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45 서양철학13 명상록 3
[인문학 고전콘서트] 28부-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3강-로고스를 따르는 삶(1: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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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마르쿠스 아우렐리스의 명상록 오늘 마지막 시간입니다. 14번 한번 보시죠.
[14. 아침에 마지못해 일어났다면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지금 인간의 임무를 하기 위해 일어나야한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며, 내가 이 세상에 보내진 이유가 되는 그 일을 하려고 하는데, 불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니라면 나라는 존재는 잠옷을 입고 누워서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5-1)]
아침에 마지못해 일어났다면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지금 인간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본인한테 한 말이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제 전날에 과로에 시달리고 이제 주무시고 아침 일어날 때 일어나기 싫을 수 있잖아요. 누구나 본인도 황제 노릇 하기 싫을 수 있고요. 또 궁정에서 암투 벌이기도 싫을 수 있고 다 싫을 수 있는데 그때 자신한테 지금 들려주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침에 혹시 일어나시기 힘들다면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나는 지금 인간의 임무를 하기 위해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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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으려고 태어난 거 아니지 않은가. 이제 이런 말을 해 주시라는 겁니다. 대신에 인간의 임무가 뭔지 정확히 알아야죠. 뭐였죠? 지금까지 명상록에서 얘기하고 있는 거는. 이성을 쓰라는 겁니다. 자신의 이성 자신의 신성이죠. 로고스 선은 하고 악은 하지 마라 하는 자신의 신성을 따라서 오늘 또 하루 또 새롭게 내 안에 있는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일어나서 활동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냥 누워 있어서는 인간이 아니라 그거는 식물도 할 수 있고 아주 그 저차원적인 동물도 할 수 있는 그런 거 구현하려고 내가 지금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귀한 시간을 인간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일어나야 된다. 이런 아침에 이런 각오를 다지시고 일어나시라는 겁니다. 또 하나 그려놓고 시작하죠. 저는 늘 도너츠 하나 그리고요. 안에는요. 로고스 이성 이게 이제 강의 때마다 다르죠. 불교 강의 때는 이때 참나나 불성을 그리겠지만 서양철학에서는 로고스라고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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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그리고 얘기했었죠. 영혼, 이게 지금 제가 지어낸 게 아니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렇게 얘기했죠. 육신이 있고 바깥에는 안에 영혼이 있고 그 안에는 이성이 있다. 이성이 우리 삶을 지도해야 된다. 영혼은 욕망에 취약하다. 예전에 다 나왔던 얘기입니다, 명상록 안에서. 이성은 삶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원칙이 뭘까요? 선은 하고 악은 하지 마라. 선은요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거 악은 모두에게 해로운 거. 그리고 우주는 이 원칙이 이거는 사실은 이 원칙은 우주적인 신의, 로고스가 사실 신이니까요. 신의 원칙이다. 왜냐 신은 전 우주를 자기로 보겠죠. 전 우주가 신과 둘이 아니겠죠. 신은 우주의 통치자고 온 우주는 신의 원리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신의 입장에서는 온 우주에게 도움이 돼야 좋은 일이고 온 우주에게 해로운 일은 안 좋은 일이죠.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만 보니까 나한테 해로우면 안 좋은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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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이로우면 좋은 일인데 신의 입장에서 이 로고스는 이런 대원칙을 공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영혼은 반대겠죠. 영혼은 욕망에 취약해요. 나한테 좋으면 이로우면 좋은 거,고 나한테 해로우면 나쁜 겁니다. 이렇게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거. 그래서 우리 안에는 인간은 두 가지 본성을 다 가지고 있어요. 이것도 인간의 본성이에요. 성악설도 맞는 이유가 이건 성선설이고 이건 성악설이죠. 성악설도 맞아요. 우리 이 영혼 에고라고 제가 부르는 작은 자아 입장에서는 작은 자아는요 사실은 무지와 아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요 나만 중하고 내 입장만 중합니다. 이게 무지랑 아집이에요. 내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고 내 뜻대로 내 입장이 내 삶의 원칙인 거예요. 내 입장 나에 대한 사랑, 나에 대한 집착 이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자체를 악하다고 할 수 없지만 악의 성질, 악으로 기우는 성질을 사실 갖고 있어요. 그래서 움직이면 욕망에 너무 취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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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으로 금방 흐릅니다. 그래서 이 성악설은 에고의 이런 에고의 에고가 지닌 본성, 에고가 에고 자체가 악은 아니에요. 사실은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운 걸 싫어할 뿐이죠. 그러다 보니까 쉽게 악에 물듭니다. 악의 기본적인 성질을 갖고 있어요. 무지랑 아집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에고 자체가 악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쉽게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악에의 조건을 갖고 있어요. 이런 부분을 가지고 성악설을 얘기하는 겁니다. 본성에 이미 문제가 있다. 악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대신에 성선설은 뭐죠? 이 영혼은 동물도 다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이성의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은 선을 지양하고 악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이게 맹자의 주장이고 이건 순자의 주장이죠. 그래서 이 입장을 보면 똑같습니다. 입장을 보면 뭘 보느냐의 차이지 사실 근원적으로는 똑같아요. 왜냐? 순자도 그럼 악하게 그냥 두라는 얘기가 아니죠. 순자도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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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으로 가르쳐가지고 다시 선으로 만들어라는 주장을 해요. 결국에 순자 말에도 모순이 있는 게 원래 악한 성질이라면 가르칠 수 있을까요? 개의 본성이 원래 말을 못한다면 걔한테 말을 시킬 수 없는 거죠. 가르칠 필요도 없는 거고. 인간의 본성이 원래 약하다면요. 선하게 할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사실은. 가르칠 수도 없어야 맞아요. 근데 인간은 가르치면 선하게 되거든요. 이게 순자 말에 또 모순이 있다는 겁니다. 성악설은요 그 자체로 모순이 좀 있어요. 악한데 그냥 악하게 살자고 주장하는 성악설이라면 차라리 나은데 순자같이 악한데 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면 모순이 있습니다. 이해되시죠? 그래서 이 맹자의 주장이 좀 더 본질적으로 좀 차원이 더 높고 순자의 주장도 대신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게 인간의 이기성에 대한 통찰에 있어서는 또 순자의 의견, 성악설의 의견도 들어야 돼요. 이거 무시하고 이성이라는 건 없거든요. 우리가 이성 하나를, 이성적인 삶을 한번 살려고 하면요 어마어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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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영혼의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우리는 안 돼요. 즉 성악설도 우리의 실존이기 때문에 악한 본성과의 이 투쟁, 선한 걸 구현하기 위해서 저 내면에서 올라오는 선한 어떤 의지를 선한 욕망을 이 악한 욕망과 어떤 대립을 통해서 악한 욕망과의 대립을 통해서 구현해내야 되기 때문에요 순수하게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니까 그러면 그냥 가만 놔둬도 선해야 되잖아요. 또 그렇게 안 되거든요. 이게 인간의 아주 좀 지랄 같은 부분이죠. 인간의 모순이에요. 본성의 악한 본성과 선한 본성을 다 갖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왜 이게(이성) 더 위라고 보느냐? 지금 서양철학자들도 동양 철학자들과 서양철학자들이 다 같은 결론을 지금 내리고 있는 게 이성이 더 위라고 보거든요. 왜냐하면요 여러분이 아주 간단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얘기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평온을 찾아라. 생각 근심 다 내려놓고 내면의 평온을 찾아라. 이런 얘기를 지금 계속해왔죠. 내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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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을 한번 찾고 보세요. 지금 성함 모르시죠? 제가 늘 간단하게 도와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무개라는 것만 내려놓으세요. 아무개라는 것만 내려놓으시면 내면이 평안해집니다. 아무개인 나 윤홍식인 나가 없다면요 제가 걱정할 이유가 없어요. 그냥 존재만 해보세요. 존재하는 나로서 만족해 보세요. 어떤 가정을 가지고 있고 언제 태어났고 돈을 얼마 가지고 있고 어떤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나!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냥 나! 조건 없는 나! 조건 없는 나로만 존재하신다면요. 욕망을 부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즉 에고, 작은 자아 차원에서는 성악설이 맞아 돌아가는데, 고차원 자아 더 어떤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자아 영역으로 우리가 들어가면요. 욕망들이 침범할 수가 없어요. 거기에는 성욕도 물욕도 권력욕도 명예욕도 침범하지 못해요. 작은 자아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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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려놓고 큰 자아로 존재하신다면, 여러분이 남을 도와주고 싶고 양심 바르게 살고 싶다면요 의지를 위해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거는 에고의 또 다른 욕망일 뿐이에요. “나는 돈도 많은데 이제는 도덕적인 사람도 돼보자.” 그럼 그건 욕망입니다. 그렇게 될 게 아니고 욕망을 내려놓으세요. 아무개인 나를 내려놓고요 순수한 존재로서의 나로 존재해 보세요. 어떠한 이기성도 부리지 않고요 우리 마음 안에 순수한 영역이 있다는 걸 아실 거예요. 그 순수한 영역의 본성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니까 순수한 영역에 있는 본성이 지금 로고스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선을 좋아하는 거고 선을 구현할 수 있는 거지. 지금 이 로고스는 뭔지 모르고요 영혼이 노력해가지고 뭔가 선을 하려고 하면요 이거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화두를 던져놓고 고민을 해보면요 계속 모순에 빠지는 답만 나오는 이유가 로고스 차원에서 양심 차원에서 얘기하는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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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욕망의 차원에서 얘기하니까 이렇게 하면은 나한테 이롭고, 근데 모두한테 이롭자고 하니 나한테 손해가 나오고 이해(利害)가 지금 계속 지금 충돌이 나니까 모순에 빠진다는 겁니다. 양심에서는 모순에 안 빠져요. 로고스에서는. 왜냐? 개인의, 지금 기준이 개인이다 보니까 개인이나 작은 조직이다 보니까요 이쪽에게 이로운 게 전체에 해로울 수 있고 전체에는 이로운 게 나한테 해로울 수 있는데 로고스의 기준은 전체다 보니까 이건 전체적인 관점 아닙니까? 전체에서는요. 그렇게 했을 때 전체가 이로워지면 좋은 거고 전체에 해가 가면 나쁜 거거든요. 양심 차원에서는 이렇게 결정해요. 그래서 양심 차원에서 결정을 내려버리시면요 아주 속 시원하게 결정이 납니다. 그런데 이 개인의 욕망 차원에서 이게 이 양심 정의란 선이란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요. 복잡해져요. 문제가 잘 안 풀리게 돼 있어요. 이게 실제로 서양에서 나온 도덕 이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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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죠? 처음에 처음에는 때리면, ①때리면 겁나서 말 듣는 단계, 양심을 지키는 단계의 도덕성. 양심이라는 말도 지금 없어요. 그냥 겁나서 룰을 지키는 겁니다. 룰만 있어요. 조직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라. 왜냐하면 이게 양심 차원으로 지금 이해가 안 됐기 때문에요 ②상을 주면 지키는 단계가 그다음 단계입니다. ③칭찬해주고 공감해 주니까 룰을 지키는 단계가 3단계입니다. 이게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Kohlberg's stages of moral development)인데요. 지금 이게 세계에서 제일 도덕성을 설명 잘했다는 이론입니다. ④4단계가요 조직의 룰이니까 지켜라. 전체에서 정한 룰이니까 지켜라 하면 지키는 단계입니다. 근데 5단계는요. ⑤전체의 룰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공익에 도움이 되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해서 공익까지 이해한 단계. 여전히 이건 사실은 이익의 단계입니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니까 정의다라고 지금 정의를 내려요. 이 정도면요 우리 전 세계에서 도덕성이 꽤 높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단계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로 논합니다. 그럼 답이 안 나오는 이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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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에 도움이 되는 반면에 분명히 누군가 개인한테 또 손해가 와요. 이익의 충돌이 딱 만나게 되면요 딜레마에 빠져요. 과연 이거는 공익에 도움이 된다라고 누군가 손해 보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러면 뭔가 이익이 안 되는 부분이 나오는데 공익이라는 말만으로 그게 합리화될 수 있는가라는 모순에 빠져요, 이 정도 단계에서는. 그런데 이 콜버그가 이 단계 위에 하나 더 단계를 만들어 놓은 게 ⑥양심의 단계입니다. 양심에서는요 누군가 손해 보더라도 그게 다수에게 이익이면 맞다라고 얘기를 해주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양심의 소리를 직접 들어버리면 이 모순이 해결돼요. 이해되십니까? 내면에서 이익을 따지는 한 해는 뭔가 손해 보는 게 나오면 딜레마에 빠져요. 그런데 그 손해를 감수하고도 그게 옳다라고 하는 더 내면의 소리를, 로고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요 이제 더 높은 수준의 그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게 서양에서 지금 이걸 연구했잖아요. 그런데 이 양심의 단계는 이걸 만든 콜버그마저도 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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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철학자만이 도달한 단계다 라고 사실은 이거 어떻게 이 단계를 만들 수 있는지도 자기는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사실은. 양심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답이 없습니다. 지금 교육학에서. 그래서 근데 죽기 전에 한 단계 더 만들어요. ⑦우주 영생의 단계. 사이비 종교 같은 이름인데요. 우주 영생의 단계를 하나 더 만들어요. 이건 이제 성인들의 단계도 있는 것 같다. 양심이 개인의 양심 차원을 넘어서서 우주적인 양심의 단계로 나아간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공자나 이런 예수님 같은 사람. 근데 이 두 단계는 지금 본인도 자신은 없어요.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라고 해서 만든 거예요. 본인은 이해 못했어요. 콜보그 자신도 5단계까지는 이해하지만 6, 7단계는 있는 것 같다 예요. 철학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재밌는 게 우리나라 예전에 어려서 사자소학부터 가르치죠. 그러면 첫 번째 첫 번째 가르치는 게 너희 안에 인의예지 양심이 있다. 양심 계발해야만 사람 된다 하는 이것부터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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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 얘기인지 아세요? 우리나라 옛날 인성교육 수준이 엄청 높고요 그 인성교육이 갖고 있던 그 프로그램이요 지금 서양에서는 없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시작부터 소학 때 양심이란 어떤 거다에 대해서 구체적인 거를 몸으로 실천하면서 배우게 돼요. 청소하면서, 가정 이제 부모님하고 응답을 어떻게 할 건지 인간관계 속에서 예절을 통해서 배우고 내면에 있는 양심을 계속 자극하다가 언제 양심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 들어가냐면 대학 들어갈 때 옛날로 태학이면 15세 이상 20세 이상인데 그때는 이제 본격적으로 그전에 익혔던 좋은 습관의 근원이 왜 그게 옳은 일이었냐면 내 양심이 그렇게 지지해서다라고 양심으로 바로 들어가는 게 이제 대학, 15세부터입니다. 그래서 공자님 논어에 15세에 나는 학문의 뜻을 세웠다 하는 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양심 밝히는 학문을 뜻을 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자님의 15세 지우학(志于學)이요. 사실은 이 6단계에 해당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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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양심 알겠다 하는 선언이에요. 양심이 뭔지 알겠고 양심을 밝히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했다. 그다음 30세는 뭐였죠? 립(立) 학문이 확립됐다. 양심 어떻게 닦는지 확실히 알았다. 40세 불혹(不惑). 양심을 가지고 세상사를 가지고 판단해 봤더니 의혹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 양심으로 판정하니까 다 판정되더라. 50에 지천명(知天命) 양심의 소리가 내 양심이 아니라 우주에서 내는 소리더라. 7단계로 넘어갑니다, 지천명에서. 내 양심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천명(天命)이더라. 하느님의 명령이 그대로 들리더라가 지천명입니다. 50에 지천명. 양심이 무르익어서요 그 우주의 입장과 하나가 된 거예요. 우주의 입장과 우주가 원하는 게 내 양심이 원하는 거랑 하나다라는 걸 명확히 아는 단계가 지천명입니다. 60에 이순(耳順) 그 천명을 귀 이(耳)자. 귀로 듣고 순종할 순(順)자 순종한다. 여기서 귀가 순해지다가 아닙니다. 귀로 듣고 명령을 순종한다,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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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입니다. 귀 이자가요 들을 이자 따를 이자예요. 말을 들을 이, 말 따를 이, 말을 듣고 따르고 순종, 천명에 순종하다가 아직 50, 60세는요 아직 천명하고 약간 거리가 있어요. 천 명이라는 걸 알긴 했는데 천명과 하나가 되지는 아직 못했어요. 욕심과 편견의 때가 조금 있어요. 70에 이제 가야 비로소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천 명을 어길 수가 없는 경지에 도달합니다. 70에 가면 이 우주 영생의 단계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죠. 이 서양에 이 이론만 있는데 어떻게 닦는지는 모르겠다 하는 그런 부분들을요 동양에서는 지금 소학이나 논어를 통해서 예전부터 지금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대로 꼭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확하게 알고 공부했던 분들은 서양에서 상상 못할 어떤 결과를 냈겠죠. 서양철학도 똑같아요. 내면에 있는 이 로고스를 파야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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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알고 지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을 했지 않습니까. 이런 분들은요 파고 파다 보면 지금 이 양심의 단계나 우주 영생의 단계 어딘가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이전에 이 단계들(①~⑤은요 로고스가 뭔지 몰라요. 우리 안에 선으로 인도하는 로고스가 있다는 거 아직 모릅니다. 다만 그게 더 이익이 되는 것 같으니까 하자. 여기(①)는 진짜 때리니까 하자예요. 안 맞으려면 하자. 여기(②)는요 상을 주니까 하자. 칭찬해 주니까 하자(③) 전체에서 정한 룰이니까 하자(④). 그게 전체한테 이익이 된다니까 하자(⑤). 뭔가 찜찜한 게 있죠, 아직. 근데 왜 나는 괴로울까? 양심이니까 하자(⑥)에서 진짜 자유가 와요. 양심이니까 하자에서는 자유가 와요. 여러분이 군대 갔는데요. 지금 전쟁 났다. 가자 총 들어라. 국민을 위해서 총 쏘러 가자. 그러면 좀 뭔가 꿀꿀하시겠죠. 전쟁이 났는데 왜 이제 국민으로 있을 걸 왜 하필 군인으로 있어가지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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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야 되나? 전체 룰이니까 가자. 찜찜하죠. 이게 국민한테 이익이 되니까 가자. 그래도 뭔가 불편하죠. 그런데요 “너 양심에서 지금 가라고 하지 않니?” “예!” 그러고 가는 사람은 기뻐서 가요. 마음이 자기가 풀려서 가요, 그래도. 마음이 전쟁에 참가 안 하는 것보다 참가하는 게 더 편해서 가는 거예요. 이게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봉창 의사가 31살에 그 뭐죠? 거기 가실 때 돌아가시려고 이제 아주 이제 준비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때 그 한 말이 있잖아요. “내가 31살의 모든 쾌락은 다 맛봤다.” 뭐 어디까지 노셨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쾌락을 다 맛봤다. 이제 영원한 쾌락을 맛보기 위해 독립운동하러 왔다.” 그래서 김구 선생이 오히려 처연해지는데 이 사람은 밝게 웃으면서 갔다는. 이런 이 마음이 양심에 흡족하니까 지금 이게 일어난 일이지 공익 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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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따지고 하면요. "근데 왜 난 손해 봐야 되지?" 하는 이런 또 의문이 나요. 이익으로 따지다 보면. 그게 로고스의 명령이기 때문에 내 안에서 그 울림이 큰 겁니다. “로고스의 울림이 사실은 신이더라” 하는 게요 동양에서 “내 양심인 줄 알고 봤더니 알고 보니 천명이더라” 하는 거랑 똑같은 얘기입니다. 하늘의 명령이더라, 사실은. 인간의 임무를 다해야 된다는 건 이겁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오늘 하루 내 양심을 온전히 구현을 못하거나 양심대로 뭔가 일을 못하고 간다면 오늘 하루 공치는 거고, 인간으로서 삶에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말까지 했어요. 인간이 로고스를 따르지 않으면 인간은 그때부터 멸종된 거다. 동물 중에 좀 머리 달린 동물이 돌아다니는 거지 인간은 멸종됐다. 즉 신의 로고스를 구현하기 위한 특별히 혜택을 받은 그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구에 사라진 거다. 제가 예전에도 그런 말씀 드렸어요. 우주는요 인간한테 엄청난 혜택을 줬다고요. 이 뇌가요 어마어마한 뇌예요. 다른 동물들이 갖고 있는데 그 컴퓨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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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286 막 이러면 지금 여러분들의 뇌는요 어마어마한 뇌예요. 별짓도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상한 짓을 많이 해요. 이 뇌를 가지니까. 동물들은 뭔가 죄를 짓고 싶어도 뇌가 딸리니까 죄를 못 짓잖아요. 결심했다가도 금방금방 까먹어 버리지 않겠어요. 뭘 해야지 했다가 잊어버리고. 근데 여러분은 머리를 써가지고 머리를 써서 한쪽으로 몰고 가면요 아이디어 창조적인 아이디어까지 떠올라 가지고 뭔가 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엄청난 컴퓨터들을 갖고 계신데, 그래서 인간한테는요 이런 철학자들이 계속 나와서 절대 그 컴퓨터를 욕망을 위해서 희생하지 마라. 욕망은 당연히 여러분이 무시할 수 없는 거고 추구해야 맞지만 로고스의 지배를 받게 하라. 이게 핵심입니다. 욕망을 없애자 하는 사람들도 좀 황당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이 치고 욕망 없는 분들 못 봤어요. 차라리 욕망 나 있다. 근데 늘 힘들게 싸우고 있지만 늘 양심이 이기게 노력하고 있다. 이런 분이 더 진솔한 분이지 나 욕망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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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 바로 사기꾼입니다. 저 성욕 없는데요. 사기꾼입니다. 식욕 없는데요. 뭐 없는데요. 물욕 없는데요. 명예욕 없는데요. 인간은 다 있게 돼 있어요. 문제는 그거를 나는 로고스로 다스리고 있습니다라는 분이 철학자고 성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분이다. 난 적을 정확히 알고 난 다스리고 있습니다. 욕망이 적이라는 건 아니지만 이성 입장에서는 적처럼 관리를 해야 되는 영역이죠. 그래서 이런 입장, 이 정도 이해하시고 지금 읽어보세요. 나는 지금 인간의 임무를 하기 위해 일어나야 된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며 내가 이 세상에 보내진 이유가 되는 그 일을 하려고 한다. 뭔 일일까요? 그냥 로고스를 실천하는 일이에요. 로고스대로 말하고 로고스대로 생각하고 로고스대로 행동하면 돼요. 불만을 내가 가질 수 있겠는가? 아니라면 나라는 존재는 잠옷을 입고 누워서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아침에 한 번 일어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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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뭐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되게 일어나기 싫으셨나 봐요. 그래서 너 일어나야지 잠옷 입고 이렇게 있다 보면 너가 뭐 그 누에고치도 아니고 일어나서 뭔가 너의 너만이 표현할 수 있는 로고스를 표현해 봐. 이렇게 본인한테 이렇게 해주는 얘기입니다. 그다음에 15번이요.
[15. 귀찮고 마땅하지 않은 모든 잡념을 물리쳐 씻어내고, 즉각 최고의 평온 속에 머무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5-2)]
귀찮고 마땅치 않은 모든 잡념을 물리쳐 씻어내고 즉각 최고의 평온 속에 머무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여러분 방법 아시죠? 몰라요. 몰라 괜찮아의 달인이에요. 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지금 이 말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나를 괴롭히는 잡념들, 단박에 내려놓고 최고의 평온 속에서. 최고의 평온은 뭔지 아십니까?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예요. 생각이 하나만 일어나도 여러분을 괴롭히거든요. “조금 이따 뭐 해야지” 하는 것만 해도 에너지를 잡아먹어요. 그 생각이 여러분 뇌에서 계속 돌아다니면서 그 일을 여러분한테 준비하게 시키고 고민하게 시켜요. 그래서 그런 고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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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게 쉰다는 거는요 정말 나라는 존재를 좀 망각해야 돼요.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할 정도로 생각을 뚝 끊고 생각을 초월해서 내가 존재할 수 있거든요. 이 로고스의 영역은요 평온 속에서 더욱 또렷해집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이 평온의 자리를 찾으셔야 돼요. 잡념은 보이스피싱과 같아요. 제가 늘 얘기하지만. 전화해가지고 여러분을 아무리 협박해도 여러분은 속으면 안 돼요. 뭐라고만 하셔야 돼요 “몰라요. 괜찮아요.” 요즘 개콘에도 나오잖아요. 전화에서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치지 않습니까. 여러분 뭐 아무튼 자녀분이 납치됐어요. “몰라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실 수 있는 그 배짱으로 “몰라요. 괜찮습니다”라고. 여러분의 잡념은 그 정도도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 잡념들은요 툭툭 말이 끊어져요. 다음 말이 못 나옵니다. “너 지금 돈 벌어야지 이렇게 있다가는 큰일 나”라고 했을 때 “그러게.” 하면 이제 말립니다. 고민을 이제 떠안는 거예요. “그럼 이제 좀 쉬어야 돼.” 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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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일을 하고 아이디어가 나올 텐데 쉬지 못한 채로 계속 그 고민에 시달려요. “내가 돈을 벌어야 되는데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나? 계속 왜 나는 빨리 어떤 아이디어가 안 나오나? 왜 답이 안 나오나?” 이러면서 자책하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로 자기한테 내상을 입히고 있는데 현명한 분은 “‘몰라 괜찮아”라고 말해버림으로써 잡념이 뚝 끊어져버립니다. 그건 평온 속에서 존재할 수가 있죠. 그래서 지금 이 얘기입니다. 귀찮고 마땅하지 않은 나한테 귀찮을뿐더러 마땅하지도 않다는 말이 중요해요. 자명하지 않다는 거예요. 지금 그 고민하는 게. 지금 그 고민을 해서 조금도 상황이 나아질 일이 없는데 또 고민하고 있는 고민에 중독돼 있는 상태입니다. 고민에 중독돼 계시면요 습관적으로 그 고민을 계속하실 뿐이지 어떤 창조적인 답도 나오지 않아요. 그걸 아는데도 계속하고 계세요. 고민 안 하고 있는 게 불편해서 그냥 하시는 거예요. 현명한 분은 그때 “몰라 괜찮아” 해가지고 단호하게 쳐내버립니다. 이 잡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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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면 최고의 평안 속에서 머물 수가 있어요. 살면서 이런 평안 속에서 좀 머무시는 그런 머무시면서 좀 휴식을 취하시는 그런 기간을 좀 많이 갖길 바라십니다. 잡념 가지고 스트레스 받는 그 시간만 빼서 명상해도요 여러분 다 성불하세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우리가 잡념에다 보내는지 아십니까? 그래서 그 심리학자들이 얘기하지 않습니까. “오늘 하는 고민의 뭐 구십 몇 프로 이상은 어제 했던 거고 그제 했던 거고 한 번도 답이 나온 적이 없는 고민들이다.” 오늘 죽으면 어쩌나. 뭐 이런 생각도 하고 길 가다가 차가 와서 나를 부딪히면 어쩌나. 뭐 별 생각 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게 안 일어나고 그냥 걱정이죠. 다만 그 걱정은 필요해서 일어난 거예요. 우리가 계속 삶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건 선택의 연속인데요 지금 제가 여기 서 있을지 여기 서 있을지 결정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 뇌에서는요 끝없이 여기 서 있으면 뭔 일이 생길지 여기 서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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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이득이 있고 뭔 손해가 있을지를 뇌는 계속 계산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잡념하는 이 뇌를 또 탓할 필요도 없으시고요. 여러분의 영혼은 잡념을 일으키게 돼 있어요, 애초에. 그러니까 영혼에 잡념 없길 바라지 마시고 잡념을 그냥 모른다 하시고 이 로고스의 영역으로 도망가세요. 평온의 영역으로 도망가서 평온의 영역에서 그냥 쉬세요. 원래 생각 없는 자리가 있고 우리 마음에 끝없이 생각만 하는 자리가 있고 두 자리가 있는 거지 이 생각 많은 자리를 생각을 없애려고 하시면요 또 그게 하나의 생각이 돼가지고 여러분 마음을 더 힘들게 할 뿐입니다. 이리 빨리 도망가시는 게 답인데 여기서 계속 똥밭에서 뒹구시면서 왜 똥을 어떻게 못 없애겠다. 똥을 닦으면 또 똥이 또 묻고 지금 이런 현상을 계속 겪다가 옆에 가가지고 똥 안 묻은 데 가서 좀 가만히 계시면 될 텐데 굳이 나와 가지고 뒹굴면서 생각을 못 없애겠다. 내 마음에 잡념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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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이런 말 하실 필요가 없어요. 잡념이 일어나는 줄 알아차리는 여러분의 내면의 이 순수의식은요 잡념에 물들지 않아요. 잡념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줄 알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줄 알지 잡념이 아닌 자리가 있어요, 여러분 안에는. 이 자리로 도망가셔야 돼요. 여러분 영혼의 핵으로. 그 영혼의 핵에, 여기가 생각에 물들지 않으니까 오만 생각도 할 수 있는 거죠. 이 서양철학에서요. 이 신의 자리를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신,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인데요. 신은 뭐냐? 부동의 동자. 자기는 안 움직이면서 남을 움직이게 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 로고스도 신의 자리이기 때문에 이 자리는 사실 안 움직여요. 다만 이 자리가 있음으로 인해서 다른 영혼들이 촉발돼서 생각 감정을 일으킵니다. 그러니까 부동의 동자로 도망가셔야 돼요. 이름만 몰라 하시면 돼요. 내가 아무개 누구다라는 생각 갖고 계시면 생각이 계속 일어나게 돼 있기 때문에 이 생각 없는 자리로 들어가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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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괜찮아 하고 잡념에게 무관심을 선물해 주세요. 그러면 여러분 내면에 즉각 최고의 평온 속에 머무는 일이 가능해지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얼마나 쉬운가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냥 뚝 끊어버릴 수 있었던 거예요, 이분은.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는데요. 이분이 귀찮은 잡념, 마땅하지 않는 잡념이 나타나면요. 뚝 끊어버리는 힘이 있었다는 겁니다. 끊고 몰라 하고 우리처럼 평온 속에서 아무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 쉴 수 있는 힘을 갖고 계셨어요. 이래서 이제 이분 책이 지금 명상록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겁니다. 명상을 잘하시는 분이에요. 다음에 16번.
[16. 당신이 늘 하는 생각이 바로 당신 정신의 특성이 된다. 왜냐하면 영혼은 생각에 의해 물들기 때문이다. (5-16)]
당신이 늘 하는 생각이 바로 당신 정신의 특성이 된다. 왜냐하면 영혼은 생각에 의해 물들기 때문이다. 영혼은 생각하는 물건이기 때문에요 생각은 없을 수가 없고, 이 영혼이 하는 이 생각이 어느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영혼이 사실은 질이 결정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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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시는 생각이 선은 하고 악은 하지 말자는 로고스를 따르는 생각을 하시면 여러분의 영혼의 질은 로고스를 따르는 영혼이다 보면요 같이 신성해지고요. 이쪽 방향으로만 늘 연구하시는 여러분의 영혼의 질은요 자기한테 이득이 되면 좋아하고 손해가 되면 싫어하는 이런 원초적인 의식 상태에서 머문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정신의 특성을 좀. 여러분이 생각하는 거에 의해서 결정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요 여러분 생각 어떤 거 하실래요? 생각의 질. 그동안 우리 이 강의를 통해서 배우지 않았나요? 뭐라고 했나요? 이 철학자들이. 남이 지금 당신 뭔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한 말이죠. 나는 이런 생각해 하고 자명하게 말할 수 있는 생각 아니면 하지 마라. 그렇게만 생각하신다면 여러분 생각을 늘 정리하고 계신다면 여러분의 그 영혼의 질도요 아주 수준이 높은 겁니다. 남한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생각만 하고 계신다면 여러분의 영혼의 질은 높아진 거죠. 영성이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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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되는 거죠. 이렇게 이렇게 여러분의 영혼의 질이 결정된다. 이런 얘기도 하나 참고하시라고요 제가 뽑아봤고. 또 만약 17번이요.
[17. 만약 당신이 올바른 길로 걸어가고, 올바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당신은 행복이 평온하게 흐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신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 모든 이성적인 존재의 영혼에는 2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며, 둘째는 정의로운 기질과 정의의 실천을 옳다고 보고, 그 안에서 욕망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5-34)]
당신이 올바른 길로 걸어가고 올바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지금 생각이 올바른 거죠. 당신은 행복이 평온하게 흐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게 지금 말은 안 나와 있지만 올바르다는 건 뭡니까? 로고스를 따른다는 겁니다. 여러분 안에 양심이 내는 자연의 소리 있죠? “그건 아닌 것 같아. 그건 맞는 것 같아.” 이거를 소크라테스는 뭐라고 불렀는지 아십니까? 다이몬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걸 지금 번역하면 성령이에요, 사실은. 성스러운 우리 안에 영혼의 핵이죠. 성스러운 영, 성스러운 신성, 신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고요. 다이몬이 지금 소크라테스가 그 최후의 법정에서 변론할 때 이런 말을 해요. 나는 어려서부터 다이몬의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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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다이몬은 하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한테.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하지 마라고 했었다. 하려고 하면 하지 마. 즉 그 하려고 했던 게 뭐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악이니까요. 어떤 걸 해라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내가 악을 저지르려고 하면 욕심을 부리면 아니야라고 내면에서 강하게 울렸다는 겁니다, 천명이. 이게 서양철학의 전통이에요. 그래서 이 다이몬의 소리, 천명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올바른 길로 갈 수 없다는 게 기본입니다. 그래서 로고스를 따르는 삶만이 이런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고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다면 행복이 평온하게 흐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양철학자들이 말하는 이 행복에는 하나 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아무 일 없는 거죠. 불만이 없는 상태, 아니면요 뭔가 욕망이 충족된 만족된 상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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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 없는 상태인데요. 철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에는 여기에 하나 이런 심리적인 거 말고요 하나 더 들어가 있는 게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하나 더 들어가 있는 게 로고스에 부합해야 돼요. 인간이 로고스대로 살고 있지 못하면요 저 내면에서 양심에서 불만이 일어나겠죠. 찜찜함이 나타나겠죠. 그럼으로써 이 행복이 이 욕망 차원에서는 되게 행복해야 맞는데도 안에서는 불만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돈도 벌었고 다 했는데 나로 인해서 한 천 명이 직장을 잃었어요. 내면의 근원적인 행복을 뭔가 저해하는 요소가 내면에 있겠죠. 양심이 아주 마비된 사람 아니고는 찜찜하고 뭔가 불편할 겁니다. 그것 때문에 뭐 기부도 할 수 있고 뭔가 그 양심에 뭔가 그 찝찝함을 풀려고 뭔가를 하시게 될 거예요. 이렇게 인간이 이 로고스대로 안 살면요 행복이라는 게 뭔가 저해를 받는다 하는 철학자들은 이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욕망이 만족되고 불만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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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만이 아니라 로고스에 맞게 삶을 살고 있다는 게 행복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래서 지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하는 말도 당신이 올바른 길, 올바른 방식으로 산다면이라고 전제하는 이유가 이렇게 로고스대로 양심에 찜찜한 건 안 하고 양심이 편하게 양심이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면 당신은 행복이 평온하게 흐를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뭡니까? 이 욕망의 만족만이 아니라 로고스의 만족까지 같이 가야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이거죠. 이렇게 결론을 내리시면 좋겠습니다. 신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 하느님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 즉 모든 이성적인 존재의 영혼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영혼도 지금 신의 영혼급으로 얘기하고 있죠. 로고스를 따르는 영혼들이라는 뜻입니다. 동물 영혼하고 지금 분별한 거예요. 동물의 영혼은 로고스를 따르는 삶을 살 수가 없죠. 의식적으로 따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능대로 사는 거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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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이라고 했을 때는요 이때의 영혼은요 저차원적인 영혼을 말하는 게 아니라 로고스를 구현하는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처럼 억지로 노력해서 구현하고 있건 신처럼 본능대로 사는 게 그대로 로고스인 차원이건 간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는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의로운 기질과 정의의 실천을 옳다고 보고 그 안에서 욕망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로고스를 따르고 로고스에서 옳다고 하는 정의를 구현하려고 욕망을 스스로 절제한다는 측면이고, 또 하나의 측면은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내가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로고스는요 누구에게 명령받는 존재가 아니에요. 로고스가 우주를 명령하는 자리지 부동의 동자라는 건 자기는 안 움직이면서 온 우주한테 명령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살아라 하고. 여러분 양심이 로고스가 그래요. 여러분이 욕심이 충만하더라도 아까 같이 평온한 마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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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개라는 욕망의 존재로서의 나를 잊어버리고요 평온한 상태에 머무시면요 내면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냐면요 이렇게 해야 양심에 편하고 이렇게 하면 찜찜할 거다고 하는 큰 다이몬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그걸 따르지 않으면 실제로 내 삶이 불편해져요. 죄책감이 생기고 가책을 받게 돼 있어요. 그걸 지켜주기만 하면 제 삶은 아주 행복하게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이 로고스가 지지해 줍니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걸 사실래요? 지금 그게 지금 로고스를 따르는 삶, 영혼의 특징인데 외부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 되게 중요한 이유가요 다른 사람이 여러분한테 해코지를 했어요. 다른 사람이 와서 여러분한테 비로고스적인 아주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고 여러분한테 해악한 짓을 했다고 치죠. 이때 여러분은요 아이 바르게 살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가실 겁니까? 내가 좀 마음 좀 잡고 살려고 했는데 이놈이 나를 건드리네. 이렇게 나가시면 여러분은 신의 영혼,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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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를 따르는 영혼이 못 된다는 거예요. 누가 나한테 뭔 짓을 하건 나는 나대로 늘 “이 상황에는 어떤 게 로고스에 맞지?” 하고 그렇게만 하시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한테 절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여러분의 의지하에 선을 실천하실 수가 있다는 거예요. 조금 더 남 탓하시면 안 돼요. 남 때문에 내가 선을 못 하게 됐다라는 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 제일 로고스에 맞는 가장 선한 행위, 어떤 결정이 있겠죠? 그 길이 있겠죠. 그 길을 그냥 가시면 돼요. 남이 악으로 나온다고 같이 악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요. 상대방을 처벌하는 건 선입니다. 악이 아니에요. 처벌은 선이에요. 불의를 정의로 갚아주는 거기 때문에. 법대로 처벌 공정하게 처벌하는 건 선입니다. 악이 아니에요. 악이라는 건요 법을 어기고 나도 또 똑같이 해주겠다고 복수를 하려다가 나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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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이 되는 그걸 말하는 겁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안 되고 악은 반드시 선으로 갚아라는 얘기를 결국 뭐라고 하냐면 여러분이 선을 하시는데 아무도 방해할 자는 없습니다라는 거. 여러분 말고. 여러분이 하기 싫어서 여러분이 욕망에 져서 안 하실 수 있어도요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선을 못 하겠다라는 건 말이 안 돼요. 이거 이해하십니까? 이게 로고스를 지닌 영혼들은 본인이 주재자고 본인이 경영자고 본인이 우주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절대 남 때문에 나는 못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환경이 안 좋아서 나는 로고스를 못 하겠다. 태어나서 로고스를 엄청 잘하려고 했는데 집이 가난하고 학비도 잘 못 대주고 해서 난 로고스를 구현 못하겠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요 앞에 했던 최고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노예였죠. 노예여도요 머리 달렸으니까 노예생활하면서 자기가 보고 들은 일에 대해서 어떤 게 로고스에 제일 부합한 일이냐 하고 따져보다 보니까 철학자가 돼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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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외부 환경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로고스를 구현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걸 보여주는 사람들이에요. 인간의 양심은 힘이 있고 이걸 구현하기만 하면 인간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걸 몸으로 보여주신 분들이 철인이고 성인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한마디 한마디 그냥 나온 말들이 아니에요. 몸으로 하면서 나오는 말들이기 때문에 연구하고 실천해보고 연구하고 실천해보고 엄청난 피드백을 하면서 자신의 로고스를 밝혀 오신 분들이 철인이고 성인들이고 현인들이고 그렇다 이렇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18. 신을 생각하며 끊임없는 사회적 행동을 하는 것, 오직 이 한 가지 일을 즐거워하고 이 안에 안주하라! (6-7)]
신을 생각하며 끊임없는 사회적 행동을 하는 것. 안으로는 이 로고스가 신이니까 로고스를 생각하면서 “내 안에서 신이 어떻게 나한테 살으라고 하지? 지금 이 길을 가라고 하나 말라고 하나?” 에픽테토스는요 이 예전에 아테네신전 가서 점치고 막 이런 거 많이 했지 않습니까. 점칠 때도요 유교랑 똑같아요. 유교도요 악한 걸로 점치면 안 되거든요, 주역에 절대. 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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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더 선일까요? 묻는 건 가능한데요 악하고 선을 갖다 놓고 뭘 할까요? 묻는 건요 애초에 하느님을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한테 답을 묻는 행위인데 하느님이 절대 원하지 않는 행위, 악을 가지고 와가지고 이게 저한테 이로울까요 해로울까요라고 점을 치면요 그건 신을 조롱하는, 신성 모독이 되기 때문에 안 돼요. 이 철학자들도 똑같아요. 에픽테토스가 이 말을 해요. 이미 로고스에서 맞지 않는 일을 가지고는 절대 점쳐선 안 된다. 그 예로 드는 게 친구가 적진에 갇혔어요. 그때는 친구가 이렇게 친구와의 우정이 끔찍하던 시대라 그럼 친구를 도와주러 가야 맞죠. 그걸 가지고 점을 치면 안 된다 이 말이 나와요. 도와주러 갈까요 말까요는 지금 나한테 이로울까요? 불리할까를 점을 치고 있는데 이미 친구를 안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이미 악한 마음이기 때문에 그걸로는 점치면 안 되고 신을 모독하는 행위다. 유교나 서양철학이 거의 유사합니다, 하는 말들이나 사고방식이. 그렇게 알아두시면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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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주역이랑 연결해서 한번 알아두시면요. 똑같아요. 에픽테토스 그 글 중에 그 점치는 거에 대한 그 글을 보시면. 그래서 이제 이분들은 늘 신을 생각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이 신성, 로고스를 늘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요 경천애인입니다. 신기하죠. 모든 철학자들은 다 똑같아요, 목표가. 우리나라 선비들도 경천애인이에요. 안으로 인간의 본성 인의예지를 하라는 천명, 천리를 늘 주목하고 밖으로는 천리를 구현해서 인의예지를 인간관계에서 구현하는 거, 이게 철학의 목표듯이 이 예수님의 또 목표도 뭡니까? 예수님이 와서 가르치신 게? 하느님을 목숨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니 이웃들을 니 너처럼 사랑하라. 이 두 개예요. 하느님과의 관계, 인간하고의 관계. 즉 우리 안에 있는 로고스와의 이 영혼과의 관계, 그다음에 영혼과 다른 영혼, 즉 또 다른 로고스를 품고 있는 다른 영혼들과의 관계, 일반 영혼들보다 인간 간의 관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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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요해요. 저 사람도 또 하나의 로고스를 갖고 있는 영혼이기 때문에 내가 내 영혼의 군주라면 그 사람은 그 영혼의 군주이기 때문에 군주가 군주에게 말할 때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조심해서 해야 되고. 그렇죠. 내정 간섭이 돼요. 이렇게 “내가 볼 때 당신 이렇게 해야 돼. 살아.” 막 이런 얘기들은요 상대방의 로고스, 신성을 무시하는 발언이에요. 상대방 로고스는 이미 내면에서 선을 지향하고 악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다만 영혼의 욕망에 지금 가려서 그게 덜 나오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나라를 도와줄 수 있고 원조해 줄 수는 있지만 여러분 뜻대로 좌지우지하시려고 하면 안 돼요. 적절한 조언만 해주시고 도움만 주시면 그분 안에 있는 로고스가 살아나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진짜 해결된 거거든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러면 그쪽 로고스는 죽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사이비 교주들이 절대 그 그 교인들을 도와줄 수가 없는 이유입니다. 노예화시키지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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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안 돼요. 제대로 된 데라면 여러분이 거기 가서 배우실수록 여러분이 여러분 삶의 주인이 되셔야 돼요. 내 안의 로고스를 찾아가는 희열의 공부를 하시면 거긴 제대로 된 도량이고요. 가가지고 그냥 선생님 말 한마디에 눈물 나고 막 이렇게 해서 그분 말 시키는 대로만 하려고 하고 그러면 점점 노예화돼가고 있고, 그게 이로우니까 지금 하고 있는 거지 로고스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나중에는 비참한 결과가 낳게 됩니다. 결과가 기다립니다. 이렇게 그래서 신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사회적 행동이라는 건요 로고스를 사회에다 구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성적 사회적이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전체 책을 관통하는 두 가지 인간의 특징이에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계속하는데요. 이 두 가지 책무가 아까 인간은 일어나야 된다, 아침에. 임무를 완수해야 된다 할 때 그 임무가 사실은 두 가지로 말하면 이겁니다. 로고스적이어야 되고 한편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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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이어야 돼요. 즉 여러분은 선을 지향하고 악을 멀리하는 이 로고스 그대로 이 생각 차원에서 로고스를 구현해야 되고요. 실제로 감정 생각, 감정 언행을 통해서 다른 영혼들과의 관계 속에서, 즉 정치라는 조직을 통해서 여러분은 로고스를 구현할 수 있어야 돼요. 조직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느냐? 여러분 머릿속에서 로고스를 구현할 수 있느냐? 이 두 가지가요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이 단순한 말이 아니에요. 인간은 양심적 동물이고 그 양심을 사회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에요. 우리나라 옛날 말로 하면 홍익인간이랑 같은 겁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존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양심적이어야 되죠. 양심적이어야 되고 그 양심을 사회를 통해서, 사회 조직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는 존재여야 된다 라는 이런 뜻이기 때문에 같은 말입니다. 이성적이라는 게 신, 신과의, 내 영혼과 신과의 관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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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은요 내 영혼과 다른 영혼과의 관계예요. 이 관계를 통해서 이 우주에 기여를 하는 거. 로고스대로만 하면 기여를 하게 돼 있어요. 왜냐? 로고스가요. 자기 자신한테 해가 되게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우주의 모든 존재는 신마저도 자기한테 이롭게 하고 자기한테 이로운 걸 좋아하고 자기한테 이로운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신도 우주 전체에 이로운 걸 좋아하고 우주 전체에 해로운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로고스를 따르시기만 하면 여러분 안에 이성과 양심이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분명히 여러분의 생각과 말과 행위는요 사회에 이득이 되게 돼 있어요. 여러분이 이해가 안 되실 수 있지만. 어떻게 아시는 거냐? 실험해 보세요. 해보세요. 일단 자꾸 해보시면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욕망이 좀 진정되고 나면 그때 그렇게 하길 참 잘했다라고 하실 겁니다. 그 순간에는 내 욕망이 자꾸 다른 얘기를 해요. 그렇게 하면 내가 손해 본다는 얘기를 자꾸 하는데 이 욕망의 말도 너무 무시하면 못하잖아요. 적당히 들어주시되 좀 무시할 만한 정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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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절제를 해보세요. 너무 크면요 말 좀 들어주시고요. 1억 들고 나가려다가 욕망이 탁 바지가랭이 잡고 그거 들고 나가면 우리 죽는다. 천까지만 어떻게 하자 했을 때 합의를 좀 보세요. 그러면 일단 천까지만 하자. 사회활동에 천까지만 쓰고 나머지는 갖고 있자. 욕망이 너무 못 견디면 영원히 전체가 균형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안 돼요. 욕망도 잘 들어주셔야 돼요. 그렇지 않습니까. 영원히 균형을 잃어버린 영혼이 로고스 따라다니다 가랑이 찢어지면 안 되거든요. 못 따라가면 안 되기 때문에 영혼을 성숙시켜가지고 로고스를 따르게 만드는 게 큰 공부의 관건이기 때문에 욕망을 절제하라는 말 이면에는요 욕망을 잘, 뭐죠, 구슬리라는 뜻도 있는 겁니다. 욕망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절제를 시켜줘야 돼요. 이런 팁들 잘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이렇게만 하신다면 신을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사회적 행동을 하신다면 오직 이 한 가지 일을 즐거워하고 이 안에 안주하라. 이것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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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이다. 인간이 올바로 사는 길은 이거다. 제가 이런 거 읽으면요. 이분이 선비인지 지금 누군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 말들에 대해서 구분이 되세요. 이거 한문으로 제가 옮겨놓으면 아마 큰 선비글인 줄 아실 걸요. 그렇죠. 이렇게 이렇게 서로 왜 이렇게 같을 수밖에 없는지가요 당연한 게 인간의 영혼이 둘일까요? 이성이 둘일까요? 인간의 마음이 하나의 원리이기 때문에요 동양에서 파고 들어가나 서양에서 파고 들어가나 결국 인간이 연구하는 건 인간의 영혼입니다. 인간 영혼의 안에 있는, 영혼 안에 있는 이성적인 기능과 영혼 안에 있는 욕망의 기능들을요 이렇게 연구하다가 내린 결론들이에요. 그리고 이성적인 결론들을 보면요 참 우주적이에요. 욕망적인 결론들을 보면요 참 자기만 생각해요. 이 차이를 가지고 연구하다 보니까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뿐이에요. 이해되시죠. 이성적인, 여러분 안의 이성적인 그런 양심은요 물에 빠진 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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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고 하잖아요. 뛰어들어서 수영도 못하는데 보고 있으면 속이 타죠. 즉 구하라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겁니다. 그럼 우주적이죠. 여러분을 생각하지 않아요? 전체를 생각해요. 저 사람이 죽는 게 우주에서 손실이라는 얘기만 하고 있는 거지 지금 나를 위한 뭔 조치가 없는 거예요, 양심에는. 욕심은요 겁나죠 나 죽을까 봐. 이 두 개가 타협을 해가면서 여러분의 삶이 만들어질 때 제일 건강한 삶이에요. 무턱대고 뛰어들어도 안 되고 그렇죠. 이 욕망의 소리를 내 수준에 맞게 잘 알아듣고 소화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이해되시죠. 그래서 그래서 이 로고스는 늘 선을 하라고 얘기하고 악을 하지 마라고, 안타깝다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죽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디 가서 지금 필리핀이 1만 명 넘게 죽었다는 얘기 들어도 여러분이 잠을 설치실 수도 있는 거예요. 생전 모르던 사람이지만 생명이 그렇게 갔고 그럼 그 가족들은? 그게 다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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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우리 안에 있는 로고스가 살아있기 때문에 이런 큰 사고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또 거기 불쌍하다고 여러분이 또 여러분 가정 팽개치고 간다는 것도 또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욕망과 이 이성이 잘 대화해서 내 욕망이 현재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이 로고스의 명령을 따르신다면, 로고스의 명령은 항상 옳아요. 다만 여러분이 여러분 욕망의 수준, 여러분 에고의 역량을 못 보시기 때문에 무리수가 나오게 됩니다. 이해되시죠. 그래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욕망의 수준을 정확히 아신다면 여러분이 즐거운 마음으로 구현할 수 있는 로고스의 수준도 정확히 드러납니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면 그걸 실천하세요, 먼저. 그러다 보면요, 여러분의 역량이 커져서 나중에는요 지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여러분이 하시게 됩니다. 여러분이 옛날 성자들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하는 걸 여러분 역량이 성숙되시다 보면 나중에 여러분도 하고 계실 수 있어요.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 지금 그렇게 하려면 여러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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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힘들어해요. 못 받아들여요. 그래서 여러분의 양심도, 여러분의 양심도요 당장 여러분이 해야 될 일을 안 했을 때 더 찜찜하게 신호를 보내지, 찜찜하다고 신호는 보내도요 더 강하고 약하고를 보시면요 여러분 역량에 할 만한 거를 더 찜찜해야 하고 못할 것들은요 덜 찜찜해 합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필리핀 분들을 못 도와드려서 안타깝긴 하지만 여러분이요 지금 여러분 동네에 누가 한 명이 다쳤는데 못 도와줬다면 그게 더 찜찜하실 겁니다. 이해되세요? 내 역량에서는 그건 해줄 수 있었는데 못 해준 거고, 필리핀은 어차피 내가 도와줄 수 없는 거였는데 그런 일이 생긴 거기 때문에 생명이 상한 것에 대해서 찜찜해는 하시겠지만 강도가 또 틀려요. 양심은 정확하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정확히 구분해가지고 신호를 보냅니다. 그래서 이 로고스의 명령만 따르면 정확하게 여러분이 현재 하실 수 있는 최적의 그 일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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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대화하는 법을 좀 다이몬과 대화하는 법, 소크라테스식으로 말하면 이걸 잘 아셔야 됩니다. 이 소리를 정확히 잘 못 들으시면 무리수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영혼이 균형을 잃어버려가지고 아예 로고스를 떠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이 현명한 선택을 잘하시기 바랍니다. 로고스의 명령은 늘 옳지만 내 에고의 조건을 통해서 우리는 들어야 되기 때문에 내 에고의 역량도 잘 알고 로고스의 명령을 들으시라. 그런데 아까 제가 팁 하나 드렸죠. 내 에고의 역량이 어딘지 어떻게 아느냐? 로고스가 진짜 찜찜해하는 건 여러분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실지라도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저 내면에서는 이미 계산 다 끝나서 나온 거예요. 너 할 수 있다는 거 다 알고 있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근데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덜 찜찜하신 거는요 그래도 잠이 오는 거는 그건 여러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양심도 그 정도 하고 마는 겁니다. 신기하죠. 이 소리를 나중에 다 듣게 되면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단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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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제 가정해 본다면 이게 다 들리고 있는 상태예요. 다이몬의 소리가요 다 들린다는 건 엄청난 겁니다. 매사에 할 거 말 거 어디까지 할 거 이런 것들이 금방금방 금방 판단이 된다는 거니까요 엄청난 겁니다. 자 많이 한 것 같은데.. 경천애인이 인간의 갈 길이다. 좋죠 이런 말들. 19번이요.
[19. 만일 당신이 성취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 마라.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고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것이면, 당신도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6-19)]
만일 당신이 성취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 마라. 이게 지금 그 일이죠. 여러분 독립운동 하러 갑시다. 그러면 조금 지금은 아니다. 이런 마음 드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또 누군가는 또 하죠. 근데 그분은 뭐 특별한 힘이 있어서 할까요? 결국 양심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닐까요? 로고스의 힘으로. 결국 여러분의 로고스도 사실은 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다만 여러분의 역량이 현재 부족해서 그럴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못할 일이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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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라고 하지는 마라.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고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것이면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그 일이 인간의 본성에 맞는 거고 누구나 해야 맞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왜 할 수 없나. 이런 측면에서 접근하시라. 이해되시죠. 로고스를 따른다는 걸 가지고 얘기하는 겁니다. 로고스를 따르는 게 어려워 보인다고 불가능하다고 하지 말고 어려운 부분도 있겠죠. 당장 못 할 부분도 있겠지만 그분들도 결국에는요 작은 것부터 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것부터 해가지고 여러분이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하시라 그겁니다. 20번.
[20. 만일 어떤 사람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동했다는 것을 지적하여 나를 납득시킨다면, 나는 기꺼이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진리를 탐구하고 있으며, 진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오류와 무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피해를 입는다. (6-21)]
만일 어떤 사람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했다는 걸 지적한다면 지적하여 날 납득시킨다면. 즉 그 말이 자명하니까 제가 납득이 된 거죠. 로고스는요 옳은 건 옳다고 하고 틀린 건 틀렸다고 여기는 마음이니까 상대방 지적이 내 욕망에서는 기분 나쁠 수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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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가 맞다고 해버리면 이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로고스가 저 사람 말이 맞네라고 해버리면요 여러분은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그래도 제 말은 듣기 싫어라고 하실지 몰라도 그건 욕망의 투정이고 로고스는 지금 맞다고 판정해버립니다. 여러분 내면에서 잘 보세요. 그런데 그때도요 로고스의 손을 안 들어주고 욕망 손을 들어주는 사람도 있어요. 뭐냐 하면 상대방 말이 아무리 맞는 것 같지만 내 반대편이니까 난 인정 못하겠다. 이래버리면 여러분은 그 순간에는 인간이길 포기하신 게 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입장에서는 인간은 로고스 손을 들어줘야 되는데 즉 나랑 친한 친구라고 해서 틀린 말을 맞다고 해주고 나랑 적이라고 해서 맞는 말을 틀렸다고 해버리면 그거는 욕망에 움직인 거기 때문에 남 지적할 뭐 없어요. 본인도 이미 나도 욕망에 빠진 사람이 똑같이 똥통에 빠진 사람 누가 똥 묻었네 덜 묻었네 가지고 서로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로고스대로 따라버림으로써 극복해버리면요 상대방한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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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떤 가르침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나는 기꺼이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진리를 탐구하고 있으며 나는 로고스대로 사는 게 목표니까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고 진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거는요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에 진리에 맞다면 그게 내 욕망에는 지금 해로워 보일지 몰라도 나는 택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결국에는 나한테도 이로울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롭다는 얘기는요 지금 내 욕망에는 해롭다고 보여서 양심을 거부하시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런 말씀이 필요한 거죠. 당장에 당신한테 해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엔 당신한테 이롭게 돼 있다. 왜냐? 진리는 모두를 이롭게 해주는 거지 누구를 소외시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롭다는 거, 이거를 생각하시면 지금 나한테 보이는 이 손에는 작은 거일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진리를 탐구하고 있고 진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오류와 무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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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를 입는다. 무지에 피해를 입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나는 진리를 택하지 무지를 택하지는 않겠다. 남이 내가 아주 내가 꼴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혹시 와서 나를 지적하더라도 그 말이 맞으면 나는 받아들이겠다 하는 이런 선언이죠. 다 뭐 주옥같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참 말은 잘한다 하실 수도 있는데 그것도 그래요. 여러분 이성이 이미 또 설득 당했죠. 맞는 것 같은데. 그러면 하세요. 이분 말이 좀 말투가 난 이 사람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 말하는 뭐 이렇게 그게 마음에 안 든다 하실지라도 말이 맞으면 따르시라는 이런 거 이것도 지금 철학 훈련입니다. 이런 말 하나 우리가 소화하는 것도. 21번.
[21. 깨어있는 정신으로 돌아가서 그대 자신을 회복하라.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면, 당신을 괴롭혔던 것들이 단지 꿈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꿈을 바라보듯이, 깨어있는 동안 당신을 괴롭혔던 것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6-31)]
깨어 있는 정신으로 돌아가서 그대 자신을 회복하라. 깨어나라 이겁니다. 깨어나라. 몰라 괜찮아 하시면서. 우리말로 하니까 지금 몰라 괜찮아지 지금 번역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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뭡니까? 욕망을 내려놓고 로고스에 전념하는 게 깨어 있는 거예요. 즉 그래서 저희는 그걸 도와드리는 방법이 욕망에다가, 여러분 욕망에다가 얘기하세요. “몰라 괜찮아” 욕망은 뭐라고 하고 있겠습니까? 지금도. “밖에서 나가서 놀면 지금 인사동에 얼마나 재밌는 게 많을 텐데.” “몰라 괜찮아”라고 하셔야지 “그러게” 하시면 안 돼요. 그러게 하시는 순간 이제 여기 있는 게 지옥이 되겠죠. 신기하죠.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오니까 진짜 몸에서 지옥고가 펼쳐져요. 그런데 괜찮아라고 하는 순간요 뭔가 이렇게 들썩이던 것도 편안해집니다. 이게 깨어난다는 거예요. 로고스에게 힘을 실어주고 욕망을 다스리려면요 관심을 로고스한테만 주면 돼요. 즉 욕망의 소리들, 모든 거는 욕망의 소리들은 암흑의 나를 위한 거니까 암흑의 나라는 생각만 잠시 놔버리시면 욕망의 소리가 방향을 잃어버려요.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하고 계시면요 “돈을 안 벌어오면 큰일 나” 이런 말이 의미를 잃어버려요.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요. 여러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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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모르시는데요. 돈 걱정이 있으세요? 집이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요. 여러분 나이가 몇인지도 모르는데 왜 돈 걱정을 하세요? 그냥 존재하세요. 우리 마음에는 그런 순수한 영역이 있어요. 그래서 수많은 분들이 깨어나라고 하는 겁니다. 그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다 집중해라. 왜 마음의 말단에만 집중하느냐 이겁니다. 깨어 있는 정신으로 돌아가서 그대 자신 참나를 회복하라. 이겁니다. 그대의 순수한 자아를 회복하라.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라. 이분 이렇게 써놓으면 이거 불교 아닙니까? 선불교에나 나올 말 아닙니까? 깨어나서 참나로 돌아가라. 본래 면목을 되찾아라. 이거 지금 한문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돼요. 본래 면목을 빨리 찾아라. 그러면 잠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욕망에 취해서 산 게 잠잔 거랑 똑같다는 겁니다. 비몽사몽간에 사신 거랑 똑같아요. 비몽사몽간에 내 의지대로 뭐가 안 되죠. 로고스를 로고스대로 못 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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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취해서 살고 있는 상태가 비몽사몽, 즉 잠자는 단계고요. 딱 정신 차리고 “지금부터는 로고스대로 하겠어. 그리고 그럴 기분이야” 이 상태가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억지로 하고 있으면 깨어 있는 게 아니고요. 딱 기분이 로고스랑 나가 하나가 돼서 “난 이렇게 살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여야 돼요. 왜 그럴까요? 보세요. 여러분 마음이 욕망의 50% 이상이 가 있으면요 욕망의 본성의 지배를 받겠죠. 즉 이익이 되면 하고 싶고 해가 되면 하기 싫어요. 그런데 여러분 마음의 관심이요 내가 아무의 누구라는 걸 잊어버리시고,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이걸 잠시 내려놓으시고 이쪽에다가 순수한 나 내가 존재한다는 거기에다만, 이게 존재 자체예요, 존재가 생명이고 생명이 로고스입니다. 이게 신성이고요. 다 이게 하나예요. 그래서 여기에다만 집중하고 계시면요. 여러분 안에서 다른 본성이 작동해요. 즉 51%만 이 로고스에 관심을 주시면 깨어나게 되고 여기에서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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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시게 되고 선은 좋아하고 악은 싫어하는 본성이 작동해요. 그래서 선이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양심적이 되세요. 이 원리를 쓰시지 않고 나는 양심적이다 하는 거는요 욕심의 다른 모습이에요. 이런 분들은 꼭 남한테 자랑합니다. “나 요즘 되게 양심적이 되지 않았니?” 막 강요하고요. 그래 참 괴롭히는 것도 가지가지다 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또 남들을 괴롭히고 있어요. 내가 양심적이라는 걸로 또 남한테 칭찬받아야겠고 나는. 그걸 이용해가지고 손해를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순수한 마음으로 일어나는 양심은 그런 게 없어요. 대가가 필요 없어요. 그냥 내가 이렇게 생겨먹어서 양심을 안 할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참나에다가 힘을 실어줬더니 양심을 안 지킬 수가 없게 된 거예요. 이런 게 언제 일어나냐면 명상을 하시면 이래요. 명상을 하시다 보면 욕망을 좀 내려놓으시죠. 어떤 명상을 하시든지 명상 기운이 확 돌 때는요 그렇게 대자대비해요, 마음이. 누가 와서 날 때려도 아마 웃을 것 같고. 예전에 어떤 분이 그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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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하다가 딱 어렸을 때 얘기를 해 주셨는데, 어렸을 때 명상을 하다가 딱 이 참나가 각성돼버리니까 나를 위해 가르치는 선생님도 다 이쁘고, 막 다 옆에 반 애들도 다 이쁘고, 다 나와 둘이 아닌 것 같고 막 이런 황홀경을 체험했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심지어 나를 아마 아침에 나 때린 선생님도 그날 이쁠 겁니다. 그 명상 기운 가시고 나면 싹 가셔요. 그 명상 기운이 있을 때만 그래요. 즉 여러분이 이 로고스가 강하게 드러났을 때는요 로고스대로 안 산다는 게 더 이상해요. 그런데 마음이 욕망의 단계로 내려오면 이렇게 산다는 거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이렇게 여러분 마음에 극과 극이 있어요. 이걸 오가시기 때문에 머리로 대충 통박으로 나는 이걸 해야겠다 하는 그거는 안 먹힙니다. 머리로 이성적으로 사시려는 분들은요 양심적으로 사시려는 분들은 탁 욕망 앞에서 그냥 무너져요. 왜냐하면 여러분 욕망 앞에서 지금 사소한 건 어떻게 넘긴다고 쳐도 센 욕망이 딱 걸리면 여러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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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어떻게 움직이시겠어요? 이 프로그램대로 움직이지 이 프로그램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평소에 이 프로그램대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신 분만이 위기에 닥쳐서도 저 프로그램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많은 양반들이요 인의예지 노래를 했지만 나라가 딱 넘어가니까 다 이 프로그램대로 돌아가는데 일부만이 이렇게 돌아갑니다. 일부는 공부를 제대로 하신 거죠.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으신 거죠. 양심을 안 지키고는 못 살겠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제일 재벌 가족 아시죠? 6형제인가가 이회영 이시영 그분들 가족이요 우리나라 최고 재벌이셨어요. 그 돈을 헐값으로 매각하고 그 돈 갖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 하는 데 다 쓰시고 굶어 죽으시고 심지어 형제분들 어떤 분들은 굶어 죽으시고. 재벌이 굶어 죽은 그런 일을 하는데 그분들이 하면서도 6형제가 다 합의했다는 겁니다. 그게 옳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 이거 억지로 할 수 있는 일 아니죠. 못하죠. 조금만 이게 더 살아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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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든가 “그래도 이 물건은 제값 받고 팔고 가자” 뭐 여러 가지가 얘기가 나왔을 텐데 탁 합의해서 그날 빨리 해치우고 딱 갔다는 그 얘기를 들으시면요 우리 안에 양심이 무섭게 드러날 때는요 인간 이상의 기저귀 같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어요. 저는 기적을 이걸 제일 기적이라고 봅니다. 이 로고스가 여러분 삶에 드러나시면요 기적이 일어나요. 오늘 집에 가셔서요 또 부인분이랑 남편분이랑 험하게 싸울 일이 생겼을 때 로고스가 전면에 딱 드러나서 가정에서 평화를 이뤄낸다면요 독립운동 하는 것만큼 기적입니다. 험하게 싸우고 끝나야 되는데. 그렇죠? 집의 문도 좀 부서지고 막 이럴 수 있는 일이 조용하게 해결됐다. 이건 기적이에요. 여러분 일상에서 기적을 계속 만들어내시는 게 인간의 임무고요 이 로고스를 따르는 삶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먼 걸로 보지 마세요. 집에 갔는데 가족 중에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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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뭐 하다가 뭐 하고 쏘다니다가 이제 기어 들어왔냐?” 이렇게 딱 나왔을 때 울컥하지 마시고. “내가 홍익학당 뭘 듣고 왔는데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냐” 하면 저까지 욕 먹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얘기하지 마시고 “모른다. 괜찮다” 5분만 하시고요 저기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하고 가서 한 5분만 “모른다. 괜찮다” 하시고 “자명한가? 상대방은 무슨 마음일까?” 인의예지를 초고속으로 검색하세요. 인(仁) 상대방은 지금 무슨 기분일까? 의(義) 상대방은 나한테 주는 이 피해는 뭐고 나는 상대방한테 무슨 피해를 줬는가? 예(禮) 어떻게 해야 무례하다고 상대방이 안 여길까? 지(智) 나의 모든 판단과 지금 이 정보는 자명한가? 초고속으로 검색하시고 나가서 말 한마디 하실 때도요 만약에 도망 못 갈 체지면 그 순간에 한 10초 내에도 이걸 초고속으로 한번 돌려야 됩니다. 돌리고 얘기하는 거랑 그냥 얘기하는 거랑 천지 차이예요. 결과가 틀려요. 이적이 일어나요. 한 번만 돌리고 얘기하시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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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들어올 줄 알았는데 공격이 더 안 들어오고 끝나버릴 수도 있어요. 이거는요 저기 이스라엘과 이슬람 간의 이 평화가 오는 것만큼요 한 가정에서요 이 평화를 구현해내는 여러분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똑같아요. 이슬람 전 세계 덩어리만 다르지 사이즈만 다르지 싸움 나는 데는 똑같습니다. 욕망 서로의 욕망이 충돌나서예요. 그때 대범해질 수 있고 양심적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는다면 나라에도 는다면 나라도 평화를 찾을 텐데 한 가정에서도 그 평화를 찾는다면요 저는요 그건 질적으로 똑같은 사건이라고 보기 때문에 저는 아까도 빈말이 아니고 진짜로 중동의 평화를 가져오신 것만큼 위대한 일을 하신 겁니다. 원리가 똑같기 때문에. 이해되세요? 여러분도 여러분 내면에서, 여러분의 영혼의 왕국에서 로고스가 영혼을 지배함으로써 평화를 찾으셨죠. 나라도 그래요. 나라도요 로고스가 그 나라 전체를 다스리게 되면 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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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평화가 오고 지구를 로고스가 다스리게 되면 지구의 영혼들이 안정을 찾아요. 본질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뿌듯해 하셔도 돼요. 한 번 이렇게. 그리고 뿌듯해 하시고 본인한테 칭찬해 주시고 내가 큰일 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야 또 하고 싶어져요. 에고를 그렇게 칭찬해줘야 이 에고가 기분 좋아서 “내일 또 해야지” 이렇게 됩니다. 안 그러면요 “했는데 나는 이득 본 게 하나도 없고 뭐 이렇게 손해 봤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내일 안 하겠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본인을 잘 영혼을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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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인문학 1주일 완전정복45 서양철학13 명상록 3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