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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남지방 소속 교회 목사님들께 사랑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 동안도 평안하셨는지요?
땅끝선교회에서는 중,고,청 학생을 모집하여 2개월간의 훈련을 마치고 지난 8월 9일-13일까지 4박5일간 필리핀 몬탈반 지역을 중심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금번 단기선교의 주제는 "섬김과 나눔으로 세계를..."이었습니다.
모두 40명의 단원들이 함께한 금번 단기선교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후기를 써 보았습니다.
한 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필리핀 따가이따이 인근에서 한국인 조모 선교사님께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순교하셨으며, 마닐라 리잘공원에서 홍콩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질극 참사가 있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함께 필리핀의 복음화를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주님의교회, 송헌영 올림.
2010년 땅끝선교회 제7차 필리핀 몬탈반 미션.hwp
섬김과 나눔으로 세계를....
(땅끝선교회 제7차 필리핀 단기선교 後記)
송헌영목사 (대전남지방, 주님의교회)
우리 땅끝선교회 필리핀 단기선교단 일행 40명을 태운 비행기는 3시간 40분의 비행을 마치고 마닐라국제공항, 정식 명칭으로는 니노이 아퀴노 국제공항(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마닐라국제공항은 인천공항에 비해 작은 규모였고 공항 내에는 키가 작고 얼굴색이 가모잡잡한 필리핀 사람들이 주로 흰색 남방을 걸치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무리지어 서성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공항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항은 떠나고 도착하는 장소요,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이기에 언제나 묘한 설레임과 가벼운 흥분을 느끼게 되는 장소이다. 이제 필리핀 단기선교 현지 사역이 시작되었다.
각자의 여행용 케리어와 선교지에 전달할 선교물품 십여 박스를 가지고 밖으로 나오니 선교사님 내외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최승일 선교사님은 성결교회 파송 선교사로 필리핀에서 사역을 계속해 온지 올해로 17년이나 되신 시니어(Senior, 선임) 선교사이시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을 뿐 아니라 이목구비가 반듯한 호남형이시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아마 그 풍채만으로도 필리핀 선교에 한 몫 하셨을 것 같다. 반면에 옆에 서 계신 황순이 사모님은 매우 가냘픈 몸매에 얼굴이 갸름한 미인으로 마치 필리핀 사람처럼 느껴지는 인상이셨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필리핀에 너무 오래 계셔서일까? 아니면 필리핀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일까? 17년 동안이나 이국에서 주님의 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임대버스에 타고 곧장 마닐라 시내에 들어갔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니 버스는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에서 1999년에 출고되어 고속버스로 운행 되다가 퇴역하여 이곳 필리핀에까지 건너와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항을 벗어나자 각종 빌딩이며 상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간판은 주로 영어로 써 있었고 오래된 건물이 많아 다소 지저분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전력 사정이 안 좋은지 상가 안쪽도 다소 어둡게 보였다. 도로에는 승용차를 비롯해서 지프니, 트라이시클 등 온갖 차들이 몰려나와 매우 복잡했다. 며칠 경험해 보니 마닐라 시내는 언제나 교통 혼잡이 큰 문제였다. 혼잡한 교통 상황은 우리 같은 여행객들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산업 물류의 원활한 소통에 장애가 되어 필리핀 경제의 발목을 잡는 큰 문제 덩어리로 작용할 것은 뻔한 노릇이다. 필리핀 정치 지도자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였다. 우리 일행은 <호세 리잘 공원>을 거쳐 <인트라무로스>로 향했다.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는 16세기경에 스페인이 필리핀 통치의 근거지로 삼았던 성채도시로서 산티아고요새, 리잘기념관, 마닐라대성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스페인사람들이 살던 옛 도시이다. 따라서 지금도 300년 이상 된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여러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 지배층인 스페인인과 스페인 혼혈계만이 인트라무로스 내에서 살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흔적만 남아 있지만, 산티아고요새는 인트라무로스 내 스페인 군사요새로서 북쪽의 파시그강(Pasig River)을 내려다보는 요충지에 자리를 잡았으며 1571년 목조로 축조 되었다가 석조 요새로 재건축되었다.
산티아고요새로 들어가 보니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성벽 밑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성축조 양식에서 빠지지 않는 해자(垓字, 웅덩이를 파고 물은 채워 넣어서 만든 물길로 성의 방어수단으로 사용)가 있는데 지금은 단지 일부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또 바닥에는 호세 리잘의 처형 당시, 두 발목이 쇠사슬로 묶인 상태로 걸어갔던 길에 발자국 모형이 남아있다. 그 당시 스페인에 반역한 필리핀의 독립 운동가들을 감금했던 처참한 지하 감옥이 아직도 남아 있었으며, 필리핀 국민 영웅 호세 리잘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다.
필리핀은 제대로 된 나라로서의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무려 333년 동안이나 스페인의 강압 통치를 받았고, 다시 미국에게 40여년, 또 일본에게 3년여 통치를 받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이르러서야 겨우 독립을 이루었다. 필리핀이란 나라이름조차도 스페인의 필립 왕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니 더 말 해 무엇하랴. 필리핀에도 자국의 자주적 독립을 위해 영웅적으로 투쟁한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호세 리잘이다.
호세 리잘(Jose Rizal, 1861.6.19~1896.12.30)은 루손섬 칼람바 출생으로 부유한 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아테네오데마닐라대학과 산토토마스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882년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 유학, 의학을 공부하는 한편 필리핀 식민지의 개혁을 요구하는 언론활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필리핀은 300여 년에 걸친 스페인 식민통치의 폐해가 도처에서 나타나, 민중의 저항은 소요로 번져갔다. 1886년 발표한 첫 소설 《나에게 손대지 말라 Noli me tangere》와 《체제전복 El filibusterismo》(1891)으로 개혁운동의 대변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필리핀 혁명(1896∼1902)과 필리핀 민족주의의 사상적인 기반은 그의 문필활동에 힘입은 바 컸다. 1892년 마닐라에서 필리핀민족동맹을 조직, 사회개혁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다피탄섬으로 유형되었다. 그 후 1896년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체인 카티푸난이 일으킨 폭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12월, 그의 나이 불과 35세에 마닐라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기념관에 들어가 보니 호세 리잘의 사진,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한켠에서는 방명록에 서명을 받으며 얼마간의 기부금을 요구하는 직원이 있어 씁쓸했다. 우리 일행은 전시관을 쓱- 둘러보고 나와 분수와 온갖 꽃 등이 가꾸어진 스페인식 정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산티아고요새를 빠져나와 마닐라대성당으로 향했다.
필리핀은 전 국민의 9%만이 개신교도인 반면에, 약 83%가 가톨릭교도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가톨릭 국가이다. 이는 오랜 동안의 스페인 식민지 생활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가톨릭 신앙은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나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충만케 하거나 도덕성을 높이거나 사회 진보와 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하지는 못하였다. 오늘의 필리핀 사람들의 어두운 일상이나 뒤쳐진 필리핀 경제가 그 것을 증명한다. 하루 빨리 이들이 개신교 복음을 통해 개인의 영성과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마닐라대성당[大聖堂, Manila Cathedral]은 인트라무로스 내 로마광장에 있는 대주교좌성당이다. 가톨릭 포교의 중심지로서 스페인 식민지배시대인 1581년에 처음 건축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처음에는 니파(nipa) 야자나무와 대나무로 지었는데 태풍과 화재로 부서져, 1592년 석재로 다시 지었으나 1600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세 번째 건물은 1614년에 완공한 것으로 3개의 본당과 7개의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645년 마닐라를 휩쓴 지진으로 무너졌다. 이후에도 지진, 전쟁 등으로 파괴된 것을 연이어 재건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공격으로 완전히 부서진 것을 1945년에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58년에 완성한 것이다. 필리핀 건축가 페르난도 오캄포(Fernando Ocampo)가 로마네스크-비잔틴양식으로 설계하였고, 바티칸의 원조를 받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특히 필리핀의 종교적 상징주의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대성당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는 청동문이 유명하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특별한 혜택을 누리는 소 바실리카(minor basillica)로 지정되었다.
우리 일행은 어두컴컴한 성당 내에 들어갔다. 성당 건축양식은 우리나라의 명동성당과 비슷했으며 규모는 약 2배 이상으로 상당히 웅장했다. 어두컴컴한 성당 안에는 수 십 명의 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밖으로 나와 성당 옆 마당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조별로 미션 수행에 들어갔다. 미션은 다름 아닌 노방전도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 대원들은 성당 앞 광장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필리핀 따갈로그어로 찬양을 불러 주고 전도를 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원들의 눈빛은 빛났고 전도의 열정은 뜨거웠다.
선교의 본거지인 몬탈반 선교센터로 가는 길도 멀고 험했다. 도로는 막혔고 그만큼 시간은 오래 지체되었다. 구 수도인 퀘존시티를 지나 목적지인 몬탈반에 가까워지자 도로 사정은 더욱 나빠졌고 예상대로 쓰레기 더미와 악취가 코끝을 자극했다. 몬탈반은 한 마디로 마닐라 시민들이 버린 생활 쓰레기 집하장 마을이다. 많은 주민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프라스틱, 깡통, 쇠붙이 등을 종류별로 모아 팔아 넘겨 생기는 얼마간의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필리핀에서도 매우 빈한(貧寒)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선교센터는 3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층은 유치원, 2층은 예배당, 3층은 4개의 방과 주방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동네 다른 건물과 비교해서 큰 규모였다. 2층 예배당에는 의자가 한쪽으로 밀어져 있었고 바닥에 10여 개의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남학생들은 2층 예배당에, 여학생들은 3층 방에 각각 짐을 풀고 지친 몸을 잠시 쉬었다. 드디어 저녁 식탁이 차려졌다. 메뉴는 한국에서 가져온 구수한 된장찌개에 무장아찌무침, 깻잎, 구운김 등이었는데, 맛은? 더 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저녁예배가 시작되었다. 땅끝선교회 회장님이신 한양수 목사님께서 열정적으로 설교하셨고 아이들은 스펀지에 물 빨아들이듯 아멘으로 화답했다. 다만 조는 대원들이 2명 있었고, 또 다른 몇 몇 대원들은 졸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고 졸음을 참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 중의 하나가 눈꺼풀 아닌가? 오늘 새벽 3시에 대전을 출발해서 이 늦은 밤까지 쉼 없이 일정이 이어졌으니 대원들이 지치고 졸릴 만도 했다. 필리핀 단기선교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10일(화) 단기선교 둘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문화체험으로 필리핀 대표적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인 <팍상한폭포>엘 다녀오기로 하였다.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일찍 먹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교통 혼잡으로 점심때가 다 되서야 팍상한폭포 인근에 도착했다.
팍상한폭포[Pagsanjan Falls]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의 한 곳이며 세계 7대 절경 중의 하나라고 알려진 곳으로 물의 낙차가 91미터에 이른다. 폭포까지 거슬러 오르는 양 옆의 깎아지른 절벽이 절경이며 영화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의 배경이기도 했다. 필리핀에서는 딸을 살림밑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여아선호사상이 강하다. 팍상한폭포수를 맞으면 딸을 낳는다는 미신이 있어서 많은 필리핀 여성들이 폭포수를 맞으러 일부러 시간을 내고 돈을 준비하여 온다.
우리 대원들은 3명이 한 조를 이루어 구명조끼에 헬멧까지 쓴 후 ‘방카’라고 불리는 길쭉한 통나무배에 올랐다. 배의 앞과 뒤에는 각각 1명씩의 보트맨들이 올라 방카를 밀고 끌며 약 1시간가량 계곡을 거슬러 폭포까지 오르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힘겹게 보트를 움직이는 보트맨들에게 다소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병풍처럼 양 옆으로 펼쳐지는 절경을 감상하였다. 폭포 바로 앞에 도착하자 다시 약 20명이 1조로 뗏목에 올라 폭포수를 맞으러 폭포 밑으로 들어갔다. 폭포 밑으로 들어가니 큰 굉음을 내며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폭포수를 맞고 나왔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다시 방카를 타고 물길 따라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훨씬 빠르고 수월했다. 역시 순리를 따르는 일이 역행하는 것보다 쉽다. 사람도 인생길을 걸어갈 때 자신의 힘으로는 모든 것이 어려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길은 얼마나 쉽고도 은혜로운가?
선교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곳은 <라구나 핫 스프링스>(LAGUNA HOT SPRINGS, 온천탕)이다. 이 곳 라구나 지역은 필리핀에서도 물 좋기로 유명한 곳이란다. 온천탕은 야외에 풀장처럼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온천장에는 이미 이십여 명의 현지인들이 유유자적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선교사님의 안내를 따라 옷을 훌러덩 벗고 물에 뛰어 들었다. 물론 수영복은 입고서 말이다. 온천수는 따뜻한 정도였으며 한 쪽에서는 물이 흘러들어왔고 한 쪽으로는 배수가 되는 곳이 있어 달리 청소가 필요 없어 보였다. 잠시 후 무언가가 발을 간질러 아래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물고기들 수 십 마리가 발에 달라붙어 각질을 뜯어 먹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닥터 피쉬>인 것이다. 필리핀에 와서 실제로 처음 닥터 피쉬를 경험해 보니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온천탕 안의 다른 현지인들은 주로 중, 장년층이었는데 다가가 말을 붙여 보니 한국 드라마 <주몽>을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한국인들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주몽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누군가? 바로 송일국이다. 그리고 내 이름은 바로 송헌영이다. 나는 필리핀인들에게 주몽의 남자 주인공 송일국은 내 동생뻘 되는 사람이고 나 송헌영도 한국에서 꽤 이름 있는 사람이라고 하니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흰 이빨을 보이고 웃으며 다가 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전도했다. 내가 필리핀에까지 와서 몇 번 본적도 없는 드라마 주몽과, 탈렌트 송일국의 덕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여하튼 여호와 이레다.
일정을 마치고 선교센터로 돌아 온 우리 일행은 사모님들의 수고로 차려진 저녁을 맛있게 먹고 저녁 예배를 드렸다. 온천으로 피로가 싹 풀려서일까? 그 어느 때 보다도 예배는 은혜로웠다. 우리는 한양수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끝나자 통성으로 뜨겁게 기도했다. 총무로서 우리 땅끝선교회 살림을 꾸려 가시는 김문수목사님은 대원들에게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기 위한 전폭적인 헌신의 기도’를 요청하였다. 선교대원들의 기도는 절절했고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앉은 온 교회가 성령의 임하심으로 충만해졌다. 목사님들은 학생,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 진정한 성공의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그 날 필리핀 몬탈반의 밤하늘은 한국 젊은이들의 뜨거운 눈물의 기도로 그렇게 수 놓아져가며 깊어갔다.
11일(수) 단기선교 셋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유치원 사역과 현지인 가정 방문 사역이 있는 날로 금번 단기선교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지는 날이다. 대원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끝내고 채비를 갖춘 후 선교센터 1층에 위치한 유치원으로 내려갔다. 유치원에는 5~6살 된 현지인 30여 명의 어린이들이 모여 우리들을 위해 그 동안 익힌 영어 찬양을 들려주었다. 한 마디로 그 놈들은 멋지고 예뻤다. 필리핀 사람들은 얼굴이 가모잡잡하고 유달리 눈이 크고 예쁘다. 눈이 큰 필리핀 유치원 아이들은 특히나 귀여웠다. 우리의 유치원 사역은 알록달록하고 길쭉한 아트 풍선을 불어 칼, 왕관, 꽃 등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선물로 전해주는 사역이다. 현지인 아이들이 너무 어리기도 하고 서로 말도 잘 안 통했지만 우리는 가슴으로 통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기념 촬영을 하고 헤어지며 몇 알의 사탕과 병아리 물총 등을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려주어 보냈다. 구한말 우리 조선 땅에 왔던 선교사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마음이 뿌듯하고 감사했다.
곧 이어서 현지인 가정 방문 사역이 펼쳐졌다. 우리 대원들이 3인 1조로 각 가정에 흩어져 교제도 하고 점심도 대접 받고 선물도 전해주고 오는 사역이다. 대원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 걱정스런 표정으로 헤어졌으나 3시간여 만에 사역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띠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필리핀 분들이 비록 가난한 살림이지만 따뜻하고 밝은 얼굴로 맞아주고 대접해 주었던 것이다. 그 것은 남국민의 정서적 특성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리라. 그 날 각 가정에서 일어났던 온갖 풍성하고 진귀한 일들은 여기에 필설로 다 옮겨 적기 어렵다. 다만 대원들의 가슴 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될 것이다.
오늘은 수요일로 <한, 필리핀 연합수요예배>가 예정되었다. 필리핀 성도들은 예배 시간 한 시간 전인 오후 4시부터 모여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곧 피아노, 기타, 드럼 등 악기를 요란하게 연주하며 찬양을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들이 찬양 부르는 표정과 몸짓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예배가 시작되고 우리 단원들이 나와 <이날은>과 <마할나마 할기따 빵이노온> 두 곡의 특송을 불렀다. <이날은>은 우리말과 영어와 따갈로그어로, <마할나마 할기따 빵이노온>은 따갈로그어로 불렀다. 우리 단원들은 역시 큰 무대에 강했다. 그 동안 따갈로그어 찬양을 배우고 외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여기에서 그 진가가 드러났다. 필리핀 성도들의 얼굴에 살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이어서 필리핀 성가대의 특송이 이어졌다. 특히 화음이 듣기 좋았다. 이어서 주제홍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주목사님의 설교는 최선교사님께서 영어로 다시 현지인 전도사님이 따갈로그어로 통역하여 전달하였다. 따라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넘쳤다. 예배가 진행되면서 어두웠던 필리핀 교인들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는데 그 것은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다. 예배가 끝나자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젊은 사람들은 모두 다 강단 앞쪽으로 몰려 나와 한 데 어우러져 찬양을 여러 곡 불렀다. 나중에는 펄쩍 펄쩍 뛰며 찬양했다. 그날 <한, 필리핀연합수요예배>는 필리핀 몬탈반지역 선교역사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12일(목) 단기선교 넷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선교센터를 떠나 따가이따이를 거쳐 케년코브 리조트로 가는 날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그동안 묵었던 선교센터를 청소하고 짐을 꾸려 버스에 올랐다. 그날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차를 타고 가며 필리핀 대자연을 감상하였고 간간이 옥수수, 과일 등을 사서 입을 즐겁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따가이따이에 도착하였다.
따가이따이(Tagaytay)는 필리핀의 휴양지로 오래 전 화산이 폭발한 뒤 길이 25km, 폭 18km에 이르는 칼데라호인 따알호수(Taal Lake)가 형성되었고, 1977년 다시 화산 폭발이 일어나 호수 중심부에 다시 작은 산이 솟아오르고 그 안에 또 분화구가 생겼다. 이른바 세계 유일의 이중칼데라 호수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새로 형성된 중심 분화구를 따알화산(Taal Volcano)이라고 하는데,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따알화산에 도착하면 다시 당나귀에 올라타고 산을 올라 이중으로 형성된 분화구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코스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시간도 없을 뿐더러 또 다른 이유로 근처 높은 언덕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다만 점심으로 싸 온 주먹밥과 한국에서 가져온 컵 라면을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버스 운전기사도 컵라면 하나를 받아들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와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오후 2시 경에 케년코브에 도착했다. 케년코브(CANYON COVE)는 마닐라 근교의 유명한 휴양 리조트이다. 건물이 다소 오래되어 썩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풀장과 야자수가 어우러진 해변의 풍광은 매우 근사했다. 대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옷을 훌러덩 벗고 풀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물론, 수영복은 입고서 말이다. 갑자기 케년코브가 왁자지껄한 우리 대원들로 들썩였다. 한국 사람은 어딜 가도 티가 난다.
저녁 예배는 바닷가에 나가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렸다. 한마디로 운치 있었다. 우리는 필리핀 단기선교의 과정을 반추(反芻)하며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는 시간을 갖었다. 주제홍목사님의 설교는? 물론 설교는 은혜로웠다. 우리 땅끝선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는 언제나 은혜롭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은혜를 받으려고 아주 작정을 하고 듣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는 세트 메뉴로 준비된 졸리비 햄버거와 스파게티 및 콜라다. 졸리비(Jollibee)는 즐거움, 쾌활을 의미하는 Jolly와, 벌을 의미하는 bee의 합성어로 필리핀 사람들 모두가 열광하는 국민 패스트푸드점이다. 졸리비 햄버거는 다소 크기가 작고 내용물이 간단하며,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리 맛있다고 평가해 주기 어렵다. 그저 한 끼 가볍게 때우는 개념이다. 스파게티는 부드럽게 삶아진 면에 햄이 몇 조각 포함된 빨간색의 달콤한 소스를 얹고 그 위에 모짜렐라 치즈가 약간 뿌려져서 나온다. 그러면 포크로 쓱쓱 비벼서 입에 술술 넘기면 된다. 그냥 먹을 만하다. 우리는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여러 차례 졸리비 신세를 졌다. 그 이유는 졸리비 햄버거가 싸서 경비 절약에 유익할 뿐 아니라 필리핀에는 40명 이상이 들어가 먹을 수 있는 글로벌한 식당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리핀에 졸리비가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날 밤 우리 단원들은 다소 일찍 각자의 숙소에 들어갔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필리핀 단기선교 마지막 밤이 아닌가?
13일(금) 단기선교 다섯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마닐라 공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달리 험한 것이 아니라 마닐라 시내에 들어서자 길이 너무 막혔다. 공항에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차가 움직이지를 못했다. 차라리 내려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는 겨우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 앞에서 우리는 최선교사님 내외분과 짧은 만남을 마무리 하고 긴 이별을 고했다. 선교사님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빈한(貧寒)한 지역에 속하는 몬탈반에서의 오랜 사역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다함없는 존경을 받는 분이시다. 약자에 대한 긍휼과 배려가 몸에 배이신 분으로 선교 전문가일 뿐 아니라 바베큐 전문가이시다. 지난 수요 예배가 끝난 후 숯불을 피워 며칠 동안 재워 둔 삼겹살과 생새우를 맛있게 구워 우리를 대접해 주셨다. 우리는 그 사랑의 수고를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공항 앞에서 선교사님과 작별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들어가 비행기를 탔다.
우리 일행은 밤 7시3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금번에 우리가 이용한 필리핀 항공을 평가하자면 3류 항공사라 할 수 있겠다. 스튜어디스는 고객에 대한 예의가 없고 기내 서비스는 부실했다. 제공된 식사 또한 별로였다. 우리는 고객으로서 전혀 존중받지 못했다. 필리핀 항공이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으로 리노베이션(renovation, 혁신)해야 할 듯싶다. 우리는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준비된 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와 공항 고속도로를 달렸다. 반듯하고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리자니 단기선교를 잘 마쳤다는 안도감에 마음도 시원하고 뿌듯했다.
우리 땅끝선교회 제7차 필리핀 몬탈반 단기선교단 일행은 선교를 떠나기 전 약 2개월간 매주 모여 준비 모임을 갖었다. 여러 교회에서 모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로 어색하고 쑥스러웠으나, 모임이 계속될수록 점차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사명과 결의를 다져나갔다. 준비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 선교사로서의 영적, 심리적, 육체적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그리고 지난 4박5일간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동안에 우리는 섬김과 나눔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주님은 필리핀 사람들의 지친 어깨와 피곤한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 돌아왔다. 우리는 삶이 계속되는 한 필리핀 땅과 그 땅 백성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곳이 복음으로 온전히 회복되는 날까지 필리핀은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로망으로 자리할 것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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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필리핀 몬탈발 단기선교단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오랜동안 거룩한 추억을 남기는 기간이었던 같습니다. 귀하고 값진 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