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토대로 '이동면사무소 → 장암저수지 → 갈림길 → 능선안부 → 능선 갈림길 → 정상 → 능선안부 → 장암저수지 → 이동면사무소'의 11km 코스를 4시간 30분 동안 황 종주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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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산[加里山]
높이: 774.3m
위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백운산과 국망봉 사이에 있는 신로봉에서 서쪽인 이동면 장암리 방면으로 뻗어 내린 능선 위에 우뚝 솟은 가리산은 험준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산 아래에서 볼 때 정상 주위는 두 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으며, 정상에서 서쪽과 북쪽 지역은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으로 주의를 요구하는 곳이다. - 한국의 산하
2월 3주 차 목요일인 15일 안내산악회 목요 오지 팀 산행이,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와 2021년 5월 다녀온 평창의 남병산, 장암산 연계 산행이라[산행기], 목요 오지 팀 산행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산행을 알아봤다. 그런데, 국내 유일 365일 산악회 버스가 출발하는 대기업 안내산악회 산행 중에는 이미 다녀온 산 아니면, 도보여행, 또는 맥 산행이다. 해서 이런 때를 대비해 계획을 세우고, 시기만 보고 있던 천고지 산행 중 하나인 횡성 봉복산을 다녀오려고 했다.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이라,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날짜가 편리한 수요 산행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산림청 소속 산 중 많은 수의 산방이 환경부 소속 국립공원과는 다르게 3월이 아닌 2월에 시작된다는 걸 최근에 알고, 봉복산도 대상인지 확인했다. 맞다.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산방으로 그 기간 입산 금지다.
상황이 이러하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 산행 대기 목록 중 산방 대상이 아닌 산을 찾아봤다. 몇 산이 있으나, 천고지 다음으로 가고 싶은 산은 포천의 ‘가리산’이다. 해서 이번 주 수요일인 2월 14일 포천 가리산에 오르기로 했다. 가리산은 낙진, 창우 두 친구와 함께 2018년 3월 한북정맥 국망봉에서 강씨봉까지 달릴 때[산행기], 처음 만났다. 당시 정맥 오른쪽으로 떨어져 나가, 독야청청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 산행 후 구글링으로 그게 ‘가리산’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당시는 천고지에 꽂혀 있던 때라 무시했다. 그리고 2020년 2월 대학 친구 다섯과 신로봉에 올랐을 때[산행기], 가리산을 유심히 관찰하고, 산행 후 다시 구글링으로 등산 코스 등을 확인 후, 산행 계획을 세웠으나, 앞선 산꾼의 위험하다는 산행기와 다른 산행에 밀려,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가리산을 멀리서 관찰한 결과, 그리고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보면, 등산로나 이정표 등 표지가 확실하지 않아, 겨울에 혼자 오르기에는 약간 위험해 보여, 봄에 오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산이고, 실제는 어떨지 몰라도 사용하는 등산 앱의 지도에는 등산로가 명확하고, 2월 들어 거의 봄날씨와 다름없어, 강행하기로 했다. 기상청의 가리산과 가까운 한북정맥 광덕산의 산악날씨에 의하면 산행 당일인 수요일 기온은 영상 9℃~11℃, 바람은 2m/s로 완연한 봄이다. 다만, 종일 구름 낀 흘린 날씨지만, 강수확률은 30% 수준이라 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와중에 미세먼지도 한몫하지 않을까 생각돼, 조망에 대한 기대는 버렸다. 그래도 만약에 대비해 아이젠 등 겨울 장비를 준비하고, 점심은 발열 도시락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김밥을 사 갈 예정이다.
산행 하루 전 마지막으로 기상청 '산악날씨'로 가리산과 가까운 명지산, 연인산, 광덕산의 날씨를 확인했다. 비다! 이전 예보에 종일 흐려, 예감이 좋지 않았으나, 강수확률 30%라는 기상청의 예보를 믿었건만, 뒤통수를 맞았다. 산행 중 내리는 비야 어쩔 수 없지만, 비가 내리는 줄 뻔히 알면서, 우중 산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늦겨울, 아니 초봄에는! 해서 포천 가리산행은 한 주 연기해 2월 21일 가기로 했다. 기상청 중기예보를 보면, 그때도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전국적인 비 예보다. 와중에 남도는 수요일까지! 고로 수도권도 어떻게 될지 모르나, 일단 다음 주 수요일 진행한다. 대신 이번 주는 한 안내산악회 게시판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그나마 비 소식이 없는 북한산 암자 순례를 하기로 했다.
포천 이동의 가리산은 위에 있듯이 여러 번 가고자 계획만 세웠지 다양한 이유로 지금까지 오르지 못하다가, 마침내, 4월 7일 일요일 오르기로 했다. 산행 계획에 관해서는 위에 이미 언급한 것에서 달라진 게 없고, 다만, 당일 날씨 상황만 변화가 있을 뿐이다. 화요일 현재 기상청 중기예보에 의하면, 약간 흐린 날에 기온은 영상 20℃까지 오를 예정이라 다소 덥기는 해도 비 소식은 없어 산행에 문제는 없을 전망이다. 물론 산행 하루 전 단기예보를 확인하겠지만, 현재 일요일 가리산에 오를 확률은 99%다. 특별히 다른 산행과 다르게 준비할 게 없어, 늘 준비하던 대로 한다.
2 - 1
8시 10분 동서울발 이동행 시외버스라 평소보다 늦게 기상할 생각이었으나, 습관이 무섭다고, 5시가 되기 전 눈을 떴다. 와중에 마누라는 7시 10분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는 대기업 안내산악회 서해랑길 버스를 탈 예정이라,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여 잠을 잘 분위기가 아니었다. 해서 새벽에 기상해 볼일을 보며, 미세먼지 포함 날씨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했다. 기온이나, 바람, 구름은 전날 예보와 변함이 없고, 초미세먼지, 미세먼지는 '보통'이라 조망을 기대할 만해 보인다. 이후 미처 다 쓰지 못한 치술령 산행기를 쓰고, 6시 20분경 누룽지를 끓어 아침을 먹고, 7시 14분 열차를 타기 위해 6시 50분경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가,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했다. 산행 코스가 짧고, 산행 시간이 일러, 점심을 준비하지 않고, 산행 후 하산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기로 해, 김밥을 준비하는 시간이 빠져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7시 55분 강변역에 도착해, 동서울터미널로 가, 무인 판매대에서 8시 10분발 이동행 표를 사며 보니, 44인승 버스에 전체 승객이 채 열 명이 안 된다. 말인즉 텅 비었다. 해서 8시 5분경 버스에 타,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아 패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안내산악회 버스와 달리, 잠들었다가는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수 있어, 절대로 자면 안 된다. 그리고 중간 정차지 중 하나인 운악산 휴게소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더 집중했다. 시외버스 예매 사이트에는 1시간 20분 소요라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는 채 50분이 걸리지 않아,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운악산 휴게소에 두 명의 등산객을 내려줬다. 그런데, 이 정류장이 내가 아는 그 운악산 휴게소가 아니라, 2023년 2월 안내산악회의 운악산행의 들머리였던 그 휴게소다[산행기]. 말인즉 내가 원했던 버스 정류장이라,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확인이 필요하다.
이로써 4월 3주 차 토요일 정기산행은 운악산으로 결정됐다. 운악산 휴게소에 두 명의 등산객을 내려준 버스는 일동을 거쳐 이동으로 향해, 9시 20분경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매표소를 확인하고, 터미널 의자에 앉아 풀어진 등산화 끈을 바로 하는 등 등산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하산주 안주 겸 점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순댓국집을 확인했다. 작은 면소재지에 생각보다 많아, 약간 놀랐지만, 덕분에 원하는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고 안심했다. 그리고 버스가 정차하기 직전 기동한 등산 앱으로 트랙 기록을 시작하고 좀 지나,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152m로 생각보다 높지만, 가리산 정상이 774m, 고로 고도차는 622m로 한국 산 기준 차이가 크게 나, 쉽지 않은 산행이다. 사실 과거 해발 1,168m의 한북정맥 국망봉[산행기], 999m의 신로봉[산행기]도 여기서 시작해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래서 가리산행을 주저한 것도 있다.
2 – 2
9시 23분 이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장암저수지 방향으로 향했다. 이 길을 따라가는 건 2018년 3월 국망봉에서 강씨봉까지 한북정맥 산행 때와 2020년 2월 신로봉 산행 때 지났던 길이라 익숙하다. 산행 들머리인 국망봉 휴양림으로 가면서, 당연히 앞에 보이는 가리산, 신로봉, 국망봉 등과 뒤로 돌아 포천을 둘러싼 능선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도로 좌우로는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데, 그게 다 글램핑장 아니면 야영장인 게 한국 사람은 다들 캠핑에 목숨을 건 듯하다. 각각의 특별한 점을 내세우는 야영장을 밖에서 관찰하며, 휴양림으로 향하다가, 휴양림 입구로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석탑의 놀라운 모습에 가던 길을 돌아와 사진을 찍었다. 탑 정상에 앉은 불상으로 다른 곳에는 본 기억이 없다!
이상한 모습의 석탑을 지나, 완만한 포장 임도를 따라가니, 갑자기 임도가 사라진다. 사유지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입구에 '사유지, 등산로 없음' 등의 경고문을 걸어두는데, 그런 것도 없어, 진행 방향을 잘 살펴보니, 밭 주변에 설치한 철책 옆으로 많은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다. 그리로 지나가며 밭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장을 쳐다봤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 밭 옆으로 지나다니는 등산객은 일상사인 듯하다. 그런데, 휴양림에 차를 가져온 사람은? 고로 다른 길이 있을 거 같다. 그 밭을 지나자, 다시 임도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꽤 큰 야영장이 보인다. 혹시 저기가 휴양림? 그러기에는 림(林)이 없다. 그 임도를 따라 계속 가니, 오른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합류한다. 그럼 그렇지, 휴양림으로 가는 정규 코스는 수정궁갈비 방향으로 가야 한다.
9시 58분 두 번이나 이 주변에 왔으나, 처음으로 국망봉 휴양림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통과하며 초소를 보니, 주인장으로 생각되는 여성이 입장료를 받고 있다. 일요일 이 시간에 찾아오는 야영객이 있을 리는 없고, 그럼, 한북정맥 종주 또는 국망봉을 목표로 한 등산객이 대상이라는 얘긴데, 너무 이르지 않나? 어쨌든 2,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생애 처음으로 국망봉 휴양림 입구를 통과해 주변을 둘러보니, 왼쪽으로 바위에 새긴 지도가 있어, 혹시 등산 지도가 아닐지 자세히 살펴봤다. 등산로를 표시하기는 했으나, 등산객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지도다. 그래도 기념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휴양림을 향해 임도로 10m가량 가자, 왼쪽 기슭에 설치된 밧줄이 보인다. 응? 그럼, 여기가 가리산 들머리? 당연히 확인차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맞다! 정확히는 당시에는 그렇게 판단했다!
등산로 시작이라는 표시로써의 의미 외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 밧줄이 있는 길로 올라, 능선에 올라섰다. 그런데, 이 능선이 과거 임도가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꽤 넓고 평탄하다. 물론 경사야 그렇지 못하지만! 어쨌든 그 능선을 따라 주변에 만개한 진달래를 감상하며, 가끔은 맛을 보기도 하고 올랐다. 그런데, 한 가지 미심쩍은 건, 인적이 없다는 거다. 물론 대한민국 산에서는 어디에나 있는 아주 오래된 인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산악회 리본이 보이는 것도 아니라, 핸드폰을 꺼내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에는 지금 가고 있는 능선에는 등산로가 없다. 정확히는 두 길 사이의 이름 없는 능선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럼, 입구에서 확인했을 때,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걸 보고, GPS 오차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로 정규 등산로는 왼쪽 계곡 건너로 보이는 능선 위에 있다. 그렇다고, 이 임도 수준의 능선을 버리고 계곡을 건너 왼쪽 능선으로 옮길 이유도 없어 계속 위로 갔다. 당연히 위로 계속 가면 왼쪽에서 오는 등산로와 만난다는 걸 지도로 확인했다.
그걸 확인하고 위로 오르자, 합류 지점 300여 미터 전부터, 지금까지도 경사가 급했지만, 그보다 더 급해지고 바위 군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당연히 바라던 바로 기쁜 마음으로 오를 수 있는 바위는 기어서, 아니면 우회하며 능선 정상을 향해 갔다. 그런데, 그렇게 오르자, 땀이 폭우 쏟아지듯이 떨어져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사실 출발 전 확인한 일기예보로 영상 20℃가 넘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늘에 들어가면 한기를 느낄 정도였으나, 경사가 너무 급하고 암릉을 기어다니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써, 한기에도 불구하고 땀이 쏟아졌다. 바람막이를 벗은 후, 그늘에서 약간 추위를 느끼기도 하며, 계속 위로 향해 마지막 바위를 기어오르자, 다시 완만한 경사로 바뀐다. 해서 앱의 지도를 확인하니, 왼쪽 능선에서 올라온 정규 등산로가 코앞이다!
정규 등산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며 신이 나서 길을 재촉해, 10시 33분 이번 산행 처음으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물론 내 기준 갈림길이지 정규 등산로 기준 갈림길은 아니다. 어쨌든 좌회전은 장암리 방향 하산으로 1.35km, 직진은 국망봉 6.20km, 신로봉 4.00km다! ‘장암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지명이고, 대단히 익숙한 이정표다. 그런데, 언제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해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장암리 방향을 내려다봤다. 이 또한 익숙한 모습이다. 내가 언제 여기에 왔을까? 이 동네에 온 건 국망봉과 신로봉 산행 때다, 국망봉 산행 때는 아예 이 근처로 오지도 않았고, 그럼, 신로봉인데, 들머리가 다르다! 숙제처럼 궁금증을 메모리에 넣고, 이제는 정규 등산로라 별거 아닌 암릉에도 설치된 밧줄을 감상만 하며, 국망봉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바위 몇 개를 돌자, 울창한 숲 사이로 오늘 산행의 목표인 가리산이 보인다. 쌍봉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삼봉으로 보인다. 물론 신로봉과 국망봉도!
왼쪽의 가리산으로 가는 능선이 있는지 유심히 살피며 전진해, 10시 38분 안부를 지나고, 8분가량 가니, 아직 숲이 가리기는 하나, 조금 전보다는 가리산이 제대로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봉우리가 3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100m가량 가니,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다만, 직진 방향은 등산로 폐쇄, 국망봉과 신로봉 방향은 우회전이다. 폐쇄 등산로 방향에는 '위험, 부대 사격으로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경고문이 바닥에 놓여있다. 그걸 보자 기억이 났다. 2020년 2월 신로봉 산행 때 여기를 지나며, 가리산으로 가려면 경고문을 무시하고 가야 하는데, 가능할지 고민했었다. 그리고, 후일을 위해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고로 정규 등산로에 들어섰을 때, 익숙했던 건 2020년 2월 그 코스로 신로봉에 오른 덕이다. 물론 들머리는 휴양림 전으로 당시에는 전원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공사장이 사라졌고, 들머리 이정표가 없어 지나쳤다. 덕분에 새로운 코스를 발견했으니, 더 큰 소득이다.
오늘 산행은 가리산이 목표라, 사격장이고 뭐고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등산 앱 지도를 수시로 꺼내 등산로를 확인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분명 폐쇄 등산로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은 없었다. 그래도 몰라, 다시 지도를 확인했다. 맞다! 길은 없다. 물론 지도에는 없어도, 과거의 인적이 있을 테니, 그걸 보고 길을 만들며 가면 된다. 그렇다고 해도, 가리산까지 더 빠를 거 같지도 않고, 다른 길이 없으면 모를까, 굳이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자!’는 주의라, 정규 등산로로 계속 가,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왼쪽과 오른쪽 다 나지막한 언덕이다. 왼쪽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거로 보이는 사격장 방향, 오른쪽은 신로봉이다. 당연히 정규 등산로는 오른쪽이라, 우회전해 언덕을 넘어서자 갑자기 여기저기 산악회 리본이 보인다. 그런데, 그중에는 지금도 목요 오지팀과 거의 매번 같이 다니는 산꾼의 리본도 보여 반가운 마음에 기록으로 남겼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갑자기 산악회 리본이 많아진다는 건 주요 지점이라는 얘기다. 여기는 거리만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을 뿐인데, 산악회 리본이 여기저기 걸려 있어, 의외다. 어쨌든 이정표에 의하면, 신로봉까지 남은 거리는 3.2km다. 많이 온 거 같은 데, 오늘 처음 본 이정표에서 고작 0.8km, 즉 800m 왔을 뿐이다. 어쨌든 이정표는 암봉 바로 아래에 있어, 가쁜 숨을 몰아쉬면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니, 이번 산행 처음 만나는 전망대로, 지금까지 울창한 숲이 방해했던 주변의 조망을 아무런 방해 없이 볼 수 있었다. 물론 2020년에도 여기서 주변을 기록했다. 다만, 숨 가쁘게 올라오느라 전망 암봉을 기록으로 남기는 걸 깜빡한 게 아쉬울 뿐이다. 일기예보는 '보통'이라던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릿한 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비록 시야가 맑지는 못해도 기록을 다 남기고 아래로 내려가자, 밧줄이 매달린 암벽이다. 뭐 굳이 밧줄이 있어야 하나 궁금하지만, 그래도 초보자에게는 없는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암벽을 내려서자, 다시 거리와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다. 조금 전에 지나온 이정표로부터 300m 거리다. 주요 지점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이정표를 설치한 이유가 뭘까? 등산객의 안전? 아니면 돈? 그리고 100m 정도 가니, 이번에는 갈림길 이정표로, 우회전은 1.0km 거리의 휴양림으로 내려간다. 내 기억으로는 2020년 2월 장암리를 들머리로 국망봉을 목표로 올라갔다가 체력이 안 돼, 신로봉만 찍고 다시 내려와, 여기서 휴양림으로 내려간 거 같은데, 아닌가? 해서 지난 산행기의 트랙을 확인했다. 여기가 아니라, 신로령에서 바로 휴양림으로 내려갔다. 어쨌든 당시 휴양림 정문을 지나 밖으로 나갔는데, 그 사실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고로 여기서 휴양림까지는 가본 적이 없다. 다시 길을 재촉해 완만한 경사의 산책길 수준의 등산로로 3분가량 가니, 또 이정표다! 신로봉까지 남은 거리는 2.40km, 좀 전 갈림길 이정표는 2.60km였으니, 200m 거리를 두고 또 이정표다!
역시 돈?! 세금으로 누구 금고를 채웠는지는 알 수 없고, 이정표를 떠나, 50m가량 언덕으로 올라가자, 갑자기 윤형 철조망과 입산 금지 경고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것도 혹시 사격장이라 들어오지 말라는 건지, 경고문을 읽어봤다. 산삼 밭이니 못 들어오게 하는 거다. 그런데, 왼쪽 윤형 철조망 끝으로 길이 있고, 경고판에는 붉은 스프레이의 화살표가, 그 주변 나뭇가지에는 산악회 리본이 달려있다. 정황상 윤형 철조망 너머에 길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해 앱의 지도를 확인하니, 반대쪽으로 더 가야 갈림길이라, 뒤로 돌아 반대편으로 100여 미터를 간 후 다시 지도를 확인하자, 한참 전에 갈림길을 지나온 거로 나온다. 고로 아까 거기서 내려가는 게 맞아, 다시 그리로 돌아가 철조망 끝으로 들어가서 보니, 바로 계곡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갔던 방향으로 길이 이어지고 있다. 해서, 등산 앱의 지도에는 반대편으로 길이 있었던 거처럼 보인 거다. 덕분에 소위 얘기하는 첫 번째 알바를 했다.
앞선 산꾼이 길을 잘 만들어, 바로 급하게 계곡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반대편으로 완만하게 계곡으로 내려간 후 역시 반대편 능선으로 완만하게 다시 올라간다. 다만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낙엽이 많이 쌓인 경사가 급한 곳이라, 계곡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가야 했다. 그렇게 조심하며 올라가, 11시 30분 능선에 올라서자, 산악회 리본이 반겨준다. 그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조금 돌기는 하나 능선으로 가리산까지 갈 수 있다. 즉 신로봉에서 내려오는 능선과 만난다. 반대로 가면 다시 계곡으로 내려간 후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물론 코스는 이쪽이 짧다. 어디로 갈지 잠깐 고민하다가,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체력 소모는 심하나, 거리가 짧은 반대로 갔다. 그리고 능선 끝에서 숲 사이로 보이는 가리산 정상의 모습을 잠깐 관찰하고, 급경사 낙엽 쌓인 희미한 길로 계곡으로 내려갔다.
11시 36분경 계곡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봐도 지금은 많이 훼손됐지만, 임도다. 이 오지에 임도를 만들 정도면, 위 능선에 윤형 철조망과 출입 금지 경고문을 설치한 '장생고려산삼 영농조합'이라는 조직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무섭기까지 했다. 다만, 지금은 사용 안 하는 게 이상했다. 어쨌든 계곡 건너편 바위에는 능선의 출입 금지 경고판에 있는 것과 같은 붉은 스프레이로 누군가 가리산 방향으로 화살표 그려 놨다. 등산로라는 얘기라 망설임 없이, 그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옆에 돌을 쌓은 무언가 있어, 가까이 다가갔다. 참호다. 아니 피난처로 계곡의 돌을 이용해 최소 1.5m 깊이로 만든 이글루다. 물론 위가 뚫려 있어 비나 눈은 막지 못하겠지만, 바람을 막고 불을 피우는 건 가능한 구조고, 바닥에 깔린 이끼는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 게, 산꾼이 최근에 사용했나? 아니면, 무단 침입자 감시를 위한 영농조합원? 결과적인 얘기로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중 똑같은 구조의 이글루 몇 개 더 봤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능선으로 난 희미한 흔적을 따라가며,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앱의 지도를 봤다. 정확하다. 도대체 지도에 등산로는 누가 그려 넣는 걸까? 그런데, 웃기는 건 신로봉으로 가는 정규 등산로는 없다! 어쨌든 지도를 확인하며 능선으로 향해, 11시 45분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매달린 산악회 리본이 갈림길임을 알려주는 능선에 올라섰다. 능선의 좌는 가리산, 우는 신로봉이라, 당연히 좌회전해 가리산으로 100여 미터를 가자, 앞선 산꾼 대부분이 위험하다고 했던 암릉의 시작이다. 그 암릉을 따라 숨이 턱까지 차올라 아무 생각없이 가는데, 앱이 가리산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잠깐 숨을 돌린 후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12시 2분경 도착했다. 이후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정상이라는 어떠한 표지도 안 보이고, 산악회 리본만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리고 건너편으로 쌍봉 중 하나의 모습이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인다. 그럼, 저게 정상? 정상 반경 50m 내라며?!
가리산의 정상은 아닐지라도, 쌍봉 중 하나의 정상이라 인증을 찍기로 하고 삼각대와 타이머를 이용해, 풍파에 시달려 이상한 모습이 된 소나무를 배경으로 기록을 남겼다. 이후 서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앱의 지도로 서봉이 정상이라는 걸 확인했다. 서봉이 가리산의 정상이니, 동봉에서 내려가 서봉으로 올라가며 다시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12시 10분 어느 산꾼이 '가리산'이라 쓴 이정표가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말인즉 정상석 따위는 없고, 119에서 세운 이정표 기둥에 산꾼이 쓴 글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여기 올라오는 동안, 마른 나뭇가지에 윗도리가 걸려 찢어지는 불상사도 있었는데, 실망이다. 하긴 이미 산행기를 통해 정상석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 아쉬울 것도 없다. 어쨌든 그 이정표를 배경으로 인증을 남겼다. 이후 유명한 전망대이기도 한 정상에서 미세먼지 속 희미하게 보이는 주변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아래에서 볼 때 봉우리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로 보이게 한 조금은 낮은 암봉과 정상의 북쪽, 서봉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다. 당연히 포천 이동 뒤로 보이는 능선도! 저 중에 명성산, 각흘산이 있는데, 미세먼지가 구분하는 걸 방해한다. 미세먼지야 어떻든 보이는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배를 채우기 위해 하산을 서둘렀다. 그런데, 어디로 하산할지가 문제다. 왔던 길로 돌아가는 건 죽어라 싫어하는 인간이라, 당연히 초행인 정상에서 도마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 길에 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없다. 앞선 산꾼의 산행기에도 보지 못했고, 다만 비탐방 등산로 전문 등산 앱의 지도만 믿고 갈 뿐이다. 올라온 반대편, 내려가야 할 암릉을 보니, 하다못해 산악회 리본도 안 보이는 절벽이나, 내려갈 수는 있어, 조심조심 내려갔다. 그리고 너럭바위에 도착해 아래를 보니, 숲 사이로 길 같은 게 보여 일단 안심했다. 한숨 돌린 후, 네발을 이용해 바위를 내려가 길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보니, 희미하게 인적이 있어 그 인적을 따라가자, 동물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센서 카메라가 길목 나무에 묶여 있는 게, 정기적으로 카메라를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 온다는 얘기다. 아니, 인간을 감시하기 위한 CCTV인가? 어쨌든 인적은 그 카메라를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가고 있어, 당연히 그 인적을 따라 낙엽 쌓인 급경사를 대각선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그 인적이 곧 사라져, 낙엽에 가려 안 보이는 거로 생각하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가자, 낭떠러지다. 해서 방향을 틀어 계곡 방향으로 직진해 내려가니, 역시 산양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절벽이라,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를 보면, 능선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내려간다. 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능선으로 다시 올라가, 왼쪽으로 내려가며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맞다! 인적이 아니라, 지도에 의지해야 살 수 있다! 어쨌든 인적을 따라갔다가 목숨 건 두 번째 알바를 했다. 그리고 100m 정도 내려가, 비록 바닥에 떨어져 있지만, 이 구간에선 처음으로 산악회 리본도 발견했다.
수시로 지도를 확인하며, 능선과 계곡을 오가는 인적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길은 저 아래 보이는 계곡으로 내려갈 건데, 그 계곡이 다름이 아니라, 가리산 직전의 임도가 있는 그 계곡이라는 거다. 고로 그 계곡 주위는 산삼재배 지역이라, 계속 가도 좋은지 감이 안 온다. 상태로 봐서는 산삼 재배는 진작에 접은 거 같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또 과태료 딱지 떼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단은 보이는 상태를 믿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신로봉이든, 되돌아 가는 길이든 다시 오를 체력이 없어, 과태료를 무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가기로 했다. 12시 42분 나뭇가지에 매달린 산악회 리본에서 힘들 얻고 계속 가, 완만한 능선에 도착해 여유가 생기자, 길을 찾기 위해 관목을 헤치다 입은 오른손의 상처를 확인했다. 약간 긁힌 정도로 신경 쓸 건 없었다. 안심하고 가던 길을 재촉해, 능선 막판 급경사를 내려가 1시 정각에 도마치 계곡 지류에 도착했다.
역시 계곡을 따라 낸 임도다.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가리산 주변을 다 산삼 재배지로 바꾼 걸 보면 가리산이 사유지인가? 지금 사용하든 아니든 계곡이 아니라 임도로 간다는 건 그만큼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얘기라, 2시에 식당에 들어가는 걸 목표로 갔다. 그런데, 배가 고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먹었다. 이번 산행 처음으로 보리차 말고 먹는 유일한 음식이다. 사실 배낭에는 육포, 갱, 에너지바, 밤 등 먹을 게 들었음에도 꺼내기 귀찮고, 그 시간에 길을 재촉해 식당에 일찍 도착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렇다. 그렇게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가자, 쓰러진 쇠기둥이 산삼재배가 몰락했음을 보여준다. 과거 감시용 CCTV가 매달려 있던 기둥이다. 그리고 1시 16분 드디어 시멘트 포장 임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산삼이 망했으니, 임도 관리도 끝나, 곳곳이 무너져 내렸다.
1시 19분 무너진 임도 한편 바닥에 쓰러진 안내문이 있어 뭔지 확인했다. 산삼 재배가 망했다는 걸 한눈에 보여주는 '압류표시'다. 그걸 보자, 최소한 과태료 딱지 뗄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하다가, 임도가 무너져 내려 급하게 왼손을 뒤로 뻗어 바닥을 짚어, 이번에는 왼손바닥에 상처를 입었다. 재빨리 일어나 손바닥을 봤으나, 진흙이 묻어 잘 보이지 않아,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씻은 후 상처를 확인했다. 역시 무시해도 될 정도라, 그대로 길을 재촉했다. 사실 배낭에 비상용 밴드도 있지만, 더위를 먹어서인지 만사가 귀찮아, 계속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널따란 주차장을 보유한 폐허가 된 사무실이다. 그 널따란 주차장을 지나, 200m가량 가자, 비닐하우스 사거리라, 당연히 도로로 나가는 길로 보이는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며 보니, 왼쪽이 군부대다. 뭐 그러려니, 하고 내려가, 도마치에서 시작하는 계곡과 만났다. 그런데 계곡 옆으로 난 길은 군부대로 들어가고, 후문으로 보이는 굳게 잠긴 철문이 길을 차단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부대가 유원지 계곡 길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게 말이 안 되지만, 50여 미터 떨어져 보니, 그렇게 보인다. 후문 앞이 갈림길이 아닌지 확인할까 하다가, 이 땡볕에 다시 돌아오는 게 무서워 발길을 돌려 비닐하우스로 돌아갔다. 이게 이번 산행 가장 큰 패착이다. 내려가서 확인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산행 세 번째이자, 가장 긴 알바를 했다. 와중에 비닐하우스 사거리로 돌아가, 왼쪽 산으로 향하는 길을 피해 비닐하우스 앞을 지나는 길로 직진해서 보니, 막다른 길이다. 다시 돌아가는 건 싫어 잡목을 헤치고 둑방을 올라, 산 옆으로 난 길에 오른 후 뒤로 돌아 가리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며 도로로 향해, 1시 56분경 갈림길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동 시외버스 매표소까지 1.2km, 고로 2시에 식당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는 물 건너갔다.
땡볕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온몸을 받으며, 이동 면소재지로 향해, 12시 18분경 도착했다. 지금은 버스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배를 채우는 게 중요해 눈에 보이는 식당은 다 확인했다. 물론 순대국밥 아니면 국밥집만 그런데, 작은 면사무소에 순대국밥집이 왜, 이렇게 많나 놀랄 정도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영업 중인 집은 하나도 없다. 물론 갈비로 유명한 이동이라 갈비집은 다 영업 중이나, 지금은 갈비를 뜯을 상태가 아니다. 해서 오면서 본 마을 입구의 갈비탕집으로 가기로 하고, 일단 버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매표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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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를 세 번이나 했을 정도로 인적을 찾기 힘들고, 세 번이나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는 등 암릉을 제외하고도 힘든 산행이라 완전히 지쳤다. 와중에 머리 위는 불볕더위 바닥은 그 열기를 고스란히 품어 내는 아스팔트로 2.2km가량을 걸어오는 동안 더위만 배불리 먹었지, 체력 보충을 위해 먹은 거라곤 에너지바 하나와 보리차 360mL가 다다! 해서 일단 매표소 유리창에 붙은 동서울행 시외버스 시간표만 사진으로 찍고 순댓국이 아니어도 그저 국밥, 하다못해 갈비탕이라도 먹기 위해 다시 식당을 섭렵했다. 그렇게 10분가량을 다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이동 부산갈비' 외부 입간판의 광고문에서 '곤지암 한우 소머리국밥'이라는 메뉴를 발견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2시 30분경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점심시간이 끝나, 식탁을 치우던 주인장이 몇 명이냐고 물어 혼자라고 하니, 다시 뭘 먹을지 물어 소머리국밥이라고 하자, 자리에 앉으란다.
자리를 잡고 앉자, 주인장이 시원한 물을 가져와 바로 2/3 통 정도를 비웠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차림표에 눈이 갔다. 그런데, 그 차림표에는 소머리국밥이 없다. 이동 갈비집답게 고기 위주의 메뉴고, 밥이나 찌개는 후식 메뉴라, 그걸 보고 메뉴판에 없는 소머리국밥을 먹을 수 있게 도와준 산신에게 감사했다. 이후 좀 있다 나온 소머리국밥을 안주로 빨갱이를 마시는데,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빨갱이가 쓰고 목구멍에 걸린다. 대학 시절 이후 처음 있는 현상이다. 해서 국밥은 깨끗이 비웠으나, 빨갱이는 1/4 정도 남기고, 3시경 식당에서 나왔다. 물론,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와중에도, 핸드폰을 꺼내 좀 전에 찍은 시간표로 동서울행 시외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데, 길면 20분 짧으면 10분 간격으로 차가 있는 게 웬만한 시내버스 수준이라, 시간에 맞춰 나가는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나와 바로 옆의 편의점 겸 매표소로 가 가장 빠른 표를 달라고 해, 버스표를 받았다. 그리고 밖에 나가 시계를 보니, 현재 시각 3시 7분 다음 버스는 3시 15분이라, 혹시 5분 차표를 준 게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버스표를 꺼내 봤다. 그런데, 버스표에 날짜만 있을 뿐이지, 시간, 좌석 등 전부 와일드 문자다! 고로 어느 차를 타도 된다. 좌석이야 와일드 문자로 표기된 걸 다른 면 단위 터미널에서 많이 보던 거라, 놀라지 않았는데, 시간까지 무시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 고로 시내버스와 다른 건 표를 사야 한다는 거뿐이라 생각했는데, 표에 ‘Cash Bee’라 기록된 걸 보면, 표를 굳이 매표소에서 안 사도 되는 듯하다? 어쨌든 버스에 타서 보니, 아침과는 달리 거의 빈자리가 없어, 그나마 두 자리가 빈 뒷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동서울 도착 10여 분 전에 깼다.
역시 아침에 이동으로 올 때와는 달리, 일요일 오후라 다들 서울로 복귀 중이라 길이 막혀서 그런지, 4시 38분에 동서울 터미널 하차장에 도착해,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보니, 자리에 없어, 그냥 버스에서 내려 강변역으로 갔다. 그리고 열차를 타고 집으로 향해, 5시 40분경 집에 도착했다. 이후 옷을 갈아입으며 보니, 윗도리가 찢어졌다. 가리산 중봉에서 서봉으로 넘어갈 때 마른 가지에 걸렸을 때, 무리하게 앞으로 가는 바람에 옷 찢어지는 소리를 듣고 이미 알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확인하지 않았던, 영광의 상처다. 고로 이번 산행에서 오른손 엄지손가락 상처, 왼손 손바닥 상처, 찢어진 등산복 상의 등 세 훈장을 받았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시외버스 매표소 → 국망봉 휴양림 → 무명 능선 → 암릉 → 장암리 갈림길 → 안부 → 폐쇄 등산로 갈림길 → 암봉 전망대 → 휴양림 갈림길 → 입산금지 갈림길 → 계곡 → 능선 → 계곡 → 능선 갈림길 → 동봉 → 서봉(정상) → 암릉 → 도마치 계곡 → 임도 → 군부대 갈림길 → 풍차 갈비 → 시외버스 매표소.’의 14.1km(트랭글) 오지를 5시간 6분 동안 탐험했다. 이동 4시간 44분 휴식 22분!
코스의 어려움. 이어지는 암릉과 오르기 쉽지 않은 암봉, 찾기 힘든 인적 등 모든 게 평소 생각해오던 가리산에 대한 모습 이상이라 대단히 만족한 산행이다. 덕분에 최근 기대 이하의 안내산악회 오지 산행에서 입은 내상을 깨끗이 치유한 산행이다.
당일 기상청 가리산 지역 초미세먼지, 미세먼지 '보통'이라는 예보에 조망을 기대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가까운 신로봉과 한북정맥상의 국망봉도 희미하게 보일 지경이니, 먼 거리인 명성산, 각흘산 등을 조망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잡목의 방해야 오지라면 당연해 언급할 기치도 없고!
암릉과 암봉, 오지를 좋아하는 산꾼이라면 한번은 올라야 할 산이나, 암릉과 암봉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는 산이다.