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0일 화요일
예쁜 옷
김미순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 맺으며 인간끼리의 소소한 일들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을 찾고 해결 방법을 알아간다.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래서 자신이 소외받지 않고 더불어 살고자 한다.
그런데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걸 확인받는 건 가장 쉽고 단순한 것이 다른 사람과 같은 옷, 비슷한 옷을 입는 것이다. 민족마다 전통옷이 있는 이유다. 조금 다르더라도 뚜렷이 차이가 나지 않는 옷을 입는다. 학생들의 교복이나 직장에서 사원복이 그런 걸 입증한다.
나는 어렸을 때 옷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명절 때 부모님이 새 옷을 사주었다는 애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도대체 기억이 없다. 블라우스나 치마, 겨울 잠바나 속옷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중학교 때 교복을 입었고, 교복 치마 단이 풀려서 바느질을 배우게 된 것이 뚜렸이 기억난다. 하얀 칼라를 다느라 아침마다 분주했던 갓도, 청소시간에 앞치마와 두건~~
고등학교에 들어가지마자 머리와 교복자율화가 시행되어서 자율화 바람이 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아득했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교장선생님께서 복장검사를 했다. 빨간색, 너무 짧은 치마, 꼭 끼는 바지는 안 되고, 파마나 염색은 생각도 못하고, 단발도 센치가 정해져 있었다. 등교가 무서웠다. 통과할 수 있으려나? 나는 새 옷을 사러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우리집 가까이 먼 친적 언니들이 있었다. 한~ 보자기 가득 얻어왔다. 그리고 밤내 옷을 줄이고 꾸며서 학교에 입고 갔다. 사실 그 옷들은 내게 어울리진 않았다. 그때 세련된 언니들 패션이 작고 약간 통통한 내게 너무 붕~ 뜬 패션이었다. 팔과 바지 길이는 반드시 줄여야 했고 몸통은 적게라도 늘려야 했다. 바늘로 비뜰비뜰 꿰맸으니 솔기가 말이 아니었다. 비교적 바지는 쉬웠다. 그러나 치마는 아무리 길이를 늘리려 해도 무릎 위였다. 결국 나는 블라우스와 청바지로 삼년을 버텼다. 신발은 운동화였다. 그때 나이키나 프로스펙스가 나왔으나 엄마는 시장 난장에서 전시된 싸구려 신발을 사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우리집의 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딱히 고민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파란색 쉐타와 플레어 스커트를 사 주셨다. 엄마의 수준에서 너무 높은 가격이었고 스타일은 당신 나이와 같은 옷이었다. 나는 그 옷을 입고 대학교 입학식 때도 갔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서 하얀색 블라우스와 청바지로 돌아갔다. 사 년 내 계속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부조금이 많이 남았는지 어머니께서는 내 몸에 맞는 투피스를 사 주셨다. 나는 여수 중앙시장에서 십만 원이 넘는 돈을 척척 내놓는 엄마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의 어린이날이었다.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어린이날 선물을 해 주셨다. 여수 서정시장에 가셔서 연블루 봄 잠바를 사주셨다.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어린이도 아닌데, 어린이날 선물을 뒤늦게 챙기는 아버지 마음! 집안 사정이 조금 나아지니까 미뤄두었던 마음의 빚을 떨쳐놓으셨다. 그리고 더욱 놀란 것은 결혼하고 얼마지나지 얺을 때 발목까지 내려오는 홈드레스, 물론 만원짜리였지만 원피스를 사주섰다. 결혼을 하였으니 주부로서 어울리는 옷이 필요할거라 생각하신 거다.
옷을 사 보지 않았으니 옷을 바라보는 눈썰미가 없다. 그냥 사이즈가 맞고 특별한 무늬가 아니면 덜컥 사버린다. 몸매가 많이 드러나지 않는 개량한복이 사계절로 있다. 그래도 색은 잘 선택해서 옷을 못입는다는 말은 별로 듣지 않는다.
때때로 베스트 드레서라는 말을 듣는 남편이 안타까운 듯 내 옷을 사다 준다. 정말 딱 맞고 예쁜 옷이다. 옷 매장에 따라가면 정말 피곤할 정도로 꼼꼼히 살핀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앞으로 뒤로 살피고 줄일 때는 얼마나 줄여야 할지 핀을 꽂아가며 주인을 괴롭힌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이라 받아들여지는데 남편이 엄청 많은 공헌을 했다는데 동의한다. 나도 우리 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데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다.
요즘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로 편한 옷은 선택한다. 일반 매장에 가지 않고 실패를 할 수도 있으나, 인터넷 매장을 주로 이몽한다..반품할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하고~~~ 멋지고 예쁜 옷보다 평범하고 읽기 편한 옷이 최고다.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으니 다른 사람 눈보다 우리 식구들이 예쁘다는 옷을 산다.
그러나 아직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옷이 있다. 결혼식 때 못 입은 드레스다. 하얀색이나 연한 분홍색의 ,가슴은 조금만 파진 드레스 ~ 혹시 리마인드 웨딩을 하게 된다면 드레스를 빌리지 않고 제작하여 입고 싶다. 며느리가 생긴다면 며느리에게 물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