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산문이다
영국에서 에세이(散文 형식)가 나타나는 역사를 보자.
17세기까지만 해도(세익스피어 시대) 문학은 운율을 갖춘 詩였다. 베이컨이 산문으로 에세이를 쓰면서 운문과 산문의 분리가 나타났다. 그러나 베이컨이 글을 쓴 초기의 산문에는 이미지(象)가 풍부했다. (이미지=대상을 보고 느낀 것이 마음에 맺어지는 것으로 실제의 형상과는 많이 변형됨으로 ,그림자‘라고 불렀다. 마음으로 느낀 것이라고 할까.)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는 상징하는 어떤 象으로 맺어진다. 그러므로 그림자(이미지=象)는 실제의 형상이 아니고 상징적인 어떤 것으로 나타난다.
詩에서 이미지를 언어로 표현할 때를 美的言語라고 한다. 수필에서도 시의 기법을 빌려와서 미적언어로 표현하면 서정적 수필이 된다.
소설은 이미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이야기의 묘미를 살려서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수필은 시와 소설의 중간쯤 됨으로 미적언어와 이야기를 모두 사용한다. 즉 터득하게 하는 장치가(깨닫게 하는 것) 심상(imagery)이고, 전달하는 방법이 이야기이다. 그래서 에세이(수필)를 ’심상의 산문‘이라고 한다. 수필은 시와 산문의 방법을 모두 이용한다는 거다.
시와 수필은 엄연히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시는 운문이고, 수필은 산문이다.
詩는 이미지들을 묶어서 의미가 직접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고(시는 상징언어로 읽는다), 수필은 몇 개의 상(象)을 묶어 심상을 만들면서도 심상의 의미를 풀어내려고 한다. 말하자면 에세이(수필)는 심상을 언어로 풀어내는 방법을 표현의 장치로 이용한다. 즉 문장을 전개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상징으로 표현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실재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많이 어렵지요.
내가 수필쓰기에서 주장해 온 것은, 수필도 소설처럼 이야기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시처럼 요상한 말을 사용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려 하지 말고, 문장에 의미를 담고, 이야기를 만들어서 독자들이 글을 읽는 동시에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수필을 쓰자고 한 나의 주장을 어렵게 말하면 위의 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