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일에 성주 일원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그중에 세종대왕자태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기에 여러 번 다녀왔던 곳이다. 가끔은 작품 사진이라도 하나 만들까 싶어 일몰이 좋은 시간에 방문하기도 했다. 태실 앞에 있는 안내판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고향 근처에 있는 유명 사적지를 그동안 별스럽지 않게 여기며 지내왔던 것 같다.
2) 세종대왕자태실은 사적 제444호로 지정되었다. 성주 월항면 태봉(胎峰) 정상부에 세종대왕의 적서(嫡庶) 18 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 1기를 합쳐 모두 19기로 조성되어있다. 근래에 와서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태실 주변을 왼쪽부터 한 바퀴 돌다 보면 특별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 태는 방형의 연엽대석(蓮葉臺石)을 제외한 상단부 석물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다섯 기의 태 석물이 훼손된 것을 알 수가 있다. 수양대군의 태는 제일 앞에 있었고 다른 곳에 없는 비석까지 있으며 표시판에는 세조대왕이라는 내용까지 붙어있었다.
3) 문화해설사의 설명은 계유정난의 시절로 우리를 안내했다.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신하를 죽인 피의 군주이면서, 세종의 위업을 계승한 치적 군주의 이미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설사 개인의 생각이라는 전제하에 자신이 수양대군의 입장이라면 그 당시의 상황을 감안 하면 이런 변명을 하였을 것 같다고 했다.
4) 병약한 문종이 승하 직전 유언할 때를 예로 들었다. 단종과 충신 김종서와 황보인만 부르지 말고, 바로 아래 동생인 수양대군을 불렀으면 어땠을까를 가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야욕이 있는 친동생이지만 왕의 유언을 직접 듣고도 무시했겠는가 하는 측면이다. 믿었던 형으로부터 무시당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문종 승하 후 대신들은 신권 정치를 강조하며 어린 단종을 흔들었고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심정은 어떠했겠느냐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사실에 대해서 또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5)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나태하였던 나의 의식 세계에 경종이 울렸다. 나는 고향을 위해 지금껏 무엇을 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어난 곳의 역사 지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공부하고 직장 다니며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 발전에 대해 보탬이 된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군청 관계자들은 출향인 중에서도 나름의 전문가들을 불러 조언도 듣고 협조를 구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나도 사진 활동은 나름 하는 편이었는데 고향 당국이 불러주지 않는데 내가 할 일이 뭐 있겠냐는 입장이었다. 스스로 유적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먼저 도와주지도 못했다.
6) 우리는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변명을 하기도 한다. 수양대군의 입장에서도 그런 변명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사는 주변의 익숙함 때문에 여러 가지에 대해 무관심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자문해본다. 모두 내 살기가 바쁘다는 구실로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나의 고향에 대해서도 지금껏 너무 방관자적 자세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자책이 되었다.
7) 태봉 정상부에 있는 세종대왕자 태실 옆 노송을 바라본다. 지나 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면서도 한마디 말없이 묵묵히 인간들의 삶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얀 물안개가 태실 옆을 살포시 덮는 시각에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계단을 내려온다. 고향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태실 탐방이었다. 어떤 변명을 해도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허공에 날려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기 전에,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달라는 케네디의 명언이 생각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