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피옥과 마고문명 인간창조 1
흑피옥(黑皮玉) 과 마고(麻姑) 문명
서문
흑피조각상이 출토된 곳은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화더션 류즈젠썅(六支箭鄕) 따징고우춘(大井溝村)에 위치한다.
이 무덤은 김희용金喜鏞선생이
흑피옥黑皮玉(검은 칠을 한 옥) 31점과 인골을 발굴한 곳이다.
김 선생은 흑피옥黑皮玉31점과 인골 가운데
골반뼈만 꺼내어 모처에 보관 중이다.
중국인 원로 고고학자 백악(전 길림대 고고학부) 교수는
2000년 6월 26일 그간의 연구를 통해
이 흑피옥黑皮玉 유물 표면이
철 • 구리 • 인 • 크롬 • 니켈 • 망간 • 티타늄 •
수은 • 탄산칼슘 • 코발트 • 갤린 등
35개 원소를 섞은 '광물성' 흑피로 도색되었음을 처음 밝혀냈다.
2001년 9월 12일 <중국문물보>에
'원형조각 흑피옥黑皮玉 이기의 진위와 년대에 대한 시론'을 발표했다.
2008년 4월 자신이(백악) 소장한 옥기를 도록
(옥해습진玉海拾珍=民間古玉收藏集萃)으로 내면서,
흑피조각상 일부를 <신화통신>을 통해 공개하는 한편,
중국국가문물국에 출토지 현장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자 중국국가문물국은 2008년 11월 4일자 서신을 통해
내몽고 문물국에 현장 조사를 지시하겠으니
김희용金喜鏞 선생의 협조를 부탁했다.
전남과학대 정건재 교수가
김희용金喜鏞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검은 칠 옥’ 가운데 한 점에서
검정색 안료를 채취하여
서울대 ‘정전가속기(AMS) 연구센터’에 연대측정을 의뢰하였고,
그 결과는 지금으로부터 14300 ± 60년 이었다.
2009년 2월 14일 우실하 교수가
서울대학교에 의뢰한 9점의 흑피옥黑皮玉과
1점의 홍산문화 옥기에 대한 성분분석표를 서울대로부터 통보받았다.
흑피조각품은 흑색의 안료를 칠한 것으로 23종 이상의 성분이 검출되었다.
검정칠의 성분 가운데 칼슘(Ca)의 비율이 높아서
흑피에 탄산칼슘(CaCo3) 및 탄산염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 때문에 흑피옥黑皮玉조각품의 실제 연대는
기존의 14300±60년보다는 덜 오래된 것일 수 있다고 한다.
김희용金喜鏞선생님의 증언에 따르면 흑피조각상이 발견되는 곳마다
사용된 돌의 종류나 형태 양식 등에서 많은 차이들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매우 오랜 시기에 걸쳐서
광범위한 지역에 초 고대문명이 있었고,
그 문명들이 여러차례 멸망과 재건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조각상들은 크기도 홍산문명의 것들보다 훨씬 크며
옥도 경옥들로서 홍산 것들보다 훨씬 단단하다.
무엇보다도 발굴되는 흑피조각상의 숫자가 몇 만 점으로 대단히 많다.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제작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은 고도의 숙련을 거친 전문가이며
또한 이들이 양식화되고 획일화된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창의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한다는 점에서 이들 모두는 뛰어난 예술가들이다.
이들의 조형감각으로 보건데
이들은 현대인들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다.
절대로 구석기인들이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놀라웁게도 김희용金喜鏞선생은 흑피조각품이 발견되는 그 지역 주변에서
당시에 구석기인들이 사용하던 주먹돌 즉 타제석기들을 많이 발견했다.
즉 구석기인들의 기술은 아직도 돌을 깨서 사용하는 수준밖에는 안되었다.
이들이 어떻게 저런 엄청난 조각상을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인가 ?
그곳은 최첨단기술이 발달된 미래인과 태고의 원시인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과학자들이 알고 있는 구석기시대는
국가가 만들어 질 수 없으며 계급이 분화되기 이전의 사회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국가가 있었고 문자도 있었으며 당연히 계급사회였다.
즉 이들 숙련된 조각가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열외된 특수한 계급집단이었으며
직접 먹거리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그들도
먹여 살릴 수 있는 특별한 기술과 장비를 가진
풍요로운 세계였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필자는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화강암에 조각도 수 점 해 보았다.
이 조각들은 최첨단 강철로 만든 정으로서도 조각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이 조각들은 현시대보다 더 발달된 문명 속에서
전기드릴이나 연마기 절삭기 등이 동원되었고
레이져광선 등을 이용한 첨단 공구들로 가공되었음이 분명해보인다.
이 조각을 한 조각가들의 솜씨는
마치 진흙을 주무르듯 자연스럽게 단단한 돌들을 다루고 있다.
인체를 조각한 후 두발로 균형을 잡고 서게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균형감각과
인체 골격의 연구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본 수백 점의 인체조각들은
모두 완벽한 균형을 잡고 있으며 두발로 거뜬하게 균형을 잡고섰다.
그들은 인체해부도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생략과 강조의 기법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단언하건데 지구상 현존하는 어떠한 조각가보다도 훌륭한 조형감각을 지니고 있다.
또한 조각품들이 그려내는 외곽선의 프로포션들은 매끈하고 세련되어서
경이로움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나는 이토록 멋진 조각상들을 본적이 없다.
이 조각상들의 커다란 특징들 중 하나는 발의 표현인데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 째 표현 방법은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거의 사실적인 기법으로 발을 표현한다.
두 번째의 방법은 발에 무게 중심이 실리기 때문에 발은 조각상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발을 원래의 사실보다 두툼하고 기하학적으로 깍았으며
전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충분한 양감을 더했다.
이 두 번째 기법은 이집트의 여러 조상들의 발을 표현하는 기법과 거의 같고
스핑크스의 발 표현기법과도 같다.
따라서 조각양식으로 볼 때도 이들이 홍수 후에 이집트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 조각품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조각가의 영혼이 그대로 숨쉬듯 들어있으며
조각가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다.
김희용金喜鏞선생님께 3가지 점에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첫째, 김희용金喜鏞선생님은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신비의 태고유적지를 발견했다.
이는 물론 온 인류에게 커다란 선물이지만
필자에게는 필자의 저서《판스퍼미아》를 증명해 줄 너무 귀한 자료이다.
흑피조각상 문명지를 발견해 주신 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두 번째는 선생님이 소장하신 귀한 흑피옥黑皮玉조각품을 아무런 조건없이
사진 찍어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신 점이다.
셋째, 선생님이 보고 느낀 흑피옥黑皮玉조각상 유적지주변과 흑피조각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소상하게 알려주신 점이다.
2010년 김희용선생은 중국민간인국보 10대인물로 선정되었다.
2010년 장일평(북경대 교수)소장 흑피옥 1점이 중국 민간소장 국보로 지정되었고,
2011년 김희용씨 소장 흑피옥 인물 남녀 한 쌍이 중국 민간소장 국가보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