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삶2-11. 원격수업과 원격근무에서 효율성을 높이려면?
어렸을 때 미래 세계를 상상해 보라고 하면 어김없이 화상회의와 화상수업 장면이 나왔다. 직접 학교나 회사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공부를 하고 업무를 한다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진보된 삶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SF영화 속 이야기 같았던 원격수업과 원격근무는 일상이 되었다. 어색했던 화상회의도 적용되니 해 볼 만하다는 반응이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온라인 회의 툴 또한 짧은 시간 안에 경쟁적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오프라인 회의보다 훨씬 더 우수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시스템 개발자들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만 못하겠지만 화상회의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가장 긍정적인 것은 수평적인 문화가 자리 잡혔다는 것 아닐까? 수평적 조직 문화는 크고 작은 모든 조직들이 이뤄 내야 하는 과제와도 같았다. 많은 기업들이 직급 체계를 없애기도 하고 영어 호칭을 부르기도 하며 기존의 상명하복 체제의 수직적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각 그룹의 리더들을 모아놓고 아무리 교육을 하고 캠페인을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 또한 조직 문화다. 특히 회의는 쌍방향 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몇몇 윗사람이 회의를 독점하고 아랫사람은 끄덕이는 형태였으니 말이다.
파레토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20%의 원인에 의해, 결과의 80%가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법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곳은 어쩌면 조직의 회의실일 것이다. 우리 회사의 회의 분위기를 떠올려 보자. 부장님이 소규모 팀을 회의실에 모아놓고 중요한 사안을 점검하며 업무의 목표와 비전을 말씀하신다. 부장님은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본인의 생각을 관철시켜 노력하고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회의는 다시금 길어진다. 파레토 법칙의 20%는 회의에서 발언권을 독점하는 사람들이 차지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들을 ‘회의 독점자’라고 부른다. 나머지 80%는 그럼 무엇을 하는가? 딱히 표현할 의사도 없으니 가만히 있으면 되겠지만, 묵묵부답으로 앉아만 있는 것도 고역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한다. 부장님과 눈이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기도 하고, 중요해 보이는 몇 마디를 수첩에 받아 적기도 한다. 물론 영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짜 호응’인 셈인데 문제는 회의 독점자가 그 행위를 강력한 동의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경청하니까 점점 더 자신 있는 태도로 더 많은 말을 한다. 계속 거짓 호응이 생산되고 독점자의 말은 더 길어진다. 회의실의 딜레마가 이렇게 이루어진다.
물리적 위치도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회의 독점자의 20%는 회의 테이블의 가장 안쪽이자 가장 가운데 자리인 이른바 ‘상석’에 앉게 마련이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이런 상석의 정점을 종교 시설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예배당이든 가로로 긴 장의자들이 같은 방향으로 늘어서 있지 않은가. 그나마 양쪽 끝에 앉으면 조심스럽게 이동할 수라도 있지, 중간에 앉게 되면 예배가 끝날 때까지 나가지도 못하고 갇힌 신세가 된다. 장의자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단 한 곳, 예배 주관자로 향한다. 모두의 눈빛을 독점하는 환경에서 주관자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권위를 느낄 수밖에 없다. 회의실의 상석도 마찬가지. 다른 참석자들 모두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물리적 위치를 선점하는 주관자는 심리적 권위를 느낀다.
그런데 다행히도 화상회의의 환경엔 이런 독점을 줄여 주는 여러 요소가 존재한다. 일단 상석이 없으니 독점자가 권력을 느끼기 쉽지 않다. 아첨 섞인 감탄사는 물론 영혼 없는 끄덕임도 없다. 그러다 보니 상급자는 일정 시간 발언을 하다가 ‘내가 너무 많이 이야기하나?’ 하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마련이다. 발언 시간이 길어질 때 알람이 울리는 옵션까지 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발언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 누군가가 독차지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드문 것이다.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내가 알고 지내던 국내외의 학자들은 온라인 회의 방식을 많이 사용해 왔다. 특히 제자들이나 후배들이 더 많은 발언권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회의 독점자가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인지적 유연성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인지적 유연성은 어떤 일의 처리 방식을 타의가 아닌 자발적으로 바꿔서 해 보는 경향을 말한다. 이 유연성이 떨어지는 개인과 조직은 기존의 관행대로 일을 하며, 약간의 변화에도 크게 저항한다. 더 나아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일이 주어지면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지레 포기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인지적 유연성은 얼마 전부터 그렇게도 강조해 왔던 자율적 개인과 조직으로 가기 위한 핵심 역량이다.
최근 들어, 기업에 계신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막상 해 보니까 원격근무가 나쁘지 않더라고요. 원격근무가 더 효율적인 직군을 발굴해서 향후에도 사무실 밖에서 근무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중요하면서도 시의 적절한 고민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더 확장하고 유연하게 가질 필요도 있다. 이 고민은 군대로 치자면 공병, 보병, 포병 중 어느 병과를 원격근무 시키는 것이 좋은가를 고민하는 것인데 자칫 단순하고 얕은 생각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분야나 직군만이 문제가 아니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보며 어떨까?
‘인지적 유연성에 의해 자율적 변환이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또는 ‘조직의 위계를 조금 느슨하게 풀어 줄 만한 부서는 어디일까?’ 혹은 ‘기존에 없는 새로운 연결을 고민해야 하는 팀은 어디일까?’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 ‘독불장군 같은 몇몇 소수의 독점에 의해 일이 진행되는 곳이 있나?’라고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같은 인물이나 팀이 해당되는 경우도 있고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관찰 내용이 지속적이고 다각적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질문들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거나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조직이라면 빠른 시일 내에 매우 큰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의 원격수업 역시, 익숙하지 않은 건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예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연결과 협조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다.
몇몇 외국 교수들은 자신의 원격수업에 한국인인 나를 잠시 초대해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이 단박에 느껴졌다. 뉴스에서도 외국 특파원이 등장하면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한국의 교수가 외부 연사처럼 등장하니 잠이 확 깨지 않았을까?
한 번 경험한 후에는 다른 친한 국내 교수들과의 교류도 과감하게 이루어졌다. 이제는 “언제든지 서로 부릅시다. 각자 더 전문적인 분야가 있으니까요.”라는 연락이 자연스럽다. 국내 교수뿐 아니라 어렵기만 했던 외국의 석학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게 되었다. 이전에는 격식을 차리느라 불편하고 어려웠던 연결이 참 쉬워진 것 같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자극이 되는 게 느껴진다. 탈권이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결이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원격근무 잘하기 비법 정리
원격근무를 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는 IT 기기를 통해서 조직의 구성원과 소통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이용하여 원격근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팁들은 일종의 의식이며 뇌를 긍정적으로 속이는 작지만 재치 있는 조치들이다.
첫째 인간의 몸과 마음은 하나다. 중요한 이야기나 내용이 있다면 그 때마다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일어나는 것도 매우 좋다. 그러면 몸이 알아서 기억을 해 준다. 신체적 자세와 인지적 과정의 관련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 오프라인 회의에서는 중요한 걸 놓쳤을 때 동료에게 확인하거나 물을 수 있지만 온라인 회의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럴 땐 나만의 동료 하나를 옆에 두어야 한다. 스마트폰의 녹음기를 켜 놓고 중요한 내용은 그때그때 말을 해 놓는 것이다. 중요한 사항은 나중에 녹음 내용을 다시 들으면서 추려 내는 습관이 필요하다.
셋째 컴퓨터로 게임이나 웹 서핑을 하면서 회의나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우리 뇌는 그 행동들과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하자’라고 생각했다면 잠시 방 밖으로 나가 몇 분이라도 몸과 머리를 식히고 들어오길 바란다. 마치 휴게실에서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만 가지고도 우리 뇌에 적절한 암시를 줄 수 있다. ‘나 지금부터 일한다’라고 말이다.
넷째 화면을 향한 나의 눈의 각도와 거리가 어떤 일을 하는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일은 일어서서 아래로 화면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면 더 잘 된다. 꼼꼼하게 해야 하는 일은 모니터를 약간 올리고 얼굴을 조금 더 가깝게 해 하면 더 잘된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를 밝혀낸 연구들이 굉장히 많다.
다섯째 키보드와 볼펜을 각기 다른 목적으로 써라. 내용을 최대한 들은 대로 놓치지 않고 남기려면 키보드가 좋다. 하지만 핵심을 추려 내는 데는 펜이 더 좋다. 타이밍은 빠르고 필기는 느리기 때문이다. 빠른 도구는 있는 그대로 옮기는 데 유리하다. 느린 도구는 자연스럽게 핵심만 남기는 데 더 적합하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2장 ‘비대면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