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파란 독수리와 농구,아이스하키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야구 불운한 야구천재 박노준과 선린상고의 봉황괴담 ㅡ 상편
웅이훈이 추천 0 조회 2,058 21.01.21 00:53 댓글 7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1.01.22 05:34

    조계현 고3때 전국대회 우승은 어느 학교가 했고 핵심선수는 누구인지 모든 대회를 정리해 주실수 있는지요?

  • 작성자 21.01.22 16:03

    광주일고가 3관왕을 했을겁니다.
    문희수,박준태,이강철,김성규,서창기,김선진,이호성

  • 21.01.22 16:21

    83년도 고교야구 우승팀
    대통령배 결승전(05/02)... 광주일고 7-6 세광고 (10회 연장전)
    청룡기 결승전(06/13)... 북일고 1-0 포철공고
    화랑대기 결승전(08/01)... 북일고 6-3 부산고
    봉황대기 결승전(08/21)... 광주일고 5-3 포철공고
    황금사자기 결승전(10/05)... 광주일고 3-2 대구고

    광주일고 주요멤버... 문희수(3년, 투수) 이강철(2년, 투수) 박준태(2년, 투수 겸 우익수) 김선진(2년, 유격수) 김성규(3년, 좌익수) 정영진(3년, 중견수)
    북일고 주요멤버... 진정필(2년, 투수) 구동우(2년, 투수) 김길선(2년, 투수) 김광윤(3년, 포수) 오효근(3년, 좌익수)

    83학번 스카우트에서 참패했던 연대는 84학번에서는 군산상고 에이스 조계현과 포수(4번타자) 장호익을 비롯해 포철공고 유격수(3번타자) 최해명, 광주일고 좌익수 김성규, 경북고 투수 문병권과 2루수 유광진 등을 입학시킴으로서 모처럼 스카우트의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 21.01.22 16:24

    @아오이 도대체 이 많은 내용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 21.01.22 16:30

    @아오이 아오이님 광주일고 박준태는 1학년때부터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고 3학년때까지 계속 뽑히지 않았나요? 여러가지 다 잘해서 1할대의 타율일때도 청소년 대표팀에 뽑힌것으로 압니다.박준태가 프로야구에서도 뛰었나요?

  • 21.01.22 16:32

    @아오이 박준태 선수에 대해 아시는대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21.01.22 18:17

    @아톰사랑 태평양에서 뛰다가 김동재와 트레이드되어 LG에서 주로 뛰었습니다.
    키는 작지만 은근히 뻔치력이 있고 타점이 많아습니다
    이상하게 83년 광주일고 3관왕시절 덩치있는 선수는 김선진과 이호성 딱 둘뿐이었고 전부 덩치가 왜소한 편이었습니다.

  • 작성자 21.01.22 18:19

    @아톰사랑 172의 신장으로 투수ㅡ포수ㅡ내야ㅡ외야까지 만능이었습니다.
    광주상고에 박준태와 비슷한 고천주란 선수가 있었는데 좌완이라 포수는 못봤습니다.

  • 작성자 21.01.22 18:47

    @아오이 진정필과 김길선도 좋은 투수였던걸로 기억합니다.

  • 21.01.22 19:44

    @웅이훈이 네! 말씀이 맞습니다. 체격은 외소해 보여도 다부진 체격이랄까요? 투구모습도 뻑뻑하게 보이고 허리를 쓰지 않는것 처럼 보이면서 손목 스냅 으로만 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타격폼도 겉으로 봐서는 배트를 세우고 그냥 서있는 성의 없이 보이는 타격폼 이었죠. 하지만 고3때는 완전히 날라 다녔다고 할까요. 광주일고 당시 혼자 다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묵묵히 혼자서 해결하는 그런 성격으로 보았습니다.

  • 작성자 21.01.22 19:47

    @김정민 박준태가 체격이 좀 컸다면 진짜 훌륭한 레전드가 되었을 겁니다.

  • 21.01.22 20:28

    @웅이훈이 고교ㆍ대학 시절 저런선수가 연대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프로에 가서는 별로 큰활약을 못하고 쓸쓸히 사라졌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였습니다.지금은 어디서 뭘하는지 궁금하네요.

  • 작성자 21.01.22 20:31

    @김정민 맞습니다.
    타격좋고 발빠르고 수비잘하는 정기전에 특화된 선수들의 전형이 박준태선수 입니다.
    만약 추신수(부산고)가 고대갔으면 대형사고 치고도 남았을 겁니다.

  • 21.01.22 20:49

    @웅이훈이 님! 그렇게 말씀 하시면 오늘 밤새야 됩니다.ㅎㅎ

  • 21.01.23 00:34

    @아톰사랑 박준태는 2학년 때인 83년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에서 연속 MVP로 뽑혔고 3학년 때인 84년에도 황금사지기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84년에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외야수로 뽑혀 출전했었지요.
    일찍부터 야구천재로 불렸던 박준태는 85년에 동료 이강철과 함께 동국대에 진학했지만 1학년 때는 슬럼프로 부진했었습니다. 그러나 2학년 때부터는 맹타를 휘둘러 그 해 대학야구 홈런왕에 올랐고 86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팀의 외야수로 선발되어 출전했었습니다.

    당시 김종우 동국대 감독은 “유연한 허리와 강한 손목 힘을 이용한 펀치력은 70년대의 강타자 김우열(선린상고 출신)의 전성기를 연상시킨다.”고 박준태를 평했다고 합니다.
    강타자로 활약했던 동국대 시절을 마친 박준태는 89년에 원광대 투수 정명원과 함께 태평양에 2차 지명선수로 입단했습니다. 연고팀인 해태에서도 박준태를 뽑고 싶어 했지만 팀당 3명만을 지명할 수 있는 1차지명에서 동국대 투수 이강철, 원광대 투수 이광우와 당시 농협에 있던 연대출신 국가대표 포수 장호익을 지명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태평양으로 가게 된 것이지요.

  • 21.01.23 00:35

    @아톰사랑 이후 박준태는 92년에 LG 윤덕규와 맞트레이드 되었으나 고교와 대학 시절의 그 명성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9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현역 은퇴 후에는 고교 감독과 LG 2군 코치... 등을 했었다고 합니다.

  • 작성자 21.01.23 11:27

    @아오이 윤덕규와 트레이드 되었군요.

  • 작성자 21.01.24 18:14

    @김정민 추신수ㅡ이대호 백차승ㅡ봉중근
    이렇게 안암동갔으면 제가 홧병걸렸을 겁니다

  • 21.01.22 17:14

    아오이님 실례가 안된다면 80년도 부터 90년도 까지 연고대및 기타 대학들의 스카웃 정보를 알수 있을까요?

  • 21.01.24 12:18

    스토리는 알수가 있겠지만 당체 이러 사진은 어떻게 구하시는건지 신기하네요 ㅋㅋ

  • 작성자 21.01.24 18:15

    옛날에 저장해 놓은 제겐 귀한 자료입니다^^

  • 21.01.24 17:28

    좋은 정보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연대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21.01.24 18:15

    감사합니다^^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