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조금만 더 가까이 또는 멀리 보기 1 / 이종수 (시인) 오늘은 기차를 타고 떠난다. 케이티엑스나 새마을호가 아니라 완행열차를 타고 떠난다. 벌써 없어진 기차 이름이지만 통일호 비둘기호쯤 되겠다. 서울역이나 용산역에서 출발하여 호남선, 전라선, 경부선 막차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동해남부선을 타고 올라가다가 다시 중앙선을 타고 제천역에서 가락국수나 선지해장국으로 불면의 밤을 달래고 다시 영월 태백을 거쳐 해 돋는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다. 조치원쯤에서 어렵사니 표를 끊어서 전라선이나 호남선 기차를 탈라치면 으레 좌석에는 멀리 서울이나 평택, 천안쯤에서 탔을 입석표 승객들이 혼곤한 잠을 자고 있다. 서로 얼크러져서 좌석 사이 좁은 틈에 끼어 자는 사람에 손잡이에 간신히 엉덩이를 걸치고 심심풀이 땅콩을 외치는 홍익회 끌차에 몸을 비켜주면서 다시 선잠 자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다시는 깨울 수 없을 만큼, 깨워서는 안 될 것처럼 짐짝처럼 널부러진 사람에게 좌석번호를 들이댈 수 없을 것 같은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보면서 기차를 타는 것이다. 기차 안에서는 나와 타자가 확연히 구분된다. 아니 나이면서 타자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태어났으면서도 시간에 따라잡히는, 그래도 묵묵히 제 길을 달리는 이름. 화륜거(火輪車)의 소리는 우레와 같이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 연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라. 차창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1899년 독립신문에 실린 시다. 한 바탕 내지름만으로도 세상을 휘어잡을 것 같던 경탄은 지금에 와서 어떻게 되었는가. 많이 싣고 멀리 가는 객차의 운명이 결국 시간에 쫓기다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방방곡곡의 간이역들 또한 사라졌다. 기차는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기차 안에 얼크러지던 사람들은 속도를 즐기며 역과 역 사이를 오갈 뿐이다. 민들레가 피고 흰 구름이 부풀고 민들레가 피고 기차가 부풀고 민들레가 피고 흰 모자가 부풀고 민들레가 피고 흰 공이 부풀고 아, 우리 어디쯤 가서 흰 모자를 날리자 흰 공을 날리자 민들레가 피고 간이역이 부풀고 민들레가 피고 깃발이 부풀고 민들레가 피고 호루라기가 부풀고 민들레가 피고 나비가 부풀고 아, 우리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 작은 우주를 후~하고 불자. - 신현정, <여행 및 운행> 기차 안은 또 하나의 세계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작은 우주가 꽃판 위에 달려있어서 금방이라도 불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불고 나면 그것들이 앉았던 자리가 빠져나간 종착역의 좌석과 입석들인 것처럼 사연도 많다. 민들레역은 황간역 다음에 있다 고삐 매여 있지 않은 녹슨 기관차 한 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기저기 철로변 꽃을 따 먹고 있다 에구, 이 철없는 쇳덩이야 오목눈이 울리는 뻐꾸기야 쪼르르 달려온 장닭 한 마리 대차게 기관차 머릴 쪼아댄다 민들레 여러분, 병아리 양말 무릎까지 모두 끌어올렸어요? 이름표 달았어요? 네 네 네네네, 자 그럼 출발! 민들레는 달린다 종알종알 달린다 민들레역은 황간역 다음 - 송찬호, <민들레역> 민들레역에는 녹슨 기관차마저 유쾌하게 만들며 달리게 하는 상상력이 있다. 기차에 올라서면 민들레처럼 가벼워지는 것일까? 종알종알 달리는 병아리 양말 무릎부터 흰 공과 깃발마저 부풀어 오르게 하는 어른들이나 기차 앞에서는 유순해진다. 하늘이 훤히 보이는 기차를 타고 우주에 들어설 것처럼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을 만들어낸다. 자기만의 사연으로 시작했지만 그곳에는 무수한 타자들의 삶이 한데 실려 떠나는, 가까이, 또는 멀리 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있다. 다혜자는 엄마이름 귀가 얼어 툭 건들면 쨍그랑 깨져버릴 듯 그 추운 겨울 어데로 왜 갔던고는 담 기회에 하고, 엄마를 가져 싸아한 진통이 시작된 엄마의 엄마가 꼬옥 배를 감싸 쥔 곳은 기차 안, 놀란 외할아버지 뚤레뚤레 돌아보니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들뿐이었는데 글쎄 그게, 엄마 뱃속에서 물구나무를 한번 서자, 으왁, 눈 휘둥그런 아낙들이 서둘러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자 남정네들 기차배창시 안에서 기차보다도 빨리 ‘뜨신 물 뜨신 물’ 달리기 시작하고 기적소린지 엄마의 엄마 힘 쓰는 소린지 딱 기가 막힌 외할아버지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인데요, 아낙들 생침을 연신 바르는 입술로 ‘조금만, 조금만 더어’ 애가 말라 쥐어트는 목소리의 막간으로 남정네들도 끙차, 생똥을 싸는 데 남사시럽고 아프고 춥고 떨리는 거기서 엄마 에라 나도 몰라 으왕! 터지는 울음일 수밖에요 박수 박수 “욕 봤데이” 외할아버지가 태우신 담배꽁초 수북한 통로에 벙거지가 천장을 향해 입을 딱 벌리고 다믄 얼마라도 보태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이자, 엄마를 받은 두꺼비상 여편네가 피도 채 덜 닦은 손으로 치마를 걷자 너도 나도 산모보다 더 경황없고 어찌 할 바 모르고 고개만 연신 주억였던 건 객지라고 주눅 든 외할아버지 짠한 마음이었음에랴 두말하면 숨가쁘겠구요…… 암튼, 그리 하야 엄마의 이름 석 자는 여러사람의 은혜를 입어 태어났다고 즉석에서 지어진 것이라 多惠子 성원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은 맘에만 가득할 뿐 빌린 돈 이자에 치여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엄마 다혜자 씨는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끓어오르는 부아를 소주 한 잔으로 다스릴 줄도 알아 “암만 그렇다 캐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여장부지요 기찬, 기-차-안 딸이거든요 - 김진완, <기찬 딸> 기차에서 아기를 낳은 이야기는 시골버스를 크게 늘여놓은 것 같다. 장날 시골버스처럼 인생극장이다. 장편소설 한 칸씩 대하소설을 끌고 가는 것과 같다. 다혜자란 이름이 말해주고 있다. 지금 당장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면 해낼 수 없는 일 같지만 월드컵 때 보여주던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순순히 드러내고 하나로 만들어낼 것만 같은 일이다. 다혜자라 이름 지워진, 피란이(피난 중에 태어났대서)라 이름에는 개인의 삶이 공동체의 삶으로 옮아가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기차보다 더 멀리 걷던 사내 기차보다 더 빨리 걷던 사내 베잠방이에 머릿수건 두르고 청청한 하늘 쩡쩡한 햇살 잡아두고 한 발짝 한 발짝 5㎝ 간격으로 파란 모 심던 사내 - 송경동, <내가 새마을호를 타고 순천에서 서울까지 숨가쁘게 달리는 동안> 때론 거꾸로 달리는 기차(영화 ‘박하사탕’에서 나온 기법)를 탄 듯 멀리 보기, 느리게 보기가 가능하기도 하다. 새마을호를 타고 숨가쁘게 달리는 동안 내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자기가 들녘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찻길은 그러한 것을 돌아다볼 수 있도록 교묘한 구간에 걸쳐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내가 달걀을 하나 건넨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1시쯤에 열차는 대전에서 진눈깨비를 만날 것이다. 스팀 장치가 엉망인 까닭에 마스크를 낀 승객 몇몇이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 뱉아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 서울에서 아주 떠나는 기분 이해합니까? 고향으로 가시는 길인가보죠.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다친 듯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 조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죠. 서울 생활이란 내 삶에 있어서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조치원도 꽤 큰 도회지 아닙니까?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선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간이역에서 속도를 늦추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람들. 소지품마냥 펼쳐보이는 의심 많은 눈빛이 다시 감기고 좀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남자들. 발 밑에는 몹씁 꿈들이 빵봉지 몇 개로 뒹굴곤 하였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덕분에 저는 도둑질 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 조치원까지 사내는 말이 없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마지막 귀향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설령 사내를 며칠 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한들 어떠랴.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사내는 작은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견고한 지퍼의 모습으로 그의 입은 가지런한 이빨을 단 한 번 열어보인다.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가 마주 걸어오던 몇몇 청년들과 부딪친다.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조치원이라 쓴 네온 간판 밑을 사내가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 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시간은 0시. 눈이 내린다. - 기형도, <조치원> 조치원이라는 이름이 사내와 나눈 이야기가 절묘하게 얹히는 것은 시인만의 전유물이 아닐 수 있다. 특정공간이어서 사연이 더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곳에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를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펼치고 싶은 충동을 주는 것이다. 여수가 아니어도 좋았다 탁 트인 바닷가라면 좋았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유적지처럼 떠 있는 섬들과 먼 바다로 떠나는 외양선 불빛이 닿는 높은 언덕이 있는 곳이라면 더 좋았다 여수행 열차표를 다짐이듯 꼭 쥐었던 건 오랜 병을 알고 있는 항구를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때로 선택은 미묘한 끌림이 아니었던가 창즉 좌석에 내 선택을 앉혔다 열차가 레일에 묶여 미끄러지면서 밀린 잠들이 육지 끝으로 밀려감을 느꼈다 열차는 간이역 불빛 같은 상념을 뚫고 달려갔다 흐린간판불쓰러질듯서있는바닷가언덕여인숙 똑똑,헤픈잠에서깨어난포주같은눈빛을외면하고 쪽방을찾아올라가는생의관절들 따라온몇편의기억방바닥부스러기로쏟아진다 창밖불빛하나둘지우는해풍의손길에 녹슨육지를등진한척의잠 작고환한방 달처럼구부러진잠을잡으려다놓고가는파도의부드러운숨결 이불을한겹한겹덮으며한자락한자락옷을벗겨내는잠 파도는반도의알몸으로밀려온다 푸른비늘들계속밀려온다 손님, 손님, 몸이 너울처럼 흔들린다 파도 일렁이는 눈으로 테를 두른 모자, 승무원이 서 있다 여기는 종착역입니다……아, 旅愁였다 - 김열, <여수의 잠> 여수가 旅愁인 것은 여수가 아니어도 떠나겠다는 마음을 실었기 때문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와 언덕, 미묘한 끌림으로 달려가는 기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디 중간에서 내리는 것은 저당 잡힌 삶처럼 느껴진다. 역마다 내리는 사람들의 짐 보따리와 얼굴을 훑어보며 그들의 귀향과 저간의 사정들을 떠올려보듯 상념들이 구체화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차를 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차는 이야기꾼이다. 고담 마니아였던 나의 친할머니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구두쇠였지만 조웅전, 대봉전, 충렬전, 옥루몽, 숙영낭자전 웬만한 고담 책은 돈 아끼지 않고 서서 소장하고 있었다 글을 깨치지 못했던 할머니는 이따금 유식한 이웃의 곰보 아저씨 불러다 놓고 집안 식구들 모조리 방에 들라 하고 소위 낭독회를 열곤 했다 책 읽는 소리는 낭랑했고 물흐르듯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그리하여 밤은 깊어만 갔다 내 어머니도 글 모르는 까막눈이었지만 고담 마니아였을 뿐만 아니라 책 내용을 줄줄 외는 녹음기였다 어느 여름날인가 지금도 생생한 기억 동네 사람들이 모여 물맞이하러 가던 날 점심은 물론이고 참외며 수박 기타 음식을 바리바리 장만하여 마메다쿠시를 여러 대 불러서 타고 떠났다 어머니는 택시비도 내지 않았고 아무 준비 없이 나만 데리고 동행했다 그러니까 이야기꾼으로 모셔 간 셈이다 구성진 입담에다가 비상한 암기력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사교적 밑천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과 어우러져도 노래 한 자리 할 줄 몰랐고 춤을 추며 신명 낼 줄도 몰랐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심지어 농담 한 마디 못하는 숙맥이었다 아마 그러한 점을 조금은 내가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박경리, <이야기꾼> 글을 깨치지 못해도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여기저기서 데려가려는 입담꾼. 거쳐 간 사람들의 삶을 줄줄 외는 녹음기 같은 기차. 다른 문명 이기에 비해 관대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