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품은 고향의 가죽나무 김옥춘 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딸 친구의 문자를 받았다. 고향에서 친정어머님이 보내주신 가죽나무 새순이 양이 많은데 먹을 수 있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망설이지 않고 좋다고 했다. 잠시 후 신문지로 싸고 비닐봉지에 담은 딸 친구 어머니의 정성까지 전해 받았다. 가죽나무 새순이 시금치 서너 단은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가죽나무 새순이다. 줄기가 쇤 부분은 잘라내고 연한 잎은 그대로 골라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 물기를 꼭 짠 나물은 두어줌 되었다. 한줌은 간장에 갖은 양념을 하여 조물조물 무치고, 나머지는 고추장에 매실 액을 넣고 깨소금을 솔솔 뿌려 버무렸다. 가죽 나물은 고향을 생각나게 했다. 헹굴 때 어린 잎 하나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건졌다.
지난봄에 한국문인협회 사무실에 갔다가 시인 한분을 만났다. 그 시인은 마침 『나무가 생명이다』라는 시집을 발간했다면서 사인을 하여 한 권 주었다. 시집을 펼치는 나에게, 시(詩) 중에 관심 있는 나무가 있냐고 물었다. 몇 장 넘기자 ‘가죽나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고향집 마당가에 크게 자라던 가죽나무가 생각났다. 거의 구십 편 정도의 나무 시 중에서, 가죽나무를 찾아서 읽은 그날부터, 가죽나무 한그루가 가슴 한쪽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잎이 돋고 그늘을 만들 때쯤 딸 친구가 나물을 보내온 것이다. 가죽나무는 공원에 심기도 하지만, 가로수로 심기도 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성장이 빠르고, 키 큰 나무는 20~25미터에 이른다. 연한 순은 나물로 먹는다. 뿌리는 약재로 쓰이고, 몸통은 목재나 가구재로 또 농기구를 만들기도 한다. 6~7월에는 흰색과 연노란 작은 꽃이 핀다. 버릴 것이 없는 나무다.
고향집을 생각하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 우리 가족은 정든 집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태어나서 살던 집 주변엔 갖가지 과일나무가 있었다. 내 손이 닿는 앵두나무의 빨간 앵두의 달콤함, 막대기로 털어서 따 먹던 새콤한 자두나무, 키 큰 밤나무 밑에 가면 풀숲에 떨어져 있는 반들반들한 알밤을 줍는 재미가 있었지만, 새벽마다 엄마가 깨우는 건 정말 싫었다. 봄이면 감나무는 꽃목걸이를 선물했다. 갖가지 과일나무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에게 간식거리를 제공했다. 텃밭에서 때가 지나도록 일손을 놓지 않는 엄마에게 “엄마 배고파.” 하며 밭고랑으로 다가간다. 일손을 멈추고 밤나무에서 입을 벌리려는 밤송이를 털어서 한 발로 누르고 호미로 툭툭 치면 반쯤 익은 풋밤이 빠져 나왔다. 엄마는 내 통치마 자락을 주머니처럼 접어서 풋밤을 담아주면 마당 한쪽 가죽나무 아래 바닥에 털썩 앉아서 앞니로 껍데기를 까서 떨떠름한 껍질은 뱉어내고 고소한 속살을 먹었다. 여름이면 마당에 그늘을 만들어 주던 키 큰 가죽나무 그늘 아래에서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놀던 그때가 그립다. 내가 열 살 무렵까지 놀이터였던 가죽나무와 고향집은 꿈속에서도 나의 놀이터였다. 반세기도 더 지났지만 진한 그리움은 더 깊어진다. 고향에 계신 언니에게 전화로 “언니, 우리가 할아버지 대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할 때 가죽나무는 어땠어요?” “음, 봄에 이사했으니까 새순이 막 나오기 시작했지.” 언니와 대화하며 반세기도 더 전, 살던 집 마당에 있던 가죽나무와의 추억 속으로 젖어들었다. 내가 열 살까지 살던 고향집 마당 한 쪽에는 키 큰 가죽나무가 있었다. 언니는 가죽나무 이야기에 나보다 더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당 한쪽에 서있는 가죽나무는 곧게 올라가며 크다가 사방으로 가지를 뻗었다고 한다. 봄이 되어 불그스름한 색의 새순이 자라면, 아버지는 사다리를 나무에 기대놓고 올라가서 나물거리를 자루에 가득 따가지고 내려왔다. 어머니는 나물을 데쳐서 간장으로 양념을 하거나, 고추장에도 버무려서 아버지 밥상에 놓아 드리면 맛있게 잘 드셨다고 한다. 언니와 나는 특유의 향이 싫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는 그 향이 좋으셨나보다. 한차례 나물거리를 뜯고 나면 남은 순은 금방 무성하게 자라서 마당에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일손이 바빠 가죽 나물을 두세 번씩 뜯지는 못했다. 잎이 무성해지면 자잘하고 노르스름한 색의 꽃이 피었다 혼기가 가까워오는 언니가 있는 집에, 이웃아주머니들이 놀러오면, 곧고 높게 잘 자라며 몸통이 점점 굵어지는 마당의 가죽나무를 보며 “큰딸 시집갈 때 장롱 짜주면 되겠네.” 라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언니에게 했더니, 언니는 어떻게 그런 것 까지 기억하냐며 옛날을 회상했다. 지나간 일이 금방 잊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나는 고향집에 대해서는 소소한 것도 생각이 난다. 언니는 틈틈이 옥양목 천에 십자수와 동양자수를 놓아서 넓은 횃댓보와 양복 카버를 만들었다. 재산을 잃은 아버지 탓에 언니는 이사한 이듬해 결혼을 하면서 혼수로 장롱을 장만하지 못했다.
가죽나무 장롱은 언니의 마음 안에 터를 잡고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지지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 언니는 가난을 물려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나도 마음고생으로 일찍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가족을 걱정하며 눈을 제대로 못 감았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각진 삶의 모서리에 부딪힐 때마다 가죽나무는 포근한 품이 되어주었다. |
첫댓글 이 수필은 저의 글입니다.
<수필과비평>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안과 치료받느라고 눈을 좀 아꼈다가 이제 올립니다.
살면서 가슴 한켠에 꼭꼭 묻어둔 사연이 있지요.
저는 요즘엔 자랄 때 사연을 찾아서 글을 쓰게 됩니다.
어렸을 적 일은 지워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일도 나에게는 보석처럼 소중하답니다.
우리 동인지9집 제목이
<내 마음의 보석을 찾아서 떠나는 길>이잖아요.
누구나 보석같은 사연을 찾아서 작품을 만들면
재미있을 거예요.
밤이 깊었네요. 안녕히들 주무세요.
가죽나무에 대한 보석 같은 추억이네요.
치맛자락에 밤을 안고 있는 귀엽고
사랑스런 단발머리 소녀를 상상해 봅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떠오르네요.
저도 어린 시정ㄹ 추억을 되새겨 보렵니다.
동희샘
어린시절 추억을 찾아서 글쓰기 하면 재미있어요.
아픈기억도 아름답게 느껴져요.
그리고 아픔이 치유가 되기도해요.
박왼서 선생님 자전적 소설에
통치마 입은 작가님 유년시절 이야기가 나오는것 같군요^^
고향의 가죽나무가
그리움을 몰고 오네요~
가죽나무란 이름 처음보았네요. 상상불가 였어요 꽃도피고 나물이되어 밥상에까지 오르다니 어디서 한번 뵤고 싶어요ㅣ
수필의 좋은 점은 모르는 세계를 가르쳐줄 때가 뿌듯하거든요.ㅎㅎ 신선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가죽나무에 대한 보석 같은 추억이네요.
치맛자락에 밤을 안고 있는 귀엽고
사랑스런 단발머리 고문님. ㅎㅎ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