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봄에 우리 자식들이 8순(八旬)을 맞는 어머니 생신을 축하가기 위해서 지난 2월 하순에 베트남으로 우리 13명의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나려고 예약하였다가 수백 만원의 예약금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들을 안심하게 한 것은 막상 떠나려던 2월 21일에 확진자(確診者)가 100명인 것을 보고, 만약 떠났다가는 국제 미아(國際迷兒)가 될 뻔했구나 하며 위안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일생 단 한번의 팔순을 자식들이 어찌 그냥 생략할 수 있으랴 해서 코로나가 주춤한 틈을 타서 국내여행으로 군산 앞바다 선유도(仙遊島)에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Corona 바이러스 위험으로 대중교통보다는 자식들이 모는 안전한 승용차 3대에 나누어 타고 연육교와 연도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는 선유도 일원 모든 섬을 관광할 수 있어서였다.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선유도(仙遊島)를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따라 서해대교(西海大橋)를 지나 세계에서 가장 긴 제방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새만금제방(새萬金防潮堤)을 거쳐야 한다.
'새만금지역'이란 한반도 서남쪽의 군산(群山), 부안(扶安), 김제시(金堤市)를 중심으로 고창, 정읍, 전주, 완주, 익산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이 명칭을 쓰게 된 것은 1986경부터다. 김제평야(金堤平野)와 만경평야(萬頃平野)를 합쳐 예로부터 금만평야(金萬平野)라 불러 왔는데, 이 '금만(金萬)'을 어감이 더 좋은 '만금(萬金)'으로 바꾸고 새로운 제방과 땅이 생긴다고 하여 그 앞에 '새'자를 붙여 '새만금'이라 하여 '새만금제방(새萬金堤防)'이 태어난 것이다.
'중국에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있다면 Korea에는 '바다의 만리장성'이 있다'고 극한한 (전 스티븐 주한미 대사의 말처럼 이 방조제는 길이는 33.9km,폭 290m, 높이 36m로 해수면 위로 들어난 부분만도 11m여서 차로 달리다 보면 교량과 같았다.
이로써, 야미도, 신시도가 제방과 함께 그대로 육지로 연결되어 버렸다.
신시도(新侍島)는 고군산군도에서 4.25㎢로 제일 큰 섬으로, 해안선 길이 16.5km, 인구 359명(2014)이 살던 섬이다.
이 섬에 선유도 8경 등 서해의 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새만금전망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일찍이 고운 최치원 선생이 단(壇)을 쌓고 글을 읽으면 중국에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의 섬이다. 신시도는 조선조 말기에 나라는 망하더라도 도학(道學)으로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군산도의 여러 섬을 옮겨 다니며 학문 전념하던 대학자 간재 전우((艮齋 田愚) 선생이 사시던 섬이기도 하다.
*.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로!
고군산군도는 밤이 많아서 이름지었다는 야미도(夜味島)를 지나 신시도(新侍島) 고군산대교를 건너 무녀도(巫女島)> 선유대교> 장자도(莊子島)> 대장도(大長島)로 찻길이 이어진다.
이 섬들 중에 가장 경치가 좋고 유명한 곳이 선유도라서, 선유도와 고군산군도를 혼동하게도 되었다.
원래 이 군도는 조선시대부터 금강 지역에 나라의 세곡(稅穀)을 운반하기 위한 조운(遭運)을 왜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수군절도사가 주둔하던 진포(鎭浦)였다.
선유도(仙遊島)는 본래 군산도(群山島)라 불리던 섬이다. 선유도 주변에는 망주봉(104.5m)과 남악리 뒷산(155.6m) 그리고 선유봉(111m), 무녀도의 무녀봉(130.9m), 대장도의 대장봉(142.8m), 신시도의 월령봉(199m) 등 바다에서 무리 져서 쑥쑥 올라 오른 듯 한 산이 많다. 그래서 무리 '群(군) ', 뫼 '山(산)' '군산(群山)'이란 이름이 생긴 것 같다. 조선 초 왜구의 침략이 극에 달했던 무렵이었다. 조선 태조가 왜구를 방어 하고자 수군부대를 서해안의 전략 요충지인 군산도(群山島)에 설치하였다. 이를 눈치챈 왜구는 수군부대를 피하기 위해서 군산도(群山道)를 우회하여 지금의 군산 지방의 내륙을 침략하는 것이었다. 이에 세종 때에는 아예 수군부대를 금강의 입구인 진포(鎭浦, 현 군산시)로 옮기는 바람에 진포(鎭浦)란 이름 대신 '군산(群山)'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고 , 본래의 군산도는 옛날에는 군산도란 이름이어서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라 칭하게 된 것이다. 선유도 진말 입구에 줄 지어 서 있는 수군절제가선정비(水軍節制使善政碑) 5기가 그것이다.
오늘날의 고군산군도에는 유인도 16개, 무인도 47개 총 63개의 도서가 있다. 이 고군산군도를 흔히들 선유도라고도 하는 것은 그중 선유도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선유도를 선유도(仙遊島)라 부르게 된 것은 섬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신선이 놀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하여 온다.
- 선유도 북쪽에 있는 선유봉의 그 정상의 형태가 마치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선유도(仙遊島)라 하였다. 선유도는 3구로 나뉜다.
선유1구는 '통계마을', 2구는 섬의 중앙마을로 우체국, 보건소, 학교 파출소가 있는 '진말'이고, 선유3는 망주봉 주변의 샛터와 남악리 뒷산이 있는 '남악리'다. 옛날부터 선유도에 있는 선유도해수욕장은 일명 명사십리해수욕장으도 불리던 해수욕장으로 백사장이나 수질, 수심, 경치 등이 유명해수욕장의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선유8경 중에 하나다. 선유8경(仙遊八景)으로는 명사십리· 선유낙조· 평사낙안· 망주폭포· 장자어화· 월영단풍· 삼도귀범· 무산십이봉(중국에 유명한 산 12과 같다하여 생긴 말) 가운데에도 백미(白眉)로 꼽히는 산자수려한 망주봉의 두 봉이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 망주봉(望主峰) 이야기 옛날 내가 새만금 공사 이전에 등산회 따라 갔을 때는 새만금제방이 설치되기 시작한 때여서 목포에서 전세 유람선을 타고 선유도 선착장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섬 일주를 하여 주는 바람에 거북바위, 독립문바위, 천공바위, 할메바위도 먼 발치로나마 볼 수 있었지만선유도가 가까워 질수록 제일 먼저 우리를 맞는 것은 화강암으로 된 우람한 돌산 망주봉(望主峰)이었다.
우리는 하선하는 즉시 선유 제2구 마을을 지나 선유동 3구에 있는 두 바위 봉으로 된 망주봉(望主峰, 104.5m)을 향하였다. 옛날 송(宋)나라 사신 서궁(西窮)이 이 망주봉을 보고 노래한 글이 다음과 같이 전하여 온다.
군산정(群山亭)은 바다에 닿아 있고 뒤는 두 봉에 의지하고 있는데 그 두 봉은 나란히 우뚝 서서 절벽을 이루고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구나
이 망주봉은 선유도를 대표하는 암봉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선유도에 유배되어온 충신이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북쪽 한양에 계신 임금을 그리워하여서 붙인 명칭이다.
-옛날 젊은 부부가 이 봉에 올라서 기다리는 왕이 있었다. 조선 다음에는 정씨(鄭氏)가 계룡산에서, 그 후에는 범씨가 고군도에 천년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는 그 왕을 북쪽을 바라보며 기다리다가 지쳐서 굳어져 바위가 되었다는 한다. 그래서 큰 봉이 남편이요 그 작은 봉이 아내라는 것이다.
그 망주봉(111m)을 오르려는데 경고판이 있다. ''망주봉은 급경사로 인하여 추락사고가 발생한 산봉우리로 안전사고 및 인명 피해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등산을 금지합니다.' 그러나 함께 한 분들은 전국의 큰 산을 누비는 산꾼들이어서 벌써 산의 중턱에서 저 멀리 로프를 타고 선발대가 오르고 있었다.
나도 그 중에 하나가 되었지만 로프가 없는 코스에서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속담 같이 옆을 보니 그보다는 안전한 오솔길이 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시야는 넓어지고 바다 그 속에 멋진 섬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그 층계를 나무 데크로 안전히 설치해 놓은 모양이다.
드디어 정상에 이르니 어제까지 비가 온 뒤끝이라선가. 모자를 날리는 강한 바람이 식은땀을 거두어 간다.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라서 사방이 완전히 열린 동서남북 사방이 모두 바다다. 그 정상은 고군산군도의 거의 전부를 굽어 살필 수가 있는 곳으로 선유 8경 중 6경을 볼 수 있다는 곳이었다. 동에는 고군산군도에세 제일 크다는 신시도(新侍島), 서에는 장자도(莊子島), 관리도, 남에는 무녀도(巫女島), 북쪽으로 방축도(防築島)와 말도(末島) 등 12봉이 병풍 같이 바람과 적을 막기 위해 배치된 무사같은 모습이어서 탄성을 발하게 한다. 여름철이 되어 큰비가 이곳에 내리면 7~8개의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어 '망주폭포'가 된다는 곳이 바로 내가 서 있는 망주봉이다. 잠깐, 이 기회에 짧게나마 고군산군도 몇 섬을 소개하고 넘어 가자.
☆야미도(夜味島): 새만금방조제에 속한 섬으로 면적 45㎢, 인구 100명의 작은 섬으로. 밤나무가 무성한 섬이어서, 그 밤을 음(音)만 생각하다 보니 '밤 율(栗)' 자를 '밤 야(夜)'자로 잘못 기재하여 야미도(夜味島)로 썼다는 섬이다. ☆방축도(防築島): 고군산군도의 북부에서 동서로 배열된 섬들 중에서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섬으로 경주최씨, 밀양박씨 등이 거주하고 있다. 고군산군도의 북서쪽에 있어서 북풍을 막아 방파제 구실을 한다 하여 방축도라 부른다. 독립문바위, 시루떡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관리도 : 울창한 소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기암괴석의 다양한 모형이 장관이다. ☆ 무녀도 (舞女島):섬의 형태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 무당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무녀도라 불린다.
☆신시도(新侍島):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고운 최치원선생의 젊은 시절 여기서 단(壇)을 쌓고 책을 읽으니 중국까지 들렸다는 설화가 깃든 섬이다.
*. 자전거 하이킹 망주산을 오를 때 너무 놀라고 힘들어서 우리 일행이 다음으로 간다는 선유봉과 대장봉을 나는 생략하고 그 대신 자전거를 빌어 타고 섬 일주를 하기로 하였다. 자전거 대여소는 섬 내 곳곳에 있는데 임대료는 1시간당 3,000원씩(당시)으로 연도교(連島橋)로 이어진 3개의 섬을 둘러보는데 약 3시간이 걸렸다. 체인이 장착된 비교적 새것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망주봉 뒷동네 선유3구에 들어서니 넓고 넓은 바닷가에 외딴 집 한 채가 있는데 늙은 노파가 파라솔 아래서 파란 콩 한 접시를 놓고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 전설의 '오룡묘(五龍廟)라는 입간판이 있다. 그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집 뒤 망주봉 기슭에 당집이 있다 한다. 거기도 바위를 오르는 로프가 있어 위험하다고 그냥 지나치려 했더니 노파가 입을 연다. . "그 나이면 올라갈 수 있어." "할머니는 춘추가 몇이신데요?" "나, 두 살 빠진 백 살야."
그래서 오기로 올랐더니 저 아래 흔들바위 같은 바위가 바닷가를 보고 서 있는데 망주봉 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그 길 끝에 오룡묘(五龍廟)가 숨은 듯이 서있다. 당집 문을 열고 보니 산신령 두 분의 탱화에 종이로 만든 가화(假花)와 징, 초 등이 주위에 어수선하게 널려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신기한 전설이 전하여 온다.
-옛날 선유도에 임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늦도록 자식을 두지 못하다가 딸 하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태어날 때부터 왼손을 꼭 쥐고 한 번도 펴지를 않았다. 임씨 부인은 아이가 불구인 줄로만 여기고 키웠는데 장성할수록 용모가 뛰어나게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다. 부부는 딸이 장성하자 혼처를 구하여 혼인날을 받아 놓았는데 혼인 전날 밤에 처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을 풀어 백방으로 찾다 보았더니 망주봉 기슭 오룡당 안에서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오룡당이란 5 마리 용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신성한 당집이었다. 그런데 처녀의 죽은 시신을 보니 평소에 오므려 쥐고 있던 손을 펴고 있었는데 그 손바닥에 '왕비'란 글자가 새겨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왕비가 될 몸으로 태어났는데 비천한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죽은 것이라고-.'
그 후부터 마을사람들은 오룡묘 뒤에 당집을 만들어 임씨 처녀를 제사 드리게 되었다.
그냥 지나칠 것을 안내 해 준 노파가 고마워서 2천원을 담뱃값이나 하시라고 드렸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100살에 스므살 이상을 더한 연세로 세계에서 122살로 가장 오래 살았다는 프랑스의 장칼망 노파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 짚라인(Zipline) 이야기
선유도해수욕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45m의 우뚝 솟은 '선유스카이SUN라인탑'이다. 거기서 쇠줄에 몸을 대롱대롱 매달고 하늘을 날아 바다 건너편의 솔섬까지 도착할 수 있는 신개념 체험시설이다. 솔섬까지 가면 거기서부터는 멋진 나무데크 길이 해안까지 나 있고, 거기에는 원위치로 이동하여 주는 중형버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 비용은 2만원인이다.
여기에 오늘의 주인공인 우리의 8순의 박할머니가 사위와 함께 동승하여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짚라인'이라 한다니 우리 같은 세대에겐 생소한 낯선 말인데 이 무슨 뜻인가.
짚라인(Zipline)은 양 편의 지주대 사이에 튼튼한 와이어를 설치하고 탑승자가 연결된 도르레를 와이어에 걸어 빠른 속도로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하강 레포츠'를 말하는데, 이동할 때 도르레와 와이어의 마찰음이 '짚짚 하는 소리가 난다 하여 '짚라인'이라 하는 모양이다. 외국에서는 이를 플라잉 폭스(Flying Fox), 짚 와이어(zip-wire), 에어리얼럴 웨이(Aerial Runway), 티롤리언 크로싱(Tyrolean Crossing) 스카이 플라이(SkyFly)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 선유도의 먹거리 1박 2일의 여행 중 여행의 첫밤은 여행 중 마지막 밤이기도 한데, 오늘은 자식들의 어머니, 손자들의 할머니, 아내의 팔순 잔치날이기도 하여 점심과 저녁은 아낌 없는 푸짐한 요리집이라야 했다.
우리 부부는 30과 26세에 결혼하여 위로 딸 2과 아들1로 2녀 1남을 두고 우리는 함께 서울의 돈암동과 장위동에서 주로 살았다. 흙수저로 태어나서 가난과 싸우다가 돈암동에서 식구들이 모두 깊이 잠든 어느날 깊은 밤에 홀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뜩 내가 가난을 벗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당시로는 제일 좋다는 맥주를 마시면서 자축하며 이런 글을 쓴 것 같다.
가난이란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 그 고개를 넘어섰더니 드디어 넘어섰더니
가난도 행복이더라. 꿈꾸던 천국이더라. 장위동에서 큰딸을, 둘째딸과 아들은 고양시 일산에서 출가시켰다. 현재 딸들은 서울서, 아들은 세종시서, 우리 부부는 일산에서 노후를 살고 있다.
누가 내게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우리는 자식들에게 부담 되지 않는 나날을 살다가 짧게 앓다 죽는 것이고, 자식들은 건강하게, 건강한 가정을 이룩하며 우리 노부부에게 걱정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살아 주는 것이다. 90 가까운 나이를 살다보니 이런 소박한 행복도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마지막 소원은 '한국 국립공원 산행기', '한국도립공원 산행기'에 이어 '한국국립 해양공원 섬 이야기"를 후세에 남기고 가고 싶은데 Corona19 바이러스가 그 길을 막고 있다. 무릎은 점점 아파가는데-, 예전과 달리 몸에 자신이 점점 없어져 가는데-.
*, 자식들의 깜짝이벤트
횟집에서 푸짐하게 저녁을 회(膾)하고 찾아간 우리들의 선유도 숙소는 방3의 유로빌리지(Euro Vakage) 둘이었다. 함께 더불어 환담을 하다가 우리 부부 숙소를 찾아 갔더니 전기가 고장 났는지 캄캄하고 컴컴하더니 갑자기 불이 켜지는데 푸짐하게 차린 팔순 생일상이 나타난다. 우리 자식들이 8순 할머니를 위해 베픈 깜짝 이벤트였다. 하여 우리 부부는 어느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처럼 국문과 출신의 큰딸이 쓰고 낭독하는 축하의 글 속에 눈시울 어린 눈으로 축하를 받았다. 엄마도 이를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 같다.
이 기회에 고마운 말을 전하고 싶다. "감사해 자식들아! 오늘 하루는 일생에서 가장 즐겁고 ,기쁘고, 잊지 못할 날일 것이라고!"
사모님의 팔순을 축하드리오며 성선생님 내외분께서 만수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베트남 여행이 코로나로 인해 못가시고 선유도 여행을 멋있게 보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아들,딸 가족들이 진정한 효도모습을 보면서 성선생님 내외분은 축복받은 분으로 생각합니다. 건강하시어 해양공원 섬 이야기도 마무리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글이 너무 재미 있습니다. 다 읽고나니 나도 한번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납니다.
좋은 여행기 감사합니다.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사모님의 팔순을 축하드리오며 성선생님 내외분께서 만수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베트남 여행이 코로나로 인해 못가시고 선유도 여행을 멋있게 보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아들,딸 가족들이 진정한 효도모습을 보면서 성선생님 내외분은 축복받은 분으로 생각합니다.
건강하시어 해양공원 섬 이야기도 마무리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선유도 여행기 너무 좋은글 보고 또봅니다. "좋은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한다" 하였사오니 좋은글속에 무릅도 회복되고 또한 코로나도 지나가서 해양공원 섬이야기도 잘마무리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