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사에 비춰보면 봄은 한 해의 시작이다. 단순히 보아도 농경사회에서 대부분의 일이 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문명시대의 봄은 어떠한가? 올봄 화랑가는 작가들 전시 소식이 잇따르고 있어 반갑기도 하고 괜스레 마음 바빠지게 만든다. 이른 봄 전시를 한다는 것은 지난겨울을 뜨겁게 보냈어야 가능해진다. 부지런하게 창작의 불을 지폈단 반증이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미술관 쪽 화두는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조선의 백자:군자지향(君子志向)` 전시가 1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너! 그 전시 봤어?" 유명인들이 관람 인증을 남기면서 쌍끌이에 가세하고 있는 분위기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배경에는 `MZ(엠지) 세대의 `필람`코스 `6070세대의 나들이 인기 장소`의 부상을 언론은 꼽고 있다. 도발적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를 유료에서 무료로 전환한 것도 한 이유라는 설도 있다. 무엇보다 재기발랄한 "21세기 개념미술과 16세기 개념미술(?) 아울러 서양과 동양, 현대와 고전" 흥미진진한 명작의 출중함에다 자기주관으로 바라보는 재미이다. 속된 표현으론 실제 수백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작품가?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 달항아리를 한자리에 모은 진품명품 대전! 여기에 수십, 수백 년 험한 세월 모진 풍상 말없이 견디어 내고서 우뚝 자리한 명품이 주는 아우라가 아닐까?
백자는 하얀색을 숭상하는 모든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의 젓` 이기도 하고, 유목민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가축의 하얀 우유이고 그리고 흰옷을 입고 살아왔던 조선 백성들의 표상이기도 하다. 달을 벗 삼아 농사를 짓고 휘영청 밝은 달 아래 하얀 사발에다 `깨끗한 물길어 두고서 자손만대 영원하라` 간곡히 염원했던 풍습과 맞닿아 있다. 1300도 장작가마 불길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 한잎 두잎 모은 낙엽의 따스한 불길이요, 봉통(가마 아궁이)에 밀어 넣은 통나무 불길의 은근하고 끈기 어린 검붉은 불길이며, 가마가 익어가는 노오란 불길을 한참 지나 잘 마른 장작개비를 바쁘게 던져넣다 만나는 하얀 섬광의 불빛 색깔이다.
그 눈부심은 자연계 인간이 혈혈단신 혼신의 온 힘을 다해 얻을 수 있는 초고온 한계를 머금은 빛깔이다. 그 살갗에 청화 철화 진사화 속 `꽃, 새, 호랑이, 사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소나무...`등과 시(詩) 장식들이 스스로 피어나야 명작이 탄생한다. 그 긴 여정의 혈(穴)을 지나고서야 고요한 시간 속 정적이 걷히고 비로소 눈꽃 송이 같이 새하얗고 목화솜 같은 순백의 살결로 어루만져지는 티 없이 맑은 `도자기 우주`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무 덧칠이 없는 백옥의 순백을 숭배하기도 한다. 그 본색을 은근히 뽐내고 있는 백자 앞에서 두 발 고요히 모으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는 분청사기로 시작하여 백자로 꽃을 피웠다. 1467년 관청과 궁중에서 쓰일 그릇을 만들기 위해 경기도 광주에 백자 관요를 짓고 우수한 자기를 생산하며 발전의 토대를 닦게 되는데, 당시 중국 명나라 때 즈음이 된다. 원 말부터 명 초에 걸쳐 청화백자 제작기술은 조선으로 전해졌다. 1592년 임진왜란을 겪기 전까지 125년 동안 조선만의 양식으로 새롭게 발전하게 되고 매우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이후 1630년 무렵 청화백자의 원료가 되는 코발트 수입이 여의치 않을 때 철화백자가 등장한다. 철 특유의 변화무쌍함과 강렬한 인상은 조선 도자 문화의 매력을 한층 풍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을 우리는 군자의 나라로 칭하기도 한다. 군자(君子)란 `행실이 점잖아서 어질고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지칭하며, "비록 곤궁함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영달(榮達)을 희구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자세"라 했다. 태종실록에는 "재주와 덕이 겸전(兼全)하면 성인, 재주와 덕 모두가 없으면 우인(愚人), 덕이 재주보다 나으면 군자, 재주가 덕보다 나으면 소인(小人)"으로 분별했다. 예컨대 "소인을 얻음보다 우인을 얻는 것이 낫다, 소인이 재주를 부려 나쁜 짓을 할까 깊이 두려워하는 까닭"이 그 연유라 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 조선백자로부터 `군자본색(君子本色)`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