓮)이 그대의 수치(羞恥)를 감춰 드리겠노라, 어제는 남의 신상(身上)·오늘은 나의 신상(身上)이로다, 꽃이 피면 열매가 맺고·며느리가 시어머니로 되는 법입니다, 신심(信心)을 게을리함 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자쿠니치보어서(寂日房御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903쪽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공덕(功德)을 모아서 오자(五字)로 하였으니, 이 오자(五字)..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3.16 조회수: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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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화경(法華經)의 본문(本門)의 간심(肝心)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공덕(功德)을 모아서 오자(五字)로 하였으니, 이 오자(五字) 내(內)에 어찌 만계(萬戒)의 공덕(功德)을 포함하지 않았겠느뇨. 그러나 이 구족(具足)의 묘계(妙戒)는 한번 가진 후(後)·행자(行者)가 파(破)하려고 해도 파(破)해지지 않으니, 이를 금강보기계(金剛寶器戒)라고 말한다는 등으로 주장을 하여라.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이 계(戒)를 갖고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 등(等) 어느 것이나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부처가 되셨느니라, 이것을 「제교(諸敎) 중(中)에 있어서 이를 숨기고 전(傳)하지 않음」이라고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쓰셨느니라, 지금 말법당세(末法當世)의 유지(有智)·무지(無智)·재가(在家)·출가(出家)·상하(上下)·만인(萬人)이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갖고 설(說)과 여(如)히 수행(修行)함에 어찌 불과(佛果)를 득(得)하지 못하겠느뇨. 그리고 보니 결정무유의(決定無有疑)라 함은 멸후탁악(滅後濁惡)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정판(定判)하신 것이로다. 삼불(三佛)의 정판(定判)에 누락(漏落)된 권종(權宗)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무간(無間)이니라. 이와 같이 존귀(尊貴)한 계(戒)이기에 이전(爾前)·적문(迹門)의 제계(諸戒)는 지금 일분(一分)의 공덕(功德)도 없도다. 공덕(功德)이 없으니 일일(一一)의 재계(齋戒)도 무용(無用)이니라.
단(但) 이 본문(本門)의 계(戒)를 넓히시면 반드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서(大瑞)가 있느니라. 소위(所謂) 정가(正嘉)의 지동(地動)·문영(文永)의 장성(長星)이 바로 이것이로다. 대저 당세(當世)의 사람들은 어느 종(宗)들에 본문(本門)의 본존계단(本尊戒壇) 등(等)을 홍통(弘通)하였느뇨.
교행증어서(敎行證御書)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