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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이름 (파라샤) | 모세오경 (토라) | 예언서 (하프타라) | 신약 (브리트하다샤) |
키 테쩨 (네가 나가서) | 신 21:10-25:19 | 사 54:1-10 | 눅 23:1-10 |
<단락 1> 1. 신 21:10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네가 나가서’의 히브리어는 ‘키 테쩨’입니다. 히브리어 ‘키’는 ‘때와 시기’를 의미하며, 히브리어 ‘테쩨’는 ‘결과를 이루어내다’ 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예슈아의 이름을 가지고 사단과 싸우게 될 때, 이번 주 좋은 결과를 이루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신 21: 11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12.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13.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이 말씀은 사단과 싸워 이기신 예슈아께서 사단의 포로 중에 있는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는 장면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보면,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연연하다’의 히브리어는 ‘하자크’이며, ‘연합하다, 달라붙어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과 이방교회가 한 새 사람이 되어지는 예표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이방 여인 (이방 교회)를 이스라엘 집 (히 : 베이트) 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신 21:12).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베이트 (집)’는 단순한 거주 장소가 아닌 이스라엘 나라의 공동체로 하나가 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0절에 ‘10.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땅에 회복되어질 에덴동산의 모습을 계시하여 주었으며 (히 11:10),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 (아버지의 집, 새 예루샬라임 성전)을 사모하였습니다 (히 11:16). 이방 교회 또한 예슈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졌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이어갈 자가 되었습니다 (갈 3:29). 그래서 우리는 매주 마다 샤밧을 지키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예행연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머리를 밀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머리를 미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우리의 주인은 사단이었습니다. 그 결과 악한 영에 의해 육체의 욕망을 우리의 신으로 삼고, 세상적인 일에만 집중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감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셋째, 손톱을 벱니다. 이것은 우리의 우상숭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와 세상의 풍습을 잘라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말씀합니다. 죄란?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우리가 주인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위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을 섬기는 행위가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넷째, 포로의 의복을 벗어 버리며 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다섯째, 한 달 동안 애곡합니다. 우리는 예슈아를 믿고 구원이 시작되었지만, 우리 안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죄인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신랑 예슈아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실 때까지 우리는 신부의 단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말씀 합니다 (마 22:14). 그 이유는 많은 이들이 구원은 시작되었지만,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1)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성경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하게 되어졌을 때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의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 예슈아를 십자가에서 저주하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1) 갈 3:1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 (히 : 마아쎄 하 토라)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 (히 : 쉐미라트 하 토라)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
사도 바울은 신명기 21장 23절에 나온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것’을 갈라디아서 3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종교적 위선과 행위에만 집중하면서 신앙생활 하지 말고 (히 : 마아쎄 하 토라 : 종교적 행위), 하나님의 말씀 지켜 행하는 자 (히 : 쉐미라트 하 토라 : 믿음으로 토라를 준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2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종교적 행위는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지만, 믿음으로 토라를 준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예슈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씀하며,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 7장 12절에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말씀합니다. 율법의 저주란? 율법 자체가 사람을 저주한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길 때 따라 오는 저주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토라에 불순종하게 되면, 모든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슈아는 우리를 불순종의 저주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토라를 어긴다면, 그로 인해 저주를 받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참고로 현재 유대인들은 예슈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저주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메시야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 21:23). 그러나 예슈아께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것은 맞지만, 그 저주가 예슈아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 시온을 위로하는 다섯 번째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단락 2> 2. 사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샬라임을 향하여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하는 불임 여성으로 표현합니다. 참고로 사라의 장막은 예루샬라임 성전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 (현대인 성경) ‘그러나 하늘의 예루살렘은 자유인이었던 사라를 의미하며 그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사라는 이사야 54장의 말씀처럼 출산하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삭을 얻게 되어졌으며, 그녀는 열방의 어머니가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슈아의 재림 때에 열방 교회가 예루샬라임의 딸 (시온의 딸)인 동시에 사라의 딸로 일어나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게 되리라는 예언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루샬라임을 위하여 노래해야 하는 이유는 (사 54:1) 천년왕국 시대가 끝나게 되어지면, 하늘의 예루샬라임과 땅의 예루샬라임은 하나가 될 것이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 3:12, 계 21:2). 스가랴 2장 4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재림 예슈아께서 거하실 예루샬라임은 돌로 만들어진 성벽이 아니라 불로 만들어진 성벽이 될 것이며,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될 것입니다 (사 49:19-21).
1)사 54: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예루샬라임이 지금까지 겪은 수치와 부끄러움과 모욕 (바벨론 포로, 로마의 침략, 유대인 학살 등등)을 잊게 될 것이며, 더 이상 버림 받은 자나 황무지라 불리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남편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선, 하나님은 예루샬라임과 유다 백성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로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루샬라임을 기뻐하고 그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결혼하여 영원한 기쁨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방교회들에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신랑이시며,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거울로 삼아 본보기가 되게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고전 10:11).
(1) 사 54:9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이사야 선지자는 배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고,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신 것을 노아의 홍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슈아의 재림 때에 완전히 회복되어진 이스라엘은 노아의 홍수 심판 때처럼 다시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하십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심판이란? 새로운 시작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심판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길 원하시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셔서 이 땅을 에덴동산과 같이 만드시는데 심판의 목적을 두고 계십니다.
(2)사 54:10 ...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예슈아의 재림 때에 하나님의 자비 (히 : 헤세드 : 언약을 기반으로 한 사랑)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떠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화평의 언약 (히 : 브릿트 샬롬)’이라고 부릅니다. 에스겔 37장 26절에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 (히 : 브릿트 샬롬)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8.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말씀합니다. 이사야 54장과 에스겔 37장에 나온 화평의 언약은 예슈아를 통하여 맺게 되는 새 언약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슈아는 온 열방과 민족과 화평의 언약 (영원한 언약)을 세워서 천년 왕국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우리 마음에 계신 성령님을 통하여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토라로 운영되어지며, 이 땅을 완전한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피조물들은 가장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구약에 나온 언약은 옛 언약이고, 우리는 예슈아를 통하여 새 언약을 받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새 언약은 옛 언약의 토대 위에 세워져서 옛 언약을 새롭고 구체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키며, 그것을 더욱 견고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로마서 2장 5절에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말씀합니다. 죄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세상의 종으로 만들고, 힘들고 어렵게 이 땅에서 살게 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는 죄와 세상과 싸우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죄와 싸우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