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숲의 아름다운 공존 300년
마을 한가운데 우람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도 빽빽한 나무들이 적당히 구부러지고 휘어지면서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다. 들녘에는 아직 거두지 못한 벼이삭이 누렇게 출렁거리고, 고색창연한 기와지붕과 돌담 사이로 수백 년 된 배롱나무며 향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드리운다. 300년 이상 이어져온 덕동마을, 이 곳에서는 나무와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
전날 내린 가을비로 촉촉해진 대지에서는 깊어가는 가을 향기가 물씬하다. 마을에 도착하자 짧은 해는 서쪽을 향해 달음질친다. 마을 어귀 덕동초등학교 옆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은 빛이 바래가는 계절에 싱그러움이 더욱 돋보인다. 숲 가운데서 하늘을 우러러보자 빼곡한 소나무들이 이리 저리 가지를 구부리고 몸을 슬쩍 틀면서 사이좋게 하늘을 나누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수백 년을 함께 살아가면서 터득한 상생의 이치일까. 그래서인지 적당한 휘어지고 구부러진 우람한 소나무들이 더 운치가 있어 보인다.
수백 년을 자란 마을 솔숲은 풍수지리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구막이숲이다. 덕동마을은 300여 년간 이어져 온 여강이씨 집성촌으로, 240여 년 전 마을 뒷산 중턱에 조성한 문중 어른의 묘터에서 용계천 물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꿔왔다. 묘지에서 물이 내려다보이면 기운과 재물이 빠져나간다는 풍수에 따라 물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30여 가구 남짓한 작은 덕동마을에는 그래서 마을 숲이 세 곳이나 있다. 마을 어귀에 제일 넓은 ‘송계’, 마을 한가운데 용계정 건너편의 ‘정계’, 그리고 용계천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물길을 돌리기 위해 심은 섬솔밭 ‘도송’이 그것이다. 조상을 섬기고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나무를 가꾸어왔고, 그 나무들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수구막이 역할뿐만 아니라 사랑방으로 쉼터로 울타리로 주민들에게 베풀어온 것이다.
“해마다 솔숲을 관리하기 위해 계를 해왔지, 바로 소나무계야.” 덕동마을에서 민속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동진(75) 노인이 누렇게 바랜 책을 보여준다. 이른바 소나무계의 내역을 적은 ‘송계부’이다. 소나무계는 솔숲에 부속된 논과 밭을 소작을 줘서 나온 소출로 소나무를 관리하고, 남은 돈으로 마을 잔치도 베풀었던 대동계이다. 장부에는 1950년 이전 기록은 소실되었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지출 내역이 꼼꼼하게 적혀있었다. “여기 보면 1950년에 마을잔치를 위해서 누룩 240원, 쇠고기, 82원, 개고기 700원어치 샀다고 적혀있지?” 이 관장이 1950년 당시 기록을 보여준다.
소나무계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솔밭에 딸린 소출로 마을 제사를 지내고 계원들의 환갑이나 칠순에 마을 잔치도 하고 있다. 소나무덕에 한데 모여 마을 제사도 지내고 주민들이 잔칫상도 받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지금은 노인들만 30여 가구가 모여 살지만 아직까지 내려오는 소나무계는 마을 주민들과 솔숲과의 각별한 인연을 보여준다. 주민들의 정성으로 가꾸어진 솔숲은 주민들의 삶 깊숙한 곳에서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것이다. 주민들과 마을 숲과의 인연은 수백 년의 세월동안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에는 이삼백년 동안 세월의 풍파를 견뎌 온 고택들이 즐비하다. 기와 담장에는 빨갛게 물든 담쟁이덩굴이 시들어가고 담장 밖으로 뻗어 나온 감나무 가지에는 빨간 감들이 매달려있다. 낮은 돌담 너머로 가지런히 정돈된 장독대며 댓돌들이 집주인의 성품을 짐작케 한다. 세월이 갈수록 더해지는 품격과 예스러운 멋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마을 풍경이다.
고풍스런 기와집에서 대문을 열고 나서는 마을 어른을 만났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인은 마을 최고령인 이동영(89)씨이다. “내가 어릴 때에도 나무가 저만 했었지, 숲에서 놀고 땔감도 줍고 했는데 말야, 지금은 든든한 친구같어, 늘 변하지 않고 곁을 지켜주는 그런...”
울창한 솔숲이 있고, 용계천의 바위벼랑 위에 정자를 비롯해 고풍스러운 한옥과 돌담이 운치를 자아내는 곳, 덕동마을은 벼슬길에 나가기보다는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쌓았던 선비들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 하다. 가을걷이에 분주한 농민들은 대부분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들뿐이지만 인지한 얼굴에 환한 웃음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세월이 비껴간 그 곳에서 한 줌 욕심도 없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덕동마을 사람들의 환한 얼굴이 솔숲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찾아가는 길
사람과 숲이 어울려 사는 덕동마을숲은 2006년 제 7회 전국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덕동마을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에서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서포항IC에서 나와 31번 국도를 타고 청송 방면으로 향한다. 기계면 소재지를 지나서 6km쯤 가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921번 지방도로를 따라 우회전해 10km 정도 가면 덕동마을이 나온다.
첫댓글 여행수첩에 적어두었다 언제는 꼭 가야겠어요, 곳곳에 솔숲이 참늠름하다고 아름다운고향산천입니다.
저는 겨울 어느날, 불현듯이 가고싶네요. 꼭 가고싶은 솔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