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Letter_ 지키는 눈
강 영은
밭에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지난해 수확에 별 재미를 못 보았지만, 입에 씹히는 강원도 찰옥수수의 쫀득쫀득한 맛을 잊지 못하는 가족들의 바램대로 그 옥수수를 또 심었습니다.
자꾸 씹어야 고소한 맛이 나오는 쫄깃쫄깃한 찰옥수수는,
첫 입에 달콤한 국물이 쭈욱 나오는 부드럽고 노란 미국의 스윗콘과는 전혀 맛이 다릅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근성처럼(?) 은근히 질기고 씹기 힘든 찰옥수수를 고향의 향수 때문인지 좋아들 합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옥수수 몇 줄을 심은 후 만족한 웃음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까마귀들이 영리한 눈동자를 돌리며 공중에서 빙빙 배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지난해의 얄미운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옥수수의 파란 싹이 손가락 한마디만큼 자랐을 때,
입맛을 다시며 보고 있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몰려와
그 예쁜 싹을 쏙쏙 다 빼어 먹어버렸던 기억을…
“까악 까악!”
벌써 자기들끼리 맛있는 먹이가 있다고 연락을 하는지
먼 숲에서도 까마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이 까마귀들을 어쩌지?”
마침 알맞은 까마귀 퇴치법을 알게 되어 회심의 미소를 띠며 밭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까마귀가 무서워 하도록 번쩍거리는 은박종이 테이프를 밭 가장자리에 두르는 방법이었습니다. 먼저 밭 네 모퉁이 땅에 긴 장대를 꼽았습니다. 그리고 그 네 개의 장대에 양면이 은색깔로 된 반짝이 은박 테이프를 느슨히 잡아매어 연결해 밭 가장자리를 둘렀습니다.
바람이 불자, 드디어 반짝이 은박 테이프가 출렁이며 햇빛에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까마귀가 다가가기가 무섭도록 번쩍거리며 흔들립니다. 누군가가 번쩍이는 검을 휘두르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 은박종이 테이프는 밤에도 야광 테이프처럼 번쩍거리며 흔들려서, 옥수수밭은 마치 레이저 광선 쇼를 벌인 듯했습니다.
그래도 미심쩍어 까마귀 퇴치법을 하나 더 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둥근 올빼미 풍선을 사서 장대에 달아맨 것이었습니다. 올빼미는 까마귀의 천적이기 때문에 까마귀는 올빼미를 무서워한답니다. 바람을 불어넣은 둥근 고무 공 같은 풍선에는 올빼미 비슷한 얼굴에 올빼미 눈 같은 둥그런 눈이 돌아가면서 여섯 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야광 동그라미 같은 것이 붙어있어서 그 눈동자는 조금만 빛이 비쳐도 반짝였습니다. 정말 까마귀들이 그 지키는 눈이 무서워서도 옥수수를 탐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옥수수밭은 정말 볼 만했습니다.
길어진 저녁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깃들었는데도 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번쩍이는 은박종이 테이프와 올빼미 풍선이 바람에 흔들거리면서 검은 까마귀들을 쫓아주고 있었습니다.
안심의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창밖을 내다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것은 항상 깨어서 나를 지켜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생각,
검은 까마귀 같은 죄의 유혹을 일곱 영의 눈을 가지신 분께서 쫓아주시며 나를 지켜주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치 옥수수밭을 지키는 번쩍이는 은박종이 테이프처럼…
까마귀를 쫓아주는 올빼미 풍선의 번쩍이는 눈처럼…
밤에도 깨어서 나를 지키시는 고마운 분이 계시다는 생각에
행복한 미소를 띠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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