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가 악인을 달게 먹을 것이라.
( 욥기 24 장 )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책망 하시고 강권하시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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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시간과 때에
대하여 예민하고 민감합니다.왜냐하면
무한정한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우리가
유한한 시간을 살면서 그 시간에 약속도 정하고 그 시간
안에 많은 업적을 이루어 내는 그것이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정해진 시간 안에서 많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애를 씁니다.
인간관계의 모든 중심은
바로 시간 약속으로 이루어 집니다.
언제까지 납품을 해야하고 언제까지 과업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 있다면
시간 약속을 정하지 않고 지키지도 않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시간 관념이 없으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하나님은
우리와 관게를 맺으시면서도 시간을 약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
해보시겠다는 말씀도 하나님은 절대로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너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언제까지라는 말씀은 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입맛에
딱 맞는 시간 약속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이것이 우리의 고민이요 신앙생활의 큰 난제입니다.
여기서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과 함께 관계안에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욥이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시간들의 끝을 알 수 없기 깨문에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견뎌야 하느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가장 강력한 무기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을 다루실 때도 모세를 다루실 때도 다윗을 다루실
때도 요셉을 다루실 때도 고통의 시간속에 그냥 던져 두셨습니다.
언젠가는 이 일이 끝나겠지..라는 믿음을
가지면서도 매일의 시간이 고통스러워 호흡조자
하기 어렵고 버거운 시간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겪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고통 스럽지만 그러나 끝은 있을
것이며 이 끝을 내가 보지 못하고 죽을 지라도 하나님은
뜻하신바 있으시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믿음을.갖게 하셨습니다.
욥도 지금 이 큰 고통을 겪고 있지만 지금 이 고통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가 부활의 영광 중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1. 심판의 때는 알지 못하고.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욥기 24:1)
욥은 전능하신 분께서는 심판하실 때를 정하여
두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판단받을 날을 정하지 않으셨냐고 묻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심판할
날을 알지 못하여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때는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되는 날입니다.
그날은 악인을
위해 준비해 둔
형벌이 쏟아집니다.예수님이 재림해 백보좌 심판하실 때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여 악인을 불과 유황이
타는 못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2. 경계표를 옮기는 자들.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
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욥기 24:2-3)
악인들은 죄를 짓지만 심판이 곧바로
임하지 않습니다. 이제 욥은 악인이 오히려
번영하고 있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져서 자기 땅을
넓힙니다.지계표는 이웃하는 땅의 경계를 담이나 울타리를
쌓지 않고 돌이나 바위 등을 경계선 자리에 놓아 표시했습니다.
이러한 지계표를 옮김으로써 이웃의
토지를 부당하게 빼앗는 자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런 죄악은 저주받는 죄로 금지햇습니다.
악인은 다른 사람의 양떼를 빼앗아 자기 양처럼
기릅니다.악인들은 양떼를 강제로 탈취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뻔뻔스럽게 탈취한 양떼를 공개적으로 방목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연약한 고아와 과부의 나귀나
소를 빼앗아 볼모로 잡습니다. 부모를 잃은 고아에게는
나귀가 그의 유일한 재산이자 유일한 노동력이나 다름없습니다.
고아의 나귀를 약탈하는 행위는 고아의 생명을 위협
하는 것입니다.사회적 약자 내지는 소외층인 고아와 과부에
대해서 율법은 그들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재산을 전당잡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이러한 약한 자들을 탈취하는 행위에는 벌금이 부과되었습니다.
특히
과부와 고아의
물건을 빼앗는 경우엔 두 배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3.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냄.
"가난한 자를 길
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욥기 24:4)
가난한 자들의 가지고 있는 권리를 빼앗으니
세상에서 학대받는 자가 숨어삽니다. 악인은 빈궁한
자들을 자기들이 다니던 길로부터 밀어내어 방황하도록 만듭니다.
약탈 행위로 인하여 그 길을
마음대로 다닐 수 없게 만듭니다.
가난한 자들은 압제자들에 의해 길에서마저 쫓겨 다녀야했습니다.
그들은 압제를 피하여 땅에서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 이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배자의 억압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들은 그 억압과 착취를 피하기 위해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짓는 자들이 심판을 받지 않고 오랫동안 잘만 사는 것 같습니다.
4. 굶주린 자들.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밭에서 남의 꼴을 베며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욥기 24:5-6)
학대하는 자들이 있으면
학대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학대받는
자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뼈빠지게 일합니다.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해야
겨우 먹고삽니다. 먹을 것이
없어 빈들에서 곡식을 거두고 남은 것을 주워 먹으며 살아갑니다.
욥은 피압제자들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험난하고 메마른 스텝 지역에서 소량의 먹이를 찾기 위해
헤매고 다니는 들나귀의 모습에 비겨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광야는 건조한 땅 사막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배고파서 칭얼대는 자식들의
음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 나설 곳이라고는 광야 밖에 없었습니다,
약자들이 사회의 공동체에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존(生存)에 필요한 음식
조차도 마음대로 구할 수 없는 참혹한 현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분명
욥의 눈에는
이런 비참한 상황이 사악한 자들의 압제로 인한 결과로 보였습니다.
자신이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한 욥은 그러한
불의를 가만히 두고 보는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바위 틈에서 사는 자들.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욥기 24:7-8)
약자들은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춥게 지내야합니다.
추워도 덮을 이불이 없습니다. 인간생활에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비참한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먹을 음식뿐만 아니라 의복이 없어서
추위에 몸을 떨면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악인들
에게 볼모잡힌 것을 돌려받지 못한 때문에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의인은 이렇게
고통을 당해도 하나님은 의인을 지켜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의 현실만
보면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악인은 떵떵 거리며 잘 살고 의인은 고통합니다.
6. 자녀를 볼모잡는 자들.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
(욥기 24:9)
욥은 계속하여 악인의 횡포와 약자의
고통을 고발합니다. 어떤 악인은 가난한
자가 빚을 갚지 않는다고 자녀를 어머니 품에서 빼앗습니다.
고대에는 어린아이들이 가치있는 재산으로
인식되었는데 채권자들은 아직 젖도 떼지 아니한
아이들을 데려다 노예로 삼고 돈을 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괴로운 처지에 있는 자들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포악한 행위로서 그들에게 고통을 더
가중시켰습니다.잠잘 때 덮고 자는 옷을 볼모 잡기도합니다.
가난한 자가 돈이나
곡물로 부채를 갚기도 전에 채주들은
그들의 유아들을 담보물로서 압류한다는 의미가 적당합니다.
7. 무임금 노동자들.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그 사람들
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욥기 24:10-11)
욥은 압제자의 비정한 착취의 한 단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압제자들은 그들의 일을 억압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시켰지만
필요한 어떤 대가나 보호해줄 의무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곡식 이삭을 나르는 노동을
하면서도 그 곡식을 먹지 못하여 배를
곯습니다.그들은 굶주림을 당하면서 곡식단을 날라야 했습니다.
압제자들은 짐승들에게도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난한 자들에게 행하고 있습니다.부자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고 술틀을 밟으면서도 술을 먹지 못해 목말라 합니다.
8. 도시 가운데 행해지는 강포.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욥기 24:12)
욥은 도시 가운데서 행해지는 강포와 불의에 대해 언급
합니다.사람들은 압제자의 횡포로 인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자가 신음하며 부르짖어 외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습격당하여 거의 죽게 된 자들이
매우 처절하게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데도 징벌을 당하지 않은채 이 땅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은 체도 않으십니다.
결국 욥은 이 땅에 폭력과 억압이 계속되고 정의가 짓밟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잠잠하신 것을 항변하고 있습니다.
9. 밤을 좋아하는 자들.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욥기 24:13)
악인 가운데는 광명을
배반하고 어둠을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그들은 공의를 행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리를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길에 머물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제 욥은 앞서 언급한
사악한 자들 외에 또 다른 부류의 악인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빛을 반역하고 어두움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십계명의
제 6, 7, 8,계명을 어기는 살인자들 간음자들 밤도둑들입니다.
이런 부류의 악인들이
가지는 공통된 특성은 광명을 미워
하고 어두움으로 덮여진 은밀한 죄악을 남몰래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밤과 어두움이
그들의 악한 행위를 감추어 줄 수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음이 분명합니다.
10. 살인과 도둑질 하는 자들.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
나서 학대 받는자나 가난한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
(욥기 24:14)
악인들은
밝을 때에 일어나서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같이 되어 남의 재산을 훔칩니다.
악인은 인적이 드물고 주위가
캄캄한 때를 골라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부터 기동하는 궁핍한 자들을 습격하여 약탈하고 죽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밤을
좋아하고 낮을 싫어합니다. 간음
하는 자 남의 집에 들어가 밤에 도둑질하는 자는 아침이 싫습니다.
11. 간음하는 자들.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
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욥기 24:15)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랍니다. 악인들은
은밀하게 행하기를 원하는 음탕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행의 수치와
그 죄를 감추기 좋은
어두움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간음자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간음자가 여자의
옷으로 변장하여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위장은 밤에 더욱 용이했을 것입니다.
12. 어둠을 좋아하는 자들.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욥기 24:16)
빛의 길에 익숙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빛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두움
속에서 어두운 일을 행하며 어두움과 밀접한 교제를 나눕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신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하셨으며 나아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도록 빛의 아들이 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13. 빛을 싫어하는 자들.
"그들은 아침
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욥기 24:17)
그들은 아침이 오는 것을 죽음같이 여깁니다.
다른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은 그들에게
발각될 위협을 가져오지만 다른 사람들이 잠드는
깊은 밤은 그들에게는 아침처럼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됩니다.
도적들은
그들의 악한 행위를
숨겨주는 어둠이 올수록 기뻐하면서 비로소 활동을 시작합니다.
14. 악인이 받을 저주.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같이 하느니라"
(욥기 24:18-19)
이제부터 욥은
악인들이 받을 심판을 말합니다. 악인은 물위에 떠내려 갑니다.
악인들의 존재는 물 위에
떠서 빨리 흘러가 보이지 않는 물체처럼
쉽게 잊혀지고 맙니다.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은 저주 받아서
다시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합니다.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빼앗듯 범죄자도 죽음을 당합니다.
뜨거운 태양이 눈을 녹이고
물을 증발시키듯이 음부(陰府)가
악인을 재빨리 채갑니다.하나님은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을 중심으로 악인을 보아야 합니다.
15. 구더기가 달게 먹고.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
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욥기 24:20)
악인을 낳은 어머니도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받아 먹을 것입니다. 어머니와
구더기가 서로 대조를 이루어 악인의 비참한 결말을 강조합니다.
악인은 맹목적이라 할 정도로
강렬한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조차
버림을 받으며 그를 가까이하고 달려들 자는 구더기밖에 없습니다.
지옥에는 구더기가 들끓습니다.
악인들은 지옥의 형벌을 당합니다. 그들은
다시 기억되지 않고 불의도 잘린 나무처럼 꺾어지고 말 것입니다.
16.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
"그는 임신
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는도다"
(욥기 24:21)
사악한 자의 생전에
저지른 죄악의 실상이 밝히 증거
되고 있습니다.욥이 불의한 현실을 명백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합니다. 과부를 선대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들을
학대하거나 약탈하고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사악한 자의 불의한 죄악은 반드시 형벌 받아야 마땅합니다.
물론 욥의 눈에 목격된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인들이 고난을 받고
악인들은 흥하고 있습니다.또한 욥 자신도 이런 체험을 했습니다.
욥은 이런 현실을
보며 욥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17. 강포한 자를 끌어 내시나니.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욥기 24:22)
욥은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실현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를
끌어내십니다.욥은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실 것을 바라봅니다.
강한 자들은 자기 자신의 힘만 의지하는
교만하고 대담스러운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만 믿고 하나님의 뜻을 완고하게 거역하는 자들입니다.
18. 악인의 결국은 망함.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
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욥기 24:23-24)
하나님은 잠시
악인들에게 평안을 주시지만 그들의
길을 살피십니다.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잠시 악인들의 피난처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악한 일에 담대하게 하시며 또한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그들을 평안하게 휴식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의
행위를 감찰하시고 공의로 심판
하십니다.그들은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잘리게 될 것입니다.
19. 욥의 확신.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
(욥기 24:25)
욥은 악인의 번성과 의인의 고통이라고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깊은 회의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끝내 불신할 수 없었습니다.
욥은
악인의 멸망을
기대하는 강한 기대감으로 자신의 변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
욥의 말처럼
악인이 현세에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할지라도 욥의 말을 거짓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내세까지
생각해야합니다. 진정한 심판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완성됩니다.
욥은 지금까지
표명한 자신의 입장에
대하여 자신감을 갖고 누구든지 공박할테면 해보라고 말합니다.
사실 욥은 그 친구들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또한 자기
에게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께 항변하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무죄를 변호해주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또 이 고통의 신비를 깨닫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욥의 현재의
소망은 극심한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는 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욥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의 무죄함을 하나님께서 증명해 주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반면에 참으로
악한 자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 교훈 )
욥은 하나님이
악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에 대하여 대단한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징벌하시지 않는
것은 그들의 행위를 모르시거나 용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심판을 유보하신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번영을 보고
시기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섭리와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살면서 잃은 것에만
연연하다 보면 근심과 좌절과 낙심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면서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면 이 끝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비록 그렇지 못할지라도 부활의 영광 중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만나리라는 믿음 붙들고
잃은것 보다는 남아있는것 가진것이 더 많음을
자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남은것 감사함으로 사용하게 될 때.
잃은 것의 몇십 몇백배의 보상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줄 또한 믿습니다.이런 은혜와 복이
우리들 삶가운데 함께 하여 주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2022. 8. 27.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
카나다 캘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