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에 관련된 명언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어라, 너 자신을 내 주어라.
기독교의 종교적 동기와 목적은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을 가진 자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내고 말 것이다, 무엇이든 다 한다, 다 할 수 있다.
"당신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새롭게 찾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 전 종교에 없는 무엇이 있던가요?"
이에 성자 선다 싱이 대답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매튜 아놀드는 말했습니다. "평화와 안녕을 가져온다고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것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십니다".
가장 정제된 마음과 고귀한 영혼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는 인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장애물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변화시킵니다.
이는 모든 어려움을 기회의 문으로 변화시키며,
모든 실패를 구원의 수단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떤 언어체계에서나 인격을 가장 높이 묘사하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이란 형용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종이나 출생, 피부색, 그리고 소유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을 그 자체로 보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무엇보다도 인간을 더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마음 속 깊이 예수 그리스도와 소통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적 경험(체험)에 의해 해석되어져야 한다.
또한 그 실제적이고도 생생한 경험은 간증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어져야 한다.
의미있고도 풍요로운 간증이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말해야 한다.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의 심장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숨쉬는 것보다 우리 가까이 계시고, 우리의 손과 발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중심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누어진 바퀴살을 한데 묶는 중심부의 역할을 합니다.
기쁨과 생명이 넘치는 기독교를 전파하려면 인격적인 예수님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삶의 질고와 고통을 예수님께 맡겨 보십시오. 믿음으로 맡기십시오.
교리를 순수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이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찬양해야 할 존재입니다.
다른 것을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해야 합니다.
나에게 종교는, 예수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예수가 느끼는 대로 느끼고,
그의 목적에 따라 살며 그와 같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출처: 스탠리 존스. 김상근 역.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 평단, 2005)
나는 불멸의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의 지상천국같은 기쁨보다
더 나은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지상의 영혼들을 위해 수고하시며 그의 뜻을 천국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봉사 이외에 더 나은 봉사를 원치 않는다
(출처: http://cafe.naver.com/thebandofpuritans/796)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나를 버리노라(아도니람 저드슨)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드리기까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고귀한 생명을 바치셨는데 우리는 우리 삶 가운데서 제일 우선순위에
주님을 사랑하며 따르는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이 있음을 고백하며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번 일을 통해서 주님보다 내 아이를 더 사랑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도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결코 주님보다도 이 세상에는 더 귀한 것이 없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김미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부활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재 신앙'이다(김운용)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예수님이 기본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생각해 보고, 십자가를 떠 올려보며,
순간순간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마치 탁구에서 기본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연습하고 점검하듯이 말입니다(임영탁).
예수님께서는 나만 사랑하시는 거 같애.
예수님은 나만 사랑하셔...라는 강한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제일소망교회).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사람, 예수의 향기가 나는 사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예수로만 사는 사람, 예수님을 향해 사는 사람.
예수 사랑 나라 사랑! 예수 사랑 이웃 사랑!
살아계신 예수님은 우리의 절대절망,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저 앞에 우뚝 서 계시는 분이시다.
살아계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분이시다(성경, 설교, 찬양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인생의 한밤중에라도 예수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부를 수 있다.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현재로 끌어당겨 맛보는 동시에,
미래와 천국에서의 기쁜은혜를 현재로 끌어당겨 미리 맛봄으로써
신령한 감격의 찬양을 부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의무이자 특권).
내 삶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셨다면 내 말/행동/삶에 그 흔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나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 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란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얻게 된 가장 귀한 축복은 '천국을 소유'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결코 자신의 교회만을 통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큰 교회든 작은 개척교회든, 이웃교회의 부흥과 축복을 위해서 기도해 보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와 응답의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전도는 사명이지 교회간의 경쟁거리나 성장수단이 아닙니다.
영적전선에서 한 곳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웃교회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에서 함께 영광의 면류관을 쓰야 할 소중한 동지들입니다.
"주님, 나는 죽었습니다. 맺힌 마음을 풀지 못하는 나는 죽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옹졸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제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제 생명이시고 제 주인이십니다"라고 날마다 고백합니다.
저는 아직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습니다. 저는 더 배우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더 알고 싶을 뿐입니다. 오 예수님 제게 가르치소서.
저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자기 죽음과 십자가를 통과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믿는다는 것은
지극한 평안과 사랑과 행복과 자유입니다.
(위 문단의 출처: 유기성.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규장, 2009)
본질적으로 기독교는 예수님을 보려는 열망과 노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출처: 맥스 루케이도. 마영례 역. [은혜안에 거하다] 가치창조, 2005. p. 105)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님께는 '이미'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오직 '때가 차매'라는 단어가 있을 뿐입니다(박상진).
(이미 늦었다. 이미 실패했다. 이미 망했다....라는 말은 의미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목적지가 바뀌지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의 운명이 바뀐다(Ian Thomas)
예수님을 밀어내고 내 마음의 보좌를 차지하려는 주된 경쟁자는 무엇인가?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이셨기에,
쉽게 넘어지는 인간의 보잘겂없는 본성을 이해하시며,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에 인간의 약함에 실망치 않으시는 분이심을
깨달았다(아빌라의 테레사)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를 소망하는 자들 가운데
주변에 끊임없이 마음을 빼앗기며 주님을 향한 길에서 벗어나 보지 않은 자,
그 누가 있겠는가?(아빌라의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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