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필기구는 누구나 그렇듯 연필이다.
내게 연필에 대한 기억은 글씨보다는 "깍기" 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하고, 아버지가 연필 깍는 법을 알려주셨다.
요즘은 초1에게 칼을 쥐어주면, 부부싸움이 날 일이지만 그때 어머니는 별말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매일 퇴근 후 저녘을 드시고 나면 "필통 가지고 와라" 라고 하셨다.
그렇게 연필을 깍아주시고, 깍는 법도 알려주셨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손에서 연필이 잘 깍여줄리가 없다.
내가 울퉁불퉁하게 밉상으로 깍아 놓은 연필은 아버지 손을 거치면서 매끄럽고, 뾰족해져 멋~진 연필이 되어 나왔다.
어린 나는 아버지와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그리 좋았고, 어린 소년 누구나 그렇듯 아버지가 멋져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너혼자서 연필을 깍아도 되겠다."
(그 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셨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서 연필을 깍기 시작했고, 행복하던 시간이 고통의 시간으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깍던 시간보다 족히 3~4배는 넘는 시간동안 나는 연필을 붙들고 씨름을 하여야했다.
그리고, 그 연필들은 정말로 못생겼었다.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 결과물들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이 되버린 연필을 깍아야했다.
하기 싫다고 그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날 학교에 가서 쓸 연필이 없게된다.
울며 겨자먹기로 연필을 깍는 그시간은, 이래 저래 고통의 시간이었다.
연필깍이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사주시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게 되었고,
나의 연필깍는 실력은 주변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잠시 잊혀지기도 했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 보다는 좀더 연필을 곁에 두고 사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연필 깍는 것이 다시 즐거워졌다.
하지만 연필을 사용하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든 시대가 되었고,
오히려, 연필 깍을일이 많지 않은 것이 아쉬운 시절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를때면 괜시리 연필을 깍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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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가 되면 교과서 겉표지를 쌓아주시던 아버지가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서걱거리는 연필심 갈리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사무실 필통에 꽂혀 있는 연필을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그렇네요. 매학기 교과서를 달력으로 싸던 일들도 기억납니다.
가슴 뭉클한 사연이네요~~~
새 연필을 샀을 때 연필에서 나는 향기가 기분이 좋았고, 그 향기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