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7 금요성령집회 / 임병호 목사
말씀 : 마태복음 7:7-11
제목 : 좋은 것으로
(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밤에 저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드려진 예물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30배 60배 100배 열매로 거두어 주시옵소서.
드린 손길들에 기도의 제목들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오늘 마태복음 7장 말씀은 소위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를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하시다가 추정되기로는
가버나움 근처의 얕은 산 위에서 사람들을 부르셔서 말씀해 주신 그 말씀이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의 많은 말씀들 가운데 산상수훈이 단연 참 중요하고,
아주 정말 핵심적인 예수님의 그 뜻이 들어가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신학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살아간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는 예수님께서 초림, 이미 2천년 전에 오셨던 그 사건을 얘기하고요.
'아직'은 예수님의 재림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우리는 살아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 세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미 승리를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 가는 것이지만,
여전히 사탄의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에 들기도 하고 어려운 경우도 많이 겪게 되는 것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아가는 저희들의 인생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우리들의 인생을 향해서 '이렇게 살아라'라고 마치 법처럼 주신 말씀이 이 산상수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산상수훈을 많이 읽고 묵상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한평생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인 7장에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읽은 것처럼 기도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산상수훈 끝 부분에 이 기도가 나왔다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겠지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사탄 마귀와 싸워서 이기고 또 이곳에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기도라는 뜻이 7장에 기도가 배치돼 있는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 정답을 알고 계실 겁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론은 그렇게 알고 계신데, 실제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대화를 저렇게 하나 싶을 정도로 대화가 아닌 것처럼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직접 이렇게 겪은 일인데요. 언제 새벽 기도에 나와서 새벽기도를 하는데 뒤에 계셨던 어떤 분이 권사님 같으세요.
아주 기도를 독특하게 하시더라고요. 제가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게 아니라, 너무 크게 하시니까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들었는데, 아 이분은 정말 오래 기도하시더라고요.
설교 말씀이 끝나고 한 30분 이상을 기도를 하시는데,
잘 들어보니까 하나님께 이 전날에 있었던 얘기를 그렇게 들려주시는 거예요.
본인이 겪은 그런 게 아니라 9시 뉴스를 그대로 하나님께 전달을 하는 겁니다.
너무 독특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런 기도도 있구나'
9시 뉴스가 한 30분 하나요? 그래서 30분은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식이에요. '하나님 어제 강원도에서 산불이 났다고 합니다.
강릉에서 불이 시작되었는데, 바닷바람이 너무 강해서 속초까지 순식간에 옮겨갔다고 합니다.
하나님, 헬기가 여러 대가 물을 나르고 끄고 있지만 아직 진화가 안 됐다고 합니다. 거의 앵커 수준으로 해요..
그 다음에 또 끝나시고 이어서 우리 대통령께서 동남아를 순방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이번에 아주 큰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그걸 계속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분이 참 센스가 있으신 게, 마지막으로는 스포츠 뉴스를 또 전해요.
하나님, 우리 한국 축구대표가 어제 일본을 2대 1로 이겼다고 합니다.
참 '하나님도 이렇게 그분 덕분에 한국 사정을 빠삭하게 또 아시겠다' 이런 생각도 들면서 참 저런 기도가 있구나 배웠는데요.
문제는, 이 분도 아마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걸 아실텐데, 이런 식으로 대화 기도를 하시면 안 되지요.
우리가 사람하고 대화할 때, 누가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김 권사님, 어제 강릉에 산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닷바람이 너무 세서 금방 번졌다고 합니다.
우리 대통령이 또 동남아 순방을 했습니다. 한국 축구팀이 2대 1로 이겼습니다.'
그러고 가 버리면, 그 권사님이 얼마나 당황스러우시겠어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게 기도다' 이러면서 실제로는 너무 간구 위주로 기도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 기도하시는 거 보면, 와 정말 입에 모타를 다신 것 같아요.
얼마나 기도를 잘하시는지, 하나님께 막 말씀을 파파바팍 하셔요.
그러면, 하나님이 아마 이러셨을 것 같아요. '아, 이제 나도 좀 얘기 좀 하자'
그러면 이분이 그 얘기를 안 들으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합니다." 하고 나가버리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참 힘드시겠다.. 나도 좀 얘기도 하고 싶은데...
우리가 하나님과의 대화가 돼야 되는데요. 이게 기도인데...
물론 오늘 이런 금요 철야처럼 합심기도 할 때는 또 예외적으로 우리가 간구 위주로 많이 할 수 있지만,
철야가 끝나고, 남아서 개인적으로 기도하시거나 이럴 때는 참 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기도를 어떻게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지 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건 제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잘 아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구하라!" - 열심히 구해야 들어 주시는 것이지요.
야고보서 4장 2절에 이런 말씀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또, 요한복음 14장 14절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걸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구했을 때 응답이 되는 경우가 있고 안되는 경우가 있지요. 거기서 우리는 또 혼란을 겪게 됩니다.
제가 대학교 때, 참 과외를 많이 했습니다.
과외할 때마다 애들을 어떻게든 전도하려고 애를 썼는데요.
어떤 고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제가 전도를 했어요.
그래서 기도도 할 줄 알고, 성경도 보고, 동네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느 날 수업 시작하는 데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선생님, 저희 이번 주에 놀라운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이래요.
그래서 "뭔데 그러냐?'
'제가 며칠 전에 내가 엄청 아끼던 샤프를 잃어버렸는데,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 이 샤프 너무 중요한 샤프인데 찾게 해주세요. 찾아주세요.' 이랬대요.
그러고 10분 후에 화장실에 갔더니, 거기 있더라는 거예요. '와! 이거 너무 신기하다 우와 하나님 살아계시다'
그리고 또 조금 있다가 자기가 참 아끼던 머리핀을 잃어버렸는데, 또 기도했대요.
'하나님, 이 머리핀 제가 너무 아끼는 건데 좀 찾아주세요.' 그러고는 또 조금 지나서 주머니에서 그걸 또 찾았대요.
이런 식으로 몇 개를 기도해서 찾았다는 걸 저한테 얘가 간증이란 말도 모르는 아이인데, 간증을 하는 겁니다.
'그래, 잘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구나.. 열심히 기도하되 하나님을 너무 부려 먹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 적당히 찾아 달라고 하자'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구해야 됩니다. 이렇게 구해야 되는데요.
그런데 어떤 기도는 아무리 구해도 응답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왜 그러냐면,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응답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A를 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은 B라는 뜻을 갖고 계세요. 그럴 때는 응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두 번째로, [찾으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찾으라'는 뜻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할 때 마음껏 구해도 되지만, 우리의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맞아야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그 부분을 우리가 또 알아야 되지요.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사실 성경 말씀을 많이 아셔야 됩니다. 서로 대화가 되려면 사실 언어가 맞아야 되거든요.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데 미국 사람하고 대화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미국 사람이 한국말을 모르는데 우리랑 대화가 됩니다.
일단 하나님과 깊이 대화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화의 언어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말씀도 지식적으로 많이 안다고 또 대화가 되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또 대학 시절 얘기인데요. 대학 때 1년간 필리핀에 단기 선교를 갔었습니다.
그때 갈 때 한국 사람들 한 6명 정도가 같이 겄고, 그곳의 선교단체에 들어갔는데, 그 선교단체는 미국 선교단체였습니다.
거기 선교사님들이 다 미국인이었는데, 우리가 그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밖으로 나오니까 이 미국인 선교사님이 우리를 데리러 나와 계셨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제 대화를 해야 되는데 다들 영어가 조금 무서우니까 주저하고 있었는데,
한 분이 한국에서 영어학원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아 이분을 시키면 되겠다.'
그분은 집사님이었는데, 그 집사님을 그 선교사님한테 떠밀었어요.
우리가 반갑다고 인사 좀 하라고 했는데, 이분이 쫄래쭐래 가서는 그 선교사님한테 'Hi hellow' 그 다음에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하다 이러고 있었는데, 그 선교사님이 영어로 뭐라고 얘기하니까, 이 집사님이 대꾸를 해야 되는데 대꾸를 못해요.
그래서 우리가 '아니, 집사님 영어 선생님이신데, 어떻게 된 거예요?' 이러니까
이분이 뭐라고 그러냐면 아 자기는 영어 문법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어이가 없어서, 아니 무슨 영어 문법이 따로 있고 뭐 영어 회화가 따로 있나요?
문법 선생님이다 이러면서 대화는 하나도 못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한국인 선교사님도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의 딸이 같이 왔어요. 그분의 딸은 우리 나이로 중학교 1학년 나이였는데,
이 딸은 뭐 대단한 지식도 없고, 그런데 거기 필리핀에 먼저 건너가서 한 2~3년 살았던 것 같아요.
이 아이가 오더니, 이 선교사님하고 영어로 막 대화를 하는 거예요.
'야, 이거 너무 신기하다. 영어 선생님은 아무 말도 못 하는데, 얘는 대학도 안 나오고,
지식이 별로 없는데도 이렇게 대화를 잘하는구나!'
여러분, 하나님과 말씀으로 대화할 때도 아주 비슷하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아무리 알아도, 기도할 때 이 말씀을 써먹지 못하면 대화가 또 안 됩니다.
이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 성령님이 개입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시고, 설교를 귀담아 들으시고 이러면서 우리가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는데요..
기도하실 때, 성령님을 의지하시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가 하면, 제가 말씀을 한 구절 읽어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아멘!
여러분, 말씀을 지식으로 알고만 계시면, 거기에서 또 대화가 끊깁니다.
마치 그 영어 문법 선생님처럼, 하나님과 대화에 있어서 아주 기초적인 것밖에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이 말씀 언어를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되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우리가 기도하면서 성령님을 의지할 때, 오늘 읽었던 이 말씀처럼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이 대화하는 기도가 사실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어떻게 듣습니까?
그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을 주실 수도 있지만,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웬만한 건 다 성경 말씀을 통해 주십니다. 그 과정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겁니다.
가령 이런 예가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께서 이사를 하고 싶어요. 집이 너무 머니까 교회 근처로 좀 오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희 집이 좀 잘 팔리고, 교회 옆으로 이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러면서 이분이 성령님을 깊이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분 속에 이런 말씀이 떠오르려는 거예요. 가령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시편 139:8-10)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를 깔고 누워도 거기에 계시며,
내가 새벽에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
이런 말씀을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때 이 집사님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아,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다 함께하시는구나" 그러니까 너무 무리해서 이사하지 말고,
우리 집에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받으실 수도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렇단 얘기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속사포처럼 계속 막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쭐 때, 성령님을 의지할 때 성령님이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고 다시 그 위에서 우리가 또 하나님께 여쭙거나, 또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 뜻이 안 맞을 때 응답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런 건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 딸이 이제 고2인데요. 저한테 그런 딜(deal)을 많이 제안합니다.
'아빠, 이번 시험 잘 보면 뭐 해줄 거야?' 이럽니다.
그래서 저번에는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면 노트북을 사 달라는 거예요. 어유 뭐, 10등 안에 든다는데 그거 사 줘야죠..
하나님 마음이 그러십니다. '하나님 해 주세요.' 이러면 하나님 뜻에 맞으면 당연히 해 주십니다...
제가 사 준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때 전교 9등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해 줬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만약에 '아빠, 이번 시험에 전교 1등 하면 오토바이 사줘' 만약 이랬다고 칩시다.
그럼 제가 전국에 1등 한다고 사주겠습니까? 당연히 안 사 주지요.. 위험하니까요..
요청하는 자와 그걸 받아줄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NO' 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기도가 응답이 안 될 때는
'이것이 또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라고 우리가 받아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를 했고, 구했고요. 또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얼 해야 될까요? 오늘 주님께서 "두드리라" 이렇게 말씀하잖아요.
그럼 '두드리라'는 건 무엇인가? - 두드리는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은 것을 우리가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데도 그냥 가만히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그러나 하나님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뭔가를 열심히 해야 됩니다.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흔히 고3 때 공부는 안 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일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절대 좋은 대학, 원하는 대학, 좋은 점수를 못 받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도하는 애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학생인 우리가 기도만 하고, 공부는 하지 않고 응답을 기다리는 것은 도둑이다'
여러분, 응답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구하고 찾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두드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발로 뛰지 않으면서, 애쓰지 않으면서 응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맞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그 삶을 보면, 너무나 적나라하게 이런 모습들을 우리가 보면서 기도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을 예를 들어보면, 거기서 사도 바울이 아시아 선교에 매진할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영이 자꾸 막았다고 나옵니다. 바울은 고민이 됐겠지요.
'아, 이게 하나님 뜻이 아닌가?' 계속 아시아의 복음전도를 위해 기도했겠지요. 구했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이 계속 '예수의 영이 막았다'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지?' 이렇게 고민을 했겠지요.
그러다가 드로아라는 곳에 가서 마게도냐에서 기도하는 중에 환상 속에서 한 사람이 손짓을 하는 겁니다.
그때 기록을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했다' 이렇게 나와요.
그러니까 기도 속에서 '아, 이게 하나님의 뜻이구나'라고 깨닫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사도바울이 그 팀하고 밤새 회의를 합니다.
우리가 건너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면서 마게도니아로 가는 배 편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배를 타고 가요. 그냥 알아서 하나님이 마게도냐가 유럽이거든요.
유럽 선교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요.
그래서 건너가니까 빌립보라는 데가 나와요. 빌립보에 가서 그냥 넋 놓고 있지 않습니다.
그 기도하는 곳을 찾아 다닙니다. 그러다 강가에서 여인들이 있는 거예요.
거기에서 한 여인이 좀 그분 생각에는 아 전도할 만하다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여인이 루디아입니다. 루디아를 전도를 해서 서로 마음이 맞아서 그 집에까지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집안 식구들을 다 전도합니다. 다 세례를 줍니다.
그러다가 거기서 계속 전도 활동을 하다가 귀신 들려서 점치는 한 여종을 만나고, 그리고 귀신을 쫓아줍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계기로 관원들이 사도 바울과 일행을 잡아서 엄청 두들겨 패고 감옥에 가둡니다.
그런데 이들(바울과 실라)은 포기하지 않고, 그 밤에 찬양을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거기서 나와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그 간수들도 붙들고 전도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유럽 전도를 해 나가서 로마까지 가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대화하면서 응답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의 두드림...
우리가 도전하고, 우리가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가 너무 나약할 수 있다는 겁니다. 구하고 찾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두드리고 애쓰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을 깊이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두드리십시오. 그럼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기도하러 나온 이 밤에 기도에 대해서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저희들 되게 도와주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주시는 것들을 받아 누리는 저희 모두의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