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갈 6:7-10절
제 목 :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2
일 시 : 2023. 12. 20.
갈6:7-10/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라디아 6장에 보면 스스로 속이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갈6:3절과 갈6:7절에 나옵니다. 오늘은 두 곳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1. 먼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갈6: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그 의미를 알려면 바로 앞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했습니다. 교회공동체요, 사랑의 공동체인 성도들이 서로 짐을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다란 바스타제테라고 하는데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관계성을 갖고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공동체적관계는 서로(알렐론)라는 단에서 의미가 더욱 잘 들어납니다. 교회공동체가 나누어져야 할 짐(바로스)은 가혹하여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나 짐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때로는 긍정적인 의미로 영광과 충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후4:17/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의미하는 서로 저야 할 짐은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범죄로 말미암아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임(죄책감이나 고통)을 뜻합니다. 2) 그리스도인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시험이나 인생의 좌절 등을 뜻합니다. 3) 죄를 짓도록 유혹하거나 영적으로 억압하려는 (악의) 세력을 뜻합니다. 이 경우 짐을 서로 지는 것은 성도들이 범죄의 유혹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예비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의 세 견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한다고 해도 교회공동체들의 유기적(有機的)관계에서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부적합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앞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의 짐 중에서 어느 짐이든 서로의 짐을 나누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절에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2절에서 말하는 서로 짐을 지라는 주제의 연장선에서 3절을 말씀합니다. 즉 서로 짐을 지라는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들의 내적 상태를 3절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웃의 무거운 짐들을 함께 나누어지지도 못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제점은 영적으로 교만에 빠져서 서로 짐을 지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판단기준을 무시하고 율법을 자신의 유익과 종교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지켰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스스로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속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성도들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만 잘 믿으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반드시 다른 성도들의 짐을 함께 질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는 한 몸이고 한 몸에 붙은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다른 성도들의 짐에 대해서 무관심하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죄악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 희생하면서 섬기셨던 것처럼 모든 성도들도 서로의 유익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손해보고 기쁨으로 서로를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갈6:7-10/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1) 7절을 보시면 먼저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속이다란 플라나오라고 하는데 방황하다(안전, 진리, 도덕에서부터), 메다, 속다, 죄를 짓다, 넋을 잃다, 길을 벗어나다 라는 뜻입니다. 마귀에게 속아서 말씀의 정도에서 벗어나서 방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속이다라는 말씀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이 스스로 속이다라는 뜻입니다. 마귀에게 이용을 당하여 자신을 속이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2) 그러면서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속이는 것은 자신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까지 속이려는 행동임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않으십니다. 만홀이 여기다란 입을 삐쭉거리다, 즉 비웃다, 조롱하다 라는 뜻으로 바보 취급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의하여 저질러진 악한 행동은(스스로 속이는 것) 결국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꿰뚫어 보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공의로운 심판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3) 그래서 7절 마지막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삶을 자연법칙에다 비유했습니다. 사람의 행위와 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씨를 뿌리고 거두는 농사에다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후9:6에서는 적게 심는 것과 많이 심는 것의 차이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심는 것과 거두는 것의 질적인 차이점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즉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과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라는 삶의 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육체(먹고 마시는 것을)를 위해서 심었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거둘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천국에 갈 때 가지고 갈 것이 없다는 뜻이며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심는다는 것은 성령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고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생명과 상급과 영광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무엇으로 심든 지라는 문장에서 심는다 라는 단어는 그 뒤에 있는 9-10절에 나오는 행함 즉 ...하든지 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가 미래의 결과, 곧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어떻게 실생활에 실천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가 미래의 심판대 앞에서 어떤 결과를 거둘 것이냐? 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즉 지금 현재 내가 심고 있는 말과 행동과 삶은 반드시 미래에 그대로 거두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감찰하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를 위하여(먹고 마시는 것을) 심으면서 나중에 영적인 것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신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은 저절로 더해지게 되어있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의(공의)가 이루어지는 일을 위해서 살아갈 때 즉 복음전하는 자로 살아가면 모든 것이 저절로 더해지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모든 필요가 채워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점점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자가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
약1:22/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1)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거듭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받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기만을 좋아하는 자는 나태한 자이며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본절에서 들은 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합니다. 행하는 자란 포이에타이라고 하는데 아사(행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윤리적 측면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행하는 자(포이에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생활로써 증거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도를 듣는 상태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 합니다.
그리고 2)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은 자는 그것을 행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수행하지 않고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보좌에 참여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마7:21).
설교말씀을 들은 것으로 만족하거나 깨달은 것으로 만족해 버리고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에 소홀히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약1:23-25/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25절을 보시면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구절에서 보면 듣고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금방 들어놓고 금방 잊어버립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들은 바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말씀을 빼앗아 가는 여러 가지 환경과 일들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시간과 일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면 말씀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보면 세 종류의 밭, 길가와 돌밭과 가시 밭으로 비유된 사람들은 들은 바 말씀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눅8: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100배 열매를 맺은 사람은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지키어란 카테코 라고 하는데 갖다, 보유하다, (기억을)간직하다, 소유하다, 취하다 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것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다,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듣고 받은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지키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잊어버리는 악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복을 받는 일이며 자신을 속이는 죄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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