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들에 비해 훨씬 늦은 중학교 때에야 자전거를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뒤늦게 배우는 것이라 더 겁이 나고 무서워 제대로 가지도 못하고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동생이 뒤에서 잡아주며 아무리 이론적으로 설명을 해도 얼마가지를 못했습니다. 나중에 쓰러지는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쓰러지려고 하면 무서워서 페달을 밟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쓰러지려고 하더라도 쓰러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향한 채 페달을 밟으면 잘 나가는 것인데, 처음에는 그 사링릉 알면서도 이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를 향하여 중단없는 전진을 하다보면 쓰러지지 않고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에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시험에 들고, 전진하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면 우리는 시험에 빠져 신앙이 정체되고 결국에는 쓰러지기까지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단은 곧 퇴보를 의미합니다.
시험이 닥치거나, 어려운 일들로 고심할 때에라도 여전히 당신의 신앙 생활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오히려 더욱 분발할 때가 아니겠는가?
행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7월 6일(주일)에 목포에 있는 주소망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을 가지는데 제가 가서 사역으로 돕고자 합니다. 5일에는 지역에서 찬양하며 전도하고 6일 예배 때에 교회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영적 성숙 본문 : 시92:12
본문은 성도의 영적 성숙을 종려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한 아름다운 시입니다. 종려나무는 한 그루에 수많은 대추야자 열매가 생산되어 많은 사람의 맛있는 식량이 되는 나무입니다. 게다가 성전의 장식그림으로 사용되는 거룩한 나무입니다. 또한 레바논 백향목은 세계적인 고급 목재이며 약 30미터까지 곧게 자라고 그 수명은 1,000년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역시 궁전이나 성전의 건축 재료로 쓰이는 귀한 나무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서 크고 귀한 존재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유익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제 어떤 방법을 통해 영적 성숙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통한 성숙(벧전2:2)
1)진리의 터에 굳게 서게 됨 성숙이나 성장의 과정을 얻으려면 먼저 그 뿌리가 좋은 땅에 굳세게 밖혀 자리잡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야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수월하게 공급받아 자라게 되고 외부의 영향력도 쉽게 극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성도의 영적 성숙의 제일 요건은 성도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뿌리가 내려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13:18-23)가 강조하는 바가 그 점입니다. 진리의 근거인 하나님의 말씀에 그 영혼과 신앙의 뿌리가 굳게 박힌 성도만이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마13:23)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주변에는 남보다 예배, 기도, 봉사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사단의 시험에 곧잘 빠져 이단에 심취하거나 혹은 윤리적으로 큰 과오를 범하는 성도들이 간혹 발견됩니다. 그 이유는 그 신앙의 뿌리가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 굳게 박혀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뿌리가 깊지 못한 신앙은 '사상누각'입니다. 복음 진리에 굳게 선 신앙만이 올바른 영적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것입니다.
2)신앙 인격이 온전케 됨 앞에서의 말씀과 관련된 문제인데, 우리의 신앙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부조화가 있다면 영적 성숙이 곤란합니다. 지식과 덕, 하늘에 대한 소망과 현실에 대한 책임감 등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그 신앙이 한편으로만 기울어져 있어 그 인격까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지나치게 신령한 것만 선호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사회와 현실쪽에만 관심을 지니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조화의 신앙은 교회와 사회, 믿음과 행동,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등 광범위하게 발견됩니다. 결국 한쪽으로 치우쳐 그 신앙 인격이 조화롭게 성장치 못하는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알지 못하는 데에 그 일차적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딤후3:17) 주어졌다고 바울 사도는 증언합니다. 성경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곧 온전하고 조화로운 신앙 성장의 기반입니다.
2. 봉사를 통한 성숙(엡4:16)
1)하나님의 속성을 닮아감 영적 성숙을 원하는 성도 중에는 오직 말씀과 기도만을 중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 그리고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생활만이 신령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와 같은 생각은 옳습니다만 그러나 부족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라는 개념은 그 성품과 생활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즉 성결하고, 의롭고, 사랑이 충만한 인품이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품입니다. 말씀 연구와 기도생활은 성도를 성결하고 의롭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의 중요한 척도인 '사랑'은 이웃에 대한 '봉사'로 숙성됨을 이해해야 합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두 선한 일에 열매를 맺히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10)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 곧 영적 성숙이요 그 내용은 하나님께도 합당하게 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구제와 봉사 생활을 하는 성도는 하나님 성품의 기반인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아는 성도가 곧 하나님을 잘 아는 성도요 그와 같은 성도는 하나님을 닮는 속성을 지니게 됩니다(요일4:12). 사랑의 하나님을 잘 알고 그를 닮는 성도, 그와 같은 성도가 진정 성숙한 성도입니다.
2)신령한 상태 안에 있게 됨 95년 12월 소천하신 고 장기려 박사님은 훌륭한 기독교인이요 의학박사요 '한국의 슈바이쳐'라고 불리는 자선가였습니다. 그분은 치료비를 못낸 사람에게 병원 뒷문을 열어주며 '어서 도망가시요'라고까지 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생전의 지론은 '어떤 가치도, 이데올로기도 사랑 앞에는 쓰레기와 같을 뿐이며, 민족의 통일도 사랑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사랑은 가장 신령한 가치요 은사입니다. 영적인 지식도, 예언도, 방언도 사랑은사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계명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충만하게 지닌 성도가 가장 신령한 상태에 이른 영성이 능한 성도인 것입니다.
3. 기도를 통한 성숙(빌1:9)
1)영적 평화를 유지하게 됨 아무리 훌륭한 나무일지라도 그 환경이 모질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도도 그 영혼과 환경이 감당할 수 있도록 순탄해야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영적 성숙의 '지주'가 됩니다.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얻게 되고 평안을 유지하게 됩니다. 영혼의 평안은 영적성숙의 필수입니다.
2)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알게 됨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 잘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변하여 유익이 되고 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영원한 섭리를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 땅에서도 잘 아는 성도가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가 아니겠습니까?
결론 이처럼 영적 성숙의 요체가 되는 말씀, 기도, 봉사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 가운데서 거룩한 생활을 형성하는 영적 삶의 여러 색깔들의 다양한 빛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요소라도 결여될 수 없으며 강조되어서도 부당합니다. 이와 같은 요체를 통해 올바르고 조화로운 영적 성숙이 가능함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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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현충일을 맞이하여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