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 (Torah)
매년 12월 둘째 주일은 성서 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 성서주일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키는 주일로서 성경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하는 기념일입니다. 1899년부터 지켜 오고 있는 성서 주일은, 성서를 보급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부터는 성서가 보급되지 못한 세계의 방방곡곡에 성서를 공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그들이 토라를 다루는 모습은 우리에게 성서를 소중하게 다루는데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토라”는 엄격하게 말하자면 히브리어로 “후마쉬”라고 불리는 모세오경을 말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토라”라는 단어는 이보다 훨씬 넓어져서 구약 전체나 탈무드, 심지어 유대학문 전체를 말할 때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토라는 서기관이라는 토라 기록 전문가가 손으로 써야 하였는데, 두루마리 하나를 작성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들었으며, 보통 1년 반 내지 3년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서기관이 토라를 필사하는 동안 맞은편에 두 사람이 앉아서 서기관이 제대로 쓰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서기관의 토라 취급 원칙 9가지
1. 서기관은 토라를 송아지 가죽에 기록하여야 합니다. 다 자란 소의 가죽에 토라를 기록하면 가죽이 너무 두꺼워서 토라가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2. 서기관은 자연사한 송아지 가죽에 토라를 기록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귀중한 토라일지라도 토라를 기록하기 위하여 송아지를 잡아 죽인다면 하나의 생명이 희생되기 때문이었습니다.
3.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하다가 “하나님(YHWH)” 이름이 나오면 몸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목욕을 하고 와서 그 이름을 기록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4.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하다가 “하나님(YHWH)” 이름이 나오면 사용하던 펜을 버리고 새로운 펜을 꺼내어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5.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할 때, 두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록하여야 했습니다. 잘 못 옮겨 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6.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할 때 “하나님(YHWH)” 이라는 이름을 기록하다가 한 획이라도 틀릴 경우 해당 페이지를 뜯어내고 처음부터 새로 기록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YHWH) 이외의 단어가 틀릴 경우에는 해당 단어를 도려내고 새로운 가죽을 붙여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7.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할 때 정결한 깃털이나 갈대로만 기록하여야 합니다. 부정한 재료를 사용하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이므로 철필을 사용하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8.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할 때 천천히 기록하여야 합니다. 그 뜻을 생각하면서 기록하여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9. 서기관이 토라를 기록한 후 이방인에게 매매하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방인은 토라의 귀중함을 알지 못하므로 훼손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스럽게 취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식량이 없어서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는 이방인에게 매매할 수 있습니다.
토라 보관 방법
토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것이므로 아주 안전하고 소중하게 보관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토라를 보관할 때 특별한 방법으로 보관하게 됩니다.
1. 우선 토라를 양쪽으로 잘 말아서 두 롤이 서로 만나도록 한 후 두루마리의 허리를 끈으로 묶습니다. 그래야 운반이나 보관 중에 토라가 땅에 떨어지거나 흐트러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끈은 어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사용한 강보를 잘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2. 유럽 유대인의 경우에는 끈으로 묶은 토라는 천으로 만든 토라 커버로 또 다시 씌웠습니다. 그러나 중동지방에 살던 유대인들은 나무로 만든 상자에 넣어 고리로 잠구었습니다.
3. 커버나 통속에 넣은 토라는 회당의 맨 앞쪽에 있는 벽장에 넣습니다. 벽장 속에서도 바닥에 놓지 않고 세워서 보관합니다. 벽장에 안전하게 넣은 다음에는 반드시 벽장을 닫고 문을 안전하게 잠급니다.
4. 벽장에 넣은 후에는 벽장 전체가 보이지 않도록 휘장으로 가립니다. 이 휘장은 성막에서부터 유래된 것이며, 예루살렘 성전을 거쳐 회당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토라를 취급하는 방법
1. 토라는 사람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취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선 토라를 꺼내어 읽을 때에는 토라에 손가락을 짚어 가며 읽는 것이 아니라 토라 손(토라 포인터)을 사용하여 읽습니다. 사람의 팔처럼 만들어진 토라 손(토라 포인터)은 회당에서 토라를 읽을 때 여러 사람들에게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을 잘 알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토라에 때를 묻히지 않게 되므로 유용합니다. 그리고 경전인 토라에 손을 함부로 대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도구입니다.
2. 토라를 만져야 할 경우에는 토라 커버 천으로 토라를 싼 후 만집니다.
3. 토라를 땅바닥에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받침이나 다른 물건을 깔고 그 위에 놓아야 합니다.
토라 폐기 방법
유대인들은 훼손되어 수명을 다한 토라를 폐기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폐기된 토라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불에 태우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토라뿐 아니라 다른 종교 서적이나 물건들도 아주 소중하게 다루는데 하물며 토라를 그렇게 취급할 리가 없습니다.
1. 수명이 다한 토라는 일단 “게니자(폐기되는 토라나 종교 서적 등을 임시로 보관하는 상자)”에 보관합니다. 이러한 “게니자”는 일반적으로 회당 안에 있습니다.
2. 토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경전으로서 유대인들은 이 토라를 인격적으로 대우합니다. 그러므로 회당이나 다른 행사에서 기도서를 낭독하기 위해서는 10명 이상의 유대 남자 성인이 모여야 하지만, 만약 토라를 어깨에 맨 소년 1명이 있다면 남자 성인 9명만 모여도 정족수는 충족된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토라를 1명의 인격체로 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토라를 폐기할 때에도 유대인들은 인격적으로 대우하는데, 사람과 같이 사람을 매장하는 공동묘지에 가서 토라를 매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토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존중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상대적으로 성경책을 너무나 소홀하게 다루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낭독하는 토라 두루마리 글자에는 토라를 읽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음의 고저와 장단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토라는 누가 읽더라도 동일한 소리로 낭독하게 됩니다.
그리고 토라는 반드시 송아지 가죽에만 기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 가죽이나 사슴 가죽 등 정결한 동물의 가죽에 기록되기도 합니다. 다만 종이에 인쇄한 두루마리는 아무리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회중 앞에서 낭독할 때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섯 두루마리란 무엇입니까?
보통 두루마리의 길이는 약 10.5 m, 넓이는 25-30 cm 정도 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두루마리는 양면에 글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겔 2:10; 계 5:1) 보통 한 면에 기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성문서는 다시 3구분하였는데 제 2 부를 “메길라(Megilla, 두루마리)”라고 불렀습니다. “메길라”는 에스더서, 전도서, 애가, 룻기, 아가서를 말하였는데 이 메길라는 5권의 글로 되어 있어서 “다섯 두루마리”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 두루마리는 이스라엘의 절기에 각각 읽혀져 왔습니다.
유월절(Pass-over)에 회당에서 읽는 “아가서”,
샤브옷(Shavouth, 칠칠절, 오순절)때 읽는 “룻(Ruth)기”,
티샤 브아브(Thisha B’av, 성전 파괴일) 때에 읽는 “애가”,
숙콧(Sukkoth, 초막절) 때에 읽는 “전도서”
부림(Purim, 부림절) 때에 읽는 “에스더서” 이렇게 5 개의 두루마리 성서를 말합니다.
에스더서 두루마리
소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에 기록된 에스더서는 특히 중세시대 유대인들에게 인기 있는 책이었습니다. 에스더서를 “메길라(Megilla)”라고도 부르는데, 그 뜻은 “두루마리”라는 의미입니다. 에스더서가 원래 페르시아의 여러 지방으로 보내진(에 9:26) 두루마리 편지였으므로, 그것처럼 에스더서를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회당에서 읽었던 것입니다.
원래 “메길라”는 에스더, 예레미야 애가, 아가, 룻기, 전도서 등 모두 다섯 권이지만, 그냥 “메길라”라고만 말하면 그것은 에스더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불렀던 것은 초기 탈무드시대(AD 250년경까지) 회당에서 낭독된 두루마리는 에스더서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 이야기
부림절의 핵심은 부림절 저녁과 다음날 아침 회당에서 에스더서를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서를 읽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가난한 사람 2명 이상을 위하여 기부금을 내는 풍습도 남아 있습니다.
에스더서를 읽을 때 구원에 관련된 대목은 큰 소리로 읽었지만(에 2:5, 8:15, 8:16, 10:3), 하만의 열 아들 이름은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열 아들이 한꺼번에 처형당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서를 낭독하던 중에 하만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라-아샨(그레거스)”이라는 딱따기를 마구 돌림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책상을 치면서 발을 굴려 하만을 야유합니다.
에스더서의 내용은 멸망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이 극적으로 구출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에스더서는 성경 66권 중에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유일한 책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정경화 작업에서 에스더서를 성경에 포함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토론이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랍비 “알프레드 콜라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에스더서는 페르시아의 외딴 지역들로 보낼 두루마리 편지 형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전달되는 중간에 더럽혀지거나 잘못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불경스러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므로 유대인들은 일부러 (에스더서에) 하나님 이름을 넣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 각 지방에 편지를 보낸 것은 모두 여섯 차례였고, 그 내용들은 왕후 와스디 징벌(1:19), 에스더가 새 왕후가 됨(2:8), 유대인 진멸(3;12), 진멸 취소(8:9), 하만 아들 징벌(9:14), 부림절 규례(9:20)이었습니다. 에스더서는 그 내용상으로 볼 때 페르시아 각 지방에 보낸 여섯 장의 편지들을 펼쳐 놓고, 성서의 정경화 작업을 하는 중간에 그 내용들을 엮어서 완성한 책입니다.
토라 기록(Torah transcription)
1. 서기관(a Scribe) 1900년대 예루살렘, 알미늄
서기관은 엄격하게 훈련받은 전문가로서 토라를 기록할 자격이 있다(렘 36:32).
토라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가죽을 직접 준비하고, 아침마다 정결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토라를 천천히 기록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2. 잉크 재료(ink materials, 히-데요/잉크, 헬-멜란/잉크) 이스라엘
토라를 기록할 때는 정결 잉크를 사용하여야 하며, 숯 검정이나 수지(樹脂) 등이 재료로 사용되었다.
사진은 일반에게 알려진 잉크 재료들이며, 이 외의 재료들은 예루살렘의 세 가족만이 그 비법을 알고 있다.
(렘 36:18) 바룩이 대답하되 …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3. 정결 펜(feather) 2000년대 예루살렘
토라, 메주자, 트필린, 이혼증서(겟, Get)를 포함한 종교적 문서는 코셔인 가금(家禽)류의 깃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철로 만든 펜이나 인쇄기 등의 금속 기구는 무기를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으므로 사용되지 않는다.
4. 갈대펜(reed pen) 2000년대 예루살렘
갈대로 만든 펜도 종교적 문서를 기록할 때에 이용된다.
이스라엘의 갈대는 한국의 대나무처럼 굵고 단단하므로 깎아서 펜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관습은 성서시대로부터 내려 온 것이다.
5. 토라 손(torah point, 히-토라 야드) 1800년대 이스라엘, 은
회당에서는 토라를 정기적으로 낭독하며, 그때마다 토라 야드가 사용된다.
손가락으로 토라를 짚으면 토라가 더럽혀질 뿐 아니라
‘하나님’ 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불경건한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토라의 일점일획
(마태5:17-20)
히브리어의 ‘토라’(הרות)는 본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주전 3-2세기 사이에 걸쳐서 완성된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헬라어 역본 ‘칠십인역’에서는 ‘토라’를 ‘노모스’(νομος)로 번역하였다. 헬라어에서 ‘노모스’는 보통 ‘법(法)’ 내지는 ‘규범’을 뜻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우리 인간에게 삶의 지침이 되므로 얼마든지 이처럼 번역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세 오경만 헬라어로 번역된 시기가 주전 3세기 경인 점을 감안해볼 때, 늦어도 헬라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주전 4-1세기를 가리킴) 부터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토라’를 일종의 ‘종교법의 총체(總體)’로서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헬라어 낱말은 신약 성경 안으로 들어왔으며, 다시 (이 헬라어의 영향으로) 번역을 거쳐 기독교 세계에서 ‘the Law’, ‘율법’ 등과 같이 헬라어 ‘노모스’와 맥을 같이하는 낱말들로 옷입고, 히브리어의 ‘토라’에 대한 대변자의 자리를 굳히었다. 이러한 번역 과정과 더불어 헬라어 ‘노모스’(νομος)와 및 이와 비슷한 의미 영역을 가진 기독교 세계 언어들의 단어들은 ‘토라’ 또는 더 나아가서 ‘구약 성경’ 전반에 대한 이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온듯 하다.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영향력이 긍정적인 면에 있지 아니하고, 대체로 부정적인 면에서 작용했다는 점이다.
주후 1세기에 활동하였던 사도 바울은 아마도 유대인과 및 이방인 가운데 이미 편만했던 ‘토라’에 대한 ‘노모스’적 이해를 염두에 두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비롯한 서신들에서 ‘노모스’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같다. 이러한 ‘노모스’적 개념 외에도 예전부터 유대인들은 ‘토라’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토라’는 1) ‘모세 오경’, 2) ‘구약 성경 전체’, 3) ‘구약 성경에 미슈나, 탈무드 등 유대인의 구전 토라를 포함한 것’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마태5:17에서 ‘토라’, 곧 ‘노모스’는 ‘선지자들’(히브리어로 ‘네비임’이라고 함)과 나란히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보통 구약 성경을 삼분하여 가리킬 때 사용하는 ‘토라(저자의 이름을 따라 ‘모세’라고도 함), 네비임, 케투빔(대표적으로 ‘시편’이라고도 함)’ 중 대표적으로 앞의 둘만을 언급하신 것이다. 구약에 대한 이러한 명명(命名)은 신약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태7:12; 22:40; 누가16:16, 29, 31; 24:44; 요한1:45; 5:46-47; 6:45; 사도행전10:43; 13:15, 27, 40; 15:15; 24:14; 28:23; 로마서3:21 등 참조).
문맥을 통하여 볼 때, 마태5:18의 ‘노모스’, 곧 ‘토라’는 앞서 17절에서 언급한 구약 성경 전체를 대표하여 거론되었다. 18절의 서두에 나오는 ‘아멘’(개역 성경에 ‘진실로’라고 번역됨)도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준다. 여기서 이 낱말은 히브리어의 그것을 헬라어로 그대로 음역하여 표기한 것인데, 히브리어에서 ‘아멘(ןמא)’은 ‘그것은 사실이다, 그대로 되기를!’ 등의 뜻을 가지면서, 일반적으로 앞에서 한 말에 대하여 동의 내지는 확신을 표시할 때 사용된다 (민수기5:22; 신명기27:15-26; 시편41:13; 72:19; 89:52; 106:48; 예레미야11:5; 28:6; 느헤미야5:6, 13; 마태5:26; 6:2, 5, 16; 10:15, 42; 13:17; 18:18; 23:36; 24:34, 47; 26:13; 로마서1:25; 9:5; 11:36 등 참조).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마태5:18 말씀은 바로 앞의 5:17 말씀을 다시 확인하며 강조하시는 말씀이 되는 셈이다.
마태5:18의 ‘일점일획’은 헬라어의 ιωτα εν η μια κεραια (‘이오타 헨 에 미아 케라이아’)를 번역한 것이다. 이 문구를 직역하면 ‘하나의 이오타 또는 한 획’이 된다. ‘이오타’(ι)는 헬라어 알파벳의 열 번 째 글자로서, 히브리어 알파벳의 열 번 째 글자인 ‘유드(י)’를 대변하는 것이다. 사실상 ‘유드(י)’는 히브리어 알파벳중 가장 작은 글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단지 정방형의 아람어 글자일 때만이 사실이며,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방형의 아람어 알파벳에서는 ‘달렡(ד)’과 ‘레쉬(ר)’, ‘베이트(ב)’와 ‘카프(כ)’ 등 사용되는 획의 근소한 차이에 따라서 서로 달라지는 글자들이 존재한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주후 1세기에 유대인 중에는 정방형의 아람어 글자체가 이미 고대 히브리어 글자체를 물리치고 히브리어 표기를 위한 문자 언어로서의 자리를 굳게 차지하였슴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사해 일대에서 발견된 고대 사본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많은 이들이 구약 성경, 더 나아가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축자 영감설을 주장하기 위하여 마태5:18의 말씀을 인용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믿고 그것의 완전성을 변호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성경 기록의 문맥에 나타난 본래 의도를 무시하고 무조건 아전인수격인 해석을 추구함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특정한 교리적 주장을 옹호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낱낱이’ (일점일획까지라도) 예수님 자신을 통해 반드시 성취된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시기 위함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마태5:17-20의 말씀은 소위 ‘율법과 은혜’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의 권위 및 성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기록된 모든 예언을 이루시고자 오셨다. 다시 말해서 그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예언)의 ‘결정체(結晶體)’가 되신다. 마태5:17-20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이미 율법을 다 이루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식의 유추 해석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노모스’적 개념에 빠진 이들의 과오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5-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가르침’(=토라)을 이제까지 ‘율법’(=노모스)적으로만 좁게 이해하였던 주후 1세기의 유대인들과 더 나아가서는 금세기의 한국 교회에게 ‘토라’ 본래의 뜻을 밝혀주는 귀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토라(Torah) 토라(Torah)라는 단어는 ‘가르침’(Teaching) 또는 ‘지시’(Instruction)라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는 율법(Law)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토라’라고 하면 ‘모세 5경’만을 말한다. 토라는 유태교 또는 유태주의의 모든 율법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기반이 되고 있다. 토라를 부정관사인 a 와 함께 사용하면(a Torah) 일반적으로 세퍼 토라(Sefer Torah)를 뜻한다. 세퍼 토라는 양피지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정식으로 써서 만든 두루마리를 의미한다. 정식으로 썼다는 것은 전문적으로 토라만을 쓰는 사람들이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 썼다는 것을 말한다. 유태교에서는 토라의 내용을 양피지 두루마리에 적어 넣기 위해 특별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엄격한 훈련을 한다. 이들을 서기관(Scribesa)라고 불렀다. 토라는 유태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경전이다. 토라는 히브리 종합 경전인 타나크의 세 파트중 첫 번째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태교의 기본이 되는 문서이다. 기독교에서는 토라의 모세 5경을 구약성경에 포함하여 역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토라의 상당부분 내용은 심지어 이방인들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토라의 내용은 초기 이스라엘 역사서로서도 귀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토라의 내용은 유일신께서 인간에게 계시로 내려준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토라의 일부 내용은 나중에 신이 아닌 인간이 추가하거나 수정함으로서 내용이 타락했다고 생각한다. 라비 문학(중세의 라비가 사용한 헤브라이어, 즉 후기 헤브라이어로 된 문학)에서는 토라라는 말에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기록으로 남겨진 토라(Torah that is written)이며 다른 하나는 ‘말로 전해 내려온 토라(Torah that is oral)이다.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입에서 구전되어온 내용은 탈무드(Talmud)와 미드라쉬(Midrash)에도 담겨 있다. 전통적인 라비의 설명에 따르면 토라에는 모두 613가지의 계명(mitzvot)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365가지는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금지사항이며 248가지는 ‘해도 좋다’는 긍정적인 계명이라는 것이다. 토라에는 여러 장르의 문학적 요소가 담겨 있다. 비유가 있고 역사적 사실이 있으며 시가 있고 족보가 있으며 특히 각종 율법이 기록되어 있다. [토라는 무슨 뜻?] 토라라는 단어는 가르침 또는 지시라는 의미라고 했지만 이밖에도 유태 율법, 관습, 학설, 가이드라인, 심지어 시스템이라는 뜻도 있다. 유태교에서 토라의 공식적인 명칭은 Chamishei Chunmshei Torah(토라의 다섯 책)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추마쉬(Chumash)라고 부른다. 추마쉬는 다섯이라는 뜻이다. 추마쉬라는 용어는 주로 인쇄된 토라경전의 경우에 한하여 사용하며 양피지에 손으로 쓴 토라는 세퍼 토라(Sefer Torah)라고 부른다. 토라라는 단어에 율법이라는 뜻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특히 유태교가 아닌 사람들이 유태교의 엣센스인 토라를 존경하고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볼수 있다. 유태인들은 토라가 세상 어느 것보다도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토라를 펜타튜크(Pentateuch)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으로 ‘다섯개의 상자’라는 뜻이다. 모세 5경을 의미한다. 펜타튜크라는 용어는 주후 150-175년경에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토라를 터라트(Tawrat)라고 부른다. 아랍어로서 예언자 모세에게 준 계시라는 뜻이다. 모세는 아랍어로 무사(Musa)라고 한다. 이슬람 사람 중에는 무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아브라함은 이베라힘(Iberahim)이라고 한다. 토라는 모세가 썼다고 한다. 사진은 베드로성당에 있는 율리우스2세의 묘. 아랫단에 유명한 모세의 조각상이 있으며 양 옆으로는 레아와 라헬이 있다. 토라는 누가 썼나? 천지창조라는 위대한 역사(役事)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의 기록인 토라는 누가 썼는가? 12세기에 스페인에서 태어난 철학자이며 라비인 모세 메모나이드(Moses Maimonides)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주전 1313년, 히브리력으로 2449년에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어서 토라를 썼다고 주장했다. 이후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의 토라는 모세 5경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들 다섯 권의 성경을 모세가 썼다는 데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토라의 저자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세가 모두 쓰지는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 배경으로는 신명기 34장에 기록된 모세의 죽음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신명기는 모세가 죽음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신명기까지를 모세가 썼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내세우지만 다른 전래의 얘기에 따르면 모세가 죽은 이후의 기록은 여호수아가 썼다는 것이다. 신명기의 마지막 절은 마치 모세의 비명(碑銘)과 같은 내용이므로 분명히 다른 사람이 썼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모세 5경의 마지막 경전인 신명기 다음에는 여호수아(Joshua)가 나온다. 유태인들은 이를 여호수아 자신이 썼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기록에 경험이 있는 여호수아가 신명기의 상당부분을 썼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베드로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 토라에 대한 학문적 분석 현대의 여러 성서신학자들은 토라가 파사(페르시아)시대 이후에나 완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시기적으로 주전 539-334년에 써졌다는 것이다. 20세기의 일반 신학자들은 토라가 오래전부터 유태 사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여러 편의 작은 기록들을 나중에 모아서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라가 완성된 시기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있는 중에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이 가장 그럴듯한 가정(假定)을 내놓았다. 그는 모세5경이 네편의 각각 독립된 기록서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그 시기는 솔로몬 이후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잡혀가 있던 때까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토라를 기록한 사람은 몇몇 제사장과 서기관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토라라고 하는 모세 5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추방당한 후에 서기관들이 중심이 되어 완성했다는 것이다. 모세 5경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네편의 기록서는 다음과 같다. 1) 야위스트(Jahwist) - 주전 950년경에 써짐. 이스라엘이 분열된 이후 남왕국, 즉 유대왕국에서 완성된 기록이라고 함. 기록에 야훼(Yahweh)라는 말이 자주 나오므로 야훼와 같은 의미인 자위스트(야비스트)라는 제목을 붙임. 2) 엘로이스트(Elohist) - 주전850년경에 써짐. 이스라엘의 분열 이후 북왕국, 즉 이스라엘왕국에서 완성된 기록이라고 함. 기록에 엘로힘(Elohim)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므로 엘로이스트라고 부르게 됨. 엘로힘은 히브리어에서 일반적인 신을 말하며 어떤 경우에는 이방신을 말함. 3) 듀트로노미스트(Deuteronomist) - 주전 621-650년에 써짐. 연대가 명확한 것은 유대왕 요시아(Josiah)의 시기에 썼다고 되어 있기 때문임. 듀터로노미스트는 나중에 구약성경 신명기와 여호수아, 그리고 열왕기 하편의 상당부분에도 인용되었음. 4) 제사장의 기록(Priestly Source) - 주전 550-400년의 포로시대에 써짐. 제사장 직을 맡고 있는 레위의 율법에 대한 내용임. 1970년대에 들어와서 토라가 써진 시기와 배경에 대한 논란이 다시 한번 높아졌다. 결론은 토라가 여러 작은 기록들을 참고해서 써진 것이 아니라 어떤 큰 기록에 기본을 두고 써졌다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수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다음어지고 다듬어져서 오늘의 토라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결국 학자들은 토라가 써진 시기가 주전 500-450이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일부 학자들은 주전 200년경에 써진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출애굽 시기에 모세가 직접 쓴 것이 오늘날 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책상위에 놓여진 토라 두루마리 토라 두루마리의 제작 필사한 토라 두루마리는 오늘날에도 제작되고 있고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유태교 예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필사한 토라 두루마리를 세퍼 토라(Sefer Torah)라고 부른다. 토라서(書)라는 뜻이다. 토라 두루마리는 전통적으로 고도로 숙달된 서기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다. 그런 전통이 있기에 토라 두루마리는 일자일획의 오류도 없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서기관들이 토라 두루마리를 정성을 들여 고도로 정확하게 필사하는 목적은 문장에서 철자 하나하나, 콤마 하나하나, 따옴표 하나하나를 잘못 옮겨 쓰면 그에 따라 성스러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토라 두루마리는 아마 오늘날까지 수천 개, 수만 개가 제작되었을 것이다. 토라를 읽을 때 쓰는 포인터. 오른쪽 팔의 모습이다. 토라는 성스러운 것이므로 직접 손으로 만지면 안된다. 또한 손으로 만지면 귀중한 양피지가 훼손될수 있으므로 손을 대신하는 포인터를 사용한다. 오늘날 토라는 책자로 인쇄되기도 한다. 회당에서가 아닌 개인적 용도를 위해서이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로 된 토라를 인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영어나 이탈리아어등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토라가 출판되기도 한다. 인쇄된 토라는 추마쉬(Chumash)라고 부른다. 복수형태는 추마쉼(Chumashim)이다. 다섯권의 책이라는 뜻이다. 인쇄된 토라는 소중하게 여김을 받지만 회당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회당에서는 필사한 세퍼 토라를 사용한다. 추마쉬에는 세퍼 토라와는 달리 모세 5경 이외에도 예배 의식에 필요한 내용들이 추가된다. 추마쉬에서는 읽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주석(註釋)을 붙이기도 한다. 세퍼 토라, 즉 필사한 토라 두루마리는 회당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에 보관한다. 성궤, 또는 법궤라고 불리는 곳에 보관한다. 성궤 또는 법궤는 영어로 아크(Ark)라고 한다. 노아(Noah)의 방주도 아크라고 한다. 노아의 방주(方舟)와 토라를 넣어두는 성궤는 같은 단어이다. 성궤는 히브리어로 아론 하코데쉬(aron hakodesh)라고 부른다. 아론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장롱, 또는 작은 벽장을 말한다. 코데쉬Kodesh)는 ‘성스럽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아론 하코데쉬는 ‘성스러운 상자’라고 할수 있다. 토라 두루마리를 장식하는 크라운과 작은 종들. 대제사장의 의상에도 이런 작은 종이 달여 있다. 토라의 구조 토라에 포함되어 있는 5권의 성서는 1) 창세기(Genesis) 2) 출애굽기(Exodus) 3) 레위기(Leviticus) 4) 민수기(Numbers) 5) 신명기(Deuteronomy)의 다섯 권이다. 모세 5경의 히브리어 명칭은 각 경전의 첫 절에 나오는 첫 단어를 가져온 것이다. 즉, 1) 창세기는 베레쉬트(Bereshit)로서 ‘태초에’(In the beginning)이라는 뜻이다. 창세기 1장1절의 첫 문장이다. 2) 출애굽기는 세모트(Shemot)로서 ‘이름들’(Names)라는 뜻이며 3) 레위기는 바이크라(Vaikra: Wayyiqra)로서 ‘그가 부르시다’(Then He called)라는 의미이다. 4) 민수기는 바미드바르(Bamidbar)로서 ‘광야에서’(In the wilderness)라는 뜻이며 5) 신명기는 데바림(Devarim)이라고 하여 '말씀'(Words) 또는 ‘사물들’(Things)이라는 의미이다. 신명기는 제2의 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두번째의 계명이라는 의미이다. 모세 5경의 영어 명칭은 그리스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각 성경의 요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1) 창세기의 Generis는 창조(Creation)라는 뜻이며 2) 출애굽기의 Exodus는 출발(Departure)이라는 뜻이고 3) 레위기의 Leviticus는 제사를 맡은 레위 족을 이르는 말로서 이들이 성전에서 예배(제사)를 드릴 때에 지켜야 하는 모든 규정들을 집대성한 경전이다. 4) 민수기 Numbers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와 모압 평원에 있을 때 인구조사를 한 내용이다. 5) 신명기 Deuteronomy는 ‘두번째 말씀’이라는 뜻으로 모세가 죽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의 내용을 다시 요약한 것이다. 토라에 수록된 5권의 말씀은 시대적으로 반드시 순서에 맞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나중에 일어났던 사건이 먼저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먼저 일어났던 사건이 나중에 기록된 경우도 있다. 토라의 개념은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는 것이다. 정통 유태교도 이 개념을 믿고 있다. 비정통 유태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이를 하나의 징조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원전인 토라를 근세에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시대의 순서가 약간 바뀌었다고 믿고 있다. 유태인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모형으로 토라의 중요성을 교육한다. 사진은 어느 집이나 마련해 놓은 토라 상징물 베레쉬트에서 데바림까지 베레쉬트(창세기)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창 1-3). 이어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이브에 대한 얘기, 그리고 이들의 자손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창 3-9에는 노아와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노아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벨탑의 이야기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창 10-11에 나오며 이어 족장시대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창 12-50에 전개된다.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가나안 복지를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하지만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은 야곱아 아들들이 기근 때문에 가나안을 떠나 애급(이집트)으로 가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세모트(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바로(파라오)의 애급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얘기가 나온다(출 1-18).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모세는 시내반도의 호렙(Horeb)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을 포함한 토라를 받는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한다(출 19-24). 출 32-34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없는 틈을 타서 아론으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만들게 하여 우상을 숭배함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장막(성전: Tabernacle)을 지으라는 명령을 하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바이크라(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장막(성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지시내용으로 시작한다(레 1-10). 이어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규정이 설명되어 있다(레 11-15). 이에는 짐승을 죽이는 법, 어떤 동물을 먹을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 속죄의 날에 대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 이와 함께 각종 도덕적 규범, 심지어 십일조 성물을 드리는 규정 등이 설명되어 있다(레 17-26). 그래서 이 부분을 성율(聖律: Holiness Code)이라고 부른다. 바미드바르(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두 번에 걸친 인구조사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민 1-3, 26). 이와 함께 여러 율법도 기록한 것이다. 기록에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시내(Sinai)반도에서 집단으로 결합되었는지(민 1-9), 시내에서 어떻게 가나안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가나안에 대하여 어떻게 정탐했는지가 설명되어 있다(민 10-13).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나안을 정탐 갔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고하고 원망하였기 때문에 정작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동안 광야에서 방랑하게 된 내용을 적고 있다(민 14). 민 20에는 모세까지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게 되었음이 설명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사막을 떠나 에돔에서 방랑하였으며 모압에 이르렀을 때에는 발락(Balak)과 발람(Balaam)이 적대하여 어려움을 겪었다(민 22-24, 31: 8, 15-16). 민수기의 말미에는 여리고 성을 앞에 둔 모압 땅에 이르렀으며 그제서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음이 적혀 있다. 데바림(신명기)은 기본적으로 여리고 성의 바라보는 모압 광야에서 모세가 행한 말씀이 주를 이루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그의 율법을 지키라고 간곡이 당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의 마지막 부분(신 34)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산위에서 바라볼수 있게 허락하시었다. 그후 모세의 모습은 다시 볼수 없었다. 모세는 자기의 나이가 연로하여 더 이상 살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여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지명하였다. 그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쓴 토라(사퍼 토라) 두루마리 토라와 유태교 토라는 유태교, 또는 유태주의의 핵심이다. 토라는 유태교의 기본 되는 성전(聖典)이다. 탈무드는 토라가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974세대를 거치면서 완성되었다고 설명한다. 햇수로 보면 2천년에 이른다. 탈무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토라를 기본계획서(블루프린트)로 사용하였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창조된 모든 만물은 토라에 기록된 말씀을 성취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토라의 기본 메시지는 한마디로 말하여 주 여호와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만민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언제 유태 백성에게 나타나시어 토라의 말씀을 주셨는지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다. 유태교 라비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어 말씀을 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가장 중요한 계시적 사건으로 믿고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시기는 대략 주전 1280년으로 보고 있다. 어떤 라비들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토라의 모든 내용을 한번에 다 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부 과격주의자들(Maximalist)은 이때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일점일획까지 모두 직접 적은 기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심지어 토라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라는 말까지 그대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을 말씀해 주시고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하여도 언급하셨다고 주장했다. 일부 보수적인 라비들의 견해는 좀 다르다. 이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한번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모세는 그의 죽음에 임박하여 토라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학자들은 비록 모세가 방대한 량의 토라를 기록하긴 했지만 모세의 사후에 다른 선지자들, 예를 들면 여호수아가 여러 부분의 문장을 가다듬고 정리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학자들은 토라의 일부 기록에 나타난 사항들이 모세 당시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므로 나중에 다른 사람이 토라를 집대성했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일부 라비들은 이런 주장을 일축하고 모세 5경인 토라는 순전히 모세가 직접 기록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태인들의 대다수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에게 처음부터 충실하고 순종하였다면 토라를 제외한 타나크의 나머지 부분, 즉 네빔과 케투빔은 있을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말하자면 모새 5경만 있으면 충분하여 그밖에 구약성서의 역사서, 예언서, 문학서 등은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있는 토라 이외의 기록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신 내용이며 그렇지 않으면 화를 당하게 될것이라는 경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라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완전한 계시이며 타나크의 나머지 부분은 토라를 순종하지 않고 떠난 인간들에 대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토라 두루마리 토라 모시기 토라는 유태교의 핵심이므로 회당(시나노그)에서도 당연히 중요하게 존중된다. 그러므로 회당에서 토라를 모실 때에는 두루마리를 좋은 비단으로 감싸고 각종 장식을 하며 꼭대기에는 왕관을 얹어 영광스럽게 한다. 물론 모든 유태교 회당에서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회당에 따라 모시는 방법이 다르며 종파에 따라 다를수도 있다. 회당에서 토라를 읽을 때에는 모든 회중이 일어서 있는 것이 관례이다. 동구에 있는 어떤 유태교 회당에 보관되어 있는 토라 두루마리들 [토라에서는 일점일획도 중요하다] 유태교는 토라에 기록된 하나하나의 단어와 부호는 모두 성스러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토라의 일점일획이라도 소홀히 볼수 없으며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에서 가장 간단한 글자인 요드(’), 또는 부호 하나라도 토라에 있는 것이면 중요하며 또한 말이 반복되는 경우라도 절대로 소홀히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20장 2절의 I am the Lord thy God이라는 기록, 출애굽기 6장 2절의 And God spoke unto Moses saying 이라는 기록에서는 중복된 단어의 사용을 볼수 있다. 이를 한글 성경에서는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라고 간단히 번역하여 놓았지만 실상 히브리어 원본에 의한 라비들의 해석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의 범위를 넘어서는 확대된 것이다.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간혹 ‘불길과 같이 타오르는 알파벳’(the flame alphabet)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유태인들은 하나님이 토라의 말씀을 불길로 쓰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토라에는 동물을 어떻게 정결하게 도살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다. 토라와 구두법(口頭法) 토라는 유태사회와 유태인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계명이며 율법이지만 현행 유태법에서 직접적으로 토라의 기록을 인용한 경우는 없다. 다만, 토라의 기록에서 힌트를 얻어 법안을 만드는 경우는 많았다. 유태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토라의 정신에 기본을 둔 구두법이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구비(口碑) 또는 구두(口頭) 토라라고 부른다. 유태교의 라비들은 토라의 기록이 구비를 통하여 함께 전해 내려왔다는 견지를 유지하고 있다. 구두로 전해 내려온 토라의 내용은 주로 해석이 애매모호한 부분의 해석, 또는 구체적인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압축된 사항에 대한 해석에 대한 것이다. 구두로 전해 내려온 토라의 해석은 기록에 의한 토라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도 매우 유효하며 유태교도로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구두로 전해 내려온 계명과 율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한 대표적인 예는 테필린(Tefillin), 코서(Kosher), 샤보스(Shabbos)에 대한 것이다. 이들이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알아보자. 안식일에 사용하는 와인 병과 잔 - 테필린(Tefillin): 유태교인들은 끈으로 묶은 조그만 상자를 머리에 매거나 팔에 감아 찬다. 머리에 작은 상자를 매는 것은 마치 광부들이 헬멧에 랜턴을 장착한 것과 같이 보인다. 이것을 테필린이라고 한다. 조그만 상자 안에는 양피지에 토라의 구절을 적은 것이 들어 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구절이 적혀 있다. 테필린을 착용하는 것은 토라의 기록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명기 6장 8절을 보면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명기에는 테필린을 어떻게 사용하여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사항은 없다. 그러므로 구두로 전해 내려오는 규정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 코셔 법(Kosher Law): 코셔는 유태인의 율법에 맞는 정결한 음식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음식을 담는 그릇, 그런 식품을 판매하는 음식점 따위를 통틀어서 말한다. 코셔 음식을 규정하는 근거는 출애굽기이다. 출애굽기 23장 19절에는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유태인들이 지켜야할 음식 규율에 대하여는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에도 있지만 출애굽기의 이 구절이 가장 핵심이 되고 있다.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는 이 구절의 이 계명은 내용이 명료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여러 문제를 야기할수 있다. 히브리어에서 젖(Milk)이라는 단어는 기름(Fat)과 뜻이 같다. 구두법에 의한 정확한 해석이 없으면 고기(Meat)를 우유와 섞지 않으면 되는지 또는 어떤 종류의 기름과도 섞으면 안되는지 정확히 알수 없다. - 샤보스 법(Shabbos Law): 십계명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엄숙히 명령되어 있다. 예전에는 만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죽음의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러한 안식일에 대하여 정확히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안식일에는 어떤 일을 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토라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샤보스 법은 안식일에 대한 모든 사항을 지시한 구두법이다. 일반적인 안식일 테블 세팅 다른 종교에서의 토라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모세 5경을 각기 구약성경과 코란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유태교에서처럼 중심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지는 않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히브리 경전의 그리스어 번역본이 사용되었다. 이를 라틴어로 셉투아진트(Septuagint)라고 불렀다. 주전 270년경에 히브리 라비 70인이 모여 번역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구약성경이다. 그리스어 구약성경의 첫 부분은 모세 5경(Pentateuch)으로 시작한다. 기독교의 그리스어 구약성경에는 타나크에 들어 있지 않는 다른 기록들도 포함되었다. 기독교에서는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구약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부분의 모세 5경은 공통적이다. 이슬람교는 토라를 이슬람 개념에 의해 기록하였다. 이슬람교도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장자로서 이삭의 이복형인 이스마엘(Ismael)의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슬람교도들(무슬림)은 토라를 터라트(Tawrat)라고 부른다. 무슬림들은 유태교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모세 5경을 유일신 알라(Allah)가 모세에게 내려준 말씀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원래 알라가 모세에게 내려준 말씀은 세월이 지나면서 유태교 서기관들에 의해 잘못 기록되어 내용이 변질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유태교의 토라를 그다지 존경하지 않고 있다. 코란은 마호메드를 알라가 약속한 이슬람의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토라에 그렇게 적혀 있다는 주장이다. 이슬람교에서 토라는 기본 되는 교리중의 하나이다. 이슬람교는 모세를 위대한 예언자로 믿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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