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레위 가문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생명과 평화를 내리는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는데
이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제사장들이 해야 할 직분은
백성들에게는 제사를 드려주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정확히 알려주고
만약에 백성들이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왜 잘못 한것인지를 꾸짖어서 바로 잡아야 하는 책무를 맡고 있었다.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마음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시기 때문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는 복을 주셨지만 그 복이 복이 되지 못하고
이미 저주를 내렸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듣지 아니하고 마음에 두지 않고 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새겨셔 변화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제사장들은 스스로 변화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백성들을 가르치고 변화 된 삶을 살아가게 해야 할 그 제사장들 마저도
이미 부패 되어 저주를 받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탄식하신다.
그러면 지금 제사장들은 누구일까?
목사님? 성경 박사님들? 장로님 직분자들? 다 맞지만...
사실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는 우리도 다 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말라기의 말씀속에서 말씀하시는 제사장에게 주시는 경고를
경솔하게 받아서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잘못 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아무나 맡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세우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라고 주신 직분이니
만약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을 누리지 못하면 저주가 되기 때문이다.
복이 화가 된다는 그 말처럼 복이 저주로 변하면 어쩐단 말인감...
제사장은 정직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 하게 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의식을 집행해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는 교회에 가거나 있는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되지만
구약 시대에서는 번제와 화목제와 같은 제사 의식들 통하여서
사람이 저지를 죄를 흠 없는 짐승을 죽임으로 인하여서 죄를 씻음 받고 나서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 드렸던 것이다.
그때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가장 아끼는 흠이 없는 짐승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도록 가르쳤고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 짐승이 대신 죽게 하여 죄를 용서 받게 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렸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이 해야 할 첫번째 임무였다.
제사장의 두번째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번제와 화목제와 같은 제사를 드리는것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백성들이 신실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야 한다.
그럴때 반드시 축복과 함께 저주의 말씀도 동시에 선포해야 한다.
왜?
그것은 저주의 말씀도 듣게 되어야 잘못 한 일들을 회개하게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어서 축복을 받게 하여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 된 길인줄도 모르고 멸망의 길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생명을 살리고 축복을 주는 평강을 주기 위해서는
그 직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제사장이 먼저 하나님과 정직하게 동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정직함으로 동행하여야 한다는 것은
말씀을 잘 묵상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를 할때
억지로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야 그들을 통하여서 백성들에게 생명과 평강이 전해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자손들을 꾸짖을 것인데..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의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으이그~~ 얼굴에 똥칠을 하게 되어 버림을 받게 된다는 말씀인데..
여기서 자손은 히브리어로 '제레'라고 하는데 씨앗이라고 하기도 한다.
엘리사의 스승 엘리 제사장의 집이 아들들을 잘 못 다스려서
한꺼번에 다 죽임을 당하는 멸문지화를 당한것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다.
공동 번역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표기 하였다.
너희 팔을 자르고 너희가 제물로 바친 짐승의 내장을 똥 채 너희 얼굴에 끼얹고
내 앞에서 들어 내어 버릴테니 두고 보아라!
제사를 지낼때 부정한 것들은 성소 밖에서 태워야 하는데 똥채 들어 왔다는 말씀이다.
레위와 맺은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언약을 주신 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의 이 언약이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 하였다고 하신다..
여기서 그는 아론을 가리키는 말씀이고..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은
다른 향로를 가지고 여호와께 분향을 하다가
그 화로에서 나온 불에 두 아들이 태워 죽임을 당하게 되었었다.
이 일로 인하여 아론은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며 경외하게 되었고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기에 힘을 썼다.
아론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동행을 하며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켜 떠나게 하였다고 하신다.
그래서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고
제사장의 제일 중요한 책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것이니..
백성들은 제사장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듣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소리만 듣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러지 않을까?
목사님께서 설교 하실때 나를 책망하는 소리를 하게 되면
벌써 쌜쭉 해 가지고 교회가 여기 밖에 없어 하면서 교회를 떠나게 되니까
설교 시간에 듣기 싫어하는 말씀은 삼가하게 되고 있는건 아닌가 싶다.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그들은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 도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않고
백성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전하였던 것이다.
잘못 한것을 꼬집어 말해 주어 하나님께 바르게 섬기게 하여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경고도 하지 않고
백성들이 원하는 복에 관한 것만 전하니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버린것이다.
9절에 보면...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율법에는 복을 선포하는 말씀도 있고 죄를 경고하는 말씀도 있는데
그들은 죄를 경고하는 말씀은 전하지 않고 복을 선포하는 말씀만 전하였으니
율법을 편파적으로 만들어 전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마음 놓고 죄를 범하게 하였으니 그 책임을 묻겠다고 하신다.
전했는데도 백성들이 듣지 않았다면 제사장들의 책임이 아니지만
전하지 않았으니 그들의 책임이 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다고 하신다.
이 망신은 제사를 드릴때 똥칠을 당한 3절의 말씀에 이어진다.
10절에 보면..
말라기를 쓴 선지자가 하는 말이
우리는 한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지 않느냐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바가 되었으니 우리 모두 한 형제가 된다고 하면서
각 사람들이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서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였다고 한다.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니...
유다의 남자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여자들과 혼인을 한 것을 뜻하는데..
이방신을 섬기는 여자와의 결혼 자체를 금지하고 있었으나
이미 결혼한 남자가 자기 아내를 두고 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을 뜻한다.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욕되게 한다는 말씀인데
성전을 욕되게로도 번역이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일들을
밥 먹듯이 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과 예배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것이라고 하셨다.
12절에 보면..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제사장들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겠다고 말씀 하신다.
여기서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죄를 범하고자 앞에서 적극적으로 선동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그 사람들의 선동에 가담하여 그 죄를 함께 짓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쁜 일에 선동하는 자들이나
그 유혹에 넘어가 범죄하는 자들이나 그런것을 알고도 묵인하는 제사장들도
모두 다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 버리시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이미 아내를 두고 있는 남자가
이방신을 섬기는 여자들을 아내나 첩으로 맞아 드리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방 신들은 성행위를 즐겨 하는 것이 우상을 섬기는 의식이었기 때문에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내를 두고도 잡혼을 하여
아내가 귀찮아 지면 학대하며 내 쫓아 버리기 까지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이 드리는 예배나 예물은 결단코 받지 않고
돌아 보지도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단절의 의미이고
또 그들이 아무리 간구해도 일체 들어줄 생각도 없다고 하시는 뜻이다.
그 당시 유다에서는 여자는 남자를 내 쫓아 버릴수 없으나
남자들은 아내를 이혼 증서만 써 주고 내 쫓아 버릴수 있었으니
아내가 마음에 안 들면 이혼 증서 써주고 내 쫓아 버리고
또 다시 다른 여자를 맞이하여 그여자도 마음에 안 들면 내 쫓아 버리는
가증된 일들이 합법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었던 것이다.
13절에 보면...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 도다..
어찌 보면 남편에게 쫓겨난 아내들이 성전에 와서
울면서 탄식하는 모습으로 연상 되기도 하지만
앞 줄에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하시는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그 뜻이 아닌것 같기도 하다.
이방 사람들은 추수가 끝나고 빈 들판이 되면
바알이 죽어서 땅속으로 들어 갔으니 그가 죽지 말고
내년에 다시 새싹이 되어 나타나 줄것을 고대하는 풍습으로
곡물의 신에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몸을 해하면서
몇날 며칠을 울면서 탄식하며 기도하였던 것이다.
유다 백성들이 그 풍습에 물들어서 아내를 내 쫓아 버리고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가증하게도 하나님께 복을 내려 달라고
눈물과 탄식으로 울부짖는것을 가리키는 말씀이기도 하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는 아주 거룩한 척하며 눈물로 호소하듯이 기도하지만
밖에 나가서는 온갖 못된 짓을 다 하는 사람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 당시 유다의 백성들은 이런 모습으로 거의 타락하여 죄악이 만연했다고 본다.
14절에는 그런데 그런 짓을 해 놓고도 뻔뻔하게도
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이 드리는 예물을
왜 받지 않으시냐고 하면서 하나님께 따지고 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너희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는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영이 충만 하셨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 하셨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영이 충만하셔서 여러 사람을 만드실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하나만 즉 아담과 하와만 만드셔서
그 한쌍을 부부로 만드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 하신다.
그러니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라고 하신다.
16절에 보면..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이방 여인을 새로운 아내로 맞이한 남자들이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아내를 폭행하고 학대를 하면서 그 학대가 얼마나 심했는지
말라기 선지자는 그 학대가 그의 옷을 가렸다고 말할 정도이다..
폭력을 행하고 난 다음에 옷으로 가려서 학대한 흔적을 감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 남자의 모든 것이 온통 폭력과 학대로 가득하다는 말인데
입만 열면 폭언이고 손을 들었다 하면 때리고 이런 학대가 계속 되었다는 말인데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미워 하신다는 말씀이다.
17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해 놓고는
자기들이 언제 하나님을 괴롭게 해 드렸냐고 뻔뻔하게 말을 하면서
또 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고 하고..
이 말씀은 악한 자가 더 잘되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그 악한 일을 과시하면서
하나님께서도 악한 짓을 해도 잘 살기먄 하면 자기 편이라고 하는말이다.
그러자 유다 백성들이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한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 온 후에 여전히 악한 자가 더 잘되는 세상을 보면서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을 조롱하면서 말하는 것이다..
악한 일에 넘어가게 되면 눈에 뵈는게 없어지나 보다..
한 치 앞도 바라 볼수 없는 우리들의 삶인데..
타락의 길로 접어 든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조언도 소용없다.
이미 그들의 마음은 죄악으로 뒤집어 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들어갈 여백이 남아 있지 않는가 보다...
참으로 기막히고 슬프다...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미움의 자리에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그렇게도 많이 받았으면서도 그 미움의 자리를
치워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내가 참으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