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카페 너무 좋아하는데 글은 참 오래간만에 쓰네요.
느즈막히 결혼하여 마흔이 다 되어 딸 한명 낳고
출근하랴 애 키우랴 정신없이 살다보니
꽃이 언제 피었는지 언제 졌는지
봄이 왔다 가긴 했는지 ...
제가 어젯밤에 머릴 감았는지 오늘 아침에 감았는지
웬만한건 헷갈려하면서 그렇게 가물가물 살았네요.
오늘이 놀토인줄 모르고 여느 아침처럼 전쟁을 치른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했는데 ㅋ 놀토인거예요. 그래서 하루가 보너스처럼 생겨버렸어요.
애 낳은 후 처음으로
먹이랴 닦이랴 한번 더 먹어봐라 이것도 맛있다 ... 그런 말 할 필요 없이
혼자서 꼭꼭 씹어 밥을 먹어봤고
......
바깥 세상을 바라보며 베란다에 혼자 앉아 음악 틀어놓고 커피도 마셔봤어요.
아.........이 여유 얼마나 오래간만인지...
남편과의 가사분담 철저한 우리집인데도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신중하고 어려운 일인거 같아요.
소설에서 처럼 영화에서 처럼
처음으로 한겨울에 맨발로 아이 안고 병원으로 뛰어가 보기도 했고
날 밤 새고 간호하며 대신 아팠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는 간절함을 갖어보기도 했고
딸이 신생아때는 혹시라도 베개에 코라도 박고 자는 거 아닐까 싶어 불을 끄고 자지도 못했고
아이의 작은 움직임, 작은 신음소리에도 놀라 깨서 안절부절했는데
벌써 세살...
이 세상 아름다운 걸 다 모아도
이 세상 좋은 것들을 다 모아도
이 보다 더 한 빛을 낼 수 있을 까 싶을 만큼 귀한 딸이 제게 있네요.
출근하는 아침은 날마다 전쟁이죠.
아이 먹이랴 입히랴 양치 시키랴
남편은 남편대로 밥 먹고 출근하고...
엄마 마음 급한거 모르고 딸은 책 읽어 달라 뽀로로 틀어라 노래 불러 달라 엄마 옆에서 조금 더 누워라 주문이 많고...
저는 아이의 주문을 모르는 척 외면 못합니다.
내가 안읽어준 책 한 줄 때문에 문학가가 될 수 있는 아이였는데 그 한줄이 아이의 문학성을 떨어트릴 지도 모른 다는 생각...
내가 안불러준 노래 한소절 때문에 아이의 음악성을 떨어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무리 바빠도 전 바쁜 척도 못합니다.
자꾸 시계 보고 서두르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해할까봐
전 또 굉장히 여유로운 척 합니다.
마음은 이미 전쟁이고
몰래몰래 시계를 수없이 보는데 말이죠.
이렇게 전쟁을 치르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어린이집 문이 닫힘과 동시에 전 제 직장으로 바람 처럼 뛰기 시작하죠.
아이가 떼 쓸땐 외면해야 하는지 달래줘야 하는지
아이가 밥을 안먹는다고 할땐 그러라고 해야 할지 억지로라도 먹여햐할지
아무것도 잘 모르는 엄만데
엄마 공부도 제대로 못한 저에게 떡 하니 와 준 딸....
학생들 데리고 1박2일 야영 갔던 남편이 문자를 보냈어요.
내 인생의 로또 당신을 사랑해요.
무슨 학교가 놀토를 껴서 야영이냐고 투덜 댈 참이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네요.
정말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엄마가 될 수 있게 해준 남편과 딸이 저에겐 로또니까요.
이 세상에 엄마라는 말 처럼 예쁜 말이 없는 거 같아요.
분주한 아침의 경험도, 아웅다웅 엄마가 되는 과정도, 육아에 직장에 지친 날들도
때론 시댁이나 남편과의 갈등도 다 이해해야겠죠?
그들이 엄마라는 로또에 당첨되게 해준거니까...
아...오래간만에 글을 쓰는거라 수다가 길었어요.
이제 어린이집에서 제 딸을 찾아와야겠어요.
엄마가 출근을 안하면서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게 처음인데
아이를 이렇게 사랑하면서도 ... 떨어져있는 서너시간동안 너무 보고싶은데도...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혼자 있는 이 시간 이 여유도 너무 달콤한건 뭐죠? ㅋ
첫댓글 가끔그런 여유가 있어야 좋은기분 느끼며 내자신을 충전할수 있는것같아요^^
내일은 남편도 돌아오시니 행복한 주멀보내세요^^
어젯밤에 1박하고 오늘 왔어요. 잠도 못잤다고 투덜대면서도 아이 데리고 키즈카페 다녀오더라구요. 이래서 아이가 아빨 너무 좋아하나봐요.
님에게 한줄기,,숨통 트일 구절을 전합니다...엄마가 완벽하지 않아도 아이가 훌륭하게 잘 자라난 케이스는 무지하게 많습니다.
책 한줄 안 읽어줘서 큰일나는 거 아니니까,,좀 더 여유를 가지고 대하셔도 됩니다..ㅎㅎㅎ
넵... 알면서도...정말 알면서도 혹시나 제가 아이에게 젊은 엄마들에 비해 못해준게 있을까봐 ... 다 못해준 아쉬움이 남을까봐서요. 늦게 엄마가 되서 조바심이 큰가봐요.
나도 내 인생의 로또가 내 남편이에요.
그냥...괜히 눈물이 나네요.....울 딸 보고싶어요~ 이렇게나 모자란 나에게 와준 울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