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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詩文)
금정 4계, 봄에는 봄노래를
김 광 수
봄에는 봄노래를 1
허균(許筠)의 「홍길동전 洪吉童傳」을 포함한 우리고대소설의 형식과 문학적 의미를 더위와 악전고투하면서 얘기하다가 지쳐버린 지 석 달, 약속 지킨답시고 「봄에는 봄노래를」이란 제목으로 인사드립니다만 불안합니다. 지친 심신을 간추릴 수 있을는지요. 그보다 잃어버린 말의 가락 찾아질 수 있을는지요.
낮은 목소리에 그대 귀 열리고
예전에는 낮고 낮 익은 긴 목소리였다가
이제는 높고 낯선 짧은 말소리
듣는 귀 무뎌진 만큼
말소리만 커지는
나머지 말글들,
목소리를 돌려 다오
그대 귀 열리게 하던
낮은 목소리를 돌려 다오
돌려 다오 흘러가 버린 것
돌려줄 수 없는 것 그대로 두고
허 균(許 筠)의 「홍길동전 洪吉童傳」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최초의 가정소설, 최초의 사회소설, 최초의 사회개혁소설, 판타지소설, 모험소설, 성장소설 등등 홍길동전에 대한 헌사들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읽고 배워야했던 고교교과서와 대학교재의 「홍길동전」, 최초의 고대소설이자 최초의 한글소설, 최초의 사회비판소설이자 가정소설, 모험소설, 개혁소설, 판타지소설 洪吉童傳의 으뜸주제는 ‘적서타파(嫡庶打破 적자와 서자의 차별 완전 박멸하기)’가 아닙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신의 인품을 닦고, 가정을 가꾼 다음,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을 것이다.)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세 가지가 공동주제가 됩니다.
비록 서자이지만 조선국 개국 이후 대대로 종교화된 유교 집안에서, 진정한 진보주의자인 아버지 허 엽(許曄)의 배려로 서자 허 균(許筠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유학자)은 적자이자 이복형 성(筬)과 봉(篈) 아랫자리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서얼(庶孼 서자와 얼자의 합성어)을 사람 취급하지 않던 시절에 자신만이 적자이라 고집하는 두 이복형의 혹독한 학대가 따랐음은 불문가지였습니다.
정실부인이 병사하자 아버지 허 엽은 소실이었던 균(均)의 어머니를 정실로 삼는 가족혁명을 단행합니다. 그래봤자
봄에는 봄노래를 2
정실부인의 병사, 소실이었던 허 균의 어머니를 정실부인으로 삼은 아버지 허 엽(許曄)의 위대한 가족혁명.
조선 광해왕대(光海王代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했다는 폐모살제사건廢母殺弟事件을 명분으로 폐위되어 광해군光海君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왕자였던 임진왜란 당시 보여준 군왕의 풍모와 제위 당시 탁월한 지도력과 외교력을 발휘하여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지칠 대로 지친 백성을 먹이고 입히고 잠재울 수 있었던 광해의 업적을 기억하자는 의지로 광해왕으로 불렀으니 놀라지 마시기를)에 시대를 500년 이상 앞선 허 엽의 위대한 가족 혁명은 최대 수혜자이자 조선조 최고의 진보주의자 허 균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본처와 사별하면 처녀장가로만 재혼이 가능했던 시절, 양반의 특권을 과감히 포기한 허 엽, 요즘도 현대판 권력남과 졸부들이 심심찮게 저지르는 양반놀이를 서자인 자신의 처지에 앙앙불락이면서도 양반의 특권을 방만할 정도로 누리며 살던 허 균이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성장소설로도 평가되는 허 균의 홍길동전, 행간을 읽을 줄 알면 장편소설로도 손색이 없는 대작이 짧아진 이유입니다. 우리 고대소설의 절묘한 생략법 구사이기도 하고요. 소설의 5단계 분류법 중 발단에 해당하는 修身과 전개로 보이는 제가 중 수신은 간단합니다.
양반 중에서도 문과에 급제한 동반이므로 글공부가 전부였으나 웅지를 품은 길동, 탁월한 소년 홍길동은 무반이나 하는 짓거리로 무시당하던 무술 연마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齊家는 드러난 기록과는 달리 속내는 길고 복잡해서 정실의 자식만 가능한 호부호형(呼父呼兄 아버지를 아버지로 형을 형으로 자신은 소자小子로 부르기, 호부호형을 허락받지 못하면 자신을 소자로 부르기는 금지되고 소인小人으로 부르며 혈연이 아닌 주종관계로 살게 한 제도)을 위한 길동의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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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부호형을 허락받는 순간 소년영웅 홍길동은 집을 떠납니다. 고대소설의 기법으로 ‘각설 이때하고’
깜짝 베스트셀러 『공자孔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제게는 시종하는 유가儒家사회이자 유교儒敎국가에서 수신하는 이를 대신하는 지은이의 절규를 들렸습니다.
춘추전국시대로 불리지만 실상은 완전 난세, 중국천하를 수레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갈파한 인간윤도와 표어이자 강요로 들리는 ‘효孝는 만행의 근본이다’로 인류 최고의 스승으로 자리매김한 공자, 당신의 사상과 훈육은 실인즉 실천궁행이 어려운 가르침이고 요구사항입니다.
초중고교 시절 거의 모든 교과서에서 강조를 넘어 강요된 표어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 대한나라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위한 것이니 사대교린(事大交隣 대국을 섬기고 고만고만한 나라와는 사이좋게 살 일이다)을 외교의 근본으로 삼은 것도 모자라, 스승 공자를 신격화神格化하여 급조한 유교儒敎와 충효사상을 국교로 삼아 명절제사 기제사 등을 강요해가며 내치의 수단으로 삼았으니 슬프다 벗님네야, 백성을 왕족과 양반의 노예로, 자자손손 왕족과 양반의 노예로 만들기로 작심한 조선국과 대한민국 위정자의 속내 아니었겠는가.
천학비재인 제가 보기에도 술이부작(述而不作 저술은 하지만 짓지는 아니하다)의 대학자이자 스승께서 당신의 저서로 인정하신 『논어論語』를 위시하여 공자 말씀임을 전제로 써진 말글을 더듬어 보아도 충은 잘 보이지 않고, 효에 대한 곡진한 가르침으로 일관하니 효의 스승으로 보아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두려울 정도로 일방적이라는 것입니다. 피붙이인 부모와 자식 사이 정의 교류니까 부모의 자식사랑과 자식의 감사와 존경이 길항적拮抗的으로 오르내려야 할 것인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어서 그런지 효의 스승이자 효의 신 공자님은 좀처럼 부모의 자식사랑을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식의 감사와 존경을 가르치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글 배우기 시작한 자식에게 강요로 느껴질 정도인 효, 적어도 유교국가 우리나라에서는 금과옥조로 자리 잡은 말씀입니다.
봄에는 봄노래를 4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 출신 효의 스승이자 전도사 공자께서는 제자 맹자孟子에 의해 효의 철학자로, 전한前漢시대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효의 교조적(敎條的 학술이나 윤리도덕, 정책 등을 강요하는) 사상가를 거쳐 효의 나라 조선국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부상합니다.
효, 효도孝道!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나, 문제는 두려울 정도로 일방적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으신 자녀들을 사랑으로 기르시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자녀들도 감사와 존경을 통한 부모사랑, 가족사랑, 마침내 인류사랑을 체득할 것인데, 효의 화신 공자님은 어버이 특히 아버님께 자식사랑을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은 듯싶습니다.
아마도 효는 가르침을 통하여 후천적으로 연마되는 것이고, 부성애와 모성애 등 내리사랑은 본능적이므로 가르칠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는지도...
맹자가 저서『맹자』를 통하여 정리한 스승 공자의 오륜五倫,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중 구체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은 효를 정의한 부자유친뿐인 듯싶고, 당신이 열강하고 역설하신 것 역시 부모에 대한 존경과 섬김이었으니, 속내는 복종인 듯합니다.
조선국 광해왕조 최고의 유가집안 허 엽의 아들로 유교 교육 등 양반이 누리는 여러 가지 특권과 혜택을 누리면서도 서자인 죄로 호부호형呼父呼兄조차 금지된 허 균, 다중인격자일 수밖에 없는 그의 희망적 분신 홍길동은 수신제가 부분을 생략법에 다름 아니게 줄입니다.
적어도 조선국에서는 효에 대한 금과옥조로 자리 잡은 말씀 “효의 시작과 끝”입니다. 한자 원문을 우리말글로 의역意譯해 봅니다.
“자식의 육신은 부모님께 받은 것이므로 감히 다치거나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완성이니라.”
중학교 2학년 한문 수업 첫 시간에 공포의 낡은 구두 슬리퍼 선생님의 양 뺨 후려치기에 떨며 외운 구절입니다.
봄에는 봄노래를 5
딸 아들 막론하고 태어나 10여년, 자생력이 거의 없는 생물이 사람이라 가르치고 배웁니다. 자신의 신체발부身體髮膚(육신의 제유提喩로 은유의 일종, 부분으로 전체를 비유함)를 지킬 능력이 없다는 속내입니다. 이런 시기에 다쳐서 부모님께 심려를 끼치지 말라니요? 효자 되기 글렀다니요? 무슨 오묘한 뜻이 숨어있는지 몰라도 필부필부에 장삼이사인 제게는 '자고 깨고 먹고 자고‘ 준으로 자라 달라는 점잖은 명령으로만 들립니다.
시작은 그렇다 치고 효도의 완성 부분은 기상천외하게만 느껴집니다. 슬프기도 하고요. ‘자녀 특히나 아들은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완성이니라.’ 진중한 마무리, 그러나 이 말씀은 훈화도 교육도 아닙니다. 봉건국가 조선국에서도 민주사회 대한나라에서도 변하지 않은 세뇌의 말이고 지상명령입니다. 당연히 효도해야하는, 금지옥엽으로 비유되는 자녀의 의지도 선택도 없습니다.
이실직고(以實直告 정직하게 고백함)입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권력과 금력이 넘치는 자리에 올라 엄마아빠를 깃발 날리게 하라!”
다치지 않기 위하여 식물인간으로 유년시절을 보내고, 소년시절부터 엄마아빠를 깃발 날리게 할 장한 자식이 되기 위한 시험공부에 매진하게 하는 어버이와 효의 길을 걷기 위하여 판단정지를 강요당하는 자식들... 외국어고, 과학고, 자사고 등등의 입시지옥에 이어지는 ~고시로 불리는 고상한 취업 지옥, 그나마 상류층 학부모와 상위권 학생의 전유물이라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국 500년을 지켜온 선비정신과 대한나라를 지키고 있는 애국애민 의식은 자자면면 빛나고 있으니. 선비정신과 애국애민 의식, 그 이면에는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인류의 스승인 공자님 가르침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하니.
꽃다운 젊은이들의 참변을 애도하기 위해, 부끄러운 일흔아홉 살 촌로의 걱정 여기까지입니다.
봄에는 봄노래를 6
『
유가儒家의 9서(사서四書 『논어論語』『맹자孟子』『대학大學』『중용中庸』 +오경五經 『주역周易』『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춘추春秋』 중,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대 스승 공자가 당신의 언행을 손수 기록한 책이라 밝힌 『論語』, 유교국가로 자임한 조선국에서는 경전으로 여겨지고, 양반의 필독서가 됩니다. 당연지사 양반의 전유물이었지만 상민의 가족에서도 제주 노릇이라도 하려면 논어의 첫머리 ‘學而 篇’은 외워두어야 했다 합니다만.
학이 편, 굉장한 부제가 아니고 전편의 첫 문장이 ‘學而’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첫 세 단락으로 유가사상의 완성 『논어』를 요약합니다. 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말과 행위를 통한 격조와 인격人格까지 결정해버립니다. 당신의 생존시대인 춘추전국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이쯤에서 대만에서 만15년 연구 끝에 周易(주역=역경易經) 연구로 석사, 선禪으로 박사 학위를 획득한 후 모교 성균관대학교에서 주역과 선을 가르치다가 작고하신 외우 김동수 박사의 가르침입니다. “친구야, 논어 전문을 외우려들지 말고 학이 편만 확실하게 외우면서 살아라. 연년세세 논어와 인생이 새로 열릴 것이니까.”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공자 가로되 학이시습지/불역열호. 배우고 그때그때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說 정신적 기쁨)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 더불어 공부하던 친구가 먼데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樂 일상적 즐거움)
人不知而不縕/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지 않고 계속 정신적 기쁨을 추구하는 이야말로 군자 아니겠는가. 君子의 정의, 양반 최고의 경지)
인류의 스승 공자는 인간의 즐거움을 정신적 기쁨 說과 일상적 즐거움 樂, 육체적 쾌감快感 快로 분류하지만 쾌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가르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니까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인 열, 말할 설說 자와 동음이의(同音異義 음은 같으나 뜻은 다름)로 쓰는 이유입니다. 공자는 언행일치로 열을 추구하며 일생을 사는 분을 君子라 하여 지고지선至高至善으로 모십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국에서는 동(東 문반) 서(西 무반) 양반兩班에 등용된 양반과 출중한 실력자이면서도 벼슬을 마다하거나 피한 선비로 나누어 불렀으나 선비를 지존으로 모신 듯합니다.
왕족 세종 이 도(李 祹), 문신 율곡 이이, 무신 성웅 이순신, 선비 남명 조식... 이중 조식은 지리산에 은거하면서 스스로 언행일치를 전제로 한 학문에 매진하면서 제자 가르치기에 골몰합니다. 결과 임란 시 유림의병의 절대다수가 그의 제자였고, 북학北學이라 불리는 실학(實事求是學 실제의 삶 실사에서 진리 시를 구하는 학문)을 받아들이는 반석이 되었다 합니다.
여기서 문신, 무신, 선비. 어디에도 허 균이 낄 자리는 없습니다. 그 현실이 지금도 살아있는 고전소설 홍길동전을 낳게 한 것이고요. 중국천하를 돌면서 왕족과 양반을 상대로 펼친 공자의 가르침에 허 균과 같은 회색인간이 낄 자리 역시 없었습니다.
봄에는 봄노래를 7
‘학이시습지/불역열說호’에서 열說은 정신적 기쁨 열悅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공자님 스스로 환희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유붕자원방래/불역낙樂호’는 일상적 즐거움 樂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담담합니다.
붕朋, 붕우朋友, 한방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 요즘 표현으로 동문수학한 친구일 것입니다만 훨 곡진합니다.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로 군자君子의 정의를 내리시며, 공자는 논어의 주제가 ‘군자와 군자 되기’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당당합니다. 공자님 가르침이 들리는 듯합니다.
“사람 중 참사람이 되고 싶거든 우선 정신적 기쁨 說을 탐구하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지 말라. 힘들고 외로워도 가던 길 가노라면 사람 중 참사람 군자가 되어 있으리니.”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문학 등에서 ‘열’을 추구하는 분의 모습입니다.
자주독립하는 나라와 국민과 기뻐하는 학자와 정치가, 부자나라 부자국민 더불어 기뻐하는 기업인, 자유 평등을 구가하는 국민과 더불어 기뻐하는 지도자, 본격문학, 본격예술로 격조 높은 문화를 누리는 국민과 숨어서 기뻐하는 문인, 예술가... 이쯤에서 parody 하나입니다.
“소돔 엔 고모라가 멸망한 것이 열 사람의 현자가 없었던 탓이라면 태생부터 위태위태한 나라가 500년을 유지한 것은 도처에 산재한 선비와 그분에게 선비정신을 배운 분들 덕분이다. 서양의 현자와 조선의 선비, 說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 아닌가요.”
가정과 가족에 관한 한 조선국 제일의 진보주의자 허 엽의 3남, 문벌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이복형 성과 봉이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은 적자와 서자 사이, 정규교육은 그림의 떡, 부친의 배려로 9서(4서5경)을 섭렵했으나 유교와 양반의 장벽에 절망, 청명교체기(淸明交替期) 사신 등으로 조선국을 찾은 중국인들이 그의 시문詩文을 구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는 천재문인,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국 양대 여성시인으로 통하는 누이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를 중국과 일본에 먼저 알린 멋쟁이 아우, 적자와 서자를 구별하지 않는 기방에서의 통음이 즐겁고, 서출과 어울려 논하는 방담이 편할 수밖에 없었던 출생의 비극, 정서적으로 통하는 광해왕의 총애가 무색할 정도로 기행을 일삼은 서출 관리, 마침내 허풍에 다름 아닌 반 왕권신수설자로 자신은 물론 멸문지화를 입게 되니...
최초의 한글소설이자 최고의 사회소설『홍길동전』에서 주인공 홍길동의 修身이 문무를 겸한 소년으로 성장한 것까지고, 齊家는 부친에게 호부호형을 허락받음으로써 적어도 자신의 생가에서만은 적서차별 타파를 이루었다는 것... 그와 동시에 심신이 조숙한 8세 소년 길동은 집을 나옵니다.
8세 소년, 천재를 병적으로 선호하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어버이들 덕분에 늘 사용된 과장법이었고, ‘상상을 통한 꿈과 희망 현실화하기’가 소설의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전개부 - 활빈당 당수 홍길동의 모험
전환과 절정 - 율도국律島國 건설로 장편소설 같은 단편소설 홍길동은 막을 내립니다.
“옛날 장충의 아들 길산은 칠팔 세 유년으로 집을 떠나...” 등으로 소설(小說 = 허구虛構 = fiction = 마음의 진실을 형상화하기 위한 거짓말)임을 강조하고
체험을 바탕으로 상상력과 희망과 소망을 가미하여 마음의 진실을 형상화하기 위한 거짓말임을 주장하지만 작자 허 균과 그가 그리는 자전적 이야기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소설 홍길동전을 이야기하다가 홍길동이 되고 역적이 되어버린 허 균, 오늘날 위대한 자전소설로 우뚝합니다만
金光洙
1971년 단편소설집 『여행자들』
장편소설『열리는 혼』 외 11권
2012년 상상탐구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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