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첫사랑
햇살이 곱게 퍼진 봄날이 너무 화창하다.
정다영은 교정을 지나면서 새로 입학을 한 새내기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그들을 바라본다.
일년전 자신도 바로 저들과 같이 새 희망과 꿈에 젖어서 학교의 교정을 둘러보며 신기해 하면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교정이 좁다고 거닐곤 했었다.
다영은 한 학년 선배인 자신이 무척 어른스러움을 느끼면서 아직 새로운 학교에 신기해 하는 그들을 바라본다.
"얘! 다영아!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니?"
언제 왔는지 송용원이 다영이 어깨를 툭 치면서 말을건다.
"용원이구나?
저기 일학년 학생들을 보고 있었어!
우리도 일년 전에는 저 애들처럼 이 학교의 여기저기가 모두 신기하다고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던 생각이 나서....."
"후후후..... 넌 때로는 참으로 센치하더라!"
송용원은 정다영을 보면서 웃음을 날린다.
그녀들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함께 대학에 들어온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고등학교 삼년내내 그녀들은 서로 한시도 떨어지기를 싫어하는 사이로 늘 함께 붙어 다니곤 했던 것이다.
"어서 가자!"
송용원은 다영을 이끈다.
다영은 그제야 용원이 오빠하고의 약속이 생각이 난다.
용원이 오빠 송용호를 정다영은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마음속으로만 담아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송용호가 그녀들에게 점심을 사 주겠다고 나오라고 한다는 전갈을
오늘 아침에 용원이를 통해서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이다.
송용호는 이미 오래전에 문단에 등단을 한 소설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근무를 하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직은 크게 빛을 보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 문단에서는 그에게 거는 기대 또한 매우 크다는것을
다영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집안은 평범한 소시민의 가정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그들은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으로 고생을 별로 하지 않으면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소시민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두 남매를 키우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반찬가게를 꾸려가고 있는 사람이다.
음식솜씨가 남달리 좋은 그들의 어머니가 남편이 떠나고 난 다음에 할수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송용호는 그런 어머니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자신의 꿈을 실현 시키고 싶은 그는 대학원을 가고 싶었으나 자신의 동생과 함께 학교를 다니기엔
어머니에게 지우는 짐이 너무나 무겁다는것을 알기에 선배가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에 입사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나는대로 작품을 쓰곤 한다.
"오빠가 무슨 생각으로 점심을 사 주겠다고 하니?"
"그야 내가 아니? 사실은 오늘이 오빠 월급날이라더라!
그래서 너와 나에게 맛있는것을 사 주겠다고 한다."
"그럼 허리띠라도 끌러야겠다.
비싸고 맛있는 것으로 사달라고 해도 되겠지?"
"후후후.....그야 내가 사는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묻니?"
"호호호.....네가 눈치를 줄까봐 먼저 허락을 받는거다."
그녀들의 맑고 고운 웃음소리는 봄날의 화창한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다.
그녀들이 약속장소에 도착을 하니 아직 송용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 아직 오빠가 오지 않았네?"
"다행이지! 우리가 먼저 도착을 했으니 정말 다행이다."
"먼저 만나자고 한 사람이 나와 있어야지 뭐가 다행이니?"
송용원은 투덜거리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러나 이내 송용호의 모습이 나타난다.
"어? 벌써들 와 있었구나?"
"지금 막 들어왔어요"
다영은 송용호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린다.
언제부터인가 송용호를 보기만 하면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것을 느끼면서 얼굴이 붉어져옴을 느끼곤 한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용원의 집에 수없이 가서 그에게 학습지도를 간간히 받곤 했었지만
자신의 마음이 어느 사이에 그를 좋아하고 있다고 느끼곤 하는 것이다.
송용호의 새로 출간된 책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사서보곤 하는 다영이었다.
"요즘 새로운 작품을 쓰고 계세요?"
"응!
허지만 직장을 나가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별로 나지 않아서 많이 나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야!"
송용호는 정다영을 바라보면서 대답을 한다.
마치 그자리에 정다영만이 있다는듯이 눈길은 정다영에게만 쏠리고 있었다.
"오빠! 나는 아예 보이지도 않수?"
용원은 그런 오빠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허허허.....미안하다!"
용호는 그제야 동생인 용원이를 바라보면서 게면쩍은 웃음을 웃는다.
"배고파요! 어서 음식이나 주문해요!"
용원은 오빠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심통을 부리는 척을 해본다.
그들은 음식을 주문한다.
다영은 자신의 말처럼 비싼 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보통의 평범한 음식을 주문한다.
"다영아! 너 가장 비싸고 맛있는것을 먹고 싶다며?"
용원이 놀린다.
"내가 언제?"
"어쭈? 우리 오빠 앞에서 저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어?"
"그래! 뭐든 사양하지 말고 먹고 싶은것을 시켜!"
송용호는 다영을 보면서 다정한 음성으로 말을 한다.
"아니예요! 용원이가 괜한 말을 하는거예요"
다영은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고개를 숙인다.
용호는 그런 다영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다영은 한해가 다르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송용호는 다영이가 R그룹의 외동딸이라는 것을 알고는 감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용원이와 함께 자주 자신의 집에 드나드는 다영이를 볼때 참으로 귀여운 소녀라는 생각을 하면서
용원이와 마찬가지로 동생처럼 귀여워하고 사랑해 왔었다.
그것은 이성이라기 보다는 친동생이라는 생각으로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해 한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영이를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어쩌다 다영이 오지 않는 날이면 공연히 마음이 허전해지면서 다영이 그리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용원이와 함께 공부를 지도해 주면서 얼마나 마음이 뿌듯했던가?
허나,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비로소 다영이가 그런 엄청난 집안의 외동딸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자신의 마음을 접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영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었다.
자신은 결코 다영이의 상대가 아님을 알면서도 마음은 다영이에게 향하고 있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던 것이다.
월급을 핑계로 용원이를 통해서 다영이를 불러내기는 했지만
결코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용호였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식사를 한다.
식사가 거의 끝이 날때쯤 용원이는 갑자기 생각이 난듯 호들갑을 떤다.
"어머? 내가 깜빡 잊고 있었네!"
"왜그러니?"
다영이 그런 용원이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오늘 선배들과 전시회를 가기로 했는데...."
용원은 시계를 본다.
"아! 아직 늦지 않았다. 나 급해서 먼저 가야 하니까 이해를 해주세요."
용원이는 두사람의 대답도 들을 필요도 없다는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난다.
"아무튼 저 애는 가끔 저렇게 덜렁대는 것이....."
송용호는 다영에게 미안하다는듯이 동생을 나무라는듯이 말을 한다.
그러나 용원이는 오빠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기에 일부러 그 자리를 피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용원이는 선배들과 전시회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했던 것이다.
오빠는 다영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빠는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빠를 위해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은 용원이의 마음이었다.
다영이는 대그룹의 외동딸 답지않게 매우 소박한 사람이다.
자신의 집에 와서도 아무 음식이나 잘먹고 맛있게 먹는 다영이를 보면 그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도 다영이는 자신과 함께 남대문 시장에 나가서 옷을 구입하는것을 즐거워한다.
그녀들은 가끔씩 남대문의 새벽시장을 나가 옷을 구입하곤 한다.
그럴때 다영이는 상인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한푼이라도 더 에누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곤 새벽에 포장마차에 들려서 먹는 우동의 맛에 다영은 흠뻑 빠져든다.
자신과 하나도 다를것이 없는 다영이다.
헌데, 자신의 오빠는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 하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는 용원이다.
용원이가 자리를 떠나고 나자 남은 두사람은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말이 되어 나와 주지를 않는다.
"저.....집에 일찍 들어가야 하니?"
송용호는 어렵게 말문을 연다.
"아니요! 오늘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다고 말을 했어요."
"그럼 우리끼리 어디 바람이라도 쏘이러 갈까?"
"네!"
송용호는 계산을 마치고 다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봄날 오후의 햇살은 따갑게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막상 밖으로 나오니 갈곳이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영아! 우리 어디로 갈까?"
"오빠! 난 경복궁을 한번 가보고 싶어요."
다영은 용호가 망설이고 있다는것을 알아채고 얼른 행선지를 밝힌다.
이 좋은 봄날에 어느곳에 들어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하거니와 서울에서 갈만한 곳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경복궁으로 향한다.
경복궁은 봄날의 화창함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봄날의 화려함을 즐기고 있었다.
넓디 넓은 궁궐터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하나하나 구경을 하다보니 다영은 다리가 아파온다.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많은 시간을 걷는다는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다영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용호는 눈치를 채고 조금 안쪽에 비어있는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다영을 데리고 가서 의자에 다영을 앉게 한다.
"이곳에서 좀 쉬었다 구경하자"
송용호는 벤취에다 자신의 손수건을 깔고 다영을 앉으라고 권한다.
"손수건을 깔지 않아도 돼요"
다영은 용호의 손수건을 걷어서 다시 곱게 접는다.
다영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곳에서나 행동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다영아! 이렇게 나오니까 너무 좋다.
난 서울에 살면서도 이런 고궁이 있다는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어!"
"대부분 그럴거예요. 나도 용원이를 따라서 몇번 와 보기는 했어요."
"아참, 우리 용원이가 그림을 그리려고 고궁을 자주 찾던 생각이 난다"
"그래요! 이곳에는 특별히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곤 하지요.
몇번을 용원이를 따라서 와보곤 했지만 올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생각하는것이 달라져요."
"난 별로 와보지를 않아서 잘 모르지만 와서 보니까 정말 좋은곳 이라는걸 알수가 있다."
송용호는 새삼스럽게 고궁을 둘러본다.
"오빠! 용원이가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지요?"
"응! 그렇기는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집 형편이 어디 유학을 보낼 형편이 되어야지"
"그래도 어떻게 해서라도 유학을 보내는것이 용원이의 꿈을 실현시킬수가 있을텐데..."
정다영은 용원이를 잘 알고 있었다.
용원이의 재능은 반드시 빛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영이다.
"내가 어서 좋은 작품을 써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하는데 마음처럼 그리 쉽지가 않아!"
"실은 그래서 오빠하고 의논을 해보려고 했어요."
"뭔데?"
"우리 아버지 회사가 해외에 많은 지사들이 있어요.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서 용원이를 유학을 보낼수가 있을것도 같은데 오빠생각은 어떠세요?"
다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송용호는 다영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자신이 비참하다는것을 느낀다.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스럽지만 아버니께 도움을 청해서라도
용원이의 꿈을 이룰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
"오빠의 자손심이 상하는 일이겠지요?"
다영이는 용호의 기분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네가 그렇게까지 우릴 용원이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 난 형제가 아무도 없어요.
용원이 하고는 벌써 오년이라는 세월을 서로 마음을 주면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우리 부모님들도 용원이라고 하면 나를 대하시는것처럼 매우 사랑하시고 좋아하고 계세요.
아마 우릴 아버지는 용원이의 사정을 아시면 승낙을 해주시리라 믿고 있어요."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난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께!"
"정말이지요?"
다영은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쉰다.
용원이의 유학 문제는 대학을 들어가기 전부터 용원이의 꿈이었고 바람이었다.
하지만, 가정 사정을 잘 아는 용원이는 감히 가족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지 못하고
다영이에게만 간간히 말을 하곤 했던것이다.
살아가는 것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자식을 유학 보낼 정도로 여유가 있는 형편이 아님을 알고 있는 용원이었다.
그런 용원이를 볼때마다 다영은 자신이 뭔가를 해줄수 없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아버지의 후원을 받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용호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영아!'"
"네?"
"우리 이렇게 가끔씩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내면 안될까?"
"안 되기는 왜 안돼요?
이렇게 만나서 고궁에도 나오고 어디 가까운곳에 바람이라도 쏘이면 얼마나 좋아요?"
"그것이 아니고.........."
다영은 용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영은 짐짓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듯이 가볍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난 너하고 정식으로 사귀고 싶다고 말을 하고 있는거야!"
"오빠! 실은 나도 오빠하고 사귀고 싶어요"
"정말? 내가 정말 너에게 다가가도 되겠니?"
"그런것을 묻고 시작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다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용호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있었다.
용호는 다영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면서도 마음이 너무나 딱딱하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랬니?"
"그럼요! 무슨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처럼 얼굴이 굳어져 있어요"
"하하하......내가 너무 긴장을 했던 모양이로군!"
용호의 웃음소리는 봄바람에 실려 멀리 퍼져 나간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나니 용호의 마음도 한결 편안하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ㅏㄷ.
"오빠는 이상하게 나에게 무언가 생각하는 것이 많은것 같아요."
"그야 당연하지! 너는 나와는 다른 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을 왜 해요? 나도 그저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선 넌 아주 특별한 신분이거든!"
"아니요! 난 그저 보통의 평범한 삶을 더 좋아하며 그렇게 살고 있어요."
다영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특별하게 보는것이 제일 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평범하게 이 세상을 살면서 작은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다영의 전부였던 것이다.
"오빠 우린 그저 평범한 연인으로 그렇게 사귀고 싶어요."
"그야 내가 원하는 것이지."
용호의 마음은 더 없이 기쁘다.
그들은 그렇게 고궁에서의 화창한 봄날을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