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새출발 / 백현
사립고등학교 과학 교사였던 남편은 2월 29일자로 명예퇴직을 했다. 외아들인 그는 아버지가 인지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명예퇴직을 놓고 고민하였다. 아버지의 상태를 보아 가며 한 해 한 해 늦추다가, 많은 고민 끝에 용단을 내렸다. 치매가 점점 심해지는 93세 아버지와 그 곁에서 힘들어하는 90세 어머니와 같이 하지 못해서 후회하고 싶지 않은 아들의 선택이었다.
2월 19일에는 퇴임식이 있었다. 교직원에게 돌릴 기념 수건을 만든다고 문구를 고민하고, 주문할 때는 태평한 것 같았는데, 막상 전날 밤에는 잠을 자지 못했다. 10시쯤이면 이부자리에 들어가 스도쿠 게임을 하다가 금방 잠드는데, 보기 드문 일이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 밤에서야 이 일이 그에게 얼마나 큰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정년 퇴임을 하시는 다른 선생님이 어찌나 우시는지, 막상 자기는 담담했단다. 안 그랬으면 자기가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고 했다. 아쉬웠으나 우리 딸들이 있어서 마음이 그다지 슬프지 않다고 했다. 남편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두 아이가 보내왔던 감사패였다. ‘36년 동안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 교사라는 직업과 작별하시는 000 선생님의 남은 삶을 응원합니다. 은퇴는 은퇴일 뿐, 멋진 삶은 변하지 않고 이어집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교사라는 직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줘서 특히 울컥해하는 것 같았다.
이제 학교 밖의 세상으로 나가려고 60여 년 쓴 몸에 필요한 수선을 했다. 먼저 눈썹 반영구 문신이다. 그의 눈썹은 앞부분만 있는 반토막으로 양쪽이 심하게 비대칭이었다. 오른쪽은 위쪽을 향하는 부분에서 끊어졌고, 왼쪽은 아래로 처지면서 토막이 나 있었다. 2,3년 전에 눈썹 반영구 문신을 제안했을 때는 남자가 무슨 그런 것을 하느냐고 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싫다는 사람을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이번에는 자기가 스스로 하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이 최근에 했고 자기만 몰랐지 다들 했더란다.
눈썹을 제대로 그린 것을 시작으로 남편이 요구했던 것이 더 있었으니 이는 사전 설명을 해야겠다. 그의 외모에서 그나마 괜찮은 것이 선해 보이는 인상과 웃을 때 눈꼬리에서 피어나는 세 줄기 주름이었다. 그런데 요즘 찍은 사진엔 자꾸 눈을 감고 있었다. 왜 자꾸 눈을 감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확대해서 보다가 눈을 감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낄낄댔는지 모른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슬펐다.
눈은 버젓이 뜨고 있는데 작아서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얇실했던 눈꺼풀이 처지니 눈이 작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맞닿은 눈꼬리가 짓무르고 눈곱이 끼기도 했다. 왼쪽 눈에 비해 더 처진 오른쪽은 삼각형 모양이 되어 짝짝이가 되었다는 시각적 측면은 둘째로 치더라도 진물과 눈곱을 해결해야 했다. 이왕 하려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것이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들었다며 수술해 달라고 했다.
눈썹 문신 일주일 후 양쪽 눈 거상술을 했다. 눈썹 아랫부분을 길게 자른 후 그 아래 쳐진 눈꺼풀을 잘라낸 다음 봉합해서 처진 눈을 올리는 것이다. 쌍꺼풀을 만들거나 하는 시술 없이 그대로 올리기로 했다. 회복도 빠르고, 그나마 쓸만한 선한 인상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1주일 만에 실을 뽑아 내니 감쪽같았다. 젊을 때의 눈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전에 비해 초롱초롱해진 눈이 되었다.
외모뿐 아니라 마음의 양식도 쌓을 수 있도록 환경도 개선했다. 남편의 소통 통로 중 하나인 뉴스와 유튜브를 잘 보려고 거실의 텔레비전을 65인치 대형으로 바꾸었다. 회갑을 미리 축하하며 선물 받았던 안마의자에 누워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나 중화 티브이의 드라마까지 즐길 터이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걸어서 10분 거리인 시어른댁으로 가서 같이 아침을 먹고, 아버지를 챙겨서 주간보호센터에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 온갖 촉수를 부모님께 대고 있지만, 동네 합창단에도 들어갔고, 점심 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더 만들고, 다음 주부터는 피아노를 배우러 다닐 예정이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여백이 많지만, 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
내일 학교를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으니 좋지만, “선생님!”하고 부르며 다가오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조금 서운하다고 한다. 좋은 교사로 살려고 고군분투한 마음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다. 이제 가장의 책임과 의무를 더 털어내도 된다고, 선택한 대로 부모님의 든든한 아들로 자신의 삶을 살 때라고 말해 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